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에 묻힌 불법선거

입력 2011.05.0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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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4.27 재보선은 끝났지만 이를 전한 언론 보도는 과연 공정성과 균형성을 갖췄는지 의문입니다.

특히 강원도에서 적발된 ‘불법 콜센터 사건’을 놓고 기계적 중립으로 본질을 흐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후보들은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지만 언론의 양비론적 보도관행은 누가 심판을 해야 할까요 ?

정성호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정 기자 ! 선거기간 동안 후보자들의 불법 선거운동이 문제로 부각됐었는데요.

언론은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했습니까?

<답변>

네. 명백하게 드러난 불법 선거운동 사실과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동일하게 취급해 보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특히 강원도지사 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 측의 이른바 '불법 콜센터'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4.27 재보선을 닷새 앞둔 지난달 22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경찰이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 들이닥쳤습니다.

전화 홍보원 30여 명이 연행됐고, 엄기영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을 적은 문건과 선거인단 명부 등 1톤 트럭 절반 분량의
증거물도 압수됐습니다.

강원도 선관위는 돈을 주고 불법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36살 김 모 씨를 고발했습니다.

<녹취> 강원도 선관위 보도자료 : "전화 홍보요원을 조직하고 A, B, C, D, E 5개조로 운영하면서 임차한 휴대전화 등을 이용하여 선거구민에게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하도록 하고, 동원된 선거운동원 33명에게 점심 식사와 일당 5만원 제공 및 선거운동 종료 후 선거운동에 대한 대가를 제공하기로..."

다음날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다뤘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에 불법전화부대, 불법홍보현장이 적발됐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경향신문은 3면 전체를 할애해 발견된 문건의 내용과 앞으로 전망 등을 보도했습니다.

<녹취> 경향 4.23. 3면 앞서가던 엄 '최대위기' 봉착 : "경찰과 선관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엄 후보로선 '선거법 위반'의 직격탄을 맞을 처지다. 중앙선관위도" 후보자나 선거사무장 등의 지시 또는 개입 여부에 대해 추가로 수사를 요청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조선은 4면, 동아는 5면, 중앙은 6면에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들 신문은 관련 사실을 전한 뒤, 기사의 절반 가량을 '선대위와 관계없는 자발적 활동이었다'는 엄기영 후보 측의 해명과 민주당 측 반응을 싣는 데 할애했습니다.

지상파 3사도 사건이 당일 저녁 뉴스에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SBS는 한 개의 리포트에 '불법 콜센터' 적발 소식과 함께 경남 김해에서는 특임장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반면, KBS와 MBC는 엄기영 후보측의 불법 콜센터 사건을 여야의 정치적 공방으로 접근했습니다.

KBS는 선관위와 경찰이 불법 선거 현장을 적발했다는 내용 대신, 현장을 공개한 것도, 또 명백한 불법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한 것도 모두 민주당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4.22 : "민주당은 엄 후보측이 강릉의 펜션에서 전화 홍보원 30여 명을 동원해 지지 부탁 전화를 돌렸고, 이들에게 식사까지 제공한 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허위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같은 리포트 안에 비슷한 비중으로 배치했습니다.

MBC 보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4.22. : "최문순 후보측이 엄 후보를 1% 차이로 추격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는 등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있다며 역공을 폈습니다."

<녹취> 방송사 정치부장 : "선거보도준칙에 따라 기계적 균형을 맞춰 보도했습니다. 쟁점이 되는 사안은 선관위나 경찰이 관여했다고 해도 위법사실이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정치논리에 휩싸이지않게 후보들의 동정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고 했습니다."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특정 후보가 정도 이상으로 손해를 보거나 이득을 보는 일을 막자는 취지일 수 있지만 선관위와 경찰이 불법을 적발한 사건과 한나라당이 주장한 내용을 나란히 배치해 마치 여야가 서로 불법선거를 폭로한 것처럼
보도한 셈입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불법을 했으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성격도 강한데 이런 식으로 기계적 형평성에 매달리면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 볼 땐 어떤 사람한테 책임을 더 물어야 되는지를 모르는 결과가 나타나고, 그렇게 된다면 선거 본연의 기능에도 사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과도 가져온다는 겁니다."

여야에 비슷한 시간을 할애해 겉으론 기계적 중립을 유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행법규 위반 정도 등 실질적인 공정성을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질문>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여론조사와 관련한 허위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이 처음 보도된 지난달 22일엔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했는데 허위 문자 사건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답변>

네. 허위문자를 발송했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이걸 정확히 전한 언론은 별로 없었습니다.

최 후보측이 유권자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었습니다.

민주당 최문순 후보는 지난달 18일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SBS 8시 뉴스에서 최 후보측이 엄 후보를 1% 포인트차로 추격하고 있다는 내용이 방송됐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불법콜센터 사건이 불거진 지난 22일에서야, 최문순 후보측이 허위문자를 보냈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틀 뒤 최 후보측은 이 사실을 시인하고 '실무자의 착오'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4.25. 3면 : "최 후보는 "당시 인용기사는 에스비에스 홈페이지에 인터넷 뉴스용으로 출고한 기사였는데, 이를 다른 인터넷 신문이 인용보도했다"며 "실무자가 방송뉴스에서도 보도된 것으로 단순착각해 문자에 삽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SBS 뉴스 홈페이지엔 최종득표율차가 1% 포인트차로 예상된다고 분석한 기자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8시 메인뉴스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부 사실이 다른 것은 맞지만, 1% 초박빙이라는 내용이 최 후보 측의 설명대로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허위문자 발송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사안을 비슷한 수준으로 쟁점화하면서 여야가 대결하고 있다는 내용을 부각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 4.25.004면 : "엄기영 측 "최문순, 허위문자 22만건 발송" 최문순 측 " 염기영, 콜센터 조직적 개입"

<녹취> 동아일보 4.25.04면 : 최문순 '嚴 불법콜센터' 맹공, 엄기영 "野는 허위문자" 맞불

그러나, 선관위 관계자는 이 두 사건은 같은 수준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불법콜센터는 선거법에 금지된 여러 규정을 위반했고, 물증이 명확하지만, 문자 발송 행위는 선거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고, 다만 그 내용 일부에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 "선거법에서는 기부행위라든가, 선거운동기구 이외의 다른 선거운동을 위한 기구를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어요. 법에 할 수 없는 사항을 가지고 위반한 요소하고, 선거 운동으로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위법이 발생한 부분하고는 경중의 차이가 있다고 봐야죠."

<질문>

선관위가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까 ?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인데, 언론의 후속보도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

<답변>

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지면에서, 또 방송에서 불법 콜센터 사건의 실체를 취재하고 검증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불법선거를 한 건 여야가 모두 마찬가지라며, 선거의 혼탁함을 부각했습니다.

지난 24일.

경찰은 펜션에서 불법 콜센터를 운영한 김 모 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일부 신문은 수사 속보는 물론, 후속 취재도 계속했습니다.

<녹취> 경향 4.25. 2면 : "엄기영 강원지사 후보 전화홍보원 A씨 증언 “자원봉사는 무슨… 일당 5만원 벌려고 갔다”"

<녹취> 경향 4.25. 3면 : "전화방 경비 1억원 추정…한 달 전 펜션 현찰 계약"

한겨레는 엄기영 후보측이 ‘동계올림픽 유치 민간단체협의회’를 선거 사조직으로 활용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4.26. 3면 : "경찰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보고 수배령을 내린 최아무개씨는 민단협 조직특보를 맡아 엄기영 후보를 밀착 수행하면서 활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단협의 서명 명부는 이번 4.27 재보선에 앞서, 지난 3월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 경선 때부터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후속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데스크 칼럼에서 ‘강릉 콜센터’건은 악성이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지면에서 사건의 실체를 다룬 보도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동아일보는 기자 칼럼에서 양쪽 모두가 문제라며 강원도지사 선거를 막장 드라마에 비유했습니다.

<녹취> 동아 4.26 30면 : "불법 선거운동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갈데까지 간' 상황이다.', 블랙코미디는 보는 이들에게 웃음이라도 준다. 이건 블랙코미디도 아닌 "막장 중의 막장 드라마"일 뿐이다."

방송 3사 뉴스에서도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양비론식’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4.24. : "선거판이 고발과 수사, 영장과 허위문자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4.25. : "불법선거 공방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녹취> SBS 8뉴스 4.25, :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큰 지, 누구의 책임이 더 큰 지를 밝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언론의 몫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사안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혼탁’이라는 말로 여야 모두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녹취> 경향 4.25. 4면 : "친여·보수 언론도 이번엔 정도를 잃은 보도 태도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몇몇 신문·방송 등은 선관위가 고발조치까지 한 불법선거 양태를 축소 보도하거나, 아예 다른 사례와 묶어 ‘선거 막판 불법·과열 선거 극성’식의 양비론식 보도로 돌려버리고 있다."

언론의 ‘양비론식’ 보도 행태는 정치 냉소나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인터뷰> 김용민(시사평론가 5132) : "여야 모두 혼탁 양상이었다. 이렇게 언론들이 보도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정치혐오가 극심해지지 않겠습니까? 정치혐오가 극심해지면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되면 조직선거가 맹위를 떨치겠죠."

<질문>

이번 4.27 재보선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 말고도, 불법선거 의혹을 받은 사례들이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언론의 보도에는 차이를 보였죠?

<답변>

네, 이재오 특임장관의 선거개입 의혹이나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인데요.

보수냐. 진보냐 언론사들의 성향에 따라 관련 보도도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지난달 22일.

경남 김해에서는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측이 이재오 특임장관실 직원의 수첩을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MBC와 SBS는 저녁 뉴스에서 세 문장으로 특임장관실의 개입 의혹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KBS는 이틀 뒤인 24일에서야 이 소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동향을 파악하고 민심을 기록한 수첩의 내용을 자세히 전하는 한편 연일 후속 보도를 이어갔고, 경향신문도 관권선거 의혹을 계속 제기했습니다.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5대 일간지에서 특임장관실 수첩이 한 번이라도 언급된 기사의 수는 보수 성향의 신문과 진보지가 큰 편차를 보였습니다.

선거막판인 지난 24일에는 최문순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선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SBS가 최종원 의원의 발언 파문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고, KBS와 MBC는 한, 두 문장으로 한나라당이 최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조선과 중앙, 동아일보는 최 의원의 막말 논란을 모두 기사화했지만,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발언 내용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조선 04.27. 4면 : “이상득이 고향에 1조원이 넘는 돈을 갖다 퍼부었다. 대통령 집구석이 형도 돈 훔쳐 먹고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 하고 있다.우리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김진선 (전 강원지사)도 감방 가고 엄기영도 불법 선거운동으로 감방 간다”고 했다."

특임장관 개입설과 최종원 의원의 발언은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보수와 진보라는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관련 보도도 친여와 친야의 시각으로 양분됐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선거보도에서 공정성이나 객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분별력 있는 정보의 전달입니다.

양비론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면 언론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기계적 균형’과 ‘정파성’에 따라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막은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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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비론’에 묻힌 불법선거
    • 입력 2011-05-07 08: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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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4.27 재보선은 끝났지만 이를 전한 언론 보도는 과연 공정성과 균형성을 갖췄는지 의문입니다. 특히 강원도에서 적발된 ‘불법 콜센터 사건’을 놓고 기계적 중립으로 본질을 흐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후보들은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지만 언론의 양비론적 보도관행은 누가 심판을 해야 할까요 ? 정성호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정 기자 ! 선거기간 동안 후보자들의 불법 선거운동이 문제로 부각됐었는데요. 언론은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했습니까? <답변> 네. 명백하게 드러난 불법 선거운동 사실과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동일하게 취급해 보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특히 강원도지사 선거에 나선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 측의 이른바 '불법 콜센터'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4.27 재보선을 닷새 앞둔 지난달 22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경찰이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 들이닥쳤습니다. 전화 홍보원 30여 명이 연행됐고, 엄기영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을 적은 문건과 선거인단 명부 등 1톤 트럭 절반 분량의 증거물도 압수됐습니다. 강원도 선관위는 돈을 주고 불법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36살 김 모 씨를 고발했습니다. <녹취> 강원도 선관위 보도자료 : "전화 홍보요원을 조직하고 A, B, C, D, E 5개조로 운영하면서 임차한 휴대전화 등을 이용하여 선거구민에게 전화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하도록 하고, 동원된 선거운동원 33명에게 점심 식사와 일당 5만원 제공 및 선거운동 종료 후 선거운동에 대한 대가를 제공하기로..." 다음날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다뤘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에 불법전화부대, 불법홍보현장이 적발됐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경향신문은 3면 전체를 할애해 발견된 문건의 내용과 앞으로 전망 등을 보도했습니다. <녹취> 경향 4.23. 3면 앞서가던 엄 '최대위기' 봉착 : "경찰과 선관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엄 후보로선 '선거법 위반'의 직격탄을 맞을 처지다. 중앙선관위도" 후보자나 선거사무장 등의 지시 또는 개입 여부에 대해 추가로 수사를 요청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조선은 4면, 동아는 5면, 중앙은 6면에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들 신문은 관련 사실을 전한 뒤, 기사의 절반 가량을 '선대위와 관계없는 자발적 활동이었다'는 엄기영 후보 측의 해명과 민주당 측 반응을 싣는 데 할애했습니다. 지상파 3사도 사건이 당일 저녁 뉴스에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SBS는 한 개의 리포트에 '불법 콜센터' 적발 소식과 함께 경남 김해에서는 특임장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반면, KBS와 MBC는 엄기영 후보측의 불법 콜센터 사건을 여야의 정치적 공방으로 접근했습니다. KBS는 선관위와 경찰이 불법 선거 현장을 적발했다는 내용 대신, 현장을 공개한 것도, 또 명백한 불법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한 것도 모두 민주당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4.22 : "민주당은 엄 후보측이 강릉의 펜션에서 전화 홍보원 30여 명을 동원해 지지 부탁 전화를 돌렸고, 이들에게 식사까지 제공한 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허위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같은 리포트 안에 비슷한 비중으로 배치했습니다. MBC 보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4.22. : "최문순 후보측이 엄 후보를 1% 차이로 추격했다는 허위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는 등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있다며 역공을 폈습니다." <녹취> 방송사 정치부장 : "선거보도준칙에 따라 기계적 균형을 맞춰 보도했습니다. 쟁점이 되는 사안은 선관위나 경찰이 관여했다고 해도 위법사실이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정치논리에 휩싸이지않게 후보들의 동정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고 했습니다."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특정 후보가 정도 이상으로 손해를 보거나 이득을 보는 일을 막자는 취지일 수 있지만 선관위와 경찰이 불법을 적발한 사건과 한나라당이 주장한 내용을 나란히 배치해 마치 여야가 서로 불법선거를 폭로한 것처럼 보도한 셈입니다. <인터뷰> 신율(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불법을 했으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성격도 강한데 이런 식으로 기계적 형평성에 매달리면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 볼 땐 어떤 사람한테 책임을 더 물어야 되는지를 모르는 결과가 나타나고, 그렇게 된다면 선거 본연의 기능에도 사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결과도 가져온다는 겁니다." 여야에 비슷한 시간을 할애해 겉으론 기계적 중립을 유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행법규 위반 정도 등 실질적인 공정성을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질문>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여론조사와 관련한 허위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이 처음 보도된 지난달 22일엔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했는데 허위 문자 사건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답변> 네. 허위문자를 발송했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이걸 정확히 전한 언론은 별로 없었습니다. 최 후보측이 유권자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었습니다. 민주당 최문순 후보는 지난달 18일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SBS 8시 뉴스에서 최 후보측이 엄 후보를 1% 포인트차로 추격하고 있다는 내용이 방송됐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불법콜센터 사건이 불거진 지난 22일에서야, 최문순 후보측이 허위문자를 보냈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틀 뒤 최 후보측은 이 사실을 시인하고 '실무자의 착오'였다고 해명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4.25. 3면 : "최 후보는 "당시 인용기사는 에스비에스 홈페이지에 인터넷 뉴스용으로 출고한 기사였는데, 이를 다른 인터넷 신문이 인용보도했다"며 "실무자가 방송뉴스에서도 보도된 것으로 단순착각해 문자에 삽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SBS 뉴스 홈페이지엔 최종득표율차가 1% 포인트차로 예상된다고 분석한 기자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8시 메인뉴스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부 사실이 다른 것은 맞지만, 1% 초박빙이라는 내용이 최 후보 측의 설명대로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허위문자 발송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사안을 비슷한 수준으로 쟁점화하면서 여야가 대결하고 있다는 내용을 부각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 4.25.004면 : "엄기영 측 "최문순, 허위문자 22만건 발송" 최문순 측 " 염기영, 콜센터 조직적 개입" <녹취> 동아일보 4.25.04면 : 최문순 '嚴 불법콜센터' 맹공, 엄기영 "野는 허위문자" 맞불 그러나, 선관위 관계자는 이 두 사건은 같은 수준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불법콜센터는 선거법에 금지된 여러 규정을 위반했고, 물증이 명확하지만, 문자 발송 행위는 선거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고, 다만 그 내용 일부에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 "선거법에서는 기부행위라든가, 선거운동기구 이외의 다른 선거운동을 위한 기구를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어요. 법에 할 수 없는 사항을 가지고 위반한 요소하고, 선거 운동으로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위법이 발생한 부분하고는 경중의 차이가 있다고 봐야죠." <질문> 선관위가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까 ?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인데, 언론의 후속보도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 <답변> 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지면에서, 또 방송에서 불법 콜센터 사건의 실체를 취재하고 검증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불법선거를 한 건 여야가 모두 마찬가지라며, 선거의 혼탁함을 부각했습니다. 지난 24일. 경찰은 펜션에서 불법 콜센터를 운영한 김 모 씨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일부 신문은 수사 속보는 물론, 후속 취재도 계속했습니다. <녹취> 경향 4.25. 2면 : "엄기영 강원지사 후보 전화홍보원 A씨 증언 “자원봉사는 무슨… 일당 5만원 벌려고 갔다”" <녹취> 경향 4.25. 3면 : "전화방 경비 1억원 추정…한 달 전 펜션 현찰 계약" 한겨레는 엄기영 후보측이 ‘동계올림픽 유치 민간단체협의회’를 선거 사조직으로 활용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4.26. 3면 : "경찰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보고 수배령을 내린 최아무개씨는 민단협 조직특보를 맡아 엄기영 후보를 밀착 수행하면서 활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단협의 서명 명부는 이번 4.27 재보선에 앞서, 지난 3월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 경선 때부터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후속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데스크 칼럼에서 ‘강릉 콜센터’건은 악성이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지면에서 사건의 실체를 다룬 보도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동아일보는 기자 칼럼에서 양쪽 모두가 문제라며 강원도지사 선거를 막장 드라마에 비유했습니다. <녹취> 동아 4.26 30면 : "불법 선거운동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갈데까지 간' 상황이다.', 블랙코미디는 보는 이들에게 웃음이라도 준다. 이건 블랙코미디도 아닌 "막장 중의 막장 드라마"일 뿐이다." 방송 3사 뉴스에서도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양비론식’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4.24. : "선거판이 고발과 수사, 영장과 허위문자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4.25. : "불법선거 공방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녹취> SBS 8뉴스 4.25, :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큰 지, 누구의 책임이 더 큰 지를 밝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언론의 몫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사안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혼탁’이라는 말로 여야 모두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녹취> 경향 4.25. 4면 : "친여·보수 언론도 이번엔 정도를 잃은 보도 태도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몇몇 신문·방송 등은 선관위가 고발조치까지 한 불법선거 양태를 축소 보도하거나, 아예 다른 사례와 묶어 ‘선거 막판 불법·과열 선거 극성’식의 양비론식 보도로 돌려버리고 있다." 언론의 ‘양비론식’ 보도 행태는 정치 냉소나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인터뷰> 김용민(시사평론가 5132) : "여야 모두 혼탁 양상이었다. 이렇게 언론들이 보도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정치혐오가 극심해지지 않겠습니까? 정치혐오가 극심해지면 사람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되면 조직선거가 맹위를 떨치겠죠." <질문> 이번 4.27 재보선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 말고도, 불법선거 의혹을 받은 사례들이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언론의 보도에는 차이를 보였죠? <답변> 네, 이재오 특임장관의 선거개입 의혹이나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인데요. 보수냐. 진보냐 언론사들의 성향에 따라 관련 보도도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지난달 22일. 경남 김해에서는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측이 이재오 특임장관실 직원의 수첩을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MBC와 SBS는 저녁 뉴스에서 세 문장으로 특임장관실의 개입 의혹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KBS는 이틀 뒤인 24일에서야 이 소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동향을 파악하고 민심을 기록한 수첩의 내용을 자세히 전하는 한편 연일 후속 보도를 이어갔고, 경향신문도 관권선거 의혹을 계속 제기했습니다. 지난달 22일부터 28일까지 5대 일간지에서 특임장관실 수첩이 한 번이라도 언급된 기사의 수는 보수 성향의 신문과 진보지가 큰 편차를 보였습니다. 선거막판인 지난 24일에는 최문순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선 민주당 최종원 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SBS가 최종원 의원의 발언 파문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고, KBS와 MBC는 한, 두 문장으로 한나라당이 최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조선과 중앙, 동아일보는 최 의원의 막말 논란을 모두 기사화했지만,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발언 내용을 아예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조선 04.27. 4면 : “이상득이 고향에 1조원이 넘는 돈을 갖다 퍼부었다. 대통령 집구석이 형도 돈 훔쳐 먹고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 하고 있다.우리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김진선 (전 강원지사)도 감방 가고 엄기영도 불법 선거운동으로 감방 간다”고 했다." 특임장관 개입설과 최종원 의원의 발언은 사안의 성격은 다르지만, 보수와 진보라는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관련 보도도 친여와 친야의 시각으로 양분됐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선거보도에서 공정성이나 객관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분별력 있는 정보의 전달입니다. 양비론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면 언론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기계적 균형’과 ‘정파성’에 따라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막은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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