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유품 정리 전문가 “고인의 흔적 지워드립니다”

입력 2012.02.17 (09:13) 수정 2012.02.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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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같이 겨울바람이 매서울 때면 난방도 잘 안 되는 방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들, 견디기가 무척 힘드시죠

그래서 이맘 때 독거노인들의 사망소식도 심심찮게 전해지는데요, 심지어 유족들도 찾아오지 않아서 더 마음 아픈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보통 장의사가 함께한다고 생각하실텐데요,

장의사말고도 고인의 삶을 차곡차곡 정리해주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고 하죠

네, 생전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을 하나하나 챙겨서 유족들에게 전해주고, 또 남은 것들은 태워서 하늘로 보내는 일을 하는 유품 정리 전문가들인데요

김기흥 기자,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는데, 갖가지 유품들을 정리하는 이 분들 역시 남다른 사연들이 많을 것 같네요

<기자 멘트>

마지막으로 삶의 흔적을 정리하다 보면 고인의 어떤 분이었는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는 어떻지는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죽음의 현장에서 이들이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사랑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고 하는데요.

이생에서의 마지막 추억까지 저편으로 보내는 이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3일, 유품 정리 작업의 현장에서 김석훈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조용히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으로 그의 하루가 시작합니다. 노부부가 여생을 보냈던 집에는 더 이상 삶의 향기가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경우인데, 안쓰럽죠. 이런 일을 볼 때마다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나고, 유품이라는 것이 그분들이 쓰시던 소중한 물건들인데 폐기처분이 되어야 하는 상황도 안타깝고요."

조심스레 유품을 들춰보자, 활기로 가득 찬 기억들이 흘러나옵니다.

<녹취> "자원봉사를 다녔나 봐요. (확인증에) 환경교실이라고 쓰여 있네요. 노래도 부르고, 나이 드신 분들이지만 컴퓨터도 있는 것을 보면, 집에서 컴퓨터도 배워보시려고 한 것 같고요. "

마지막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도,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며 담담히 말하던 석훈씨. 그런 그도 생의 마지막 모습과 대면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녹취> "잉꼬부부였고, 가족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이 일은 개인의 감정을 개입시키면 안 될 것 같아요. 알아도 모른 척, 들었어도 못 들은 척…."

10여 년 전, 장례지도사였던 젊은 청년은 2008년, 한 유가족의 부탁으로 부패한 시신을 수습하고 유품을 정리한 이후,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일단 그 집에 남은 죽음의 흔적을 다 없애는 일이죠. 누군가 이사를 오더라도 여기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도록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한 달에 평균 15건, 절반 이상이 독거노인의 고독사라고 하는데요, 외로움과 싸우던 노인의 유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베어 있었습니다.

<녹취> "예전에는 일기장을 한번 발견했거든요, 아들이 보고 싶다고, 아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는지 많은 것을 적어놓았더라고요. 일기장을 전달은 못 했는데, 그런 내용이 있다고 이야기만 했어요. 말없이 담배만 피우더라고요."

죽음의 현장에서 그가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이라고 하는데요,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자녀의 부패한 시신을 발견하면, 부모가 청소해요. 그런데 부모가 죽으면 자녀들은 청소를 안 해요. 예전에 한 직장인이 술에 취해서 엘리베이터에 기댔다가 문이 밀리면서 떨어져 돌아가셨는데, 한 달 만에야 발견이 됐어요."

다녀온다며 집 문을 나섰던 아들, 노모는 신발 신는 것도 잊은 채 맨발로 달려왔지만,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신과 마주해야 했는데요,

말없는 시신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볼을 부비는 노모에게선 구슬픈 울음만 흘러나왔습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자녀들은 절대 안 그래요.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것 같아요. "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유품이지만, 폐기물로 버려지는 물건 안에서 추억을 찾는 이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유가족들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약서나 귀금속, 현찰 등은 많이 가져가시죠.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유품으로 챙겨가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

다음 날,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영혼을 달래주고 있었는데요,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하곤 있지만, 직접 제작한 위패 앞에서 작게나마 고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유일하게 남는 흔적입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어제 현장에 다녀온 곳에서 아기가 안타깝게도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더라고요. 저도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렀다는 얘길 듣고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흔적은, 소각될 날만 기다리는 고인의 유품입니다.

<녹취> "압구정 어디로 가면 되나요?"

어디선가 또 하나의 별이 세상을 떠난 모양입니다. 장비를 챙기는 그의 손길이 분주해졌는데요,

진하게 베인 죽음의 냄새를 깨끗이 지우고, 하늘로 보낼 이삿짐을 꾸리기 위해, 오늘도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녹취> "금전적인 효도가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서로 웃을 수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

홀로 살다가 생명을 다하는 사례만 1년에 100만 명, 내 가족이 오늘도 건강한 하루를 보내는 지, 사랑을 담은 따뜻한 전화 한 통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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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2-17 09: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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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같이 겨울바람이 매서울 때면 난방도 잘 안 되는 방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들, 견디기가 무척 힘드시죠 그래서 이맘 때 독거노인들의 사망소식도 심심찮게 전해지는데요, 심지어 유족들도 찾아오지 않아서 더 마음 아픈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보통 장의사가 함께한다고 생각하실텐데요, 장의사말고도 고인의 삶을 차곡차곡 정리해주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고 하죠 네, 생전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을 하나하나 챙겨서 유족들에게 전해주고, 또 남은 것들은 태워서 하늘로 보내는 일을 하는 유품 정리 전문가들인데요 김기흥 기자,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는데, 갖가지 유품들을 정리하는 이 분들 역시 남다른 사연들이 많을 것 같네요 <기자 멘트> 마지막으로 삶의 흔적을 정리하다 보면 고인의 어떤 분이었는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는 어떻지는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죽음의 현장에서 이들이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사랑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고 하는데요. 이생에서의 마지막 추억까지 저편으로 보내는 이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3일, 유품 정리 작업의 현장에서 김석훈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조용히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으로 그의 하루가 시작합니다. 노부부가 여생을 보냈던 집에는 더 이상 삶의 향기가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경우인데, 안쓰럽죠. 이런 일을 볼 때마다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나고, 유품이라는 것이 그분들이 쓰시던 소중한 물건들인데 폐기처분이 되어야 하는 상황도 안타깝고요." 조심스레 유품을 들춰보자, 활기로 가득 찬 기억들이 흘러나옵니다. <녹취> "자원봉사를 다녔나 봐요. (확인증에) 환경교실이라고 쓰여 있네요. 노래도 부르고, 나이 드신 분들이지만 컴퓨터도 있는 것을 보면, 집에서 컴퓨터도 배워보시려고 한 것 같고요. " 마지막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도,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며 담담히 말하던 석훈씨. 그런 그도 생의 마지막 모습과 대면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녹취> "잉꼬부부였고, 가족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이 일은 개인의 감정을 개입시키면 안 될 것 같아요. 알아도 모른 척, 들었어도 못 들은 척…." 10여 년 전, 장례지도사였던 젊은 청년은 2008년, 한 유가족의 부탁으로 부패한 시신을 수습하고 유품을 정리한 이후,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일단 그 집에 남은 죽음의 흔적을 다 없애는 일이죠. 누군가 이사를 오더라도 여기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도록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한 달에 평균 15건, 절반 이상이 독거노인의 고독사라고 하는데요, 외로움과 싸우던 노인의 유품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베어 있었습니다. <녹취> "예전에는 일기장을 한번 발견했거든요, 아들이 보고 싶다고, 아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는지 많은 것을 적어놓았더라고요. 일기장을 전달은 못 했는데, 그런 내용이 있다고 이야기만 했어요. 말없이 담배만 피우더라고요." 죽음의 현장에서 그가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이라고 하는데요,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자녀의 부패한 시신을 발견하면, 부모가 청소해요. 그런데 부모가 죽으면 자녀들은 청소를 안 해요. 예전에 한 직장인이 술에 취해서 엘리베이터에 기댔다가 문이 밀리면서 떨어져 돌아가셨는데, 한 달 만에야 발견이 됐어요." 다녀온다며 집 문을 나섰던 아들, 노모는 신발 신는 것도 잊은 채 맨발로 달려왔지만,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신과 마주해야 했는데요, 말없는 시신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볼을 부비는 노모에게선 구슬픈 울음만 흘러나왔습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자녀들은 절대 안 그래요. 그래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것 같아요. "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유품이지만, 폐기물로 버려지는 물건 안에서 추억을 찾는 이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유가족들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약서나 귀금속, 현찰 등은 많이 가져가시죠.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유품으로 챙겨가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 다음 날,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영혼을 달래주고 있었는데요,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하곤 있지만, 직접 제작한 위패 앞에서 작게나마 고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유일하게 남는 흔적입니다. <인터뷰> 김석훈 (유품정리업체 사장): "어제 현장에 다녀온 곳에서 아기가 안타깝게도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더라고요. 저도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렀다는 얘길 듣고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흔적은, 소각될 날만 기다리는 고인의 유품입니다. <녹취> "압구정 어디로 가면 되나요?" 어디선가 또 하나의 별이 세상을 떠난 모양입니다. 장비를 챙기는 그의 손길이 분주해졌는데요, 진하게 베인 죽음의 냄새를 깨끗이 지우고, 하늘로 보낼 이삿짐을 꾸리기 위해, 오늘도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녹취> "금전적인 효도가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서로 웃을 수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 홀로 살다가 생명을 다하는 사례만 1년에 100만 명, 내 가족이 오늘도 건강한 하루를 보내는 지, 사랑을 담은 따뜻한 전화 한 통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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