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삶의 윤리학…‘트리오브라이프‘

입력 2011.10.1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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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맬릭(68)만큼 상복 많은 영화감독도 드물다. 10대 소년의 살인 행각을 통해 미국 사회를 묘파한 수작 ’황무지’(1973)로 데뷔한 그는 ’천국의 나날들’(1978)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철학적인 전쟁영화 ’씬 레드라인’(1999)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았다.



맬릭만큼 과작(寡作)인 감독 역시 드물다. 약 40년간 5편만 만들었으니 8년에 한 편꼴로 관객들과 만난 셈이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는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며 ’뉴월드’(2005) 이후 6년 만에 내보인 맬릭의 신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어렵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철학교수 출신인 맬릭은 영화를 통해 철학과 종교를 풀어낸다.



2시간17분이라는 만만찮은 상영시간 동안 ’트리 오브 라이프’는 뇌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세밀하게 신(神)과 역사, 개인의 윤리문제를 파고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그래도 플롯과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게 ’영화’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이미지와 운동이라고 믿는 관객들에게는,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믿는 영화팬들에게는 이 영화가 졸음을 몰고 다니는 두꺼운 철학책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일 수도 있다.



늘 같은 꿈을 꾸며 눈을 뜨는 중년의 건축가 잭(숀 펜. 아역:헌터 맥크레켄). 오랜만에 아버지와 통화하던 그는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자애로운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와 경쟁만을 부추기던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을 둔 잭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선한 자의 고통을 다룬 구약성서 ’욥기’의 한 구절로 시작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잭의 아버지(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세계)와 어머니(은총과 절제의 세계)의 세계로 이원화해 세상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맬릭 감독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단순성으로 두 세계를 분리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구약성서에서 보이는 분노의 신의 이미지를, 어머니는 신약성서에서 보이는 사랑의 신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잭의 가정사 이야기를 한 축으로 하고, 파편화된 이미지의 조각들이 다른 축을 채운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우주ㆍ지구ㆍ물과 불ㆍ공룡 등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이 영화 속을 떠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의 운동은 부자관계, 모자관계, 부부관계 등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일, 즉 사회적인 운동(가정을 사회의 최소단위라 한다면)과 포개지며 삶의 의미와 윤리를 되짚는다.



예컨대 행성 간의 충돌, 공룡 간의 약육강식을 노정하는 이미지는 잭의 아버지를, 물ㆍ생명의 탄생 등을 드러내는 이미지는 잭의 어머니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 같은 두 이미지들은 신의 속성, 세계의 질서까지도 확장된다.



영화는 가정사뿐 아니라 우주의 폭발(갈등)과 충돌 등 거대한 사유체계를 다루며 유장하게 전개되지만 결국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 "아이 같은 눈으로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70살을 앞둔 노장은 경쟁과 충돌로 치닫는 세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사랑과 자비’의 세계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라고 바라는 듯하다.



이미지ㆍ내용과 부합하는 사운드의 힘도 탁월하다. 엄격함을 추구하는 오브라이언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를 연주하고,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을 듣는다. 형식적으로 완벽한 음악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다. 삶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타이탄’(말러 교향곡 1번)의 주제는 방황하는 잭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숀 펜은 몇 장면 등장하진 않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묵직하고, 감정조절에 능숙한 브래드 피트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영화에서 아역들에 비해 피트 등의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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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삶의 윤리학…‘트리오브라이프‘
    • 입력 2011-10-19 12:06:05
    연합뉴스
테렌스 맬릭(68)만큼 상복 많은 영화감독도 드물다. 10대 소년의 살인 행각을 통해 미국 사회를 묘파한 수작 ’황무지’(1973)로 데뷔한 그는 ’천국의 나날들’(1978)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철학적인 전쟁영화 ’씬 레드라인’(1999)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았다.

맬릭만큼 과작(寡作)인 감독 역시 드물다. 약 40년간 5편만 만들었으니 8년에 한 편꼴로 관객들과 만난 셈이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는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며 ’뉴월드’(2005) 이후 6년 만에 내보인 맬릭의 신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어렵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철학교수 출신인 맬릭은 영화를 통해 철학과 종교를 풀어낸다.

2시간17분이라는 만만찮은 상영시간 동안 ’트리 오브 라이프’는 뇌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세밀하게 신(神)과 역사, 개인의 윤리문제를 파고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그래도 플롯과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게 ’영화’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이미지와 운동이라고 믿는 관객들에게는,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믿는 영화팬들에게는 이 영화가 졸음을 몰고 다니는 두꺼운 철학책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일 수도 있다.

늘 같은 꿈을 꾸며 눈을 뜨는 중년의 건축가 잭(숀 펜. 아역:헌터 맥크레켄). 오랜만에 아버지와 통화하던 그는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자애로운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와 경쟁만을 부추기던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을 둔 잭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선한 자의 고통을 다룬 구약성서 ’욥기’의 한 구절로 시작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잭의 아버지(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세계)와 어머니(은총과 절제의 세계)의 세계로 이원화해 세상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맬릭 감독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단순성으로 두 세계를 분리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구약성서에서 보이는 분노의 신의 이미지를, 어머니는 신약성서에서 보이는 사랑의 신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영화는 잭의 가정사 이야기를 한 축으로 하고, 파편화된 이미지의 조각들이 다른 축을 채운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우주ㆍ지구ㆍ물과 불ㆍ공룡 등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이 영화 속을 떠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의 운동은 부자관계, 모자관계, 부부관계 등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일, 즉 사회적인 운동(가정을 사회의 최소단위라 한다면)과 포개지며 삶의 의미와 윤리를 되짚는다.

예컨대 행성 간의 충돌, 공룡 간의 약육강식을 노정하는 이미지는 잭의 아버지를, 물ㆍ생명의 탄생 등을 드러내는 이미지는 잭의 어머니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 같은 두 이미지들은 신의 속성, 세계의 질서까지도 확장된다.

영화는 가정사뿐 아니라 우주의 폭발(갈등)과 충돌 등 거대한 사유체계를 다루며 유장하게 전개되지만 결국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 "아이 같은 눈으로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70살을 앞둔 노장은 경쟁과 충돌로 치닫는 세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사랑과 자비’의 세계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라고 바라는 듯하다.

이미지ㆍ내용과 부합하는 사운드의 힘도 탁월하다. 엄격함을 추구하는 오브라이언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를 연주하고,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을 듣는다. 형식적으로 완벽한 음악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다. 삶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타이탄’(말러 교향곡 1번)의 주제는 방황하는 잭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요 모티브로 사용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숀 펜은 몇 장면 등장하진 않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묵직하고, 감정조절에 능숙한 브래드 피트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영화에서 아역들에 비해 피트 등의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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