
김장훈 ‘독도페스티벌’…“이 감동 평생 간직할 것”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3.1절인 1일 김장훈이 가슴에 손을 댄 채 독도에서 부른 애국가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기운은 뜨거운 감정으로 달아올랐고 김장훈과 ’독도 원정대’ 200여 명은 커다란 함성과 함께 하늘 위로 뛰어오르며 애국가 4절을 완창했다. 독도에 새하얗게 내려앉은 갈매기들도 함성에 화답하듯 때를 맞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1일 오후 1시30분 독도에 도착한 김장훈은 오후 3시20분 무대준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착장에서 ’독도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독도에서 대중 가수의 정식 콘서트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이 공연은 김장훈이 지난해부터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열고 있는 ’독도 페스티벌’ 전국순회 공연의 일환으로 3.1절을 맞아 독도에서 열려 더욱 뜻깊었다.
"뛸 준비 됐습니까"란 김장훈의 외침과 함께 독도 선착장은 축제마당으로 변했다.
김장훈은 사물놀이, 판소리와 함께 ’쇼’와 ’오페라’를 열창했고 ’난 남자다’를 부르며 특유의 ’발차기’를 날렸다.
또 "첫 곡이 애국가였다면 엔딩곡은 이 곡이어야 한다"며 ’아리랑’을 불러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앞서 김장훈은 이날 독도에 첫 발을 디딘 직후 한국 홍보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객원 교수와 포옹을 한 뒤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
그는 "이 경험을 영원히 잊지 못할 인연처럼 간직하고 싶다"며 "너무 감동적이고 멋있는 섬이어서 그들(일본)도 억지를 쓴다고 느껴진다. 연중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수가 30일에 불과하다는데 3.1절에 독도에 온 것이 기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장훈이 이처럼 감격한 것은 독도행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 교수와 손잡고 3개월 간 울릉군과 항만청, 독도경비대, 해양경찰청의 협조를 구하러 동분서주했다. 독도로 떠날 배까지 직접 섭외했다.
그러나 날씨부터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초 김장훈은 지난달 28일 독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입도를 하루 연기해 1일 오전 9시10분 강릉항에서 ’씨스타호’를 타고 출발했다.
이 배에는 서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반크 회원 및 한국대학생자원봉사단체인 V원정대로 구성된 ’독도 원정대’, 취재진 등 350명이 탑승했다.
강릉항에서 4시간여 동안 260㎞를 달려온 뱃길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평소 공황증을 앓아온 김장훈은 "배멀미와 공황증으로 멀미약,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복용할 정도로 뱃길이 힘들어 독도에 눌러앉을까도 생각했다"며 웃었다.
김장훈의 의지 못지않게 ’독도 원정대’의 젊은 혈기도 무척 뜨거웠다.
이들은 배에서 내린 직후부터 태극기와 깃발을 펄럭이고 ’독도는 우리땅’을 합창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반크 인턴사원으로 2개월 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모로코인 요네스 엘가스미 씨(23)는 "모로코에서 인터넷을 통해 반크를 알게 됐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생각에 반크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독도에 처음 왔는데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한국인들의 영토에 대한 관심에 놀랍다"고 말했다.
V원정대의 박형진(21) 씨도 "독도와 동해를 알리는 김장훈 씨의 활동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며 "직접 와보니 독도가 우리 땅이란 실감이 든다. 앞으로 독도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하늘이 도와 공연이 성사됐다. 오늘 페스티벌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낸 데 이은 연장선"이라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독도 문제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며 "최근 일본인이 독도로 본적을 옮겨 인터넷이 들끓었지만 하루 만에 관심이 수그러들었다. 독도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이 중요한 만큼 ’독도 페스티벌’을 ’이스트 시(East Sea) 페스티벌’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3.1절인 1일 김장훈이 가슴에 손을 댄 채 독도에서 부른 애국가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기운은 뜨거운 감정으로 달아올랐고 김장훈과 ’독도 원정대’ 200여 명은 커다란 함성과 함께 하늘 위로 뛰어오르며 애국가 4절을 완창했다. 독도에 새하얗게 내려앉은 갈매기들도 함성에 화답하듯 때를 맞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1일 오후 1시30분 독도에 도착한 김장훈은 오후 3시20분 무대준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착장에서 ’독도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독도에서 대중 가수의 정식 콘서트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이 공연은 김장훈이 지난해부터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열고 있는 ’독도 페스티벌’ 전국순회 공연의 일환으로 3.1절을 맞아 독도에서 열려 더욱 뜻깊었다.
"뛸 준비 됐습니까"란 김장훈의 외침과 함께 독도 선착장은 축제마당으로 변했다.
김장훈은 사물놀이, 판소리와 함께 ’쇼’와 ’오페라’를 열창했고 ’난 남자다’를 부르며 특유의 ’발차기’를 날렸다.
또 "첫 곡이 애국가였다면 엔딩곡은 이 곡이어야 한다"며 ’아리랑’을 불러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앞서 김장훈은 이날 독도에 첫 발을 디딘 직후 한국 홍보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객원 교수와 포옹을 한 뒤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
그는 "이 경험을 영원히 잊지 못할 인연처럼 간직하고 싶다"며 "너무 감동적이고 멋있는 섬이어서 그들(일본)도 억지를 쓴다고 느껴진다. 연중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수가 30일에 불과하다는데 3.1절에 독도에 온 것이 기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장훈이 이처럼 감격한 것은 독도행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 교수와 손잡고 3개월 간 울릉군과 항만청, 독도경비대, 해양경찰청의 협조를 구하러 동분서주했다. 독도로 떠날 배까지 직접 섭외했다.
그러나 날씨부터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초 김장훈은 지난달 28일 독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입도를 하루 연기해 1일 오전 9시10분 강릉항에서 ’씨스타호’를 타고 출발했다.
이 배에는 서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반크 회원 및 한국대학생자원봉사단체인 V원정대로 구성된 ’독도 원정대’, 취재진 등 350명이 탑승했다.
강릉항에서 4시간여 동안 260㎞를 달려온 뱃길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평소 공황증을 앓아온 김장훈은 "배멀미와 공황증으로 멀미약,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복용할 정도로 뱃길이 힘들어 독도에 눌러앉을까도 생각했다"며 웃었다.
김장훈의 의지 못지않게 ’독도 원정대’의 젊은 혈기도 무척 뜨거웠다.
이들은 배에서 내린 직후부터 태극기와 깃발을 펄럭이고 ’독도는 우리땅’을 합창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반크 인턴사원으로 2개월 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모로코인 요네스 엘가스미 씨(23)는 "모로코에서 인터넷을 통해 반크를 알게 됐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생각에 반크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독도에 처음 왔는데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한국인들의 영토에 대한 관심에 놀랍다"고 말했다.
V원정대의 박형진(21) 씨도 "독도와 동해를 알리는 김장훈 씨의 활동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며 "직접 와보니 독도가 우리 땅이란 실감이 든다. 앞으로 독도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하늘이 도와 공연이 성사됐다. 오늘 페스티벌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낸 데 이은 연장선"이라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독도 문제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며 "최근 일본인이 독도로 본적을 옮겨 인터넷이 들끓었지만 하루 만에 관심이 수그러들었다. 독도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이 중요한 만큼 ’독도 페스티벌’을 ’이스트 시(East Sea) 페스티벌’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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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절 독도서 울려퍼진 ‘애국가와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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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3-01 17:25:23

김장훈 ‘독도페스티벌’…“이 감동 평생 간직할 것”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3.1절인 1일 김장훈이 가슴에 손을 댄 채 독도에서 부른 애국가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기운은 뜨거운 감정으로 달아올랐고 김장훈과 ’독도 원정대’ 200여 명은 커다란 함성과 함께 하늘 위로 뛰어오르며 애국가 4절을 완창했다. 독도에 새하얗게 내려앉은 갈매기들도 함성에 화답하듯 때를 맞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1일 오후 1시30분 독도에 도착한 김장훈은 오후 3시20분 무대준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착장에서 ’독도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독도에서 대중 가수의 정식 콘서트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이 공연은 김장훈이 지난해부터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열고 있는 ’독도 페스티벌’ 전국순회 공연의 일환으로 3.1절을 맞아 독도에서 열려 더욱 뜻깊었다.
"뛸 준비 됐습니까"란 김장훈의 외침과 함께 독도 선착장은 축제마당으로 변했다.
김장훈은 사물놀이, 판소리와 함께 ’쇼’와 ’오페라’를 열창했고 ’난 남자다’를 부르며 특유의 ’발차기’를 날렸다.
또 "첫 곡이 애국가였다면 엔딩곡은 이 곡이어야 한다"며 ’아리랑’을 불러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앞서 김장훈은 이날 독도에 첫 발을 디딘 직후 한국 홍보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객원 교수와 포옹을 한 뒤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
그는 "이 경험을 영원히 잊지 못할 인연처럼 간직하고 싶다"며 "너무 감동적이고 멋있는 섬이어서 그들(일본)도 억지를 쓴다고 느껴진다. 연중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수가 30일에 불과하다는데 3.1절에 독도에 온 것이 기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장훈이 이처럼 감격한 것은 독도행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 교수와 손잡고 3개월 간 울릉군과 항만청, 독도경비대, 해양경찰청의 협조를 구하러 동분서주했다. 독도로 떠날 배까지 직접 섭외했다.
그러나 날씨부터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초 김장훈은 지난달 28일 독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입도를 하루 연기해 1일 오전 9시10분 강릉항에서 ’씨스타호’를 타고 출발했다.
이 배에는 서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반크 회원 및 한국대학생자원봉사단체인 V원정대로 구성된 ’독도 원정대’, 취재진 등 350명이 탑승했다.
강릉항에서 4시간여 동안 260㎞를 달려온 뱃길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평소 공황증을 앓아온 김장훈은 "배멀미와 공황증으로 멀미약,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복용할 정도로 뱃길이 힘들어 독도에 눌러앉을까도 생각했다"며 웃었다.
김장훈의 의지 못지않게 ’독도 원정대’의 젊은 혈기도 무척 뜨거웠다.
이들은 배에서 내린 직후부터 태극기와 깃발을 펄럭이고 ’독도는 우리땅’을 합창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반크 인턴사원으로 2개월 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모로코인 요네스 엘가스미 씨(23)는 "모로코에서 인터넷을 통해 반크를 알게 됐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생각에 반크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독도에 처음 왔는데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한국인들의 영토에 대한 관심에 놀랍다"고 말했다.
V원정대의 박형진(21) 씨도 "독도와 동해를 알리는 김장훈 씨의 활동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며 "직접 와보니 독도가 우리 땅이란 실감이 든다. 앞으로 독도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하늘이 도와 공연이 성사됐다. 오늘 페스티벌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낸 데 이은 연장선"이라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독도 문제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며 "최근 일본인이 독도로 본적을 옮겨 인터넷이 들끓었지만 하루 만에 관심이 수그러들었다. 독도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이 중요한 만큼 ’독도 페스티벌’을 ’이스트 시(East Sea) 페스티벌’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3.1절인 1일 김장훈이 가슴에 손을 댄 채 독도에서 부른 애국가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이 기운은 뜨거운 감정으로 달아올랐고 김장훈과 ’독도 원정대’ 200여 명은 커다란 함성과 함께 하늘 위로 뛰어오르며 애국가 4절을 완창했다. 독도에 새하얗게 내려앉은 갈매기들도 함성에 화답하듯 때를 맞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1일 오후 1시30분 독도에 도착한 김장훈은 오후 3시20분 무대준비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착장에서 ’독도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독도에서 대중 가수의 정식 콘서트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이 공연은 김장훈이 지난해부터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열고 있는 ’독도 페스티벌’ 전국순회 공연의 일환으로 3.1절을 맞아 독도에서 열려 더욱 뜻깊었다.
"뛸 준비 됐습니까"란 김장훈의 외침과 함께 독도 선착장은 축제마당으로 변했다.
김장훈은 사물놀이, 판소리와 함께 ’쇼’와 ’오페라’를 열창했고 ’난 남자다’를 부르며 특유의 ’발차기’를 날렸다.
또 "첫 곡이 애국가였다면 엔딩곡은 이 곡이어야 한다"며 ’아리랑’을 불러 가슴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앞서 김장훈은 이날 독도에 첫 발을 디딘 직후 한국 홍보전문가인 성신여대 서경덕 객원 교수와 포옹을 한 뒤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
그는 "이 경험을 영원히 잊지 못할 인연처럼 간직하고 싶다"며 "너무 감동적이고 멋있는 섬이어서 그들(일본)도 억지를 쓴다고 느껴진다. 연중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수가 30일에 불과하다는데 3.1절에 독도에 온 것이 기적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장훈이 이처럼 감격한 것은 독도행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서 교수와 손잡고 3개월 간 울릉군과 항만청, 독도경비대, 해양경찰청의 협조를 구하러 동분서주했다. 독도로 떠날 배까지 직접 섭외했다.
그러나 날씨부터 호의적이지 않았다. 당초 김장훈은 지난달 28일 독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입도를 하루 연기해 1일 오전 9시10분 강릉항에서 ’씨스타호’를 타고 출발했다.
이 배에는 서 교수,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 반크 회원 및 한국대학생자원봉사단체인 V원정대로 구성된 ’독도 원정대’, 취재진 등 350명이 탑승했다.
강릉항에서 4시간여 동안 260㎞를 달려온 뱃길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평소 공황증을 앓아온 김장훈은 "배멀미와 공황증으로 멀미약, 수면제, 신경안정제를 복용할 정도로 뱃길이 힘들어 독도에 눌러앉을까도 생각했다"며 웃었다.
김장훈의 의지 못지않게 ’독도 원정대’의 젊은 혈기도 무척 뜨거웠다.
이들은 배에서 내린 직후부터 태극기와 깃발을 펄럭이고 ’독도는 우리땅’을 합창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반크 인턴사원으로 2개월 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모로코인 요네스 엘가스미 씨(23)는 "모로코에서 인터넷을 통해 반크를 알게 됐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생각에 반크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독도에 처음 왔는데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한국인들의 영토에 대한 관심에 놀랍다"고 말했다.
V원정대의 박형진(21) 씨도 "독도와 동해를 알리는 김장훈 씨의 활동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며 "직접 와보니 독도가 우리 땅이란 실감이 든다. 앞으로 독도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서경덕 교수는 "하늘이 도와 공연이 성사됐다. 오늘 페스티벌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낸 데 이은 연장선"이라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독도 문제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며 "최근 일본인이 독도로 본적을 옮겨 인터넷이 들끓었지만 하루 만에 관심이 수그러들었다. 독도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이 중요한 만큼 ’독도 페스티벌’을 ’이스트 시(East Sea) 페스티벌’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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