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불량 판정’

입력 2012.07.0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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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천장에 달린 형광등을 보수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녹취> "비상 점검 스위치를 누르면 불빛이 약간 흐려지면서 비상 상태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전원을 차단한 거죠?) "네, 차단했습니다." (불이 안 꺼지네요?) "안에 내장된 배터리로 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비상 전원 장치'는 갑작스런 정전에도 1시간 이상 불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 때 승객들이 최단 경로로 안전하게 대피하고, 또 인명 구조에도 필수적인 장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 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이 촬영을 가로막습니다.

<녹취> "잠깐만요. 작업하지 마시고 내려와 보세요." "찍지 마시라니까."

급기야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겠다며 그 자리를 떠나 버립니다.

<녹취> (이 작업 때문에 나오신 분 아니세요?) "맞아요. 작업을 하든, 안하든 저희가 알아서 하는 거지, 그걸 왜 말씀 드려야 돼요?"

공사 측은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하루 25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5.6.7.8호선.

그런데 역사 안에 설치된 이 '비상 전원 장치'가 불합격 제품이고, 그것도 설치된 지 7년을 넘긴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습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승객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의 제품을 왜 교체하지 않는 지, 그 내막을 취재했습니다.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참사.

전기가 끊긴 역사 안은 온통 암흑 천지로 변했고, 승객들은 출구를 찾아 우왕좌왕하다 연기에 질식했습니다.

다른 지하철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진입하는 순간 역사 내 전기가 모두 끊어지고 의지할 곳이라곤 손전등과 희미한 비상등 정도입니다.

<녹취> "침착하게 올라가십시오. 침착하게...로프를 잡고 올라가십시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비상 전원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한 건 대구 지하철 사고 이듬해인 지난 2004년.

경쟁 입찰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지하철 5~8호선, 88개 역사에 이 같은 설비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공사 측은 갑자기 "자체 실험 결과, 2차 납품 제품이 기준에 미달했다"며 불합격 통보합니다.

이어 납품 계약 자체를 해지하고, 해당 업체를 '부정당업체'로 등록했습니다.

'부정당업체'는 공공기관 입찰 참가가 금지되는 등 영업에 치명적인 제재입니다.

<인터뷰> 민득기(납품 업체 영업 담당) : "대구 지하철 화재 이후로 상당히 (비상 전원 장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물량이 상당히 많이 나온 때였습니다. 물량이 많이 나올 때 부정당업체 등록은 더군다나 기업으로서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공사 측은 이어 납품업체 선정에 간여한 실무 직원 3명도 정직 등 중징계했습니다.

당시 공사 측이 내건 기준은 비상등이 정전 후 60분 이상, 평상시의 60% 이상의 밝기를 내라는 것.

하지만, 자체 실험에서 제품 중 40%가 60분이 안 돼 꺼졌고, 밝기 역시 60% 미만이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업체 측과 나눈 대화를 보면 공사 측은 이를 근거로 물품 대금을 못 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녹취> 당시 대화 내용 (2006년 2월) : <업체> "어느 천지에 영하 몇 도에서 시험을 한다든가, 이런 거는 있을 수 가 없습니다." <공사> "검수 시험을 안 하겠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포기하겠다는 얘기하고 똑같은 거예요." <업체> "뭘 포기합니까?" <공사> "검수 시험을 해 가지고 돈(납품 대금)을 찾아갈...공사비를..."

제품을 인증한 곳은 지식경제부 산하 국제 공인 시험 기관.

<녹취> "정상 동작시와 비정상 동작시에 빛의 밝기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 측정하는 장비이고요."

이 곳 역시 공사 측의 실험 방식이 터무니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오평식(팀장/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 "저희가 측정한 데이터는 도시철도공사의 시방서에 의해서 시험을 해드린 거거든요. 시험 장비라든가 시험 시설이 완벽하게 돼 있지 않은 곳에서 측정하면 특성치의 재현성이 없다고 봐야죠. 측정에 문제가 있을 겁니다."

실제 이 제품은 부산 지하철과 KTX 역사, 터널은 물론, 일본에까지 수출됐지만, 문제를 제기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녹취> 강주원(부산교통공사 차장) : "수시로 점검하고 동작 시험을 하거든요. 문제없이 작동을 하는 걸로 저희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설치된 지 6년 정도 지났는데 큰 문제없이 정상 작동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실제 공사 내부 문서에도 지난 2005년 8월, 8호선 복정역이 15분간 완전 정전 상태가 됐을 때 비상 전원이 정상 작동한 걸로 돼 있습니다.

지하철 5~8호선에 설치된 '비상 전원 장치'는 모두 만 천여개.

공사 측 주장대로 제품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돼 승객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다면 왜 교체를 하지 않았는 지 의문입니다.

공사 측은 그러나 업체 측에 책임을 떠넘깁니다.

<인터뷰> 이태형(도시철도공사 차장) : "계약 해지하고 그걸(비상 전원 장치) 철거를 하려면 철거 비용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업체에서 물건을 잘못 납품된 부분이 업체에서 철거 회수를 한다든지...."

더욱이 공사 측은 같은 제품이 설치된 여타 공공기관에도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이태형(도시철도공사 차장) : "이미 일반 업체에서는 전부 도시철도공사가 이런 소송에 있다는 걸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알리신 적은 없다?) "자발적으로 저희가 (다른) 기관에 알린 적은 없습니다."

해당 업체가 공사를 상대로 물품 대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낸 건 지난 2006년.

서울고등법원은 무려 7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서야 "제품에는 하자가 없어 계약 해지는 무효"라며 업체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공사 측은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공사비 2억여 원에 불과한 소송을 7년 가까이 끌어온 점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신태영(업체 측 변호인) : "상식에 안 맞는 각종 시험을 새로 하자든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계속 댄다든지 (재판) 기록에 다 나와 있고, 서울 도시철도공사에서 주장했던 사실 중에서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여기에 해당 업체의 경우 소송 도중에 검찰 내사까지 받았습니다.

"도시철도공사 발주 부서 관계자들에게 뒷돈을 줬다"는 익명의 투서가 접수돼 서울 서부지검이 업체 주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계좌추적에 나선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과는 '무혐의'였습니다.

<녹취> 민봉기(계좌추적 당사자) : "당연히 놀랐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것 조사해서 별안간 그러면 내 개인적인 사생활도 침해받는 게 아니냐, 굉장히 불쾌해서 검찰에 도대체 이런 짓을 누가 하는거냐, 남의 개인적인 것을 갖다가..."

당시 수사팀은 그러나 구체적인 투서의 내용과 제공자 신원에 대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녹취> 검찰 관계자 (음성변조) : "저는 잘 모르겠어요. 큰 사건 아니면 기억 안 나죠." (도시철도공사 관련한 사건인데요?) "안다고 하더라도 말씀 못 드리고 알 수가 없어요."

과거 납품 과정에 간여했다가 중징계를 받은 공사 직원들 역시 대법원에서 징계 무효가 확정됐습니다.

그렇다면 공사 측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업체와 갈등을 빚은 진짜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일부 직원들이 입찰에 탈락한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문제를 삼았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공사 내부 문건에는 당시 모 간부가 부하 직원을 시켜 입찰 전에 '비상 전원 장치' 사업의 설계서와 시방서, 도면 등이 담긴 CD를 미리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녹취> 노○○(CD 유출자/음성변조) : "회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자격도 없고, 말씀드릴 내용도 없고, 말씀드릴 생각도 없고..."

CD 유출을 지시한 공사 간부는 현재 퇴직한 상태.

그는 업체와의 유착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녹취> 강○○(도시철도공사 전 팀장/음성변조) : "다른 기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질 때예요. 자료 좀 달라고 해서 줬던 것 뿐이지, 일부러 (업체를 도와준 일은) 없어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면 ○○과 특수관계는 아니십니까?) "아, 그럼요."

우월적 지위를 가진 공사를 상대로 7년 넘게 법정 다툼을 벌인 장문환 씨.

그 사이 입찰 참여는 물론, 신규 운영자금 대출도 묶이면서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났고, 자신도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습니다.

승소장만 손에 쥐었을 뿐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은 셈입니다.

<인터뷰> 장문환(납품업체 대표) : "관(官)이나 다름없는 공사이니까 그런데와 싸워서 이기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면서도 이렇게 오래까지 끌 줄은 몰랐죠. 그래도 한 2~3년이면 끝날 줄 알고 했는데 (설치 후) 8년이 걸렸습니다."

이후 서울시에 관련 의혹을 밝혀달라며 직권 감사를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최근 이를 다시 공사 쪽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감사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녹취> 서울시 감사실 관계자 : "해당 기관에서 답변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첩을 시킨 겁니다." (비상 전원 장치를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고 있거든요?) "제가 그것까지는 파악을 못해 가지고... 불량품이라고 얘기해 놓고 계속 쓰고 있다면은..."

이미 하자.보수 기간이 끝났지만, 제품을 점검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를 찾은 장 씨.

고단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며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인터뷰> 장문환(납품업체 대표) : "저희 딸이 28살입니다. 대학을 제때 못가서 아르바이트 해가면서... 지금이 4학년이에요. 지금도 직장 다니고 있고요."

서울 시민의 40%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지하철 5.6.7.8호선.

하지만 서울도시철도가 납품업체와 벌인 오랜 다툼 과정에서 정작 승객의 안전은 뒷전이 아니었는 지 따져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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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상한 ‘불량 판정’
    • 입력 2012-07-09 07:29:08
    취재파일K
서울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천장에 달린 형광등을 보수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녹취> "비상 점검 스위치를 누르면 불빛이 약간 흐려지면서 비상 상태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전원을 차단한 거죠?) "네, 차단했습니다." (불이 안 꺼지네요?) "안에 내장된 배터리로 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비상 전원 장치'는 갑작스런 정전에도 1시간 이상 불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 때 승객들이 최단 경로로 안전하게 대피하고, 또 인명 구조에도 필수적인 장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 도시철도공사 직원들이 촬영을 가로막습니다. <녹취> "잠깐만요. 작업하지 마시고 내려와 보세요." "찍지 마시라니까." 급기야는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겠다며 그 자리를 떠나 버립니다. <녹취> (이 작업 때문에 나오신 분 아니세요?) "맞아요. 작업을 하든, 안하든 저희가 알아서 하는 거지, 그걸 왜 말씀 드려야 돼요?" 공사 측은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하루 25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5.6.7.8호선. 그런데 역사 안에 설치된 이 '비상 전원 장치'가 불합격 제품이고, 그것도 설치된 지 7년을 넘긴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습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승객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의 제품을 왜 교체하지 않는 지, 그 내막을 취재했습니다.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참사. 전기가 끊긴 역사 안은 온통 암흑 천지로 변했고, 승객들은 출구를 찾아 우왕좌왕하다 연기에 질식했습니다. 다른 지하철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진입하는 순간 역사 내 전기가 모두 끊어지고 의지할 곳이라곤 손전등과 희미한 비상등 정도입니다. <녹취> "침착하게 올라가십시오. 침착하게...로프를 잡고 올라가십시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비상 전원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한 건 대구 지하철 사고 이듬해인 지난 2004년. 경쟁 입찰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지하철 5~8호선, 88개 역사에 이 같은 설비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공사 측은 갑자기 "자체 실험 결과, 2차 납품 제품이 기준에 미달했다"며 불합격 통보합니다. 이어 납품 계약 자체를 해지하고, 해당 업체를 '부정당업체'로 등록했습니다. '부정당업체'는 공공기관 입찰 참가가 금지되는 등 영업에 치명적인 제재입니다. <인터뷰> 민득기(납품 업체 영업 담당) : "대구 지하철 화재 이후로 상당히 (비상 전원 장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물량이 상당히 많이 나온 때였습니다. 물량이 많이 나올 때 부정당업체 등록은 더군다나 기업으로서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공사 측은 이어 납품업체 선정에 간여한 실무 직원 3명도 정직 등 중징계했습니다. 당시 공사 측이 내건 기준은 비상등이 정전 후 60분 이상, 평상시의 60% 이상의 밝기를 내라는 것. 하지만, 자체 실험에서 제품 중 40%가 60분이 안 돼 꺼졌고, 밝기 역시 60% 미만이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업체 측과 나눈 대화를 보면 공사 측은 이를 근거로 물품 대금을 못 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녹취> 당시 대화 내용 (2006년 2월) : <업체> "어느 천지에 영하 몇 도에서 시험을 한다든가, 이런 거는 있을 수 가 없습니다." <공사> "검수 시험을 안 하겠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포기하겠다는 얘기하고 똑같은 거예요." <업체> "뭘 포기합니까?" <공사> "검수 시험을 해 가지고 돈(납품 대금)을 찾아갈...공사비를..." 제품을 인증한 곳은 지식경제부 산하 국제 공인 시험 기관. <녹취> "정상 동작시와 비정상 동작시에 빛의 밝기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 측정하는 장비이고요." 이 곳 역시 공사 측의 실험 방식이 터무니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오평식(팀장/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 "저희가 측정한 데이터는 도시철도공사의 시방서에 의해서 시험을 해드린 거거든요. 시험 장비라든가 시험 시설이 완벽하게 돼 있지 않은 곳에서 측정하면 특성치의 재현성이 없다고 봐야죠. 측정에 문제가 있을 겁니다." 실제 이 제품은 부산 지하철과 KTX 역사, 터널은 물론, 일본에까지 수출됐지만, 문제를 제기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녹취> 강주원(부산교통공사 차장) : "수시로 점검하고 동작 시험을 하거든요. 문제없이 작동을 하는 걸로 저희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설치된 지 6년 정도 지났는데 큰 문제없이 정상 작동한다는 말씀이시죠?) "네" 실제 공사 내부 문서에도 지난 2005년 8월, 8호선 복정역이 15분간 완전 정전 상태가 됐을 때 비상 전원이 정상 작동한 걸로 돼 있습니다. 지하철 5~8호선에 설치된 '비상 전원 장치'는 모두 만 천여개. 공사 측 주장대로 제품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돼 승객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다면 왜 교체를 하지 않았는 지 의문입니다. 공사 측은 그러나 업체 측에 책임을 떠넘깁니다. <인터뷰> 이태형(도시철도공사 차장) : "계약 해지하고 그걸(비상 전원 장치) 철거를 하려면 철거 비용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업체에서 물건을 잘못 납품된 부분이 업체에서 철거 회수를 한다든지...." 더욱이 공사 측은 같은 제품이 설치된 여타 공공기관에도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이태형(도시철도공사 차장) : "이미 일반 업체에서는 전부 도시철도공사가 이런 소송에 있다는 걸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알리신 적은 없다?) "자발적으로 저희가 (다른) 기관에 알린 적은 없습니다." 해당 업체가 공사를 상대로 물품 대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낸 건 지난 2006년. 서울고등법원은 무려 7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서야 "제품에는 하자가 없어 계약 해지는 무효"라며 업체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공사 측은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공사비 2억여 원에 불과한 소송을 7년 가까이 끌어온 점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신태영(업체 측 변호인) : "상식에 안 맞는 각종 시험을 새로 하자든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계속 댄다든지 (재판) 기록에 다 나와 있고, 서울 도시철도공사에서 주장했던 사실 중에서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여기에 해당 업체의 경우 소송 도중에 검찰 내사까지 받았습니다. "도시철도공사 발주 부서 관계자들에게 뒷돈을 줬다"는 익명의 투서가 접수돼 서울 서부지검이 업체 주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계좌추적에 나선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과는 '무혐의'였습니다. <녹취> 민봉기(계좌추적 당사자) : "당연히 놀랐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것 조사해서 별안간 그러면 내 개인적인 사생활도 침해받는 게 아니냐, 굉장히 불쾌해서 검찰에 도대체 이런 짓을 누가 하는거냐, 남의 개인적인 것을 갖다가..." 당시 수사팀은 그러나 구체적인 투서의 내용과 제공자 신원에 대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녹취> 검찰 관계자 (음성변조) : "저는 잘 모르겠어요. 큰 사건 아니면 기억 안 나죠." (도시철도공사 관련한 사건인데요?) "안다고 하더라도 말씀 못 드리고 알 수가 없어요." 과거 납품 과정에 간여했다가 중징계를 받은 공사 직원들 역시 대법원에서 징계 무효가 확정됐습니다. 그렇다면 공사 측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업체와 갈등을 빚은 진짜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일부 직원들이 입찰에 탈락한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문제를 삼았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공사 내부 문건에는 당시 모 간부가 부하 직원을 시켜 입찰 전에 '비상 전원 장치' 사업의 설계서와 시방서, 도면 등이 담긴 CD를 미리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녹취> 노○○(CD 유출자/음성변조) : "회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자격도 없고, 말씀드릴 내용도 없고, 말씀드릴 생각도 없고..." CD 유출을 지시한 공사 간부는 현재 퇴직한 상태. 그는 업체와의 유착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녹취> 강○○(도시철도공사 전 팀장/음성변조) : "다른 기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질 때예요. 자료 좀 달라고 해서 줬던 것 뿐이지, 일부러 (업체를 도와준 일은) 없어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면 ○○과 특수관계는 아니십니까?) "아, 그럼요." 우월적 지위를 가진 공사를 상대로 7년 넘게 법정 다툼을 벌인 장문환 씨. 그 사이 입찰 참여는 물론, 신규 운영자금 대출도 묶이면서 회사는 결국 부도가 났고, 자신도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습니다. 승소장만 손에 쥐었을 뿐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은 셈입니다. <인터뷰> 장문환(납품업체 대표) : "관(官)이나 다름없는 공사이니까 그런데와 싸워서 이기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면서도 이렇게 오래까지 끌 줄은 몰랐죠. 그래도 한 2~3년이면 끝날 줄 알고 했는데 (설치 후) 8년이 걸렸습니다." 이후 서울시에 관련 의혹을 밝혀달라며 직권 감사를 요청했지만, 서울시는 최근 이를 다시 공사 쪽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감사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녹취> 서울시 감사실 관계자 : "해당 기관에서 답변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첩을 시킨 겁니다." (비상 전원 장치를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고 있거든요?) "제가 그것까지는 파악을 못해 가지고... 불량품이라고 얘기해 놓고 계속 쓰고 있다면은..." 이미 하자.보수 기간이 끝났지만, 제품을 점검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를 찾은 장 씨. 고단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며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인터뷰> 장문환(납품업체 대표) : "저희 딸이 28살입니다. 대학을 제때 못가서 아르바이트 해가면서... 지금이 4학년이에요. 지금도 직장 다니고 있고요." 서울 시민의 40%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지하철 5.6.7.8호선. 하지만 서울도시철도가 납품업체와 벌인 오랜 다툼 과정에서 정작 승객의 안전은 뒷전이 아니었는 지 따져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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