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누가 키웁니까?

입력 2012.01.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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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실은 백여 대의 트럭들이 줄 지어 서 있는 광천 우시장.

일찌감치 농민들이 나와 시장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이태용(축산 농민) : "한 마리만 가지고 왔봤지, 뭐. 많이 가지고 와서 그냥 내버리고 갈 일 있나..."

새벽 5시, 드디어 소 시장의 문이 열리고, 육중한 소들이 줄 지어 입장합니다.

소를 사고 파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흥정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가 꺾이는 쪽은 백이면 백, 축산 농가들입니다.

<녹취> "마음대로 해요.(빨리 팔아, 이따가 후회하지 말고) 소가 양이 많아가지고.."

이날 나온 소는 모두 357마리, 설을 앞 둔 대목장이지만, 소 값은 형편 없이 떨어졌습니다.

<녹취> "킬로그램당 4천800원. 사룟값이 안 돼요. 이거 백 이삼십만 원 밑져요, 지금. 사룟값은 다 그만 두고도. 허허허"

<녹취> 유춘훈(축산 농민) : "환장하겠네요. 소 길러 가지고 사료 값이고 뭐고 망하는 판이야. 사건 났어."

이 날 소시장에서 거래된 평균 가격은 600킬로그램을 기준으로 한우 암소가 3백 6십만 원, 숫소는 3백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녹취> 송기현(소 매입상) : "요새 같이 힘들 적에는 내가 소 사기가 미안할 정도에요. (암송아지) 작년 이맘때 250만 원 하던 게 지금 60만 원 가요. 그럼 190만 원이 떨어진 거예요."

송아지 값이 개 값만도 못하다.

소가 사료를 먹는 게 아니라 사료가 소를 먹고 있다.

설을 코 앞에 두고 축산농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탄식입니다.

소값 폭락 문제를 겪고 있는 축산 농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오전 6시 40분, 김정선 씨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부지런히 축사를 다니며 뭔가를 뿌려 줍니다.

콩나물을 팔고 남은 부산물입니다.

하루에 40만 원 씩 드는 사료 값을 조금이나마 아껴보기 위해섭니다.

<녹취> 김정선(한우 농가) : "콩나물이라든가 짚이라든가 또 이 지역에서 나는 약초 같은 거, 뿌리, 찌꺼기 같은 그런 걸 먹이죠."

한우 150마리를 키우는 김 씨의 빚은 7억 원이나 됩니다.

45년 동안 소를 키워 왔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집니다.

<녹취> 김정선(한우 농가) : "사료비 부담 안고 그러니까 더 추운 것 같아. 날씨는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위축이 되는 거야, 사실. 내가 45년 동안 축산하면서 이렇게 해 온 건데 이런 거는 날벼락이에요. 날벼락. 재앙이에요."

김 씨의 축사에선 이 날 새벽,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혹시 얼어죽을까 집으로 데려가 애지중지 돌보고 있지만, 쳐다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녹취> 강광순(김정선 씨 부인) : "송아지 나면 옛날에는 얼마나 좋아했어요. 이제 천덕꾸러기가 됐으니...낳으면 날 수록 저희가 손해를 봐요. 낳아서 뭐 제대로 판로도 없고. 팔아야지 빚을 갚을텐데, 빚을 못 갚고 있잖아요."

새벽에 낳은 송아지를 돌볼 겨를도 없이 김정선 씨가 트럭에 소 실을 채비를 합니다.

한우협회가 청와대에 소를 반납하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녹취> 김정선(한우 농가) : "내가 초유를 짜서 먹여야 되는데 맡기는 거지. 생명이 살고 죽는 걸 이제 맡기고 가는거야. 그거 하나 희생이 되더라도 나는 우리 축산 농민을 위해서 할 말을 하려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한 데 모인 농가들의 상황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습니다.

<녹취> 최광근(축산 농가) : "우리가 2011년 돈이 칠천 만 원이 까졌어(손해봤어). 그러면 얘기는 끝나잖아. 사람이 미칠 지경이야. 미칠 지경, 응?"

이처럼 한우 값이 폭락한 건 사육 두수가 사상 최대인 3백만 마리에 달하는 데다, 불안한 농가들이 소를 내다 팔아섭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소비를 촉진하고, 경쟁력 없는 암소를 도축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녹취> 권찬호(농식품부 축산정책관) : "사육두수 감축을 위한 한우 암소 도태 및 송아지 생산 억제를 유도해 나갈 계획입니다."

하지만 농가의 불안감부터 줄이는 게 우선이란 의견이 많습니다.

최근 송아지는 생산량이 줄고 있는데도 값이 석달 새 40%나 폭락했습니다.

소가 다 자라는 2년 뒤에도 상황이 안 좋을 것으로 보고 농가들이 송아지를 안 키우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우시장에서 만났던 한 도매업자는 최근 들어 임신한 암소까지 내놓는 농가들이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만식(정육점·식당 운영) : "거의 한 80%가 100마리면 80마리가 새끼가 들었어요. 송아지가 들었다고. 송아지 들은 걸 파는 거예요."

대부분 소규모 농가들입니다.

<녹취> 김만식(정육점·식당 운영) : "소 몇십 마리 먹이는 분들, 이런 분들만 지금 소를 정리하고, 500두, 1000두 이런분들은 소를 정리 안해요. 그분들은 계속 좋은 정액을 갖다가 새끼를 계속 분양시켜요."

전체 한우농가의 90%를 차지하는 소규모 농가들이 송아지 생산을 기피하면 한우 번식 기반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녹취>이정환(GS&J 이사장/前농촌경제연구원장) : "두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한우농가들이 송아지를 입식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거든요. 어떻게 한우농가들에게 지나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내고 좀 더 입식 의향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할 거냐가 정책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라는 겁니다."

육우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젖소 110마리를 키우는 심장선씨의 농장.

<녹취> "옳지, 옳지...일어나"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밖에 안 된 송아지 한 마리가 따뜻한 온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어떻게 처리할 지부터 고민중입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이 송아지가 이렇게 애물단지가 돼 버렸으니 얼마나 아쉽습니까. 얼마나 잘생겼어요."

젖소 농가는 암컷 송아지를 낳으면 계속 키워서 우유를 짜지만, 수컷 송아지는 육우 농가에 팝니다.

값이 잘 나갈 때는 한 마리에 80만 원 이상도 받아 농가의 든든한 수익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육우 농가가 소를 키울 수록 손해가 나자 이 수컷 송아지들은 아예 가져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요즘 가지고 가시면 얼마씩 갖고 가세요? (그거 만 원씩 해요.) 만 원씩에요."

어쩔 수 없이 키우긴 하는데, 병이라도 걸리면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수의사만 부르면 진료비가 최하 6만 원, 7만 원, 10만 원인데 수의사 불러서 그 돈 들여가지고 투자할 값어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두지, 죽게끔 그냥.어쩔 수 없지"

이러다보니 심 씨 주변에선 축산을 아예 접는다는 농가도 많습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한-미 FTA가 국회만 통과 안됐어도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 같은데, 그게 통과가 되니까 아예 전망이 없다. 축산은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전북 순창의 한 육우 농가...

축사의 사료통은 텅 비었고, 물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차가운 쇠기둥을 하염없이 핥고 있는 소 뒤로 죽은 소가 눈에 띕니다.

이 농가에서는 지난해부터 10여 마리의 소가 사료 대신 물만 먹다 굶어 죽었습니다.

<녹취> 문 모씨(축산 농가) : "(kg당) 3천 원에 팔라고 하면 누가 팔겠어요. 이게 생산비도 안 되는데, 굶어죽으라는 소리지. 이제는 소를 그만 키우고 싶으니까. 팔고 싶지도 않고, 사고 싶지도 않고, 이제 아주 포기를 해 버린 거예요."

한 마리에 450만 원 하던 소 값이 반토막이 나면서, 더 이상 빚을 내 사료를 살 수는 없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노력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녹취> 문 모씨(축산 농가) : "논 팔고 보험 해약해다가 넣고 9마지기 중에서 8마지기를 팔아서 빚을 갚아 버렸으니 소 목숨 걱정할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일이 걱정이지."

문 씨의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젖소 농장으로부터 육우 농장까지 이어지는 육우 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녹취> 김순철(육우 농가) : "사무실에 그냥 소 가져가라고 써 있대니까, 요즘, 1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데, 이건 뭐 개값보다 못하다는 거야."

국내 쇠고기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육우는 한우와 수입 쇠고기의 틈바구니에 끼어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에는 35만 톤의 수입 쇠고기가 들어왔는데, 호주산이 17만 톤으로 절반 정도고, 미국산이 12만 8천 톤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산은 전년보다 4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정부는 육우농가에 대한 대책도 서둘러 발표했습니다.

농협을 통해 육우 숫송아지 천 마리를 사들인 뒤 송아지 고기를 개발해 팔겠다는 겁니다.

<녹취> 서규용(농식부품부 장관) : "외국에 나가서 먹어보면 송아지 고기가 상당히 연하기 때문에 아마 국민들이 요리법만 잘 개발하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농가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한 달에만 6천여 마리의 젖소 수송아지가 태어나는데, 고작 천 마리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사료값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배정식(낙농육우협회 관계자) : "한가한 발상 같고요, 저희가 볼 때는. 문제는 지금 아무도 육우 송아지를 키울 사람이 없다는 거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저희한테 지금 애완용으로 팔라고 전화가 오는데, 그럼 이걸 애완용으로 팔아야겠습니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녹취> 1998년 KBS 뉴스 : "사료를 먹지 못한 젖소들이 굶어죽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녹취> 1998년 KBS 뉴스 : "우리나라 축산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소값 폭락 사태는 지난 1998년 한우파동 때와 닮은 꼴입니다.

당시에도 사료값이 상승하고, 수입 쇠고기 개방이 다가오자 농민들은 앞다퉈 암소를 내다 팔았고 결국 큰 피해를 봤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되고, 캐나다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는 올해, 국내 축산업은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녹취>노경상(축산경제원 원장) : "농업 전체 가치를 국가 경영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둘 거냐, 그 정책적 의지의 결단이 먼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축산 냄새도 나고 안 좋고 한데 뭐 필요하면 수입해서 먹지 하는 단순한 사고로 농업을 보면 우리 농업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소는 굶고, 농민은 울고...

위기에 빠진 축산 농가들이 다시 소를 키울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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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누가 키웁니까?
    • 입력 2012-01-16 08:38:33
    취재파일K
소를 실은 백여 대의 트럭들이 줄 지어 서 있는 광천 우시장. 일찌감치 농민들이 나와 시장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이태용(축산 농민) : "한 마리만 가지고 왔봤지, 뭐. 많이 가지고 와서 그냥 내버리고 갈 일 있나..." 새벽 5시, 드디어 소 시장의 문이 열리고, 육중한 소들이 줄 지어 입장합니다. 소를 사고 파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흥정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기가 꺾이는 쪽은 백이면 백, 축산 농가들입니다. <녹취> "마음대로 해요.(빨리 팔아, 이따가 후회하지 말고) 소가 양이 많아가지고.." 이날 나온 소는 모두 357마리, 설을 앞 둔 대목장이지만, 소 값은 형편 없이 떨어졌습니다. <녹취> "킬로그램당 4천800원. 사룟값이 안 돼요. 이거 백 이삼십만 원 밑져요, 지금. 사룟값은 다 그만 두고도. 허허허" <녹취> 유춘훈(축산 농민) : "환장하겠네요. 소 길러 가지고 사료 값이고 뭐고 망하는 판이야. 사건 났어." 이 날 소시장에서 거래된 평균 가격은 600킬로그램을 기준으로 한우 암소가 3백 6십만 원, 숫소는 3백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녹취> 송기현(소 매입상) : "요새 같이 힘들 적에는 내가 소 사기가 미안할 정도에요. (암송아지) 작년 이맘때 250만 원 하던 게 지금 60만 원 가요. 그럼 190만 원이 떨어진 거예요." 송아지 값이 개 값만도 못하다. 소가 사료를 먹는 게 아니라 사료가 소를 먹고 있다. 설을 코 앞에 두고 축산농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탄식입니다. 소값 폭락 문제를 겪고 있는 축산 농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오전 6시 40분, 김정선 씨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부지런히 축사를 다니며 뭔가를 뿌려 줍니다. 콩나물을 팔고 남은 부산물입니다. 하루에 40만 원 씩 드는 사료 값을 조금이나마 아껴보기 위해섭니다. <녹취> 김정선(한우 농가) : "콩나물이라든가 짚이라든가 또 이 지역에서 나는 약초 같은 거, 뿌리, 찌꺼기 같은 그런 걸 먹이죠." 한우 150마리를 키우는 김 씨의 빚은 7억 원이나 됩니다. 45년 동안 소를 키워 왔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집니다. <녹취> 김정선(한우 농가) : "사료비 부담 안고 그러니까 더 추운 것 같아. 날씨는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위축이 되는 거야, 사실. 내가 45년 동안 축산하면서 이렇게 해 온 건데 이런 거는 날벼락이에요. 날벼락. 재앙이에요." 김 씨의 축사에선 이 날 새벽,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혹시 얼어죽을까 집으로 데려가 애지중지 돌보고 있지만, 쳐다보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녹취> 강광순(김정선 씨 부인) : "송아지 나면 옛날에는 얼마나 좋아했어요. 이제 천덕꾸러기가 됐으니...낳으면 날 수록 저희가 손해를 봐요. 낳아서 뭐 제대로 판로도 없고. 팔아야지 빚을 갚을텐데, 빚을 못 갚고 있잖아요." 새벽에 낳은 송아지를 돌볼 겨를도 없이 김정선 씨가 트럭에 소 실을 채비를 합니다. 한우협회가 청와대에 소를 반납하러 가기로 한 날입니다. <녹취> 김정선(한우 농가) : "내가 초유를 짜서 먹여야 되는데 맡기는 거지. 생명이 살고 죽는 걸 이제 맡기고 가는거야. 그거 하나 희생이 되더라도 나는 우리 축산 농민을 위해서 할 말을 하려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한 데 모인 농가들의 상황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습니다. <녹취> 최광근(축산 농가) : "우리가 2011년 돈이 칠천 만 원이 까졌어(손해봤어). 그러면 얘기는 끝나잖아. 사람이 미칠 지경이야. 미칠 지경, 응?" 이처럼 한우 값이 폭락한 건 사육 두수가 사상 최대인 3백만 마리에 달하는 데다, 불안한 농가들이 소를 내다 팔아섭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소비를 촉진하고, 경쟁력 없는 암소를 도축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녹취> 권찬호(농식품부 축산정책관) : "사육두수 감축을 위한 한우 암소 도태 및 송아지 생산 억제를 유도해 나갈 계획입니다." 하지만 농가의 불안감부터 줄이는 게 우선이란 의견이 많습니다. 최근 송아지는 생산량이 줄고 있는데도 값이 석달 새 40%나 폭락했습니다. 소가 다 자라는 2년 뒤에도 상황이 안 좋을 것으로 보고 농가들이 송아지를 안 키우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우시장에서 만났던 한 도매업자는 최근 들어 임신한 암소까지 내놓는 농가들이 많아졌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만식(정육점·식당 운영) : "거의 한 80%가 100마리면 80마리가 새끼가 들었어요. 송아지가 들었다고. 송아지 들은 걸 파는 거예요." 대부분 소규모 농가들입니다. <녹취> 김만식(정육점·식당 운영) : "소 몇십 마리 먹이는 분들, 이런 분들만 지금 소를 정리하고, 500두, 1000두 이런분들은 소를 정리 안해요. 그분들은 계속 좋은 정액을 갖다가 새끼를 계속 분양시켜요." 전체 한우농가의 90%를 차지하는 소규모 농가들이 송아지 생산을 기피하면 한우 번식 기반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녹취>이정환(GS&J 이사장/前농촌경제연구원장) : "두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한우농가들이 송아지를 입식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거든요. 어떻게 한우농가들에게 지나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내고 좀 더 입식 의향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할 거냐가 정책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라는 겁니다." 육우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젖소 110마리를 키우는 심장선씨의 농장. <녹취> "옳지, 옳지...일어나"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밖에 안 된 송아지 한 마리가 따뜻한 온실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어떻게 처리할 지부터 고민중입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이 송아지가 이렇게 애물단지가 돼 버렸으니 얼마나 아쉽습니까. 얼마나 잘생겼어요." 젖소 농가는 암컷 송아지를 낳으면 계속 키워서 우유를 짜지만, 수컷 송아지는 육우 농가에 팝니다. 값이 잘 나갈 때는 한 마리에 80만 원 이상도 받아 농가의 든든한 수익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육우 농가가 소를 키울 수록 손해가 나자 이 수컷 송아지들은 아예 가져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요즘 가지고 가시면 얼마씩 갖고 가세요? (그거 만 원씩 해요.) 만 원씩에요." 어쩔 수 없이 키우긴 하는데, 병이라도 걸리면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수의사만 부르면 진료비가 최하 6만 원, 7만 원, 10만 원인데 수의사 불러서 그 돈 들여가지고 투자할 값어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두지, 죽게끔 그냥.어쩔 수 없지" 이러다보니 심 씨 주변에선 축산을 아예 접는다는 농가도 많습니다. <녹취> 심장선(젖소 농가) : "한-미 FTA가 국회만 통과 안됐어도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 같은데, 그게 통과가 되니까 아예 전망이 없다. 축산은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전북 순창의 한 육우 농가... 축사의 사료통은 텅 비었고, 물통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차가운 쇠기둥을 하염없이 핥고 있는 소 뒤로 죽은 소가 눈에 띕니다. 이 농가에서는 지난해부터 10여 마리의 소가 사료 대신 물만 먹다 굶어 죽었습니다. <녹취> 문 모씨(축산 농가) : "(kg당) 3천 원에 팔라고 하면 누가 팔겠어요. 이게 생산비도 안 되는데, 굶어죽으라는 소리지. 이제는 소를 그만 키우고 싶으니까. 팔고 싶지도 않고, 사고 싶지도 않고, 이제 아주 포기를 해 버린 거예요." 한 마리에 450만 원 하던 소 값이 반토막이 나면서, 더 이상 빚을 내 사료를 살 수는 없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노력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녹취> 문 모씨(축산 농가) : "논 팔고 보험 해약해다가 넣고 9마지기 중에서 8마지기를 팔아서 빚을 갚아 버렸으니 소 목숨 걱정할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일이 걱정이지." 문 씨의 경우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젖소 농장으로부터 육우 농장까지 이어지는 육우 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녹취> 김순철(육우 농가) : "사무실에 그냥 소 가져가라고 써 있대니까, 요즘, 1년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데, 이건 뭐 개값보다 못하다는 거야." 국내 쇠고기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육우는 한우와 수입 쇠고기의 틈바구니에 끼어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에는 35만 톤의 수입 쇠고기가 들어왔는데, 호주산이 17만 톤으로 절반 정도고, 미국산이 12만 8천 톤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산은 전년보다 4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정부는 육우농가에 대한 대책도 서둘러 발표했습니다. 농협을 통해 육우 숫송아지 천 마리를 사들인 뒤 송아지 고기를 개발해 팔겠다는 겁니다. <녹취> 서규용(농식부품부 장관) : "외국에 나가서 먹어보면 송아지 고기가 상당히 연하기 때문에 아마 국민들이 요리법만 잘 개발하면 엄청나게 인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농가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한 달에만 6천여 마리의 젖소 수송아지가 태어나는데, 고작 천 마리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사료값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배정식(낙농육우협회 관계자) : "한가한 발상 같고요, 저희가 볼 때는. 문제는 지금 아무도 육우 송아지를 키울 사람이 없다는 거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저희한테 지금 애완용으로 팔라고 전화가 오는데, 그럼 이걸 애완용으로 팔아야겠습니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녹취> 1998년 KBS 뉴스 : "사료를 먹지 못한 젖소들이 굶어죽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녹취> 1998년 KBS 뉴스 : "우리나라 축산기반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소값 폭락 사태는 지난 1998년 한우파동 때와 닮은 꼴입니다. 당시에도 사료값이 상승하고, 수입 쇠고기 개방이 다가오자 농민들은 앞다퉈 암소를 내다 팔았고 결국 큰 피해를 봤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되고, 캐나다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는 올해, 국내 축산업은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녹취>노경상(축산경제원 원장) : "농업 전체 가치를 국가 경영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둘 거냐, 그 정책적 의지의 결단이 먼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축산 냄새도 나고 안 좋고 한데 뭐 필요하면 수입해서 먹지 하는 단순한 사고로 농업을 보면 우리 농업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소는 굶고, 농민은 울고... 위기에 빠진 축산 농가들이 다시 소를 키울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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