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40년 전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뒤, 가난에 쪼들려 사는 가족이 있습니다.
요즘 돈 수십억원 가치의 땅을 기부한 한 독지가의 유족이 낡고 비좁은 집에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수영 기자, 뜻있는 일을 하고도 어쩌다 이런 어려움을 겪게된 건가요?
<리포트>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워합니다.
40년 전 한 독지가가 통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천 평 땅을 경찰서를 지으라며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살 집을 지을 땅만 돌려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사망할 때까지 못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유족인 70대 부인은 낡은 집에서 홀로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경찰은 땅을 돌려줄 근거가 없다며 난처해 합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경찰서 앞 도로,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습니다.
올해 71살 손부녀 씨는 60제곱미터 남짓한 이 집 한 켠에서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손 씨는 38년 전인 1973년부터 이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손 씨의 남편 장창기 씨는 당시 정부가 경찰서를 짓는데 부지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였던 장 씨는 경찰서 터에 쓰라며 6천 제곱미터가 넘는 땅을 국가에 선뜻 내놓았다고 유족들은 말합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등기부등본을 보니까 5,200㎡ 정도가 있더라고요 여기 경찰서(대지)에 그리고 여기(집터)하고 해서 (총) 6600㎡정도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시세로 46억, 거의 50억까지 돼 가는 거죠."
마을 주민들 역시 지금 경찰서 부지가 장 씨가 기부한 땅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 : "경찰서 땅이라고 기증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인터뷰> 마을 주민 : "'내가 (경찰서 대지를) 기부했어' (故 장창기 씨가) 그러더라고요. 아이고, 형님 그걸 왜 희사하느냐고 그것으로 임대료만 받아도 먹고 살 수 있는데 (라고 했었습니다)"
막대한 땅을 기부 받은 경찰은 가족들이 살 집터로 땅 천 제곱미터를 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유족들은 주장합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렇게 말씀 하셨죠. 경찰서 땅만 기부한 것이지 여기(집터)까지 기부를 한 게 아니다 나한테 등기를 해주기로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이후 경찰은 장 씨 가족을 위해 집 한 채를 지어줬지만 그게 장 씨 가족이 받은 마지막 보상이었습니다.
땅을 돌려주기로 한 약속은 한없이 미뤄졌고 장 씨는 지난 1990년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땅을 돌려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유족들은 회상합니다.
<녹취> 장연정(가명) : "둘째딸 돌아가시기 전날 말씀을 또 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이렇게 돼서 희사하게 됐는데 이거를 내가 (해결할 테니) 한 달 정도만 기다려봐, 이거를 내가 등기이전을 해 달라고 해서 확실히 놓을 테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진짜로 거짓말같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홀몸이 된 손부녀 할머니는 오랜 세월 살아온 집마저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정부 재산이라는 이유로 60제곱미터 남짓한 집 절반을 경찰 친목단체인 경우회가 사무실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살고 있는 30제곱미터 남짓한 살림집은 낡을 대로 낡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옛날 집이니까 낡았잖아요. 겨울에는 아예 물이 다 얼어요. 여기 수도도 얼고 부엌의 수도도 얼고 변기 물도 얼고."
수천 제곱미터 땅을 주무르던 가족 재산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데 간 데 없어졌고 장성한 자녀 세 명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생계를 꾸리는 유일한 수입은 한 달 27만 원씩 타 쓰는 정부 생활보호지원금이 전붑니다.
건강은 악화돼 10년 전부터 중풍을 앓아왔고 최근 들어 치매 증상마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40년 전 약속한 땅을 달라고 경찰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이게 국가 건물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하니까 그러면 어차피 우리한테 주기로 한 땅이니까 우리한테 (등기해) 줘라. 그러면 다시 집을 지어서 우리 엄마하고 여기서 사는 게 우리 소원이다 (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거절했습니다.
고인이 기부했다는 땅 6천 제곱미터 가운데 실제 국가가 증여받은 사실을 확인한 땅은 천 제곱미터일 뿐이라고 경찰은 말합니다.
나머지 땅은 고인이 기부했는지 여부조차 알 길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뷰> 이철민(서장/화천경찰서) : "공부상으로는 1973년도에 경찰서 앞 부지 1008㎡ 부지에 대해서는 장창기씨가 증여한 게 맞습니다."
그나마 고인이 내놓은 땅 역시 유족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이렇다 할 근거가 없어 증여해 주기는 곤란하다고 밝힙니다.
<인터뷰> 이철민(서장/화천경찰서) : "그때 당시 증여를 하면서 장창기씨께서 (증여한 땅을) 화천 경찰서로부터 되돌려 받는 문제, 기타 여러 가지 어떤 혜택을 약속 받았다고 현재 진정을 하고 있는데 그 건과 관련된 하등의 어떤 서류나 저희가 참고 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있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도 제대로 공을 인정받지 못한 채 궁핍하게 살고 있는 손 씨 사연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을 주민 : "좀 먹고 살고 그러면 신경(을) 안 쓰는데, 지금 오갈 데가 없거든요. 원만하(게 해결되)고 자기(고 장창기씨) 후손들을 살게끔 만들어주길 원하고 있지."
주민들이 40년 전 약속대로 집 지을 땅이라도 돌려달라는 유족과 근거를 찾지 못해 땅을 줄 수 없다는 경찰이 맞서는 가운데 유족인 70대 할머니는 낡은 집에서 외로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40년 전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뒤, 가난에 쪼들려 사는 가족이 있습니다.
요즘 돈 수십억원 가치의 땅을 기부한 한 독지가의 유족이 낡고 비좁은 집에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수영 기자, 뜻있는 일을 하고도 어쩌다 이런 어려움을 겪게된 건가요?
<리포트>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워합니다.
40년 전 한 독지가가 통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천 평 땅을 경찰서를 지으라며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살 집을 지을 땅만 돌려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사망할 때까지 못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유족인 70대 부인은 낡은 집에서 홀로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경찰은 땅을 돌려줄 근거가 없다며 난처해 합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경찰서 앞 도로,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습니다.
올해 71살 손부녀 씨는 60제곱미터 남짓한 이 집 한 켠에서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손 씨는 38년 전인 1973년부터 이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손 씨의 남편 장창기 씨는 당시 정부가 경찰서를 짓는데 부지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였던 장 씨는 경찰서 터에 쓰라며 6천 제곱미터가 넘는 땅을 국가에 선뜻 내놓았다고 유족들은 말합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등기부등본을 보니까 5,200㎡ 정도가 있더라고요 여기 경찰서(대지)에 그리고 여기(집터)하고 해서 (총) 6600㎡정도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시세로 46억, 거의 50억까지 돼 가는 거죠."
마을 주민들 역시 지금 경찰서 부지가 장 씨가 기부한 땅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 : "경찰서 땅이라고 기증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인터뷰> 마을 주민 : "'내가 (경찰서 대지를) 기부했어' (故 장창기 씨가) 그러더라고요. 아이고, 형님 그걸 왜 희사하느냐고 그것으로 임대료만 받아도 먹고 살 수 있는데 (라고 했었습니다)"
막대한 땅을 기부 받은 경찰은 가족들이 살 집터로 땅 천 제곱미터를 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유족들은 주장합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렇게 말씀 하셨죠. 경찰서 땅만 기부한 것이지 여기(집터)까지 기부를 한 게 아니다 나한테 등기를 해주기로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이후 경찰은 장 씨 가족을 위해 집 한 채를 지어줬지만 그게 장 씨 가족이 받은 마지막 보상이었습니다.
땅을 돌려주기로 한 약속은 한없이 미뤄졌고 장 씨는 지난 1990년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땅을 돌려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유족들은 회상합니다.
<녹취> 장연정(가명) : "둘째딸 돌아가시기 전날 말씀을 또 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이렇게 돼서 희사하게 됐는데 이거를 내가 (해결할 테니) 한 달 정도만 기다려봐, 이거를 내가 등기이전을 해 달라고 해서 확실히 놓을 테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진짜로 거짓말같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홀몸이 된 손부녀 할머니는 오랜 세월 살아온 집마저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정부 재산이라는 이유로 60제곱미터 남짓한 집 절반을 경찰 친목단체인 경우회가 사무실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살고 있는 30제곱미터 남짓한 살림집은 낡을 대로 낡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옛날 집이니까 낡았잖아요. 겨울에는 아예 물이 다 얼어요. 여기 수도도 얼고 부엌의 수도도 얼고 변기 물도 얼고."
수천 제곱미터 땅을 주무르던 가족 재산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데 간 데 없어졌고 장성한 자녀 세 명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생계를 꾸리는 유일한 수입은 한 달 27만 원씩 타 쓰는 정부 생활보호지원금이 전붑니다.
건강은 악화돼 10년 전부터 중풍을 앓아왔고 최근 들어 치매 증상마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40년 전 약속한 땅을 달라고 경찰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이게 국가 건물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하니까 그러면 어차피 우리한테 주기로 한 땅이니까 우리한테 (등기해) 줘라. 그러면 다시 집을 지어서 우리 엄마하고 여기서 사는 게 우리 소원이다 (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거절했습니다.
고인이 기부했다는 땅 6천 제곱미터 가운데 실제 국가가 증여받은 사실을 확인한 땅은 천 제곱미터일 뿐이라고 경찰은 말합니다.
나머지 땅은 고인이 기부했는지 여부조차 알 길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뷰> 이철민(서장/화천경찰서) : "공부상으로는 1973년도에 경찰서 앞 부지 1008㎡ 부지에 대해서는 장창기씨가 증여한 게 맞습니다."
그나마 고인이 내놓은 땅 역시 유족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이렇다 할 근거가 없어 증여해 주기는 곤란하다고 밝힙니다.
<인터뷰> 이철민(서장/화천경찰서) : "그때 당시 증여를 하면서 장창기씨께서 (증여한 땅을) 화천 경찰서로부터 되돌려 받는 문제, 기타 여러 가지 어떤 혜택을 약속 받았다고 현재 진정을 하고 있는데 그 건과 관련된 하등의 어떤 서류나 저희가 참고 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있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도 제대로 공을 인정받지 못한 채 궁핍하게 살고 있는 손 씨 사연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을 주민 : "좀 먹고 살고 그러면 신경(을) 안 쓰는데, 지금 오갈 데가 없거든요. 원만하(게 해결되)고 자기(고 장창기씨) 후손들을 살게끔 만들어주길 원하고 있지."
주민들이 40년 전 약속대로 집 지을 땅이라도 돌려달라는 유족과 근거를 찾지 못해 땅을 줄 수 없다는 경찰이 맞서는 가운데 유족인 70대 할머니는 낡은 집에서 외로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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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따라잡기] 수십억 땅 기부 70대, 쪽방 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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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1-03-02 08:51:32
<앵커 멘트>
40년 전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뒤, 가난에 쪼들려 사는 가족이 있습니다.
요즘 돈 수십억원 가치의 땅을 기부한 한 독지가의 유족이 낡고 비좁은 집에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면, 여러분은 떤 생각이 드십니까?
정수영 기자, 뜻있는 일을 하고도 어쩌다 이런 어려움을 겪게된 건가요?
<리포트>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워합니다.
40년 전 한 독지가가 통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천 평 땅을 경찰서를 지으라며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살 집을 지을 땅만 돌려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사망할 때까지 못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유족인 70대 부인은 낡은 집에서 홀로 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당사자인 경찰은 땅을 돌려줄 근거가 없다며 난처해 합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경찰서 앞 도로,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습니다.
올해 71살 손부녀 씨는 60제곱미터 남짓한 이 집 한 켠에서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손 씨는 38년 전인 1973년부터 이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손 씨의 남편 장창기 씨는 당시 정부가 경찰서를 짓는데 부지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에서 손꼽히는 재력가였던 장 씨는 경찰서 터에 쓰라며 6천 제곱미터가 넘는 땅을 국가에 선뜻 내놓았다고 유족들은 말합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등기부등본을 보니까 5,200㎡ 정도가 있더라고요 여기 경찰서(대지)에 그리고 여기(집터)하고 해서 (총) 6600㎡정도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시세로 46억, 거의 50억까지 돼 가는 거죠."
마을 주민들 역시 지금 경찰서 부지가 장 씨가 기부한 땅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 : "경찰서 땅이라고 기증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인터뷰> 마을 주민 : "'내가 (경찰서 대지를) 기부했어' (故 장창기 씨가) 그러더라고요. 아이고, 형님 그걸 왜 희사하느냐고 그것으로 임대료만 받아도 먹고 살 수 있는데 (라고 했었습니다)"
막대한 땅을 기부 받은 경찰은 가족들이 살 집터로 땅 천 제곱미터를 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유족들은 주장합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렇게 말씀 하셨죠. 경찰서 땅만 기부한 것이지 여기(집터)까지 기부를 한 게 아니다 나한테 등기를 해주기로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이후 경찰은 장 씨 가족을 위해 집 한 채를 지어줬지만 그게 장 씨 가족이 받은 마지막 보상이었습니다.
땅을 돌려주기로 한 약속은 한없이 미뤄졌고 장 씨는 지난 1990년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땅을 돌려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유족들은 회상합니다.
<녹취> 장연정(가명) : "둘째딸 돌아가시기 전날 말씀을 또 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이렇게 돼서 희사하게 됐는데 이거를 내가 (해결할 테니) 한 달 정도만 기다려봐, 이거를 내가 등기이전을 해 달라고 해서 확실히 놓을 테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진짜로 거짓말같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홀몸이 된 손부녀 할머니는 오랜 세월 살아온 집마저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정부 재산이라는 이유로 60제곱미터 남짓한 집 절반을 경찰 친목단체인 경우회가 사무실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살고 있는 30제곱미터 남짓한 살림집은 낡을 대로 낡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옛날 집이니까 낡았잖아요. 겨울에는 아예 물이 다 얼어요. 여기 수도도 얼고 부엌의 수도도 얼고 변기 물도 얼고."
수천 제곱미터 땅을 주무르던 가족 재산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데 간 데 없어졌고 장성한 자녀 세 명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생계를 꾸리는 유일한 수입은 한 달 27만 원씩 타 쓰는 정부 생활보호지원금이 전붑니다.
건강은 악화돼 10년 전부터 중풍을 앓아왔고 최근 들어 치매 증상마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40년 전 약속한 땅을 달라고 경찰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장연미(큰딸) : "이게 국가 건물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하니까 그러면 어차피 우리한테 주기로 한 땅이니까 우리한테 (등기해) 줘라. 그러면 다시 집을 지어서 우리 엄마하고 여기서 사는 게 우리 소원이다 (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거절했습니다.
고인이 기부했다는 땅 6천 제곱미터 가운데 실제 국가가 증여받은 사실을 확인한 땅은 천 제곱미터일 뿐이라고 경찰은 말합니다.
나머지 땅은 고인이 기부했는지 여부조차 알 길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뷰> 이철민(서장/화천경찰서) : "공부상으로는 1973년도에 경찰서 앞 부지 1008㎡ 부지에 대해서는 장창기씨가 증여한 게 맞습니다."
그나마 고인이 내놓은 땅 역시 유족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이렇다 할 근거가 없어 증여해 주기는 곤란하다고 밝힙니다.
<인터뷰> 이철민(서장/화천경찰서) : "그때 당시 증여를 하면서 장창기씨께서 (증여한 땅을) 화천 경찰서로부터 되돌려 받는 문제, 기타 여러 가지 어떤 혜택을 약속 받았다고 현재 진정을 하고 있는데 그 건과 관련된 하등의 어떤 서류나 저희가 참고 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있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거액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도 제대로 공을 인정받지 못한 채 궁핍하게 살고 있는 손 씨 사연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을 주민 : "좀 먹고 살고 그러면 신경(을) 안 쓰는데, 지금 오갈 데가 없거든요. 원만하(게 해결되)고 자기(고 장창기씨) 후손들을 살게끔 만들어주길 원하고 있지."
주민들이 40년 전 약속대로 집 지을 땅이라도 돌려달라는 유족과 근거를 찾지 못해 땅을 줄 수 없다는 경찰이 맞서는 가운데 유족인 70대 할머니는 낡은 집에서 외로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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