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리비아 수교 당시, 남북 외교전 치열

입력 2012.03.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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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0년대 한국이 리비아와 수교를 맺을 때, 이를 방해하는 북한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외교통상부가 30년 동안의 기밀유지 기한이 지나 공개한 당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 전문과 자료 등에 따르면 카다피 당시 리비아 대통령은 1975년 남한과 북한에 동시에 군사사절단을 보내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북측의 항의로 남한에 사절단을 보내는 계획을 결국 취소했습니다.

남북간 신경전은 이후에도 계속돼 북한이 리비아 주간지에 선전광고를 싣자 남한 외교관들이 "북한의 국제공산주의 선전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며 견제에 나섰습니다.

한펴 외무부는 1981년 리비아와 정식 수교한 직후,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리비아와의 수교로 중동지역에서 북한의 외교책동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중동을 상대로 한 외교에서 북한보다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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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리비아 수교 당시, 남북 외교전 치열
    • 입력 2012-03-18 19:05:34
    정치
지난 1970년대 한국이 리비아와 수교를 맺을 때, 이를 방해하는 북한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외교통상부가 30년 동안의 기밀유지 기한이 지나 공개한 당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 전문과 자료 등에 따르면 카다피 당시 리비아 대통령은 1975년 남한과 북한에 동시에 군사사절단을 보내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북측의 항의로 남한에 사절단을 보내는 계획을 결국 취소했습니다. 남북간 신경전은 이후에도 계속돼 북한이 리비아 주간지에 선전광고를 싣자 남한 외교관들이 "북한의 국제공산주의 선전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며 견제에 나섰습니다. 한펴 외무부는 1981년 리비아와 정식 수교한 직후,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리비아와의 수교로 중동지역에서 북한의 외교책동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중동을 상대로 한 외교에서 북한보다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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