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다시보기] 中, 옛 영광 다시 한 번

입력 2012.04.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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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 역사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꽃을 피웠던 시기를 들라면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송나라 시대는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고 풍요로웠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금 중국에선 송대의 부귀영화를 추억하려는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중국의 청명 문화제로 안내합니다.

<리포트>

중국 허난성의 카이펑.

청명절을 맞아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풍요로웠던 송나라 시절의 모습이 재현됐습니다.

나들이를 나온 부잣집 마나님과 귀공자들 그리고 서민들의 소박하지만 부족할 것 없는 행복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관청의 양곡이 배로 옮겨지는 모습은 당시의 넉넉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한가로운 장면들입니다.

이 장면들은 송나라 시절 카이펑 주민들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그린 청명상하도의 핵심적인 부분을 재현한 것입니다.

<인터뷰> 쩡광칭(카이펑 박물관장) : “송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기술 그리고 교육 방면에서 모두 역사상 최고였습니다. 중국 봉건 사회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죠.”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마당도 마련됐습니다.

당시의 손수레를 직접 들어보기도 하고 옛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체험해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인터뷰> 관람객 : “너무 좋아요.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에요.”

이런 풍요는 시와 문학은 물론 놀이 문화의 발전도 가져왔습니다.

갖가지 묘기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지는 곡예단의 공연.

아슬아슬함에 가슴 졸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조명을 이용한 무대 예술에 웅장한 집단 군무가 펼쳐집니다.

이 무대는 송나라의 부귀영화를 새로운 중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회생시킵니다.

<인터뷰> 우훼이핑(관람객) :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조국을 더 부강하게 건설하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정말이에요. 정말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나 강대하고 부유했던 송나라도 결국 몽골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인근 황하의 범람으로 도시 전체가 주기적으로 진흙에 파묻혀 지금은 송나라 유물이 많지 않고 발굴도 힘듭니다.

<인터뷰> 궈스쥔(카이펑 성곽 관리소 소장) : “가장 일찍 지어진 (전국 시대의) 따량 성은 현재의 지표면에서 15미터 깊이에 있습니다. 송나라 시대 것은 8미터 깊이고요. 명나라 시대 것은 5~6미터 깊이입니다. 그리고 청나라 시대 성곽은 지표면 3미터 아래에 있습니다.”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오래된 역사의 생활 터전과 유물이 발견되는 퇴적층이 형성된 겁니다.

하지만 카이펑은 이 천년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최소한 굶는 사람은 없다는 온포 사회...

놀랍게도 천년 전 송나라가 그런 온포 사회였습니다.

요즘 중국이 새로이 떠오르는 시기라서 그럴까요?

그 옛날 부귀영화의 재현으로 자국민들에게 자부심과 기대감을 주는 행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촌 다시 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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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4-10 1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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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 역사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꽃을 피웠던 시기를 들라면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송나라 시대는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고 풍요로웠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금 중국에선 송대의 부귀영화를 추억하려는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중국의 청명 문화제로 안내합니다. <리포트> 중국 허난성의 카이펑. 청명절을 맞아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풍요로웠던 송나라 시절의 모습이 재현됐습니다. 나들이를 나온 부잣집 마나님과 귀공자들 그리고 서민들의 소박하지만 부족할 것 없는 행복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관청의 양곡이 배로 옮겨지는 모습은 당시의 넉넉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한가로운 장면들입니다. 이 장면들은 송나라 시절 카이펑 주민들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그린 청명상하도의 핵심적인 부분을 재현한 것입니다. <인터뷰> 쩡광칭(카이펑 박물관장) : “송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기술 그리고 교육 방면에서 모두 역사상 최고였습니다. 중국 봉건 사회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죠.”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마당도 마련됐습니다. 당시의 손수레를 직접 들어보기도 하고 옛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체험해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인터뷰> 관람객 : “너무 좋아요.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에요.” 이런 풍요는 시와 문학은 물론 놀이 문화의 발전도 가져왔습니다. 갖가지 묘기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지는 곡예단의 공연. 아슬아슬함에 가슴 졸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조명을 이용한 무대 예술에 웅장한 집단 군무가 펼쳐집니다. 이 무대는 송나라의 부귀영화를 새로운 중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회생시킵니다. <인터뷰> 우훼이핑(관람객) :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조국을 더 부강하게 건설하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정말이에요. 정말 그럴 생각이에요.” 그러나 강대하고 부유했던 송나라도 결국 몽골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인근 황하의 범람으로 도시 전체가 주기적으로 진흙에 파묻혀 지금은 송나라 유물이 많지 않고 발굴도 힘듭니다. <인터뷰> 궈스쥔(카이펑 성곽 관리소 소장) : “가장 일찍 지어진 (전국 시대의) 따량 성은 현재의 지표면에서 15미터 깊이에 있습니다. 송나라 시대 것은 8미터 깊이고요. 명나라 시대 것은 5~6미터 깊이입니다. 그리고 청나라 시대 성곽은 지표면 3미터 아래에 있습니다.”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오래된 역사의 생활 터전과 유물이 발견되는 퇴적층이 형성된 겁니다. 하지만 카이펑은 이 천년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최소한 굶는 사람은 없다는 온포 사회... 놀랍게도 천년 전 송나라가 그런 온포 사회였습니다. 요즘 중국이 새로이 떠오르는 시기라서 그럴까요? 그 옛날 부귀영화의 재현으로 자국민들에게 자부심과 기대감을 주는 행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촌 다시 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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