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눈처럼 시린 외로움…‘시스터’

입력 2012.08.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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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다.



흰 눈으로 덮인 알프스 자락의 리조트에서 관광객들의 물건을 도둑질해 먹고 사는 12세 소년.



옷과 스키, 고글 등을 훔친 뒤 이를 되팔아 번 돈으로 빵과 휴지, 우유 등을 산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훔친 물건들을 눈 속에 파묻기도 하고 아랫마을에 있는 집으로 가져와 광택을 낸 뒤 더 비싸게 팔기도 한다.



왜 도둑질을 하느냐는 물음에 소년은 부모님이 없다고,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 매일 출퇴근하지만, 소년은 스키를 탈 줄 모른다.



소년에게는 누나가 있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늘 돈을 뜯어가는 여자.



남자들의 차에 올라타 사라진 뒤 며칠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여자.



소년은 늘 누나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영화 ’시스터’는 알프스의 눈처럼 시린 외로움을 품고 사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도 일찍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 버린 소년.



소년의 곁에는 예쁘기만 하고 소년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는 누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날, 트리를 같이 만들자고 해 놓고선 남자친구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나가는 누나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은 서늘하다.



누나가 이 정도쯤 되면 욕하거나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텐데, 신기하게도 소년의 눈에는 여자에 대한 사랑과 갈구가 진하게 담겨 있다.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진실이 드러나고 관객은 소년과 여자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눈부시게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카메라는 소년의 눈빛을 고요하게 응시한다.



도둑질을 할 때의 불안한 눈빛, 엄마와 함께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눈빛, ’누나’를 바라볼 때 어떤 간절함을 담은 눈빛.



소년을 연기한 배우 케이시 모텟 클레인은 별 대사 없이 그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표현한다.



누나를 연기한 배우 레아 세이두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존재감을 드러내며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들판에서 나뒹굴며 싸운 뒤 집에 돌아와 더러워진 옷을 벗고 창가에 기대앉은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영상으로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인상적이다.



눈물 한 방울 없이도 관객의 가슴 속을 깊숙이 파고드는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연출은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스위스 출신의 여성 감독 위르실라 메이에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제62회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았으며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국내 처음 소개됐다.



8월 9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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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눈처럼 시린 외로움…‘시스터’
    • 입력 2012-08-01 10:57:39
    연합뉴스
한 소년이 있다.

흰 눈으로 덮인 알프스 자락의 리조트에서 관광객들의 물건을 도둑질해 먹고 사는 12세 소년.

옷과 스키, 고글 등을 훔친 뒤 이를 되팔아 번 돈으로 빵과 휴지, 우유 등을 산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훔친 물건들을 눈 속에 파묻기도 하고 아랫마을에 있는 집으로 가져와 광택을 낸 뒤 더 비싸게 팔기도 한다.

왜 도둑질을 하느냐는 물음에 소년은 부모님이 없다고,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스키장 시즌권을 끊어 매일 출퇴근하지만, 소년은 스키를 탈 줄 모른다.

소년에게는 누나가 있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늘 돈을 뜯어가는 여자.

남자들의 차에 올라타 사라진 뒤 며칠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여자.

소년은 늘 누나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영화 ’시스터’는 알프스의 눈처럼 시린 외로움을 품고 사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너무도 일찍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 버린 소년.

소년의 곁에는 예쁘기만 하고 소년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는 누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날, 트리를 같이 만들자고 해 놓고선 남자친구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나가는 누나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은 서늘하다.

누나가 이 정도쯤 되면 욕하거나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텐데, 신기하게도 소년의 눈에는 여자에 대한 사랑과 갈구가 진하게 담겨 있다.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진실이 드러나고 관객은 소년과 여자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눈부시게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카메라는 소년의 눈빛을 고요하게 응시한다.

도둑질을 할 때의 불안한 눈빛, 엄마와 함께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눈빛, ’누나’를 바라볼 때 어떤 간절함을 담은 눈빛.

소년을 연기한 배우 케이시 모텟 클레인은 별 대사 없이 그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표현한다.

누나를 연기한 배우 레아 세이두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존재감을 드러내며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다.

들판에서 나뒹굴며 싸운 뒤 집에 돌아와 더러워진 옷을 벗고 창가에 기대앉은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영상으로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인상적이다.

눈물 한 방울 없이도 관객의 가슴 속을 깊숙이 파고드는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연출은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스위스 출신의 여성 감독 위르실라 메이에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제62회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았으며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국내 처음 소개됐다.

8월 9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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