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유족 두 번 울려…“부의 봉투라도 돌려주세요”

입력 2012.07.02 (09:01) 수정 2012.07.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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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똑같은 나쁜 짓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하면 더 나쁜 짓이 될 텐데요.

장례식장에서 수천만 원이 든 부의금함을 통째로 훔쳐간 혐의로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유족을 두 번 울린 정말 황당한 사건이었는데요.

김기흥 기자, 그런데 더 안타까운게 정말 당황하고, 정신이 없었을 유족들이 돈은 괜찮은데, 봉투는 꼭 찾아달라고 했다고요?

<기자 멘트>

절도범들에게는 부의 봉투 안에 돈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에게는 부의 봉투에 적혀 있는 이름 석 자가 중요했는데요.

조문객들의 따듯한 마음까지 잃어버린 것 같아서 무척 힘들었다는 유족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을 당시부터 부의 봉투는 꼭 찾아달라고 사정했다고 하는데요.

유족을 두 번 울린 장례식장 절도단의 치밀한 범죄행각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3월 29일, 청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친상을 치른 상주 안 모씨와 형제들이 발인을 앞두고 잠시 잠이 든 사이, 4천여만 원이 든 부의함이 감쪽같이 사라진 건데요.

상을 치르느라 녹초가 된 상주와 유가족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는 새벽 5시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엔 수상한 남성을 봤다는 조문객도 있었는데요.

<녹취> A장례식장 관계자 (음성변조) : "바깥에서 담배피우고 있는데 누가 왔다 갔다 했어요. 이상했는데 여기가 하도 사람이 많으니까 의심할 수도 없잖아요."

어떻게 된 일일까.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후 장례식장 안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한 유가족.

CCTV에는 놀라운 장면이 찍혀있었는데요.

한 남성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운송기사 옷을 입은 또 다른 남성이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나타납니다.

잠시 후, 함께 상자를 옮기며 사라지는 이들. 이 상자가 바로 부의함이었습니다.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 4천100만 원도 같이 사라진 건데요.

갑작스런 부친상으로 힘들어하던 안씨. 장례식장에서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아침 5시 20분에 도우미분들 돈을 주게 되어 있어요. 거기(부의함)에서 돈을 꺼내 주려고 찾으니까 함이 없어진 거죠. 앞이 깜깜했죠. 왜냐면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가지고 솔직히 경황이 없었습니다."

장례 3일째 되는 새벽시간이라, 마침 분향소 안에 조문객이 없던 상황.

더구나 지칠 대로 지친 상주와 유가족들은 아침에 있을 발인을 위해 잠시 잠을 청한 상태였는데요.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우리가 그날 (쪽방에서) 여섯 명이 잤어요. 그냥 곯아떨어진 거죠. (절도범이) 장례 마지막 날을 노린 거 같아요. CCTV영상을 보니까 그 사람들이 (새벽) 1시서부터 여길 주시했더라고요."

신고를 받은 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 하지만 CCTV 영상 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 피의자들을 검거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덕형(팀장/청주 흥덕경찰서 강력3팀) : "전국에 동일수법 전과자 약 3천여 명을 상대로 일일이 CCTV에 찍혔던 체형, 나이, 이런 걸 가지고 분별해서 최종적으로 용의자를 선정을 했고 3개월에 걸친 수사로 전남 나주에서 검거를 하게 된 것입니다."

또다른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곳의 장례식장을 물색하던 피의자들.

경찰의 끈질긴 잠복근무 끝에 결국 지난 달 28일, 58살 권모씨 등 3명이 붙잡혔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세 명은 동종전과를 가진 교도소 동기로 밝혀졌습니다.

<인터뷰> 이덕형팀장/청주 흥덕경찰서 강력3팀) : "5년여 전에 다른 지방에서 이와 흡사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전과가 있습니다. (피의자 세 명) 모여서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세웠던 거죠."

범행 당시,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운송기사로 변장하고, 훔친 부의함은 이삿짐 상자에 담아 운반해 사람들의 의심을 피해온 피의자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훔친 차량의 번호판을 위조하는 등 치밀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훔친 부의금 4천만 원은 이미 도박 등으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녹취> 권00(58세/피의자/음성변조) : "사실 이건 (부의함 절도) 안 하려고 했어요. 진짜.. 근데 하도 갑갑하니까.. (유가족에게) 미안하죠. 좀 그런 게 있었어요."

사실은 부의함이 도난당한지 3개월 만에 범인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안씨. 하지만 안씨에게 중요한 건 범인을 잡는 것도, 부의금을 찾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아버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생전) 고생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부의금 없어진 걸) 노잣돈 가져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돈이 아쉽지만 돈보다는 우리한테 와서 위로해 주신 분들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것(부의 봉투)만 찾아달라고 제가 형사 분들한테 처음부터 그랬어요."

조문객들의 따뜻한 마음까지 잃어버린 것 같아서 힘들었다는 안씨.

부친의 장례식에 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데, 조문객들의 이름이 써진 봉투가 없어졌으니,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안씨의 이 같은 요청에 경찰은 피의자들을 추궁했고, 피의자 중 한 명이 과거에 살던 곳에 부의봉투를 버린 장소를 실토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경기도의 한 공동묘지 인근의 공터네서 상주 안씨가 간절히 찾기를 원했던 부의금 봉투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진짜 사람 된 도리가 아니죠. 상중에 (장례식장) 와서 그런 다는 게... 어쨌든 좋은 분들한테 인사라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게 참 고맙습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 부의함 절도단.

경찰은 현재 이들의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보고 추가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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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2-07-02 13: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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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똑같은 나쁜 짓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하면 더 나쁜 짓이 될 텐데요. 장례식장에서 수천만 원이 든 부의금함을 통째로 훔쳐간 혐의로 일당이 붙잡혔습니다. 유족을 두 번 울린 정말 황당한 사건이었는데요. 김기흥 기자, 그런데 더 안타까운게 정말 당황하고, 정신이 없었을 유족들이 돈은 괜찮은데, 봉투는 꼭 찾아달라고 했다고요? <기자 멘트> 절도범들에게는 부의 봉투 안에 돈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에게는 부의 봉투에 적혀 있는 이름 석 자가 중요했는데요. 조문객들의 따듯한 마음까지 잃어버린 것 같아서 무척 힘들었다는 유족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을 당시부터 부의 봉투는 꼭 찾아달라고 사정했다고 하는데요. 유족을 두 번 울린 장례식장 절도단의 치밀한 범죄행각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3월 29일, 청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친상을 치른 상주 안 모씨와 형제들이 발인을 앞두고 잠시 잠이 든 사이, 4천여만 원이 든 부의함이 감쪽같이 사라진 건데요. 상을 치르느라 녹초가 된 상주와 유가족이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는 새벽 5시에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엔 수상한 남성을 봤다는 조문객도 있었는데요. <녹취> A장례식장 관계자 (음성변조) : "바깥에서 담배피우고 있는데 누가 왔다 갔다 했어요. 이상했는데 여기가 하도 사람이 많으니까 의심할 수도 없잖아요." 어떻게 된 일일까.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후 장례식장 안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한 유가족. CCTV에는 놀라운 장면이 찍혀있었는데요. 한 남성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운송기사 옷을 입은 또 다른 남성이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나타납니다. 잠시 후, 함께 상자를 옮기며 사라지는 이들. 이 상자가 바로 부의함이었습니다. 조문객들이 낸 부의금 4천100만 원도 같이 사라진 건데요. 갑작스런 부친상으로 힘들어하던 안씨. 장례식장에서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아침 5시 20분에 도우미분들 돈을 주게 되어 있어요. 거기(부의함)에서 돈을 꺼내 주려고 찾으니까 함이 없어진 거죠. 앞이 깜깜했죠. 왜냐면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가지고 솔직히 경황이 없었습니다." 장례 3일째 되는 새벽시간이라, 마침 분향소 안에 조문객이 없던 상황. 더구나 지칠 대로 지친 상주와 유가족들은 아침에 있을 발인을 위해 잠시 잠을 청한 상태였는데요.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우리가 그날 (쪽방에서) 여섯 명이 잤어요. 그냥 곯아떨어진 거죠. (절도범이) 장례 마지막 날을 노린 거 같아요. CCTV영상을 보니까 그 사람들이 (새벽) 1시서부터 여길 주시했더라고요." 신고를 받은 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 하지만 CCTV 영상 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 피의자들을 검거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덕형(팀장/청주 흥덕경찰서 강력3팀) : "전국에 동일수법 전과자 약 3천여 명을 상대로 일일이 CCTV에 찍혔던 체형, 나이, 이런 걸 가지고 분별해서 최종적으로 용의자를 선정을 했고 3개월에 걸친 수사로 전남 나주에서 검거를 하게 된 것입니다." 또다른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그곳의 장례식장을 물색하던 피의자들. 경찰의 끈질긴 잠복근무 끝에 결국 지난 달 28일, 58살 권모씨 등 3명이 붙잡혔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세 명은 동종전과를 가진 교도소 동기로 밝혀졌습니다. <인터뷰> 이덕형팀장/청주 흥덕경찰서 강력3팀) : "5년여 전에 다른 지방에서 이와 흡사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전과가 있습니다. (피의자 세 명) 모여서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 계획을 세웠던 거죠." 범행 당시,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운송기사로 변장하고, 훔친 부의함은 이삿짐 상자에 담아 운반해 사람들의 의심을 피해온 피의자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훔친 차량의 번호판을 위조하는 등 치밀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훔친 부의금 4천만 원은 이미 도박 등으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녹취> 권00(58세/피의자/음성변조) : "사실 이건 (부의함 절도) 안 하려고 했어요. 진짜.. 근데 하도 갑갑하니까.. (유가족에게) 미안하죠. 좀 그런 게 있었어요." 사실은 부의함이 도난당한지 3개월 만에 범인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안씨. 하지만 안씨에게 중요한 건 범인을 잡는 것도, 부의금을 찾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아버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생전) 고생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부의금 없어진 걸) 노잣돈 가져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돈이 아쉽지만 돈보다는 우리한테 와서 위로해 주신 분들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것(부의 봉투)만 찾아달라고 제가 형사 분들한테 처음부터 그랬어요." 조문객들의 따뜻한 마음까지 잃어버린 것 같아서 힘들었다는 안씨. 부친의 장례식에 와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데, 조문객들의 이름이 써진 봉투가 없어졌으니,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안씨의 이 같은 요청에 경찰은 피의자들을 추궁했고, 피의자 중 한 명이 과거에 살던 곳에 부의봉투를 버린 장소를 실토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경기도의 한 공동묘지 인근의 공터네서 상주 안씨가 간절히 찾기를 원했던 부의금 봉투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녹취> 안00(56세/피해자/음성변조) : "진짜 사람 된 도리가 아니죠. 상중에 (장례식장) 와서 그런 다는 게... 어쨌든 좋은 분들한테 인사라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게 참 고맙습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 부의함 절도단. 경찰은 현재 이들의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보고 추가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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