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대 그때 그시절 ‘여름나기’ 풍경
입력 2012.07.17 (21:51)
수정 2012.07.1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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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0년대나 70년대에 삼복 더위를 나는 모습은 어땠을까요?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가는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김학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0년대 서울의 최대 피서지는 한강입니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어른들은 배를 타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녹취> 박세군(73살) : "한강쪽에 상류쪽에 지금 팔당댐 있는데 거기가 피서지였어요. 그때 거길 갔었다니까. 거기 나무 막 우거져가지고..."
전국 계곡과 해수욕장은 예나 지금이나 피서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71년) : "경기도 가평에 여학생 전용수영교실이 설치됐습니다."
각종 풍기문란 사고를 막기 위해 아예 여학생 전용 수영장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여름 농촌에서는 대학생들이 봉사활동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바쁜 농사일을 거드는가 하면 사라지는 전통을 되살리자는 계몽활동도 펼쳤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74년) : "강원도 정선군에 와서 이 지방의 전통민요인 정선아리랑의 보존과 보급을 위한 발표회를 가지는 등 색다른 봉사활동을 폈습니다."
얼음을 파는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뇌염모기 살충제를 비행기까지 동원해 뿌리던 시절.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태풍이 몰고오는 재해였습니다.
이재민을 돕기 위해 찾아온 봉사자들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여름철 풍경입니다.
KBS 뉴스 김학재입니다.
60년대나 70년대에 삼복 더위를 나는 모습은 어땠을까요?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가는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김학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0년대 서울의 최대 피서지는 한강입니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어른들은 배를 타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녹취> 박세군(73살) : "한강쪽에 상류쪽에 지금 팔당댐 있는데 거기가 피서지였어요. 그때 거길 갔었다니까. 거기 나무 막 우거져가지고..."
전국 계곡과 해수욕장은 예나 지금이나 피서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71년) : "경기도 가평에 여학생 전용수영교실이 설치됐습니다."
각종 풍기문란 사고를 막기 위해 아예 여학생 전용 수영장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여름 농촌에서는 대학생들이 봉사활동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바쁜 농사일을 거드는가 하면 사라지는 전통을 되살리자는 계몽활동도 펼쳤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74년) : "강원도 정선군에 와서 이 지방의 전통민요인 정선아리랑의 보존과 보급을 위한 발표회를 가지는 등 색다른 봉사활동을 폈습니다."
얼음을 파는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뇌염모기 살충제를 비행기까지 동원해 뿌리던 시절.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태풍이 몰고오는 재해였습니다.
이재민을 돕기 위해 찾아온 봉사자들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여름철 풍경입니다.
KBS 뉴스 김학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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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60년대 그때 그시절 ‘여름나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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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7-17 21:51:26
- 수정2012-07-17 22:20:10
<앵커 멘트>
60년대나 70년대에 삼복 더위를 나는 모습은 어땠을까요?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가는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김학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50년대 서울의 최대 피서지는 한강입니다.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고 어른들은 배를 타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녹취> 박세군(73살) : "한강쪽에 상류쪽에 지금 팔당댐 있는데 거기가 피서지였어요. 그때 거길 갔었다니까. 거기 나무 막 우거져가지고..."
전국 계곡과 해수욕장은 예나 지금이나 피서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71년) : "경기도 가평에 여학생 전용수영교실이 설치됐습니다."
각종 풍기문란 사고를 막기 위해 아예 여학생 전용 수영장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여름 농촌에서는 대학생들이 봉사활동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바쁜 농사일을 거드는가 하면 사라지는 전통을 되살리자는 계몽활동도 펼쳤습니다.
<녹취> 대한뉴스(1974년) : "강원도 정선군에 와서 이 지방의 전통민요인 정선아리랑의 보존과 보급을 위한 발표회를 가지는 등 색다른 봉사활동을 폈습니다."
얼음을 파는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뇌염모기 살충제를 비행기까지 동원해 뿌리던 시절.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태풍이 몰고오는 재해였습니다.
이재민을 돕기 위해 찾아온 봉사자들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여름철 풍경입니다.
KBS 뉴스 김학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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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재 기자 curator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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