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호주, ‘난민 억제’ 갈등

입력 2011.10.23 (10:45) 수정 2011.10.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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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 세계 난민의 절반인 5백만 명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들 중 일부는 바다 건너 호주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난민에 관대했던 호주가 '보트 피플'을 '밀입국자'로 규정하는 등 보다 강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호주 내 갈등도 적지 않은데요, 심수련 순회특파원이 현장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살기 위해 호주행 뱃길을 선택하는 보트 피플, 위태로운 항해는 목적지 앞에서 비극으로 끝날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올해 19살인 하디는 지난해 5월 배를 타고 호주에 온 아프간 출신 난민입니다. 난민 비자를 받아 고등학생이 된 하디는 죽음의 공포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꿈만 같습니다.

하디의 부모와 다섯 형제는 아프간 내전을 피해 20여 년을 이란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누나와 형은 탈레반의 끈질긴 괴롭힘에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는 실종됐습니다. 끔찍한 학대는 그가 하자라족이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소수 무슬림 종파인 시아파에 생김새도 중동계보다 동양인에 가까운 하자라족의 멍에.

<인터뷰> 하디 후세이니(아프간 출신 난민): “이 세상에 태어나보니 난민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범죄가 돼버렸어요. 제가 난민이란 이유만으로 저를 괴롭혔어요.”

하디는 이란에서 가짜여권을 만들어 말레이시아로 입국한 뒤 다시 국경을 넘어 인도네시아로 갔습니다. 정글에서 어둠을 틈타 배를 타고 호주 크리스마스 섬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5개월.

밀입국에 쏟아부은 돈 만 천 달러는 가족의 전 재산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식 둘을 탈레반에 잃은 어머니의 결정이었습니다.

<인터뷰> 하디 후세이니(아프간 출신 난민): “기회가 있었다면 누가 가족을 버리고 조국을 버리겠습니까?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죠.그러면서도 호주 입국을 감행하는 이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드니에서 한 시간 거리의 빌라우드 수용소로 가는 길. 인권단체 활동가인 린톨씨는 보트 피플 수용소인 이곳에서 수용자들의 심리상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난민 지위를 먼저 얻게 된 이들이 나중에 들어온 가족과 친구를 마치 수감자 만나듯 면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빌라우드에서는 난민 신청자 100여명이 호주 당국의 난민 비자 발급 거부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곳곳이 화재에 휩싸일 만큼 시위는 격렬했습니다.

탈출을 막기 위해 겹겹이 둘러쳐진 전기 울타리, 수용자를 죄수처럼 다루는 처우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이들을 더욱 절망시키는 것은 난민심사가 종종 중단된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브라마니암(스리랑카 출신 난민): “(망명 신청자들은) 목을 매 자살하거나 면도날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자해하기도 했습니다. 탐워스나 다른 수용소에서 직접 목격도 했고 얘기도 들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호주 정부는 보트 피플을 밀입국자로 규정해 말레이시아로 추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호주로 들어오는 보트 피플을 말레이시아로 되돌려보내고, 대신 말레이시아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만 연간 800명 씩 받아들이는 정책입니다.

<인터뷰> 메리 크락(시드니대 교수/이민법 전공) : “호주 정부는 난민들을 말레이시아로 돌려 보낸다고 해서 그들이 출신국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보호를 받는 것과 동시에 호주로도 못 오기 때문에 더 이상 밀입국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난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깝습니다. 종교적 박해로 미얀마를 떠나 말레이시아에서 17년을 살았던 카심씨는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혀 5번의 난민 수용소 억류와 국경 추방을 경험했습니다.

<인터뷰> 카심(미얀마 출신 난민): “우리가 (말레이시아 관리들에게) 돈을 지불할 형편이 안 되면 경찰에 연락해서 수용소에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가두었죠. 제 아내는 이틀간 식량 없이 굶어서 수용소에서 자살하려고 했어요.”

말레이시아에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아직도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부당한 처우가 이민대국 호주에서만큼은 반복되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생각입니다.

새로운 난민 정책에 대한 호주 사회 내부의 저항과 갈등도 큽니다. 인권단체의 시위가 잇따랐고 야당도 제동을 걸었습니다.

<인터뷰> 이안 린톨(호주 난민행동연합 대표): “그들이 호주에 올 때 어떤 방식으로 왔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곳 호주에서 환영받아야합니다.”

대법원도 새 정책이 보트피플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고... 이후 길라드 총리를 해임시켜야 한다는 경질론까지 쏟아졌지만 호주 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위헌 결정에 대해 오히려 야당을 설득해 이민법을 바꾸겠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줄리아 길라드(호주 총리): “정부는 의회에 이민법 수정안을 내놓을 것입니다. 이는 정부가 망명 신청자들을 제 3국으로 보내는데 필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입니다.”

호주 정부의 단호한 태도는 일부 호주 국민들의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구 5만의 소도시 탐워스. 5년 전 정부가 수단 출신 난민들을 이곳에 정착시키려하자 시의회는 반대법안을 만들어 이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인터뷰> 제임스 트릴로어(탐워스 전 시장) : “당시의 수단인들은 (전쟁) 후유증과 고문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호주 사회에 동화시킬 적절한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전쟁난민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으로 인종차별주의자란 오명까지 얻었지만 탐워스의 전 시장 트렐로어씨는 '당시의 일은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라 호주 를 위한 애국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배타적으로 변한 난민정책에는 호주 사회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백인 사회의 고급인재들이 서방국가로 역이민을 떠나는 반면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국가 국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시드니의 한 난민 센터, 호주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이 취업 상담 등 각종 사회 통합 지원을 받는 곳입니다. 지난해 호주는 이같은 난민정착 프로그램에 4억 달러로, 우리 돈 4천80억원, 난민수용소 운영비까지 모두 1조5천억원의 난민정착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샌디 로건(호주 이민성 대변인): "난민정착 프로그램은 유엔난민기구를 포함해서 다른 어떤 기관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지 않습니다. 호주 정부의 예산으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호주의 난민 수용인원은 연간 6800여명,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게 호주 정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난민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수를 대폭 줄이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안 린톨(호주 난민행동연합 대표): "영국 독일 미국에 비해서 호주의 난민 수용 인원은 적습니다. 오히려 이란, 파키스탄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호주와 같은 부국보다 훨씬 더 많은 난민을 받고 있습니다."

2백여 년 전 배를 타고 온 유럽인들에 의해 현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된 호주, 4명 중 한 명이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외국 태생의 부모를 둔 이민대국이지만 잇따르는 보트 피플 행렬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 다른 고민으로 갈등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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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호주, ‘난민 억제’ 갈등
    • 입력 2011-10-23 10:45:49
    • 수정2011-10-23 11:51:20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전 세계 난민의 절반인 5백만 명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들 중 일부는 바다 건너 호주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난민에 관대했던 호주가 '보트 피플'을 '밀입국자'로 규정하는 등 보다 강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호주 내 갈등도 적지 않은데요, 심수련 순회특파원이 현장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살기 위해 호주행 뱃길을 선택하는 보트 피플, 위태로운 항해는 목적지 앞에서 비극으로 끝날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올해 19살인 하디는 지난해 5월 배를 타고 호주에 온 아프간 출신 난민입니다. 난민 비자를 받아 고등학생이 된 하디는 죽음의 공포 없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꿈만 같습니다. 하디의 부모와 다섯 형제는 아프간 내전을 피해 20여 년을 이란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누나와 형은 탈레반의 끈질긴 괴롭힘에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는 실종됐습니다. 끔찍한 학대는 그가 하자라족이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소수 무슬림 종파인 시아파에 생김새도 중동계보다 동양인에 가까운 하자라족의 멍에. <인터뷰> 하디 후세이니(아프간 출신 난민): “이 세상에 태어나보니 난민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범죄가 돼버렸어요. 제가 난민이란 이유만으로 저를 괴롭혔어요.” 하디는 이란에서 가짜여권을 만들어 말레이시아로 입국한 뒤 다시 국경을 넘어 인도네시아로 갔습니다. 정글에서 어둠을 틈타 배를 타고 호주 크리스마스 섬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5개월. 밀입국에 쏟아부은 돈 만 천 달러는 가족의 전 재산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식 둘을 탈레반에 잃은 어머니의 결정이었습니다. <인터뷰> 하디 후세이니(아프간 출신 난민): “기회가 있었다면 누가 가족을 버리고 조국을 버리겠습니까?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죠.그러면서도 호주 입국을 감행하는 이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드니에서 한 시간 거리의 빌라우드 수용소로 가는 길. 인권단체 활동가인 린톨씨는 보트 피플 수용소인 이곳에서 수용자들의 심리상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난민 지위를 먼저 얻게 된 이들이 나중에 들어온 가족과 친구를 마치 수감자 만나듯 면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 4월 빌라우드에서는 난민 신청자 100여명이 호주 당국의 난민 비자 발급 거부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곳곳이 화재에 휩싸일 만큼 시위는 격렬했습니다. 탈출을 막기 위해 겹겹이 둘러쳐진 전기 울타리, 수용자를 죄수처럼 다루는 처우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이들을 더욱 절망시키는 것은 난민심사가 종종 중단된다는 점입니다. <인터뷰> 브라마니암(스리랑카 출신 난민): “(망명 신청자들은) 목을 매 자살하거나 면도날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자해하기도 했습니다. 탐워스나 다른 수용소에서 직접 목격도 했고 얘기도 들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호주 정부는 보트 피플을 밀입국자로 규정해 말레이시아로 추방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호주로 들어오는 보트 피플을 말레이시아로 되돌려보내고, 대신 말레이시아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만 연간 800명 씩 받아들이는 정책입니다. <인터뷰> 메리 크락(시드니대 교수/이민법 전공) : “호주 정부는 난민들을 말레이시아로 돌려 보낸다고 해서 그들이 출신국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보호를 받는 것과 동시에 호주로도 못 오기 때문에 더 이상 밀입국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난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깝습니다. 종교적 박해로 미얀마를 떠나 말레이시아에서 17년을 살았던 카심씨는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혀 5번의 난민 수용소 억류와 국경 추방을 경험했습니다. <인터뷰> 카심(미얀마 출신 난민): “우리가 (말레이시아 관리들에게) 돈을 지불할 형편이 안 되면 경찰에 연락해서 수용소에 두 달이고 석 달이고 가두었죠. 제 아내는 이틀간 식량 없이 굶어서 수용소에서 자살하려고 했어요.” 말레이시아에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아직도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부당한 처우가 이민대국 호주에서만큼은 반복되서는 안된다는게 그의 생각입니다. 새로운 난민 정책에 대한 호주 사회 내부의 저항과 갈등도 큽니다. 인권단체의 시위가 잇따랐고 야당도 제동을 걸었습니다. <인터뷰> 이안 린톨(호주 난민행동연합 대표): “그들이 호주에 올 때 어떤 방식으로 왔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이곳 호주에서 환영받아야합니다.” 대법원도 새 정책이 보트피플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고... 이후 길라드 총리를 해임시켜야 한다는 경질론까지 쏟아졌지만 호주 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습니다. 위헌 결정에 대해 오히려 야당을 설득해 이민법을 바꾸겠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줄리아 길라드(호주 총리): “정부는 의회에 이민법 수정안을 내놓을 것입니다. 이는 정부가 망명 신청자들을 제 3국으로 보내는데 필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입니다.” 호주 정부의 단호한 태도는 일부 호주 국민들의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구 5만의 소도시 탐워스. 5년 전 정부가 수단 출신 난민들을 이곳에 정착시키려하자 시의회는 반대법안을 만들어 이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인터뷰> 제임스 트릴로어(탐워스 전 시장) : “당시의 수단인들은 (전쟁) 후유증과 고문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호주 사회에 동화시킬 적절한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전쟁난민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으로 인종차별주의자란 오명까지 얻었지만 탐워스의 전 시장 트렐로어씨는 '당시의 일은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라 호주 를 위한 애국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배타적으로 변한 난민정책에는 호주 사회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백인 사회의 고급인재들이 서방국가로 역이민을 떠나는 반면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국가 국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시드니의 한 난민 센터, 호주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들이 취업 상담 등 각종 사회 통합 지원을 받는 곳입니다. 지난해 호주는 이같은 난민정착 프로그램에 4억 달러로, 우리 돈 4천80억원, 난민수용소 운영비까지 모두 1조5천억원의 난민정착 비용을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샌디 로건(호주 이민성 대변인): "난민정착 프로그램은 유엔난민기구를 포함해서 다른 어떤 기관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지 않습니다. 호주 정부의 예산으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호주의 난민 수용인원은 연간 6800여명,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게 호주 정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난민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수를 대폭 줄이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안 린톨(호주 난민행동연합 대표): "영국 독일 미국에 비해서 호주의 난민 수용 인원은 적습니다. 오히려 이란, 파키스탄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호주와 같은 부국보다 훨씬 더 많은 난민을 받고 있습니다." 2백여 년 전 배를 타고 온 유럽인들에 의해 현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된 호주, 4명 중 한 명이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외국 태생의 부모를 둔 이민대국이지만 잇따르는 보트 피플 행렬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 다른 고민으로 갈등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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