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언론 울리다

입력 2011.10.15 (08:44) 수정 2011.10.1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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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주광역시 인화학교 교직원들의 장애 학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무관심했던 언론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을 비중 있게 전하고, 당시 사건을 집중 조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접근하는 보도도 적지 않습니다.

영화 도가니 후폭풍을 취재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문제점 짚어봅니다.

은준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질문>

은 기자, 이른바 '도가니 효과'라고 하지 않습니까.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비난이 집중된 정부와 정치권은 다급히 사후 대책을 내놨고, 언론도 관련 소식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광주광역시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영화는 청각 장애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는 교직원들을 묘사합니다.

"교장선생님이 들어와서 바지를 벗겼어요." "이 얘길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신임교사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지만 교육 당국과 경찰도 나서지 않는 현실..

가까스로 가해자들은 법정에 섰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부조리한 상황도 담았습니다.

실제로 광주 인화학교에서 성폭행과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교직원 6명 가운데 단 2명만이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4명은 집행 유예로 풀려나거나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

이처럼 기득권 계층이 힘 없는 소외계층을 유린하는 현실을 영화에 담았다고 제작진은 설명합니다.

<인터뷰>황동혁(영화감독) : "전반적으로 이 사회 기득권층에 의해서 인권을 유린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회 소외계층의 인권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보시는 게 더 넓은 의미로는 맞을 것 같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국민들의 분노가 확산됐습니다.

특히 사법부와 교육 당국을 비롯한 국가 권력 기관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녹취> 도가니 까페 : "판사부터 시작해서 교육청, 관련시청, 인화학교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힘있는 단체가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파장이 커지자 손을 놓고 있던 경찰과 교육당국, 법원은 뒤늦게 잇따라 대책을 내놨습니다.

경찰은 재조사에 착수했고 광주시 교육청은 부랴부랴 학교 폐쇄와 동시에 법인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대법원도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친고제 폐지와 성폭력 교사 재임용 금지를 골자로 한 범정부 대책 등을 주요 소식으로 다뤘습니다.

<녹취>KBS 뉴스9 (9.28 김해정) :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으면서 경찰은 사실상 재수사에 나섰습니다."

<녹취>MBC 뉴스데스크(10.4 김인정) : "영화 도가니의 실제 배경인 광주 인화학교의 사회복지 법인 설립 인가가 결국 취소됩니다."

<녹취>SBS 8시 뉴스(10.7 정유미) : "영화 도가니를 본 대중의 힘이 자치단체와 치안, 교육당국에 이어 사법부까지 움직였습니다."

또 문제가 된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국정 조사를 하겠다는 정치권 움직임도 자세히 전했습니다.

<녹취>동아일보(10.13) :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인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과 복지위 간사인 한나라당 신상진,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12일 여야 국회의원 80명이 서명한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이후 관련기관의 관리감독 소홀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질문>

영화에 뒤처지긴 했지만 언론도 대대적인 보도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언론들이 어떤 점에 초점을 맞췄습니까?

<답변>

네, 그렇습니다.

도가니 파장이 확산되자 성폭력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사가 잇따랐습니다.

사건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가해자로 지목된 10명 가운데 5명이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또 5년이 넘게 교사들이 장애 학생들을 성폭행과 성추행했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도 지적했습니다.

<녹취>조선일보(9.28 A11면) : "대책위는 두어 차례 학생들이 교사 등에게 (피해 사실을)얘기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학교 이사장의 아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았고 처남과 동서 등 인척이 학교 주요 직책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족벌 경영 시스템 탓에 사건이 오랫동 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책위의 설명이다."

한겨레 신문은 이 학교가 가짜 졸업장을 만들었다는 졸업생의 폭로를 새롭게 전했습니다.

<녹취>한겨레(10.6 12면) : "인화학교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우석은 94년 고등부 인가를 받기 훨씬 전인 76~84년 고등부 학생들을 모집해 수십명한테 졸업장을 주었다. 이는 일부 학생들이 졸업장을 찢는 등 반발한 끝에 6년여 만에 중단됐다."

학생들이 강제로 노역에 동원됐다는 증언도 소개했습니다.

<녹취>한겨레(10.6 12면) : "조씨는 81년 학교가 광주 동구 학동에서 남구 봉선동으로 옮겨가면서 건물확장과 운동장 조성에도 강제동원했다고 증언했다. 학생 대부분이 3년 동안 책 대신 삽을 들고 간식으로 빵 조각을 먹으며 강제 노역에 내몰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사건의 주변 인물이나 당시 정황을 소개하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지난 9월 30일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렸습니다.

검사는 재판 당일 썼던 일기와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소설을 읽은 심경을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녹취>동아일보(10월 1일 1면) : "임검사는 공판당시 썼던 2건의 일기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공판이 진행중이던 2007년 3월 12일 일기에 6시간에 걸친 증인 신문 때 법정은 이례적으로 고요했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 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고 밝혔다."

<녹취>SBS 8시 뉴스 (9.30 손승욱) : "임 검사는 도가니가 책으로 나왔을 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결국 눈물을 말려가며 읽었다며 그때 심경도 털어 놨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감성적인 보도가 사건의 해결과 재발방지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최영묵(성공회대학교 교수0 : "선정주의라는 게 그런 거거든요. 어떤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어떤 부분을 극대화하는 건데...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보도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밖에도 사건을 알리려다 직장을 잃은 전직 교사의 눈물에도 언론은 주목했습니다.

<녹취>KBS 9시 뉴스(9.30 임병수) : "굳게 닫힌 교문 안, 그 속에 감춰진 성폭행의 진실을 밝히려다 파면당한 교사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국정 감사장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녹취>중앙일보(10월 1일 20면) : "학교 측의 사건 교사 해직, 진실 규명 농성 등을 증언하는 대목에선 6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녹취>동아일보(10월 10일 14면) : "경찰은 9일 이 학교 교사 A씨와 B씨가 1996년 1997년에 당시 12,13세였던 여학생 2명을 뒷산 등지에 데려가 강제로 키스를 하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

<인터뷰>이명진(고려대 교수) : "그냥 울분이나 공분으로 끌날 가능성이 있고요. 이런 것들은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그런 비극적인 상황이 나타나지 않도록 구체 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논의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정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보도도 문제로 꼽힙니다.

동아일보는 최근 경찰의 재수사 결과 드러난 교사들의 추가 범행을 전하면서 범행 당시 상황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피해자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광주 지역의 한 시민단체는 피해자들에 대한 취재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녹취>박찬동(대책위원장) : "보도되고 난 이후 피해자와 가족들이 굉장히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고 그래서 감춰주고 보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약간의 과오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언론은 뭘 했을까요?

언론이 그만큼 사회적 약자인 장애 학생들의 피해에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답변>

네, 당시 일부 언론이 인화학교의 성폭행 의혹을 추적해 보도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침묵했던 언론이 많았고 사건의 본질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취재도 드물었습니다.

MBC 'PD 수첩'은 지난 2005년 인화학교에서 불거진 성폭력 사건의 의혹을 방송했습니다.

인화 학교에서 학생들이 겪었던 피해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또 손을 놓은 관할 교육청과 수사기관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녹취>PD 수첩(2005년 11월 1일) : "성폭력 특별법 8조에 따르면 항거불능 상태의 장애인에 대한 간음은 강간으로 간주해 별도의 고소장 없이 인지한 사실만으로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고소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수사에 뛰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언론의 후속보도는 드물었습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뉴스 검색 결과 PD 수첩 방송 이후 영화 도가니 개봉 전까지 5대 일간지가 쓴 기사는 25건.

영화 개봉 이후 보름 동안 집중된 131건의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꾸준히 사건을 추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많지 않았습니다.

인권위 조사와 검찰 고발, 재판 등이 이어졌지만 이를 다룬 중앙일간지는 한겨레와 경향 신문 정도였습니다.

<녹취>경향신문(2006.8.22) : "국가인권위는 22일 광주인화학교와 인화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 해당 사회 복지 법인 이사 4명과 2명을 해임하고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하라고 관할 관청인 광주광역시에 권고했다."

<녹취>한겨레(2006.7.14 14면/인터넷) : "특수학교에서 교직원에 의해 저질러진 장애인 성폭행 사건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교직원 2명이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죄질에 견줘 형량이 관대하다는 비판에 이어 학교 안에서 성 범죄가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지역 언론도 기획기사를 내놓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공판 결과 등을 짧게 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재판이후 피해자 가족을 비롯해 시민단체에서 강력히 반발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들의 외침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질문>

언론의 이런 관심이 참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언론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높이는 계기가 돼야겠지요?

<답변>

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되짚어보면 언론이 장애학생들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매우 무관심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관련 정책이나 인권 문제는 언론들이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는 50여 명의 장애인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촉구하기 위한 시민 청원운동에 나섰습니다.

법안의 골자는 사회복지법인 시설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

한 장애인은 언론이 법안 개정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녹취>강원복(청각장애인) :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언론이)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법안 개정 운동) 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장애인의 인권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열악한 장애인 교육 현실과 사회의 냉대 등 근본적인 문제를 차분히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최영묵(성공회대 교수) : "장애인들에 대해서 일상적으로 평소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니까. 그래서 인화학교 사태, 도가니라는 영화 열풍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보도나 관심을 재점검하고 우리 사회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주는 보도가 이어져야 된다는 것이지요."

영화 도가니는 사건이 불거진 지 6년만에 개봉돼 묻힐 뻔 했던 피해학생들의 고통을 다시금 일깨웠습니다.

경찰수사와 법원 판결까지 공개됐지만 언론은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도가니 파장은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되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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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도가니’ 언론 울리다
    • 입력 2011-10-15 08:44:19
    • 수정2011-10-15 08: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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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주광역시 인화학교 교직원들의 장애 학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무관심했던 언론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을 비중 있게 전하고, 당시 사건을 집중 조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접근하는 보도도 적지 않습니다. 영화 도가니 후폭풍을 취재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문제점 짚어봅니다. 은준수 기자 나와있습니다. <질문> 은 기자, 이른바 '도가니 효과'라고 하지 않습니까.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습니다. 비난이 집중된 정부와 정치권은 다급히 사후 대책을 내놨고, 언론도 관련 소식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광주광역시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실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영화는 청각 장애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는 교직원들을 묘사합니다. "교장선생님이 들어와서 바지를 벗겼어요." "이 얘길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신임교사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지만 교육 당국과 경찰도 나서지 않는 현실.. 가까스로 가해자들은 법정에 섰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부조리한 상황도 담았습니다. 실제로 광주 인화학교에서 성폭행과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교직원 6명 가운데 단 2명만이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4명은 집행 유예로 풀려나거나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 이처럼 기득권 계층이 힘 없는 소외계층을 유린하는 현실을 영화에 담았다고 제작진은 설명합니다. <인터뷰>황동혁(영화감독) : "전반적으로 이 사회 기득권층에 의해서 인권을 유린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회 소외계층의 인권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보시는 게 더 넓은 의미로는 맞을 것 같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국민들의 분노가 확산됐습니다. 특히 사법부와 교육 당국을 비롯한 국가 권력 기관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녹취> 도가니 까페 : "판사부터 시작해서 교육청, 관련시청, 인화학교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힘있는 단체가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파장이 커지자 손을 놓고 있던 경찰과 교육당국, 법원은 뒤늦게 잇따라 대책을 내놨습니다. 경찰은 재조사에 착수했고 광주시 교육청은 부랴부랴 학교 폐쇄와 동시에 법인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대법원도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친고제 폐지와 성폭력 교사 재임용 금지를 골자로 한 범정부 대책 등을 주요 소식으로 다뤘습니다. <녹취>KBS 뉴스9 (9.28 김해정) :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으면서 경찰은 사실상 재수사에 나섰습니다." <녹취>MBC 뉴스데스크(10.4 김인정) : "영화 도가니의 실제 배경인 광주 인화학교의 사회복지 법인 설립 인가가 결국 취소됩니다." <녹취>SBS 8시 뉴스(10.7 정유미) : "영화 도가니를 본 대중의 힘이 자치단체와 치안, 교육당국에 이어 사법부까지 움직였습니다." 또 문제가 된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국정 조사를 하겠다는 정치권 움직임도 자세히 전했습니다. <녹취>동아일보(10.13) :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인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과 복지위 간사인 한나라당 신상진,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12일 여야 국회의원 80명이 서명한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이후 관련기관의 관리감독 소홀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질문> 영화에 뒤처지긴 했지만 언론도 대대적인 보도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언론들이 어떤 점에 초점을 맞췄습니까? <답변> 네, 그렇습니다. 도가니 파장이 확산되자 성폭력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사가 잇따랐습니다. 사건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가해자로 지목된 10명 가운데 5명이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또 5년이 넘게 교사들이 장애 학생들을 성폭행과 성추행했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도 지적했습니다. <녹취>조선일보(9.28 A11면) : "대책위는 두어 차례 학생들이 교사 등에게 (피해 사실을)얘기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학교 이사장의 아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았고 처남과 동서 등 인척이 학교 주요 직책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족벌 경영 시스템 탓에 사건이 오랫동 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책위의 설명이다." 한겨레 신문은 이 학교가 가짜 졸업장을 만들었다는 졸업생의 폭로를 새롭게 전했습니다. <녹취>한겨레(10.6 12면) : "인화학교를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우석은 94년 고등부 인가를 받기 훨씬 전인 76~84년 고등부 학생들을 모집해 수십명한테 졸업장을 주었다. 이는 일부 학생들이 졸업장을 찢는 등 반발한 끝에 6년여 만에 중단됐다." 학생들이 강제로 노역에 동원됐다는 증언도 소개했습니다. <녹취>한겨레(10.6 12면) : "조씨는 81년 학교가 광주 동구 학동에서 남구 봉선동으로 옮겨가면서 건물확장과 운동장 조성에도 강제동원했다고 증언했다. 학생 대부분이 3년 동안 책 대신 삽을 들고 간식으로 빵 조각을 먹으며 강제 노역에 내몰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사건의 주변 인물이나 당시 정황을 소개하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지난 9월 30일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렸습니다. 검사는 재판 당일 썼던 일기와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소설을 읽은 심경을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녹취>동아일보(10월 1일 1면) : "임검사는 공판당시 썼던 2건의 일기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공판이 진행중이던 2007년 3월 12일 일기에 6시간에 걸친 증인 신문 때 법정은 이례적으로 고요했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 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고 밝혔다." <녹취>SBS 8시 뉴스 (9.30 손승욱) : "임 검사는 도가니가 책으로 나왔을 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결국 눈물을 말려가며 읽었다며 그때 심경도 털어 놨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감성적인 보도가 사건의 해결과 재발방지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최영묵(성공회대학교 교수0 : "선정주의라는 게 그런 거거든요. 어떤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어떤 부분을 극대화하는 건데...일회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보도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밖에도 사건을 알리려다 직장을 잃은 전직 교사의 눈물에도 언론은 주목했습니다. <녹취>KBS 9시 뉴스(9.30 임병수) : "굳게 닫힌 교문 안, 그 속에 감춰진 성폭행의 진실을 밝히려다 파면당한 교사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국정 감사장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녹취>중앙일보(10월 1일 20면) : "학교 측의 사건 교사 해직, 진실 규명 농성 등을 증언하는 대목에선 6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녹취>동아일보(10월 10일 14면) : "경찰은 9일 이 학교 교사 A씨와 B씨가 1996년 1997년에 당시 12,13세였던 여학생 2명을 뒷산 등지에 데려가 강제로 키스를 하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 <인터뷰>이명진(고려대 교수) : "그냥 울분이나 공분으로 끌날 가능성이 있고요. 이런 것들은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그런 비극적인 상황이 나타나지 않도록 구체 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논의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정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보도도 문제로 꼽힙니다. 동아일보는 최근 경찰의 재수사 결과 드러난 교사들의 추가 범행을 전하면서 범행 당시 상황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언론의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피해자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광주 지역의 한 시민단체는 피해자들에 대한 취재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녹취>박찬동(대책위원장) : "보도되고 난 이후 피해자와 가족들이 굉장히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고 그래서 감춰주고 보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약간의 과오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언론은 뭘 했을까요? 언론이 그만큼 사회적 약자인 장애 학생들의 피해에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답변> 네, 당시 일부 언론이 인화학교의 성폭행 의혹을 추적해 보도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침묵했던 언론이 많았고 사건의 본질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취재도 드물었습니다. MBC 'PD 수첩'은 지난 2005년 인화학교에서 불거진 성폭력 사건의 의혹을 방송했습니다. 인화 학교에서 학생들이 겪었던 피해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또 손을 놓은 관할 교육청과 수사기관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녹취>PD 수첩(2005년 11월 1일) : "성폭력 특별법 8조에 따르면 항거불능 상태의 장애인에 대한 간음은 강간으로 간주해 별도의 고소장 없이 인지한 사실만으로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고소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수사에 뛰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언론의 후속보도는 드물었습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뉴스 검색 결과 PD 수첩 방송 이후 영화 도가니 개봉 전까지 5대 일간지가 쓴 기사는 25건. 영화 개봉 이후 보름 동안 집중된 131건의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꾸준히 사건을 추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많지 않았습니다. 인권위 조사와 검찰 고발, 재판 등이 이어졌지만 이를 다룬 중앙일간지는 한겨레와 경향 신문 정도였습니다. <녹취>경향신문(2006.8.22) : "국가인권위는 22일 광주인화학교와 인화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 해당 사회 복지 법인 이사 4명과 2명을 해임하고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하라고 관할 관청인 광주광역시에 권고했다." <녹취>한겨레(2006.7.14 14면/인터넷) : "특수학교에서 교직원에 의해 저질러진 장애인 성폭행 사건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교직원 2명이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죄질에 견줘 형량이 관대하다는 비판에 이어 학교 안에서 성 범죄가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지역 언론도 기획기사를 내놓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공판 결과 등을 짧게 전하는 데 그쳤습니다. 재판이후 피해자 가족을 비롯해 시민단체에서 강력히 반발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들의 외침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질문> 언론의 이런 관심이 참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언론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높이는 계기가 돼야겠지요? <답변> 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되짚어보면 언론이 장애학생들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매우 무관심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관련 정책이나 인권 문제는 언론들이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는 50여 명의 장애인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촉구하기 위한 시민 청원운동에 나섰습니다. 법안의 골자는 사회복지법인 시설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 한 장애인은 언론이 법안 개정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녹취>강원복(청각장애인) :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언론이)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법안 개정 운동) 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장애인의 인권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열악한 장애인 교육 현실과 사회의 냉대 등 근본적인 문제를 차분히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최영묵(성공회대 교수) : "장애인들에 대해서 일상적으로 평소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니까. 그래서 인화학교 사태, 도가니라는 영화 열풍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보도나 관심을 재점검하고 우리 사회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주는 보도가 이어져야 된다는 것이지요." 영화 도가니는 사건이 불거진 지 6년만에 개봉돼 묻힐 뻔 했던 피해학생들의 고통을 다시금 일깨웠습니다. 경찰수사와 법원 판결까지 공개됐지만 언론은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도가니 파장은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되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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