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기념비적 건축물

입력 2011.03.19 (11:20) 수정 2011.03.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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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한 나라의 건축은 사회발전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창작행위인데요.

북한의 건축 양식은 문화나 기술이 아닌 절대권력자의 선택과 지시에 따라 변천해온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은 북한의 건축을 2회에 걸쳐 분석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오늘은 첫 번 째 순서로 북한이 내세우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살펴봅니다.

<리포트>

평양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우뚝 솟아있는 류경호텔을 만나게 된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류경호텔은 105층으로 높이는 323미터이다.

1987년 공사를 착공했을 당시 세계 최고층호텔이자, 동양 최고층 건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992년 공사가 60%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돼 흉물로 방치됐다.

그러다 지난 2008년 이집트 오라스콤의 투자로 공사가 16년 만에 재개됐고, 강성대국 건설 원년인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착공 25년만이다.

북한은 왜 1987년에 동양최고층 류경호텔을 짓기 시작한 것일까.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남한에서 63빌딩을 만들면서 선전하고 자랑할 때 거기는 105층 빌딩을 기획해서 만들게 되죠, 그게 바로 유경호텔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북한이 기념비적이라고 내세우는 건축물은 한마디로 웅장하다.

이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초한 신고전주의의 영향이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만수대의사당은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1984년 준공됐으며, 연면적이 4만5천제곱미터에 이른다.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때 공식환영행사가 열렸던 4.25 문화회관과 만수대예술극장도 모두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신고전주의는 6.25 전쟁 이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복구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인터뷰> 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웅장한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수평선을 강조하면서 중심부라든가 이런 부분들은 수직선을 강조하게 됩니다. 수평선이라는 것은 인민의 평등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있고요."

수직선이라는 것은 혁명성이라든가 사회주 의 체제 위신, 우월성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자 초기에 많이 사용했던 양식들입니다.

이후 지금껏 북한의 공공건축은 웅장함 그리고 수직과 수평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다.

북한의 건축양식에 변화가 온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김일성 주석은 건축에도 ‘주체사상’을 도입할 것을 지시했고, 이는 민족적 요소가 신고전주의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났다.

우리의 국립도서관에 해당하는인민대학습당이 대표적인 민족주의적 형식의 건축물로, 서까래 위에 기와 지붕을 올렸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내용은 사회주의적 내용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정면을 보면 기둥의 노출이라든가 수직선 수평선은 그래도 유지하면서 지붕의 덩어리를 좀 떼어내기도 하고 모양 을 날렵하게 만든 지붕 처마를 만들어서, 이런 것들이 주체건축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974년 준공된 인민문화궁전이나,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묘향산에 위치한 국제친선전람관 모두 민족주의적 형식의 건축물이다.

신고전주의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던 북한의 건축양식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건 1970년대부터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버지로부터 건설 부문의 전권을 위임받으면서 북한의 공공건축에선 예술성이 특히 강조됐다.

3년전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했던 동평양대극장은 피아노 건반을 형상화했고, 원추형의 빙상관은 낙하산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공연과 문화집회를 하는 청년중앙회관과 평양교예극장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니까 건축의 형태나 조형이 단순하게 시설물로만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어떤 예술적인 감성을 표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을 하면서 이것 이 1980년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조형주의 건축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북한의 건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정치적 의미가 강조된다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북한에서 가장 즐겨하는 것 중 하나가 북한 사회주의를 어떻게 형태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중에 하나에요. 대표적인 것이 주체사상탑, 천리마동상 그런 것들이 곳곳에 많이 세워집니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일성 광장과 마주하고 있는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70미터다.

횃불의 높이만도 20미터이고, 무게는 45톤에 이른다.

주체사상탑 앞에는 높이 30미터의 3인군상이 있고, 대동강에는 물을 150미터까지 뿜어올리는 대형 분수 2개가 설치돼 있다.

모두 1982년 김정일 위원장이 아버지의 혁명업적을 기린다며 만들었다.

1982년 세워진 평양 개선문 역시 정치적 상징물이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을 기념해 만든 개선문은 파리 개선문을 본떴지만 10미터가 더 높다.

북한이 건축물을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경향은 남북의 이념대립과 체제경쟁이 첨예했던 1970년대부터 두드러졌다.

남한이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자 북한은 이듬해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했다.

이를 위해 북한이 지은 건축물이 5.1 경기장으로 수용인원이 잠실주경기장의 2배인 15만명에 이른다.

1985년 개장한 45층짜리 고려호텔 역시 신라호텔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김정일은 신라호텔을 능가하겠다며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와 초호화판 호텔을 지었다.

1987년 착공한 류경호텔 역시 1985년 완공된 63빌딩을 의식한 건축물이었다.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북한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건축물을 거대하게 만든다든지 아주 웅장하게 만든다든지 아주 남쪽과 달리 아 주 우수하게 만든다든가 이런 측면에서 표현이 되는데.. 남북간 대립이 한창 경쟁적으 로 이뤄질 때 사회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건물을 만들게 됐죠."

북한의 공공건축물들은 체제선전용이라는 특징 탓에 건축물의 크기부터 공간 배치에 이르기까지 실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사에서도 속도전을 벌여왔다.

때문에 국제친선전람관이나 빙상관 평양제1백화점과 같은 대형 건축물들도 공사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했다.

건설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주민과 군인들을 공사현장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김정일 위원장 체제 내에서 건축이 활발하게 이뤄질 때도 청년돌격대가 들어와서 속도전을 가속화시키고 공사를 단축하는 현상들이 있었는데요. 건축이라는 것은 일정 부분의 기간이 있어야 하고 양생하는 기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있어야 구조물로 완벽성을 기할 수 가 있는데..."

북한이 내세우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지어졌다.

북한의 건축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쇠락하게 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이 북한을 엄습하면서 대규모 건축은 모두 중단됐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북한의 경제난 전력난은 건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건물이 거의 지어지지 않았고요. 북한의 건축은 90년대 말부터 올스톱됐다고 볼 수 있습 니다. 지금 와서 새롭게 리모델링이나 새롭게 벌이고 있긴 하지만 한 20년 사이에는 거의 없었고요."

남과 북이 반세기 넘게 분단된 채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결과, 남한에는 자본주의적 현대건축물이 북한에는 사회주의적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도시의 풍경 자체가 매우 이질적이다.

건축 방식이나 자재도 다르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북한은 모든 것을 국가가 운영합니다. 건설도 운영하고 설계도 운영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관이 주도적으로 가는 것이죠. 다 중앙통제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 이 기술을 담보하거나 기술을 축적하기 어 려운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995년 조선총독부청사였던 중앙청 건물을 일제 침략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철거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이 자랑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인터뷰> 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우리가 먼 장래를 생각한다면 북한 건축을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될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되지 않을까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정부차원에서도 생각해야 하고, 전문가 차원에서도 생각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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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기념비적 건축물
    • 입력 2011-03-19 11:20:48
    • 수정2011-03-19 11:21:33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해보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한 나라의 건축은 사회발전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창작행위인데요. 북한의 건축 양식은 문화나 기술이 아닌 절대권력자의 선택과 지시에 따라 변천해온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은 북한의 건축을 2회에 걸쳐 분석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오늘은 첫 번 째 순서로 북한이 내세우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살펴봅니다. <리포트> 평양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우뚝 솟아있는 류경호텔을 만나게 된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류경호텔은 105층으로 높이는 323미터이다. 1987년 공사를 착공했을 당시 세계 최고층호텔이자, 동양 최고층 건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992년 공사가 60%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돼 흉물로 방치됐다. 그러다 지난 2008년 이집트 오라스콤의 투자로 공사가 16년 만에 재개됐고, 강성대국 건설 원년인 내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착공 25년만이다. 북한은 왜 1987년에 동양최고층 류경호텔을 짓기 시작한 것일까.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남한에서 63빌딩을 만들면서 선전하고 자랑할 때 거기는 105층 빌딩을 기획해서 만들게 되죠, 그게 바로 유경호텔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북한이 기념비적이라고 내세우는 건축물은 한마디로 웅장하다. 이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초한 신고전주의의 영향이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만수대의사당은 신고전주의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1984년 준공됐으며, 연면적이 4만5천제곱미터에 이른다.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때 공식환영행사가 열렸던 4.25 문화회관과 만수대예술극장도 모두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신고전주의는 6.25 전쟁 이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복구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인터뷰> 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웅장한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수평선을 강조하면서 중심부라든가 이런 부분들은 수직선을 강조하게 됩니다. 수평선이라는 것은 인민의 평등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있고요." 수직선이라는 것은 혁명성이라든가 사회주 의 체제 위신, 우월성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자 초기에 많이 사용했던 양식들입니다. 이후 지금껏 북한의 공공건축은 웅장함 그리고 수직과 수평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다. 북한의 건축양식에 변화가 온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김일성 주석은 건축에도 ‘주체사상’을 도입할 것을 지시했고, 이는 민족적 요소가 신고전주의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났다. 우리의 국립도서관에 해당하는인민대학습당이 대표적인 민족주의적 형식의 건축물로, 서까래 위에 기와 지붕을 올렸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내용은 사회주의적 내용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정면을 보면 기둥의 노출이라든가 수직선 수평선은 그래도 유지하면서 지붕의 덩어리를 좀 떼어내기도 하고 모양 을 날렵하게 만든 지붕 처마를 만들어서, 이런 것들이 주체건축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974년 준공된 인민문화궁전이나,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묘향산에 위치한 국제친선전람관 모두 민족주의적 형식의 건축물이다. 신고전주의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던 북한의 건축양식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건 1970년대부터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버지로부터 건설 부문의 전권을 위임받으면서 북한의 공공건축에선 예술성이 특히 강조됐다. 3년전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했던 동평양대극장은 피아노 건반을 형상화했고, 원추형의 빙상관은 낙하산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공연과 문화집회를 하는 청년중앙회관과 평양교예극장도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니까 건축의 형태나 조형이 단순하게 시설물로만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어떤 예술적인 감성을 표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을 하면서 이것 이 1980년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조형주의 건축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북한의 건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정치적 의미가 강조된다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북한에서 가장 즐겨하는 것 중 하나가 북한 사회주의를 어떻게 형태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중에 하나에요. 대표적인 것이 주체사상탑, 천리마동상 그런 것들이 곳곳에 많이 세워집니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일성 광장과 마주하고 있는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70미터다. 횃불의 높이만도 20미터이고, 무게는 45톤에 이른다. 주체사상탑 앞에는 높이 30미터의 3인군상이 있고, 대동강에는 물을 150미터까지 뿜어올리는 대형 분수 2개가 설치돼 있다. 모두 1982년 김정일 위원장이 아버지의 혁명업적을 기린다며 만들었다. 1982년 세워진 평양 개선문 역시 정치적 상징물이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 투쟁을 기념해 만든 개선문은 파리 개선문을 본떴지만 10미터가 더 높다. 북한이 건축물을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경향은 남북의 이념대립과 체제경쟁이 첨예했던 1970년대부터 두드러졌다. 남한이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자 북한은 이듬해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했다. 이를 위해 북한이 지은 건축물이 5.1 경기장으로 수용인원이 잠실주경기장의 2배인 15만명에 이른다. 1985년 개장한 45층짜리 고려호텔 역시 신라호텔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김정일은 신라호텔을 능가하겠다며 모든 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와 초호화판 호텔을 지었다. 1987년 착공한 류경호텔 역시 1985년 완공된 63빌딩을 의식한 건축물이었다. <인터뷰>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북한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건축물을 거대하게 만든다든지 아주 웅장하게 만든다든지 아주 남쪽과 달리 아 주 우수하게 만든다든가 이런 측면에서 표현이 되는데.. 남북간 대립이 한창 경쟁적으 로 이뤄질 때 사회주의가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건물을 만들게 됐죠." 북한의 공공건축물들은 체제선전용이라는 특징 탓에 건축물의 크기부터 공간 배치에 이르기까지 실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사에서도 속도전을 벌여왔다. 때문에 국제친선전람관이나 빙상관 평양제1백화점과 같은 대형 건축물들도 공사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했다. 건설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주민과 군인들을 공사현장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김정일 위원장 체제 내에서 건축이 활발하게 이뤄질 때도 청년돌격대가 들어와서 속도전을 가속화시키고 공사를 단축하는 현상들이 있었는데요. 건축이라는 것은 일정 부분의 기간이 있어야 하고 양생하는 기간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있어야 구조물로 완벽성을 기할 수 가 있는데..." 북한이 내세우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지어졌다. 북한의 건축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쇠락하게 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이 북한을 엄습하면서 대규모 건축은 모두 중단됐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북한의 경제난 전력난은 건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건물이 거의 지어지지 않았고요. 북한의 건축은 90년대 말부터 올스톱됐다고 볼 수 있습 니다. 지금 와서 새롭게 리모델링이나 새롭게 벌이고 있긴 하지만 한 20년 사이에는 거의 없었고요." 남과 북이 반세기 넘게 분단된 채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결과, 남한에는 자본주의적 현대건축물이 북한에는 사회주의적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도시의 풍경 자체가 매우 이질적이다. 건축 방식이나 자재도 다르다. <인터뷰>이윤하(생태건축연구소장) : "북한은 모든 것을 국가가 운영합니다. 건설도 운영하고 설계도 운영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관이 주도적으로 가는 것이죠. 다 중앙통제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 이 기술을 담보하거나 기술을 축적하기 어 려운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995년 조선총독부청사였던 중앙청 건물을 일제 침략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철거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이 자랑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인터뷰> 이왕기(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우리가 먼 장래를 생각한다면 북한 건축을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될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되지 않을까 숙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정부차원에서도 생각해야 하고, 전문가 차원에서도 생각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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