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록 감독의 '숨'은 한 중증 장애인의 행적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욕설이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귀퉁이에 불과하다. 오히려 여주인공 수희(박지원)의 출렁이는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치중한다.
영화는 웃는지 우는지 모호한 시선, 설거지하는 모습,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걸이를 차는 장면 등 수희의 일상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박지원 씨의 열연이 없었다면 영화가 생동감을 잃었을 법하다.
영화의 주인공 박씨(30)와 연출자인 함경록(33) 감독을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영화사 '찬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씨는 물어보는 질문에 갤럭시 탭의 메모 기능을 이용해 답변했다. 뇌 병변 1급인 박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일반인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함 감독이 박씨의 말을 거들며 인터뷰에 응했다.
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인 박씨는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활동보조팀 간사로 일하다 2009년 5월 센터에서 일하던 박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배우는 꿈꿔보지 않았다"는 박씨는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연기를 처음 한다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뻔한 노출장면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다시 돌려 함 감독을 찾아갔다.
"처음 노출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짝 고민했어요. 그런데 수희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니(노출신이) 이해가 가긴 했어요. 시나리오가 좋아서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출연을 결심했죠."
"20대에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박씨. 실제 촬영은 예상했던 것만큼 고됐다. 그러나 수희라는 캐릭터에 푹 빠지게 되면서 신기한 경험을 겪기도 했다.
"시나리오 분석하면서 울었어요. (촬영할 때) 많이 힘들었지만, 연기할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했어요. 뭔가에 홀려서 머리는 멍했는데 몸은 움직이게 됐어요. 수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캐릭터에 몰입했기 때문일까. 우려했던 정사 장면도 쉽게 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10분 동안 카메라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상대역이었던 민수 얼굴만 보이더군요."
'숨'은 전북 김제의 한 장애인의 집에서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당시 이 시설의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생각해볼 수 있을 만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이야깃거리는 풍성했지만, 인권유린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수희가 지내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인권유린이 포함될 뿐이다.
함 감독은 "큰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서 극적이 될만한 이야기는 줄였다. 그러니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1996년부터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폭행, 구타 등 수많은 인권유린의 실태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큰 사건들도 벌어지긴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자행되는 미시적 인권유린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분들이랑 친해지면서 불만을 호소하는 건, 예컨대 10시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한다든지 뭐 그런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이건 비단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죠. 사람을 '수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의 문제가 발생해요. 그런 장소에서는 24시간 깔린 일상적인 문제예요. 그런 부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출발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적 공간을 의미하는 'elbowroom'이라는 영어 제목에서 출발했다. 개인이 가지는 사적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함 감독은 말했다. '숨'이라는 한글제목은 나중에 붙였다.
"처음에 영화사 대표님이 '숨'으로 가자고 했어요. 한 자짜리 제목은 뭔가 거창해 보여서 안 하려고 했는데, 지원씨가 연기할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바뀌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숨소리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숨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숨'으로 가게 된 거죠."
사적 공간의 내밀함을 담고자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도 좁혔다. 함 감독은 "인물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도록 근접해서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숨소리까지 화면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다시 질문을 돌려 박씨에게 살아가면서 일반인들의 삐딱한 시선을 느낀 적이 많은가 물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으로 봐요. 그런 면에서 화가 납니다. '장애우'라는 말도 너무 높임말이어서 거북해요. 그냥 장애인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연기에 또다시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시나리오부터 보고 결정하겠다"며 웃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늙으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책임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중증 장애인 복지시설에 사는 수희(박지원)는 민수(이원섭)와 사랑하는 사이다. 빨래를 널러가다가 둘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눌 정도로 격정적인 관계다.
원장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그녀를 따라다니지만 민수와 보내는 시간은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수희.
수희의 임신 사실을 눈치 챈 자원봉사자는 수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수희가 원장에게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었던 것.
수희는 곧 다른 봉사단체로 격리되고, 민수와 연락이 닿지 않자 괴로워한다.
핸드헬드와 카메라의 거친 흔들림이 일렁이는 인물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간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내면을 관찰하는 영화여서 다소 지루할 수는 있다. 함경록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2010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9월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는 웃는지 우는지 모호한 시선, 설거지하는 모습,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걸이를 차는 장면 등 수희의 일상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박지원 씨의 열연이 없었다면 영화가 생동감을 잃었을 법하다.
영화의 주인공 박씨(30)와 연출자인 함경록(33) 감독을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영화사 '찬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씨는 물어보는 질문에 갤럭시 탭의 메모 기능을 이용해 답변했다. 뇌 병변 1급인 박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일반인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함 감독이 박씨의 말을 거들며 인터뷰에 응했다.
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인 박씨는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활동보조팀 간사로 일하다 2009년 5월 센터에서 일하던 박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배우는 꿈꿔보지 않았다"는 박씨는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연기를 처음 한다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뻔한 노출장면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다시 돌려 함 감독을 찾아갔다.
"처음 노출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짝 고민했어요. 그런데 수희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니(노출신이) 이해가 가긴 했어요. 시나리오가 좋아서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출연을 결심했죠."
"20대에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박씨. 실제 촬영은 예상했던 것만큼 고됐다. 그러나 수희라는 캐릭터에 푹 빠지게 되면서 신기한 경험을 겪기도 했다.
"시나리오 분석하면서 울었어요. (촬영할 때) 많이 힘들었지만, 연기할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했어요. 뭔가에 홀려서 머리는 멍했는데 몸은 움직이게 됐어요. 수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캐릭터에 몰입했기 때문일까. 우려했던 정사 장면도 쉽게 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10분 동안 카메라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상대역이었던 민수 얼굴만 보이더군요."
'숨'은 전북 김제의 한 장애인의 집에서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당시 이 시설의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생각해볼 수 있을 만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이야깃거리는 풍성했지만, 인권유린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수희가 지내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인권유린이 포함될 뿐이다.
함 감독은 "큰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서 극적이 될만한 이야기는 줄였다. 그러니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1996년부터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폭행, 구타 등 수많은 인권유린의 실태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큰 사건들도 벌어지긴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자행되는 미시적 인권유린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분들이랑 친해지면서 불만을 호소하는 건, 예컨대 10시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한다든지 뭐 그런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이건 비단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죠. 사람을 '수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의 문제가 발생해요. 그런 장소에서는 24시간 깔린 일상적인 문제예요. 그런 부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출발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적 공간을 의미하는 'elbowroom'이라는 영어 제목에서 출발했다. 개인이 가지는 사적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함 감독은 말했다. '숨'이라는 한글제목은 나중에 붙였다.
"처음에 영화사 대표님이 '숨'으로 가자고 했어요. 한 자짜리 제목은 뭔가 거창해 보여서 안 하려고 했는데, 지원씨가 연기할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바뀌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숨소리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숨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숨'으로 가게 된 거죠."
사적 공간의 내밀함을 담고자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도 좁혔다. 함 감독은 "인물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도록 근접해서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숨소리까지 화면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다시 질문을 돌려 박씨에게 살아가면서 일반인들의 삐딱한 시선을 느낀 적이 많은가 물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으로 봐요. 그런 면에서 화가 납니다. '장애우'라는 말도 너무 높임말이어서 거북해요. 그냥 장애인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연기에 또다시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시나리오부터 보고 결정하겠다"며 웃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늙으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책임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중증 장애인 복지시설에 사는 수희(박지원)는 민수(이원섭)와 사랑하는 사이다. 빨래를 널러가다가 둘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눌 정도로 격정적인 관계다.
원장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그녀를 따라다니지만 민수와 보내는 시간은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수희.
수희의 임신 사실을 눈치 챈 자원봉사자는 수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수희가 원장에게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었던 것.
수희는 곧 다른 봉사단체로 격리되고, 민수와 연락이 닿지 않자 괴로워한다.
핸드헬드와 카메라의 거친 흔들림이 일렁이는 인물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간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내면을 관찰하는 영화여서 다소 지루할 수는 있다. 함경록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2010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9월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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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에 홀려 머리는 멍한데 몸은 움직였죠”
-
- 입력 2011-08-24 17:24:45
함경록 감독의 '숨'은 한 중증 장애인의 행적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영화다.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욕설이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귀퉁이에 불과하다. 오히려 여주인공 수희(박지원)의 출렁이는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치중한다.
영화는 웃는지 우는지 모호한 시선, 설거지하는 모습,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걸이를 차는 장면 등 수희의 일상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박지원 씨의 열연이 없었다면 영화가 생동감을 잃었을 법하다.
영화의 주인공 박씨(30)와 연출자인 함경록(33) 감독을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영화사 '찬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씨는 물어보는 질문에 갤럭시 탭의 메모 기능을 이용해 답변했다. 뇌 병변 1급인 박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일반인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함 감독이 박씨의 말을 거들며 인터뷰에 응했다.
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인 박씨는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활동보조팀 간사로 일하다 2009년 5월 센터에서 일하던 박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배우는 꿈꿔보지 않았다"는 박씨는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연기를 처음 한다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뻔한 노출장면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다시 돌려 함 감독을 찾아갔다.
"처음 노출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짝 고민했어요. 그런데 수희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니(노출신이) 이해가 가긴 했어요. 시나리오가 좋아서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출연을 결심했죠."
"20대에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박씨. 실제 촬영은 예상했던 것만큼 고됐다. 그러나 수희라는 캐릭터에 푹 빠지게 되면서 신기한 경험을 겪기도 했다.
"시나리오 분석하면서 울었어요. (촬영할 때) 많이 힘들었지만, 연기할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했어요. 뭔가에 홀려서 머리는 멍했는데 몸은 움직이게 됐어요. 수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캐릭터에 몰입했기 때문일까. 우려했던 정사 장면도 쉽게 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10분 동안 카메라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상대역이었던 민수 얼굴만 보이더군요."
'숨'은 전북 김제의 한 장애인의 집에서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당시 이 시설의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생각해볼 수 있을 만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이야깃거리는 풍성했지만, 인권유린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수희가 지내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인권유린이 포함될 뿐이다.
함 감독은 "큰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서 극적이 될만한 이야기는 줄였다. 그러니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1996년부터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폭행, 구타 등 수많은 인권유린의 실태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큰 사건들도 벌어지긴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자행되는 미시적 인권유린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분들이랑 친해지면서 불만을 호소하는 건, 예컨대 10시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한다든지 뭐 그런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이건 비단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죠. 사람을 '수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의 문제가 발생해요. 그런 장소에서는 24시간 깔린 일상적인 문제예요. 그런 부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출발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적 공간을 의미하는 'elbowroom'이라는 영어 제목에서 출발했다. 개인이 가지는 사적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함 감독은 말했다. '숨'이라는 한글제목은 나중에 붙였다.
"처음에 영화사 대표님이 '숨'으로 가자고 했어요. 한 자짜리 제목은 뭔가 거창해 보여서 안 하려고 했는데, 지원씨가 연기할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바뀌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숨소리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숨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숨'으로 가게 된 거죠."
사적 공간의 내밀함을 담고자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도 좁혔다. 함 감독은 "인물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도록 근접해서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숨소리까지 화면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다시 질문을 돌려 박씨에게 살아가면서 일반인들의 삐딱한 시선을 느낀 적이 많은가 물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으로 봐요. 그런 면에서 화가 납니다. '장애우'라는 말도 너무 높임말이어서 거북해요. 그냥 장애인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연기에 또다시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시나리오부터 보고 결정하겠다"며 웃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늙으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책임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중증 장애인 복지시설에 사는 수희(박지원)는 민수(이원섭)와 사랑하는 사이다. 빨래를 널러가다가 둘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눌 정도로 격정적인 관계다.
원장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그녀를 따라다니지만 민수와 보내는 시간은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수희.
수희의 임신 사실을 눈치 챈 자원봉사자는 수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수희가 원장에게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었던 것.
수희는 곧 다른 봉사단체로 격리되고, 민수와 연락이 닿지 않자 괴로워한다.
핸드헬드와 카메라의 거친 흔들림이 일렁이는 인물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간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내면을 관찰하는 영화여서 다소 지루할 수는 있다. 함경록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2010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9월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는 웃는지 우는지 모호한 시선, 설거지하는 모습,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목걸이를 차는 장면 등 수희의 일상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박지원 씨의 열연이 없었다면 영화가 생동감을 잃었을 법하다.
영화의 주인공 박씨(30)와 연출자인 함경록(33) 감독을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영화사 '찬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씨는 물어보는 질문에 갤럭시 탭의 메모 기능을 이용해 답변했다. 뇌 병변 1급인 박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일반인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함 감독이 박씨의 말을 거들며 인터뷰에 응했다.
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인 박씨는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활동보조팀 간사로 일하다 2009년 5월 센터에서 일하던 박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배우는 꿈꿔보지 않았다"는 박씨는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연기를 처음 한다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뻔한 노출장면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다시 돌려 함 감독을 찾아갔다.
"처음 노출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살짝 고민했어요. 그런데 수희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니(노출신이) 이해가 가긴 했어요. 시나리오가 좋아서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출연을 결심했죠."
"20대에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보자는 마음도 들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박씨. 실제 촬영은 예상했던 것만큼 고됐다. 그러나 수희라는 캐릭터에 푹 빠지게 되면서 신기한 경험을 겪기도 했다.
"시나리오 분석하면서 울었어요. (촬영할 때) 많이 힘들었지만, 연기할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했어요. 뭔가에 홀려서 머리는 멍했는데 몸은 움직이게 됐어요. 수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캐릭터에 몰입했기 때문일까. 우려했던 정사 장면도 쉽게 갔다고 그는 설명했다. "10분 동안 카메라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고 상대역이었던 민수 얼굴만 보이더군요."
'숨'은 전북 김제의 한 장애인의 집에서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당시 이 시설의 대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생각해볼 수 있을 만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충격적인 소재만으로도 이야깃거리는 풍성했지만, 인권유린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수희가 지내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인권유린이 포함될 뿐이다.
함 감독은 "큰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기보다는 개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에서 극적이 될만한 이야기는 줄였다. 그러니 또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1996년부터 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폭행, 구타 등 수많은 인권유린의 실태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큰 사건들도 벌어지긴 한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자행되는 미시적 인권유린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분들이랑 친해지면서 불만을 호소하는 건, 예컨대 10시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은데 못 먹게 한다든지 뭐 그런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이건 비단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죠. 사람을 '수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상의 문제가 발생해요. 그런 장소에서는 24시간 깔린 일상적인 문제예요. 그런 부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출발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적 공간을 의미하는 'elbowroom'이라는 영어 제목에서 출발했다. 개인이 가지는 사적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함 감독은 말했다. '숨'이라는 한글제목은 나중에 붙였다.
"처음에 영화사 대표님이 '숨'으로 가자고 했어요. 한 자짜리 제목은 뭔가 거창해 보여서 안 하려고 했는데, 지원씨가 연기할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게 바뀌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숨소리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숨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숨'으로 가게 된 거죠."
사적 공간의 내밀함을 담고자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도 좁혔다. 함 감독은 "인물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도록 근접해서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숨소리까지 화면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다시 질문을 돌려 박씨에게 살아가면서 일반인들의 삐딱한 시선을 느낀 적이 많은가 물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으로 봐요. 그런 면에서 화가 납니다. '장애우'라는 말도 너무 높임말이어서 거북해요. 그냥 장애인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연기에 또다시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시나리오부터 보고 결정하겠다"며 웃었다.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늙으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책임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중증 장애인 복지시설에 사는 수희(박지원)는 민수(이원섭)와 사랑하는 사이다. 빨래를 널러가다가 둘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눌 정도로 격정적인 관계다.
원장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그녀를 따라다니지만 민수와 보내는 시간은 그녀를 웃음 짓게 한다. 그러나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수희.
수희의 임신 사실을 눈치 챈 자원봉사자는 수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수희가 원장에게 주기적으로 성폭행을 당했었던 것.
수희는 곧 다른 봉사단체로 격리되고, 민수와 연락이 닿지 않자 괴로워한다.
핸드헬드와 카메라의 거친 흔들림이 일렁이는 인물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간다.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내면을 관찰하는 영화여서 다소 지루할 수는 있다. 함경록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2010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9월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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