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 내 운명’ 박경규 교수 집념

입력 2011.04.20 (07:10) 수정 2011.04.2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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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을 내려놓긴요. 이제 시작입니다."



올해를 끝으로 대한미식축구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경규 경북대 교수(63)의 집념은 대단했다.



1999년부터 협회장을 지낸 박 교수는 6년간 써왔던 감투를 버리고 이제 지도자 생활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 표정이었다.



그는 지난 16일 후배이자 동료인 고려대 미식축구부 출신인 유인선(62) 서울협회장에게 수장 자리를 물려줬다.



박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남아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가 미식축구를 처음 접한 건 서울대에 입학한 1966년.



박력 있는 플레이가 멋있어 보여 엉겁결에 서울대 미식축구부에 가입했지만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1968년 서울대 미식축구부는 제7회 춘계 전국대학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다.



박 교수는 "서울대 사상 첫 구기 종목 우승이었다"며 "당시 기숙사에서 깜짝 축하파티가 열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 4학년이던 1973년 서울대는 당시 전국대회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팀을 이끌던 박 교수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문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우승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다 대학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더 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경북대 생물산업기계공학과 교수이자 경북대 미식축구부 감독이다.



교수와 감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바로 미식축구를 향한 열정에서 비롯됐다.



엉겁결에 입은 미식축구 유니폼이 그에게 박사모까지 씌우게 된 것이다.



미국 캔자스주립대로 유학길에 올라 학업에 열중할 때도 그는 대학 미식축구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미식축구와의 연을 이어갔다.



그는 1983년 경북대로 돌아오자마자 미식축구부 창단에 힘을 쏟았다.



이후 계명대 등 경북 인근 대학 미식축구부 설립에 앞장섰다.



현재 운영 중인 36개 대학 미식축구팀 가운데 그가 관여하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로 한국 미식축구의 산파 노릇을 했다.



일본 사례를 본떠 1994년 사회인리그 출범을 제안했다는 그는 사회인팀 래드스타스 감독을 맡아 2001년 서울슈퍼볼 2연패를 거두며 명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현재 맡은 아시아 미식축구연맹 회장직에서도 조만간 물러날 예정이라며 경북대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지도자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겐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었다.



감독으로서 관중이 꽉 찬 스타디움 사이드라인에 서서 작전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에 가깝다며 웃어넘겼다.



이어 "한국의 미식축구 지도자들은 함량 미달인 경우가 너무 많다"며 쓴소리도 곁들였다.



그는 "예전에 미식축구에 잠깐 몸담았다는 질 낮은 지도자들이 물을 흐리고 있다"며 자격 없는 지도자들을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식축구가 전국체전 종목으로 인정되고 협회가 대한체육회 품에 들어가야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 미식축구가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선 남 탓을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엘리트 스포츠에만 집중된 체육 행정, 국민의 무관심, 열악한 재정 등 한국 미식축구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때론 미련하다는 소릴 듣더라도 돈키호테처럼 묵묵히 걸어나갈 작정이다.



미식축구의 본령은 정신 수양에 있다고 강조하는 박 교수는 지금 한동대에서 37번째 대학 미식축구부를 창단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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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축구 내 운명’ 박경규 교수 집념
    • 입력 2011-04-20 07:10:25
    • 수정2011-04-20 07:16:25
    연합뉴스
 "짐을 내려놓긴요. 이제 시작입니다."

올해를 끝으로 대한미식축구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경규 경북대 교수(63)의 집념은 대단했다.

1999년부터 협회장을 지낸 박 교수는 6년간 써왔던 감투를 버리고 이제 지도자 생활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 표정이었다.

그는 지난 16일 후배이자 동료인 고려대 미식축구부 출신인 유인선(62) 서울협회장에게 수장 자리를 물려줬다.

박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남아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가 미식축구를 처음 접한 건 서울대에 입학한 1966년.

박력 있는 플레이가 멋있어 보여 엉겁결에 서울대 미식축구부에 가입했지만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었다.

1968년 서울대 미식축구부는 제7회 춘계 전국대학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다.

박 교수는 "서울대 사상 첫 구기 종목 우승이었다"며 "당시 기숙사에서 깜짝 축하파티가 열렸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 4학년이던 1973년 서울대는 당시 전국대회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팀을 이끌던 박 교수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문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우승을 하지 못한 아쉬움에다 대학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더 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경북대 생물산업기계공학과 교수이자 경북대 미식축구부 감독이다.

교수와 감독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바로 미식축구를 향한 열정에서 비롯됐다.

엉겁결에 입은 미식축구 유니폼이 그에게 박사모까지 씌우게 된 것이다.

미국 캔자스주립대로 유학길에 올라 학업에 열중할 때도 그는 대학 미식축구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미식축구와의 연을 이어갔다.

그는 1983년 경북대로 돌아오자마자 미식축구부 창단에 힘을 쏟았다.

이후 계명대 등 경북 인근 대학 미식축구부 설립에 앞장섰다.

현재 운영 중인 36개 대학 미식축구팀 가운데 그가 관여하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로 한국 미식축구의 산파 노릇을 했다.

일본 사례를 본떠 1994년 사회인리그 출범을 제안했다는 그는 사회인팀 래드스타스 감독을 맡아 2001년 서울슈퍼볼 2연패를 거두며 명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현재 맡은 아시아 미식축구연맹 회장직에서도 조만간 물러날 예정이라며 경북대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지도자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겐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었다.

감독으로서 관중이 꽉 찬 스타디움 사이드라인에 서서 작전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에 가깝다며 웃어넘겼다.

이어 "한국의 미식축구 지도자들은 함량 미달인 경우가 너무 많다"며 쓴소리도 곁들였다.

그는 "예전에 미식축구에 잠깐 몸담았다는 질 낮은 지도자들이 물을 흐리고 있다"며 자격 없는 지도자들을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식축구가 전국체전 종목으로 인정되고 협회가 대한체육회 품에 들어가야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 미식축구가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선 남 탓을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엘리트 스포츠에만 집중된 체육 행정, 국민의 무관심, 열악한 재정 등 한국 미식축구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때론 미련하다는 소릴 듣더라도 돈키호테처럼 묵묵히 걸어나갈 작정이다.

미식축구의 본령은 정신 수양에 있다고 강조하는 박 교수는 지금 한동대에서 37번째 대학 미식축구부를 창단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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