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400년 마을, 기상 이변에 몸살

입력 2011.05.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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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 세계가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난 400년간 평화롭던 태국의 한 어촌 마을이 잦은 폭풍과 폭우로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도 폭우가 쏟아지면서 이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태국 현지에서 한재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찬 파도가 강풍을 타고 해안을 넘어 마을쪽으로 쉴새 없이 밀려 듭니다. 길 가던 주민 한 명이 금새라도 파도에 휩쓸릴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바닷물은 순식간에 마을을 덮쳐 집이며 가재 도구들을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건기인 지난 3월말 일주일 간 계속된 폭풍우는 이 작은 어촌 마을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250여 가구, 650여 명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엔 아직도 당시의 상처가 고소란히 남아 있습니다. 주민들은 일주일간의 악몽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50년 전인 1962년 주민 9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풍우 이후 가장 혹독한 시련입니다. 특히 비가 내리지 않던 건기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솟씨(마을 주민): "강풍과 세찬 비가 쏟아지더니 금세 거대한 파도가 마을을 덮쳤어요. 내 생전에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어요."

야자수 50여 그루가 강풍에 쓰러진 채 해안가에 나뒹굴고 밑둥은 모래 밭에 드러났습니다. 해안가의 정자와 건물들도 넘어지는 야자수에 받혀 망가졌습니다. 집집마다 마당엔 파도에 실려온 모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해변도 5미터나 사라졌습니다.

그 넓고 아름답던 마을의 해변은 지난 1962년 이후 지금까지 무려 50미터나 바다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남은 해변은 5미터 정도.

해안에서 30미터가량 떨어진 이 곳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바다에 잠겨 흔적조차 없습니다.

지난번 폭풍우로 사람이 상하지 않은 건 천만 다행이지만 폭풍우가 점점 잦아지고 그 정도도 심해져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고기잡이를 지난 다섯 달 동안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을이 생긴 지 400년 동안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살아왔지만 기상 이변 앞에 두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프라팁(마을 주민): "폭풍우가 너무 잦아요. 바다에 파도가 세차고 바람이 심하니까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고기잡이를 못했습니다."

근래 들어선 앞바다에서 고기도 잘 안잡힙니다. 워낙 잦은 비로 염분 농도가 낮아져 그렇다는 게 주민들 얘깁니다. 어쩌다 배를 몰고 나가도 잡아오는 건 작은 물고기들 뿐, 그것도 얼마 안 돼 기름값을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인터뷰> 톳사폰(어민) : "(오늘 고기 많이 잡았습니까?) 아니요..오늘 별로 못 잡었어요.게 몇마리 하고 오징어, 작은 생선이 전부예요."

먼 바다에 나가면 제법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어선이 작아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 어부는 밤새도록 파도와 씨름한 끝에 숭어 15마리를 잡아 왔습니다. 이전엔 30~40마리는 거뜬이 잡았지만 날이 갈수록 파도가 거세져 요즘엔 바다가 잔잔한 날만 골라 나가는 형편입니다.

<인터뷰> 찰랏(마을 주민): “기름값을 빼면 3만 8천원 어치 정도 잡은 겁니다. 옛날에 비하면 별로 이익이 나질 않아요."

고깃배들은 모래사장에 묶인 채 바다로 나갈 시간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선 비릿내가 가득하고 외지에서 고기를 사러 오는 차들로 도로가 붐비던 시절은 이제 옛 말. 생계가 곤란해지면서 주민들은 벌써 몇 달째 구호품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해 쌀이며 기름, 라면 등 음식물조차 구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의 연속입니다.

<인터뷰> 위찬(마을 주민): "구호품으로 살 수 밖에 없어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고기도 잡으러 못 나가고요."

이렇게 생활이 궁핍해지자 마을 주민들은 나고 자란 땅을 뒤로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고기잡이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마을 주민의 3분의 2가 넘는 천 여명은 이미 고향을 떠나 타지로 보금 자리를 옮겨갔습니다.

<인터뷰> 참난(마을 주민): "여기선 더 이상 못 살아요.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합니다. 정부가 허락하면 갈 수 있어요."

유일한 희망은 마을 반대쪽 땅으로 이주하는 것입니다. 야자수와 울창한 숲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열대 해안가의 모습입니다. 마을에서 2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본토와 마주보고 있어 파도의 피해가 덜 합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엔 지금 위치가 더 좋지만 이주는 선택이 아닌 필숩니다.

<인터뷰> 프라윳(마을 지도자): "25헥타르의 땅을 정부에 요구했고 내각이 2주 전에 이를 승인했습니다."

아피싯 총리도 얼마전 직접 마을을 찾아 이주를 약속했습니다. 지난주엔 정부에서 사람이 나와 새 정착지 측량 작업도 했습니다. 이주할 땅이라도 있는 건 주민들에겐 그나마 천행이지만 언제쯤 새 보금자리로 갈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릅니다.

<인터뷰> 사카난(마을 대표): "내각이 이주를 승인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이주 계획은 아직 잡혀 있지 않습니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새 땅으로 이주하기만을 주민들은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기상 이변의 비극. 그 무서운 재앙이 어느 지역이든 닥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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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 400년 마을, 기상 이변에 몸살
    • 입력 2011-05-22 11:02:0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전 세계가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난 400년간 평화롭던 태국의 한 어촌 마을이 잦은 폭풍과 폭우로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도 폭우가 쏟아지면서 이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태국 현지에서 한재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세찬 파도가 강풍을 타고 해안을 넘어 마을쪽으로 쉴새 없이 밀려 듭니다. 길 가던 주민 한 명이 금새라도 파도에 휩쓸릴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바닷물은 순식간에 마을을 덮쳐 집이며 가재 도구들을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건기인 지난 3월말 일주일 간 계속된 폭풍우는 이 작은 어촌 마을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250여 가구, 650여 명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엔 아직도 당시의 상처가 고소란히 남아 있습니다. 주민들은 일주일간의 악몽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50년 전인 1962년 주민 9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풍우 이후 가장 혹독한 시련입니다. 특히 비가 내리지 않던 건기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솟씨(마을 주민): "강풍과 세찬 비가 쏟아지더니 금세 거대한 파도가 마을을 덮쳤어요. 내 생전에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어요." 야자수 50여 그루가 강풍에 쓰러진 채 해안가에 나뒹굴고 밑둥은 모래 밭에 드러났습니다. 해안가의 정자와 건물들도 넘어지는 야자수에 받혀 망가졌습니다. 집집마다 마당엔 파도에 실려온 모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해변도 5미터나 사라졌습니다. 그 넓고 아름답던 마을의 해변은 지난 1962년 이후 지금까지 무려 50미터나 바다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남은 해변은 5미터 정도. 해안에서 30미터가량 떨어진 이 곳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바다에 잠겨 흔적조차 없습니다. 지난번 폭풍우로 사람이 상하지 않은 건 천만 다행이지만 폭풍우가 점점 잦아지고 그 정도도 심해져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고기잡이를 지난 다섯 달 동안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을이 생긴 지 400년 동안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살아왔지만 기상 이변 앞에 두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프라팁(마을 주민): "폭풍우가 너무 잦아요. 바다에 파도가 세차고 바람이 심하니까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고기잡이를 못했습니다." 근래 들어선 앞바다에서 고기도 잘 안잡힙니다. 워낙 잦은 비로 염분 농도가 낮아져 그렇다는 게 주민들 얘깁니다. 어쩌다 배를 몰고 나가도 잡아오는 건 작은 물고기들 뿐, 그것도 얼마 안 돼 기름값을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인터뷰> 톳사폰(어민) : "(오늘 고기 많이 잡았습니까?) 아니요..오늘 별로 못 잡었어요.게 몇마리 하고 오징어, 작은 생선이 전부예요." 먼 바다에 나가면 제법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어선이 작아 모험을 해야 합니다. 이 어부는 밤새도록 파도와 씨름한 끝에 숭어 15마리를 잡아 왔습니다. 이전엔 30~40마리는 거뜬이 잡았지만 날이 갈수록 파도가 거세져 요즘엔 바다가 잔잔한 날만 골라 나가는 형편입니다. <인터뷰> 찰랏(마을 주민): “기름값을 빼면 3만 8천원 어치 정도 잡은 겁니다. 옛날에 비하면 별로 이익이 나질 않아요." 고깃배들은 모래사장에 묶인 채 바다로 나갈 시간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선 비릿내가 가득하고 외지에서 고기를 사러 오는 차들로 도로가 붐비던 시절은 이제 옛 말. 생계가 곤란해지면서 주민들은 벌써 몇 달째 구호품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해 쌀이며 기름, 라면 등 음식물조차 구입할 여력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의 연속입니다. <인터뷰> 위찬(마을 주민): "구호품으로 살 수 밖에 없어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고기도 잡으러 못 나가고요." 이렇게 생활이 궁핍해지자 마을 주민들은 나고 자란 땅을 뒤로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고기잡이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마을 주민의 3분의 2가 넘는 천 여명은 이미 고향을 떠나 타지로 보금 자리를 옮겨갔습니다. <인터뷰> 참난(마을 주민): "여기선 더 이상 못 살아요.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합니다. 정부가 허락하면 갈 수 있어요." 유일한 희망은 마을 반대쪽 땅으로 이주하는 것입니다. 야자수와 울창한 숲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열대 해안가의 모습입니다. 마을에서 2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본토와 마주보고 있어 파도의 피해가 덜 합니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엔 지금 위치가 더 좋지만 이주는 선택이 아닌 필숩니다. <인터뷰> 프라윳(마을 지도자): "25헥타르의 땅을 정부에 요구했고 내각이 2주 전에 이를 승인했습니다." 아피싯 총리도 얼마전 직접 마을을 찾아 이주를 약속했습니다. 지난주엔 정부에서 사람이 나와 새 정착지 측량 작업도 했습니다. 이주할 땅이라도 있는 건 주민들에겐 그나마 천행이지만 언제쯤 새 보금자리로 갈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릅니다. <인터뷰> 사카난(마을 대표): "내각이 이주를 승인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이주 계획은 아직 잡혀 있지 않습니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기 전에, 사람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새 땅으로 이주하기만을 주민들은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기상 이변의 비극. 그 무서운 재앙이 어느 지역이든 닥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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