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한라 “핀란드서 매운 맛!”

입력 2012.07.1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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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이스하키 실업팀 안양 한라가 황당하고 한편으론 비현실적으로까지 들리는 '핀란드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가장 놀란 이들은 아마도 당사자인 선수들일 것이다.

안양 한라의 간판 공격수 김기성은 14일 인천공항에서 핀란드로 출국하기에 앞서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듯 "그때는 요즘 말로 완전히 '멘붕(멘탈붕괴)'이었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수비수 김우영도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된다 싶었죠"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 프로젝트에 꼭 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라고 말했다.

'핀란드 프로젝트'는 안양 한라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자력 진출을 위해 꺼내 든 사상 초유의 카드다.

소속 간판선수 10명을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KHL(러시아하키리그)과 함께 전 세계 3대 리그로 꼽히는 핀란드 SM 리가의 2부리그인 메스티스 리그에 보내는 게 첫 번째 프로젝트다.

안양 한라는 내침 김에 내년 시즌에는 아예 자체 팀(가칭 '유로 한라')을 창단해 메스티스 리그에 직접 참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안양 한라의 양승준 사무국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자력 진출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면 방법 역시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계올림픽 최고의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에서 한국의 세계 랭킹은 28위다.

최근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한국이 2015년 연맹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세계랭킹 18위 이내에 진입해야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3년 안에 세계 랭킹을 10계단 끌어올려야 한다는 말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론 불가능한 과제에 가깝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핀란드 프로젝트'다.

안양 한라는 아시아권에 머물러서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아예 올림픽에 대비해 1987~1993년생 중심으로 국가대표급 소속 선수 10명을 단체로 아이스하키 강국인 핀란드 리그로 이적시키기로 했다.

아이스하키 변방인 한국 선수를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안양 한라 구단이 직접 핀란드 아이스하키협회를 방문해 선수 이적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 연봉도 안양 한라가 부담키로 했다.

자체 팀을 창단하는 계획도 이적한 선수들이 실력이 부족해 방출됐을 경우에 대비한 일종의 '보호장치'다.

선수들이 이적한 팀 또는 '유로 한라'(가칭)에서 풀타임으로 출전하면서 경기력을 높여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자력 출전권을 기어코 따내겠다는 것이 안양 한라의 구상이다.

안방에서 열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남의 잔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인식을 국가가 아닌 일개 민간 기업에서 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척박한 국내 아이스하키 풍토에서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모기업이 공중분해되는 상황에서도 18년 동안이나 비인기종목팀의 명맥을 유지해오며 국내 아이스하키의 근간을 지켜온 안양 한라였기에 가능한 혁신적인 구상이다.

양 사무국장은 "정몽원 구단주의 열정과 사명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면서 "안양 한라는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대의를 갖고 비인기종목인 아이스하키팀을 유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이날 출국한 김기성, 김상욱, 성우제(이상 공격수), 김우영(수비수), 박성제(골리) 등 선발대 5명은 메스티스 리그의 'HC 게스키 오지마'로 이적한다.

이들은 열흘가량 현지에서 머물며 적응력을 높인 뒤 23일부터 팀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박우상, 조민호, 신상우(이상 공격수), 김윤환, 이돈구(이상 수비수) 등 후발대 5명은 오는 25일 출국한다.

후발대 5명은 30일부터 같은 리그에 속한 '키에코 완타'의 팀훈련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들 10명의 선수는 오는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메스티스 리그에서 뛴 다음 내년 4월 헝가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 A그룹 대회에 출전한다.

선발대의 리더인 김기성은 "첫 번째 목표는 일단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한 시즌을 부상 없이 소화하는 것"이라면서 "평창 올림픽에서 뛰는 그 순간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과 비교하면 드리블이나 볼을 다루는 능력 등 기술적인 부분은 뒤지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우리에겐 유럽 선수들의 게임을 읽고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몸싸움도 약한 편이다. 그런 부분을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우영은 "과연 이 프로젝트에 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참여할 수 있게 돼 너무나 기쁘다"면서 "좋은 기회가 왔으니까 많이 배우고 싶다. 유럽인들에게 한국 아이스하키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동양 선수들은 서양 선수들에 비해 신체조건도 달리고 분명히 힘에서도 차이가 난다"면서 "하지만 특유의 스피드를 살린다면 그들과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을 것 같다. 평창 동계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를 꼭 이루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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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스하키 한라 “핀란드서 매운 맛!”
    • 입력 2012-07-14 14:03:54
    연합뉴스
국내 아이스하키 실업팀 안양 한라가 황당하고 한편으론 비현실적으로까지 들리는 '핀란드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가장 놀란 이들은 아마도 당사자인 선수들일 것이다. 안양 한라의 간판 공격수 김기성은 14일 인천공항에서 핀란드로 출국하기에 앞서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듯 "그때는 요즘 말로 완전히 '멘붕(멘탈붕괴)'이었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수비수 김우영도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된다 싶었죠"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 프로젝트에 꼭 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라고 말했다. '핀란드 프로젝트'는 안양 한라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자력 진출을 위해 꺼내 든 사상 초유의 카드다. 소속 간판선수 10명을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KHL(러시아하키리그)과 함께 전 세계 3대 리그로 꼽히는 핀란드 SM 리가의 2부리그인 메스티스 리그에 보내는 게 첫 번째 프로젝트다. 안양 한라는 내침 김에 내년 시즌에는 아예 자체 팀(가칭 '유로 한라')을 창단해 메스티스 리그에 직접 참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안양 한라의 양승준 사무국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자력 진출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면 방법 역시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계올림픽 최고의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에서 한국의 세계 랭킹은 28위다. 최근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한국이 2015년 연맹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세계랭킹 18위 이내에 진입해야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3년 안에 세계 랭킹을 10계단 끌어올려야 한다는 말인데, 정상적인 방법으론 불가능한 과제에 가깝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핀란드 프로젝트'다. 안양 한라는 아시아권에 머물러서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아예 올림픽에 대비해 1987~1993년생 중심으로 국가대표급 소속 선수 10명을 단체로 아이스하키 강국인 핀란드 리그로 이적시키기로 했다. 아이스하키 변방인 한국 선수를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안양 한라 구단이 직접 핀란드 아이스하키협회를 방문해 선수 이적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 연봉도 안양 한라가 부담키로 했다. 자체 팀을 창단하는 계획도 이적한 선수들이 실력이 부족해 방출됐을 경우에 대비한 일종의 '보호장치'다. 선수들이 이적한 팀 또는 '유로 한라'(가칭)에서 풀타임으로 출전하면서 경기력을 높여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자력 출전권을 기어코 따내겠다는 것이 안양 한라의 구상이다. 안방에서 열리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남의 잔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인식을 국가가 아닌 일개 민간 기업에서 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척박한 국내 아이스하키 풍토에서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모기업이 공중분해되는 상황에서도 18년 동안이나 비인기종목팀의 명맥을 유지해오며 국내 아이스하키의 근간을 지켜온 안양 한라였기에 가능한 혁신적인 구상이다. 양 사무국장은 "정몽원 구단주의 열정과 사명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면서 "안양 한라는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대의를 갖고 비인기종목인 아이스하키팀을 유지해왔다"고 강조했다. 이날 출국한 김기성, 김상욱, 성우제(이상 공격수), 김우영(수비수), 박성제(골리) 등 선발대 5명은 메스티스 리그의 'HC 게스키 오지마'로 이적한다. 이들은 열흘가량 현지에서 머물며 적응력을 높인 뒤 23일부터 팀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박우상, 조민호, 신상우(이상 공격수), 김윤환, 이돈구(이상 수비수) 등 후발대 5명은 오는 25일 출국한다. 후발대 5명은 30일부터 같은 리그에 속한 '키에코 완타'의 팀훈련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들 10명의 선수는 오는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메스티스 리그에서 뛴 다음 내년 4월 헝가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 A그룹 대회에 출전한다. 선발대의 리더인 김기성은 "첫 번째 목표는 일단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한 시즌을 부상 없이 소화하는 것"이라면서 "평창 올림픽에서 뛰는 그 순간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과 비교하면 드리블이나 볼을 다루는 능력 등 기술적인 부분은 뒤지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우리에겐 유럽 선수들의 게임을 읽고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몸싸움도 약한 편이다. 그런 부분을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우영은 "과연 이 프로젝트에 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참여할 수 있게 돼 너무나 기쁘다"면서 "좋은 기회가 왔으니까 많이 배우고 싶다. 유럽인들에게 한국 아이스하키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동양 선수들은 서양 선수들에 비해 신체조건도 달리고 분명히 힘에서도 차이가 난다"면서 "하지만 특유의 스피드를 살린다면 그들과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을 것 같다. 평창 동계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를 꼭 이루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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