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범죄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
입력 2012.08.25 (10:53)
수정 2012.08.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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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회삿돈 3천 억 원을 횡령, 배임한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재벌 총수가 이렇게 실형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어서 해당 기업 뿐 아니라 재계 전체가 충격에 빠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판결 기준 등 핵심을 놓친 채 곁가지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독 재벌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의 모습, 최광호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최 기자, 김승연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그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예, 과거 재벌 총수 재판에는 늘상 ‘3,5 공식’이라는 말이 따라 다녔습니다.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의 준말로,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이 실형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였는데요.
그런데 이번엔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이 내려졌고, 언론들은 관행을 깬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4년에 벌금 50억 원을 선고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 중이던 김 회장을 법정 구속했습니다.
방송 3사는 모두 메인 뉴스에서 이를 첫 번째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8.16/이정훈 리포트)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화 김승연 회장이 오늘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녹취> SBS 8 뉴스 (8.16/ 이경원 리포트) : "거대 그룹의 총수는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판결입니다."
신문들도 일제히 이 소식을 1면에 전하며 중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녹취> 조선일보 (8.17) : "대기업 회장 선처 없다... 판결 대전환 김승연 한화 회장 ‘3024억 배임’ 징역 4년 법정구속"
<녹취> 중앙일보 (8.17) :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달라진 시대 상징적 판결"
언론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했던 건 그간의 관행을 깬 판결 내용입니다.
과거엔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대개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머물렀지만, 이번엔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이번 판결에서 재벌 총수들의 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작용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 (8.17 001면) :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그동안 재판을 받은 대기업 총수들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나는 게 공식이라면 공식이었다. 실형을 받더라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명분 아래 법정구속은 면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의 잣대가 엄격해진 것이다."
<녹취> 한겨레 (8.17 001면) : "김승연 회장 법정 구속 지난 2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수백억원대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데 이어 김 회장에게도 실형이 내려지면서, 법원이 재벌 총수의 비리에 대한 엄벌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질문> 이번 판결이 다소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판사들이 엄벌 의지만으로 판결을 내릴 수는 없지 않나요?
뭔가 기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답변>
예,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근거는 2009년에 새로 마련된 이 양형 기준이었습니다.
김승연 회장도 이 양형기준이 엄격히 적용되면서 징역형이 선고된 건데요.
언론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하거나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사안도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법원의 형량은 과거에도 이미 여러차례 지적돼 왔습니다.
<녹취> KBS 뉴스9 (2012.3.5./정인석) : "정치권의 이같은 공방에는 같은 사안에 대해 고무줄처럼 형량이 오락가락해온 법원의 판결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을 줄이기 위해 대법원은 지난 2009년, 형량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양형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습니다.
살인, 뇌물, 성범죄 등 20여 가지 범죄의 유형을 정해두고 어떤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형을 내릴지 정해놓은 것입니다.
<인터뷰> 임성근(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부장판사) : "법관 별로 또 지역 별로 형을 정하는데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관별, 지역별 편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구요, 두 번째는 국민의 건강한 상식. 맞는 양형을 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양형위원회가 설치된 것입니다."
이번에 김승연 회장의 실형이 나오게 된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예전에는 없던 이 양형 기준입니다.
횡령, 배임범죄의 양형 기준은 액수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300억 원 이상이면 최소 4년에서 11년의 징역형이 선고됩니다.
3년형 이상이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4년 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회장은 법정구속을 피할 수 없었던 겁니다.
새로운 양형기준이 적용돼 대기업총수가 구속된 건, 김승연 회장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이 총 211억 원의 횡령, 배임이 인정돼 4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습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원이 인정한 배임, 횡령 금액이 15배나 많은 김승연 회장이 이호진 회장보다 적은 형량을 받은 것은 따져볼 문제라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김 회장의 구속 자체에만 주목할 뿐, 양형이 적절했는지 등 정작 중요한 부분들의 검증에는 소홀한 모습을 였습니다.
<인터뷰> 김영희(변호사) : "사실 언론사들이 이런 기업 범죄에 관한 판결이 나왔을 때 막연히 엄벌인가 아니면 관대한 판결인가 쓸 게 아니고 양형기준을 찾아서 이것이 부합한 것인가 반드시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되는데 이번 언론의 태도는 법정 구속이라는 거에 너무 놀라서 아니면 그것에 너무 현혹이 되어서 실제로는 양형을 관대하게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모든 언론이 놓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질문> 언론이 이번 사건 보도에서 주목했던 게 또 있죠.
바로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바람 아니겠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양극화 해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 민주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언론은 경제 민주화 바람, 재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재판에 미친 영향에 집중하면서 핵심을 비켜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판결 직후,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는 기사는 대부분의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8.16/지영은) : "재벌 회장에 대한 법정 구속, 재계 전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재벌들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언론은 이번 판결의 배경에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 바람이 작용한 것 같다는 재계의 분석이 집중적으로 인용했습니다.
<녹취> 동아일보 (8.17 A03) : 재계 “유죄 책임져야 하지만 마녀사냥은 안돼”
이들은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라면서도 총수의 경제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내용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녹취> 경향신문 (8.17 003면) : "법원이 기업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은 최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이 과열되면서 재벌에 대한 압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경제지들은 사설을 통해 정치권과 국민 여론을 의식한 형량이 아닌지 우려를 전했습니다.
한국경제 (8.17 A35 오피니언) : "그룹경영은 종종 단기적 이익과 중장기적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결과적 손실과 의도된 이익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법원 판결도 정치나 시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전무죄는 근절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대기업 회장의 범죄는 곧, 엄벌이라는 것도 곤란하지 않겠는가."
김승연 회장의 이번 재판 결과에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 민주화 등 여론에 휩쓸린 판결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냐는 게 언론의 의견입니다.
<질문> 언론이 재벌 범죄 앞에서 판결이 엄정했는지 분석하기 보다는 경제적 파장이나 배경에 신경 썼다는 얘긴데요.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네, 일종의 학습 효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과거 법원이 비슷한 재판에서 국가적 경제 상황을 고려한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언론도 이를 동조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지난 2007년, 재판부는 정몽구 회장의 횡령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경제상황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달았습니다.
<녹취> SBS (2007. 9. 6/김수형 리포트) : "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 재판장도 국민이라며 국가경제를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녹취> 조선 (2007. 9.7 A01) : "재판부는 횡령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으나 “실형 선고로 한국 경제를 위기에 처하게 할 도박을 하기 어렵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08년 7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천 백 억원 대의 탈세와 배임을 인정 하면서도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천 백억 원을 선고했고 이 전 회장은 2009년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이른바 3,5공식에 의해 진행된다는 말도 이 무렵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판결들에 대해 외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대기업 봐주기를 꼬집었지만, 우리 언론은 이런 지적에 소홀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2007. 9.8 02면) : <월스트리트저널>“한국경제에 대한 정 회장의 가치를 거론하며 징역형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 것은 사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파이낸셜타임즈> “10억 달러 짜리 자유” “정 회장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이번 판결은 한국에서 유력한 세력인 동시에 논란의 대상인 재벌을 둘러싼 논란을 재연시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이 재벌 총수와 국가경제의 운명을 나란히 생각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채이배(연구원/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 "삼성의 특검 이후에 삼성 판결도 그렇고요. 현대차의 형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집행 유예가 선고되고 그 후에 사면되어서 재벌들에게는 형사적인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01:55:39결국은 재벌들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 의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막상 그렇다고 해서 재벌만으로 경제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사법정의를 더 바로 세워서 경제 정의를 더 세워가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 최 기자, 일단 법조계에서는 이런 비판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장치들을 조금씩 마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론의 상황은 어떤가요?
<답변>
구조적인 문제라서 쉽게 개선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법조계와 달리 언론으로선 재벌이 광고주라는 밀접한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인데요.
법조계의 변화에 발맞춰 재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을 기록, OECD 34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지난 5월, 현대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부패와 경제성장’보고서는 한국의 부패지수가 OECD 평균수준만 돼도 연평균 성장률이 0.6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국의 부패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매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녹취> 세계 (5.29 27면 오피니언) :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은 물론 지속적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정부는 국가 청렴도 제고를 위한 법제를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
하지만 재벌의 부패와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경쟁력 등을 이유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언론사의 수입 대부분이 대기업 광고에서 나오는 구조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그룹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해온 매체들에 두 달 동안 광고를 싣지 않았고 해당 언론사는 힘겨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녹취> MBC (2008.2.1/이승용 리포트) : "한겨레 신문이 삼성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자 삼성이 작년 11월부터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한겨레신문이 삼성 의혹을 적극 보도한 작년 11월부터 삼성은 한겨레신문에 일절 광고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IT 매체의 발달 등으로 신문 구독률 등이 낮아지는 최근 상황 속에, 언론사들은 광고 의존도를 낮추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최근 월간 <신문과 방송>의 조사에서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가장 크게 제한하는 요인으로 정치권력과 사주가 아닌 광고주를 1위로 꼽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광고와 보도의 분리 원칙을 확고히 해 언론사로서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동민(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편성 제작과 광고 영업의 분리, 이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이 돼야 하죠. 또 현실에서 그것이 잘 실천이 안 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못을 박아둠으로써 편성 제작 보도가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보도하고 제작하고 편성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요. 보도 편성이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전체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어 줘야 되죠."
언론은 늘상 약자의 편에 선다고 말합니다.
재벌이 7,80년대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휘둘리는 약자였던 시절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권력이 정치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적어도 언론이 무조건 편들어줘야 할 대상은 이들이 아닐 듯 합니다.
과거와 달라진 법원의 판결, 정치권에 불고 있는 경제 민주화 바람, 시대는 달라지고 있는데 언론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지난 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회삿돈 3천 억 원을 횡령, 배임한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재벌 총수가 이렇게 실형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어서 해당 기업 뿐 아니라 재계 전체가 충격에 빠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판결 기준 등 핵심을 놓친 채 곁가지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독 재벌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의 모습, 최광호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최 기자, 김승연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그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예, 과거 재벌 총수 재판에는 늘상 ‘3,5 공식’이라는 말이 따라 다녔습니다.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의 준말로,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이 실형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였는데요.
그런데 이번엔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이 내려졌고, 언론들은 관행을 깬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4년에 벌금 50억 원을 선고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 중이던 김 회장을 법정 구속했습니다.
방송 3사는 모두 메인 뉴스에서 이를 첫 번째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8.16/이정훈 리포트)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화 김승연 회장이 오늘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녹취> SBS 8 뉴스 (8.16/ 이경원 리포트) : "거대 그룹의 총수는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판결입니다."
신문들도 일제히 이 소식을 1면에 전하며 중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녹취> 조선일보 (8.17) : "대기업 회장 선처 없다... 판결 대전환 김승연 한화 회장 ‘3024억 배임’ 징역 4년 법정구속"
<녹취> 중앙일보 (8.17) :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달라진 시대 상징적 판결"
언론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했던 건 그간의 관행을 깬 판결 내용입니다.
과거엔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대개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머물렀지만, 이번엔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이번 판결에서 재벌 총수들의 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작용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 (8.17 001면) :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그동안 재판을 받은 대기업 총수들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나는 게 공식이라면 공식이었다. 실형을 받더라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명분 아래 법정구속은 면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의 잣대가 엄격해진 것이다."
<녹취> 한겨레 (8.17 001면) : "김승연 회장 법정 구속 지난 2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수백억원대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데 이어 김 회장에게도 실형이 내려지면서, 법원이 재벌 총수의 비리에 대한 엄벌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질문> 이번 판결이 다소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판사들이 엄벌 의지만으로 판결을 내릴 수는 없지 않나요?
뭔가 기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답변>
예,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근거는 2009년에 새로 마련된 이 양형 기준이었습니다.
김승연 회장도 이 양형기준이 엄격히 적용되면서 징역형이 선고된 건데요.
언론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하거나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사안도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법원의 형량은 과거에도 이미 여러차례 지적돼 왔습니다.
<녹취> KBS 뉴스9 (2012.3.5./정인석) : "정치권의 이같은 공방에는 같은 사안에 대해 고무줄처럼 형량이 오락가락해온 법원의 판결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을 줄이기 위해 대법원은 지난 2009년, 형량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양형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습니다.
살인, 뇌물, 성범죄 등 20여 가지 범죄의 유형을 정해두고 어떤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형을 내릴지 정해놓은 것입니다.
<인터뷰> 임성근(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부장판사) : "법관 별로 또 지역 별로 형을 정하는데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관별, 지역별 편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구요, 두 번째는 국민의 건강한 상식. 맞는 양형을 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양형위원회가 설치된 것입니다."
이번에 김승연 회장의 실형이 나오게 된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예전에는 없던 이 양형 기준입니다.
횡령, 배임범죄의 양형 기준은 액수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300억 원 이상이면 최소 4년에서 11년의 징역형이 선고됩니다.
3년형 이상이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4년 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회장은 법정구속을 피할 수 없었던 겁니다.
새로운 양형기준이 적용돼 대기업총수가 구속된 건, 김승연 회장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이 총 211억 원의 횡령, 배임이 인정돼 4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습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원이 인정한 배임, 횡령 금액이 15배나 많은 김승연 회장이 이호진 회장보다 적은 형량을 받은 것은 따져볼 문제라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김 회장의 구속 자체에만 주목할 뿐, 양형이 적절했는지 등 정작 중요한 부분들의 검증에는 소홀한 모습을 였습니다.
<인터뷰> 김영희(변호사) : "사실 언론사들이 이런 기업 범죄에 관한 판결이 나왔을 때 막연히 엄벌인가 아니면 관대한 판결인가 쓸 게 아니고 양형기준을 찾아서 이것이 부합한 것인가 반드시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되는데 이번 언론의 태도는 법정 구속이라는 거에 너무 놀라서 아니면 그것에 너무 현혹이 되어서 실제로는 양형을 관대하게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모든 언론이 놓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질문> 언론이 이번 사건 보도에서 주목했던 게 또 있죠.
바로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바람 아니겠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양극화 해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 민주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언론은 경제 민주화 바람, 재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재판에 미친 영향에 집중하면서 핵심을 비켜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판결 직후,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는 기사는 대부분의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8.16/지영은) : "재벌 회장에 대한 법정 구속, 재계 전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재벌들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언론은 이번 판결의 배경에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 바람이 작용한 것 같다는 재계의 분석이 집중적으로 인용했습니다.
<녹취> 동아일보 (8.17 A03) : 재계 “유죄 책임져야 하지만 마녀사냥은 안돼”
이들은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라면서도 총수의 경제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내용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녹취> 경향신문 (8.17 003면) : "법원이 기업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은 최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이 과열되면서 재벌에 대한 압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경제지들은 사설을 통해 정치권과 국민 여론을 의식한 형량이 아닌지 우려를 전했습니다.
김승연 회장의 이번 재판 결과에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 민주화 등 여론에 휩쓸린 판결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냐는 게 언론의 의견입니다.
<질문> 언론이 재벌 범죄 앞에서 판결이 엄정했는지 분석하기 보다는 경제적 파장이나 배경에 신경 썼다는 얘긴데요.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네, 일종의 학습 효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과거 법원이 비슷한 재판에서 국가적 경제 상황을 고려한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언론도 이를 동조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지난 2007년, 재판부는 정몽구 회장의 횡령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경제상황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달았습니다.
<녹취> SBS (2007. 9. 6/김수형 리포트) : "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 재판장도 국민이라며 국가경제를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녹취> 조선 (2007. 9.7 A01) : "재판부는 횡령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으나 “실형 선고로 한국 경제를 위기에 처하게 할 도박을 하기 어렵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08년 7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천 백 억원 대의 탈세와 배임을 인정 하면서도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천 백억 원을 선고했고 이 전 회장은 2009년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이른바 3,5공식에 의해 진행된다는 말도 이 무렵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판결들에 대해 외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대기업 봐주기를 꼬집었지만, 우리 언론은 이런 지적에 소홀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2007. 9.8 02면) : <월스트리트저널>“한국경제에 대한 정 회장의 가치를 거론하며 징역형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 것은 사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파이낸셜타임즈> “10억 달러 짜리 자유” “정 회장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이번 판결은 한국에서 유력한 세력인 동시에 논란의 대상인 재벌을 둘러싼 논란을 재연시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이 재벌 총수와 국가경제의 운명을 나란히 생각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채이배(연구원/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 "삼성의 특검 이후에 삼성 판결도 그렇고요. 현대차의 형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집행 유예가 선고되고 그 후에 사면되어서 재벌들에게는 형사적인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01:55:39결국은 재벌들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 의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막상 그렇다고 해서 재벌만으로 경제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사법정의를 더 바로 세워서 경제 정의를 더 세워가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 최 기자, 일단 법조계에서는 이런 비판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장치들을 조금씩 마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론의 상황은 어떤가요?
<답변>
구조적인 문제라서 쉽게 개선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법조계와 달리 언론으로선 재벌이 광고주라는 밀접한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인데요.
법조계의 변화에 발맞춰 재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을 기록, OECD 34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지난 5월, 현대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부패와 경제성장’보고서는 한국의 부패지수가 OECD 평균수준만 돼도 연평균 성장률이 0.6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국의 부패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매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녹취> 세계 (5.29 27면 오피니언) :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은 물론 지속적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정부는 국가 청렴도 제고를 위한 법제를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
하지만 재벌의 부패와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경쟁력 등을 이유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언론사의 수입 대부분이 대기업 광고에서 나오는 구조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그룹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해온 매체들에 두 달 동안 광고를 싣지 않았고 해당 언론사는 힘겨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녹취> MBC (2008.2.1/이승용 리포트) : "한겨레 신문이 삼성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자 삼성이 작년 11월부터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한겨레신문이 삼성 의혹을 적극 보도한 작년 11월부터 삼성은 한겨레신문에 일절 광고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IT 매체의 발달 등으로 신문 구독률 등이 낮아지는 최근 상황 속에, 언론사들은 광고 의존도를 낮추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최근 월간 <신문과 방송>의 조사에서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가장 크게 제한하는 요인으로 정치권력과 사주가 아닌 광고주를 1위로 꼽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광고와 보도의 분리 원칙을 확고히 해 언론사로서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동민(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편성 제작과 광고 영업의 분리, 이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이 돼야 하죠. 또 현실에서 그것이 잘 실천이 안 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못을 박아둠으로써 편성 제작 보도가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보도하고 제작하고 편성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요. 보도 편성이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전체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어 줘야 되죠."
언론은 늘상 약자의 편에 선다고 말합니다.
재벌이 7,80년대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휘둘리는 약자였던 시절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권력이 정치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적어도 언론이 무조건 편들어줘야 할 대상은 이들이 아닐 듯 합니다.
과거와 달라진 법원의 판결, 정치권에 불고 있는 경제 민주화 바람, 시대는 달라지고 있는데 언론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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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범죄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
-
- 입력 2012-08-25 10:53:55
- 수정2012-08-25 18:43:31

<앵커 멘트>
지난 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회삿돈 3천 억 원을 횡령, 배임한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재벌 총수가 이렇게 실형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어서 해당 기업 뿐 아니라 재계 전체가 충격에 빠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판결 기준 등 핵심을 놓친 채 곁가지에만 주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독 재벌 앞에서 작아지는 언론의 모습, 최광호 기자와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최 기자, 김승연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그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예, 과거 재벌 총수 재판에는 늘상 ‘3,5 공식’이라는 말이 따라 다녔습니다.
3년 징역, 5년 집행유예의 준말로,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이 실형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였는데요.
그런데 이번엔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이 내려졌고, 언론들은 관행을 깬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게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4년에 벌금 50억 원을 선고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 중이던 김 회장을 법정 구속했습니다.
방송 3사는 모두 메인 뉴스에서 이를 첫 번째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 (8.16/이정훈 리포트)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화 김승연 회장이 오늘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녹취> SBS 8 뉴스 (8.16/ 이경원 리포트) : "거대 그룹의 총수는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판결입니다."
신문들도 일제히 이 소식을 1면에 전하며 중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녹취> 조선일보 (8.17) : "대기업 회장 선처 없다... 판결 대전환 김승연 한화 회장 ‘3024억 배임’ 징역 4년 법정구속"
<녹취> 중앙일보 (8.17) :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달라진 시대 상징적 판결"
언론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했던 건 그간의 관행을 깬 판결 내용입니다.
과거엔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대개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머물렀지만, 이번엔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이번 판결에서 재벌 총수들의 범죄를 엄벌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작용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 (8.17 001면) :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그동안 재판을 받은 대기업 총수들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풀려나는 게 공식이라면 공식이었다. 실형을 받더라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명분 아래 법정구속은 면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의 잣대가 엄격해진 것이다."
<녹취> 한겨레 (8.17 001면) : "김승연 회장 법정 구속 지난 2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수백억원대 횡령, 배임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은 데 이어 김 회장에게도 실형이 내려지면서, 법원이 재벌 총수의 비리에 대한 엄벌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질문> 이번 판결이 다소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판사들이 엄벌 의지만으로 판결을 내릴 수는 없지 않나요?
뭔가 기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답변>
예,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근거는 2009년에 새로 마련된 이 양형 기준이었습니다.
김승연 회장도 이 양형기준이 엄격히 적용되면서 징역형이 선고된 건데요.
언론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하거나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사안도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법원의 형량은 과거에도 이미 여러차례 지적돼 왔습니다.
<녹취> KBS 뉴스9 (2012.3.5./정인석) : "정치권의 이같은 공방에는 같은 사안에 대해 고무줄처럼 형량이 오락가락해온 법원의 판결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을 줄이기 위해 대법원은 지난 2009년, 형량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양형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습니다.
살인, 뇌물, 성범죄 등 20여 가지 범죄의 유형을 정해두고 어떤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의 형을 내릴지 정해놓은 것입니다.
<인터뷰> 임성근(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부장판사) : "법관 별로 또 지역 별로 형을 정하는데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관별, 지역별 편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구요, 두 번째는 국민의 건강한 상식. 맞는 양형을 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양형위원회가 설치된 것입니다."
이번에 김승연 회장의 실형이 나오게 된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예전에는 없던 이 양형 기준입니다.
횡령, 배임범죄의 양형 기준은 액수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300억 원 이상이면 최소 4년에서 11년의 징역형이 선고됩니다.
3년형 이상이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4년 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회장은 법정구속을 피할 수 없었던 겁니다.
새로운 양형기준이 적용돼 대기업총수가 구속된 건, 김승연 회장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이 총 211억 원의 횡령, 배임이 인정돼 4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됐습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원이 인정한 배임, 횡령 금액이 15배나 많은 김승연 회장이 이호진 회장보다 적은 형량을 받은 것은 따져볼 문제라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김 회장의 구속 자체에만 주목할 뿐, 양형이 적절했는지 등 정작 중요한 부분들의 검증에는 소홀한 모습을 였습니다.
<인터뷰> 김영희(변호사) : "사실 언론사들이 이런 기업 범죄에 관한 판결이 나왔을 때 막연히 엄벌인가 아니면 관대한 판결인가 쓸 게 아니고 양형기준을 찾아서 이것이 부합한 것인가 반드시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되는데 이번 언론의 태도는 법정 구속이라는 거에 너무 놀라서 아니면 그것에 너무 현혹이 되어서 실제로는 양형을 관대하게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모든 언론이 놓쳤다고 보고 있습니다."
<질문> 언론이 이번 사건 보도에서 주목했던 게 또 있죠.
바로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바람 아니겠습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양극화 해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 민주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언론은 경제 민주화 바람, 재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재판에 미친 영향에 집중하면서 핵심을 비켜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판결 직후, 재계가 충격에 빠졌다는 기사는 대부분의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됐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 (8.16/지영은) : "재벌 회장에 대한 법정 구속, 재계 전체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재벌들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언론은 이번 판결의 배경에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이른바 ‘경제 민주화’ 바람이 작용한 것 같다는 재계의 분석이 집중적으로 인용했습니다.
<녹취> 동아일보 (8.17 A03) : 재계 “유죄 책임져야 하지만 마녀사냥은 안돼”
이들은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라면서도 총수의 경제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내용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녹취> 경향신문 (8.17 003면) : "법원이 기업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것은 최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이 과열되면서 재벌에 대한 압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경제지들은 사설을 통해 정치권과 국민 여론을 의식한 형량이 아닌지 우려를 전했습니다.
한국경제 (8.17 A35 오피니언) : "그룹경영은 종종 단기적 이익과 중장기적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결과적 손실과 의도된 이익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법원 판결도 정치나 시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유전무죄는 근절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대기업 회장의 범죄는 곧, 엄벌이라는 것도 곤란하지 않겠는가."
김승연 회장의 이번 재판 결과에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 민주화 등 여론에 휩쓸린 판결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냐는 게 언론의 의견입니다.
<질문> 언론이 재벌 범죄 앞에서 판결이 엄정했는지 분석하기 보다는 경제적 파장이나 배경에 신경 썼다는 얘긴데요.
이유가 있습니까?
<답변>
네, 일종의 학습 효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과거 법원이 비슷한 재판에서 국가적 경제 상황을 고려한 판결을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언론도 이를 동조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뤘습니다.
지난 2007년, 재판부는 정몽구 회장의 횡령죄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경제상황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달았습니다.
<녹취> SBS (2007. 9. 6/김수형 리포트) : "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 재판장도 국민이라며 국가경제를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녹취> 조선 (2007. 9.7 A01) : "재판부는 횡령 혐의 등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으나 “실형 선고로 한국 경제를 위기에 처하게 할 도박을 하기 어렵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08년 7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천 백 억원 대의 탈세와 배임을 인정 하면서도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천 백억 원을 선고했고 이 전 회장은 2009년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이른바 3,5공식에 의해 진행된다는 말도 이 무렵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판결들에 대해 외신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대기업 봐주기를 꼬집었지만, 우리 언론은 이런 지적에 소홀했습니다.
<녹취> 한겨레 (2007. 9.8 02면) : <월스트리트저널>“한국경제에 대한 정 회장의 가치를 거론하며 징역형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 것은 사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파이낸셜타임즈> “10억 달러 짜리 자유” “정 회장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이번 판결은 한국에서 유력한 세력인 동시에 논란의 대상인 재벌을 둘러싼 논란을 재연시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이 재벌 총수와 국가경제의 운명을 나란히 생각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채이배(연구원/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 "삼성의 특검 이후에 삼성 판결도 그렇고요. 현대차의 형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집행 유예가 선고되고 그 후에 사면되어서 재벌들에게는 형사적인 처벌이 내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01:55:39결국은 재벌들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 의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막상 그렇다고 해서 재벌만으로 경제가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은 사법정의를 더 바로 세워서 경제 정의를 더 세워가는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 최 기자, 일단 법조계에서는 이런 비판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장치들을 조금씩 마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론의 상황은 어떤가요?
<답변>
구조적인 문제라서 쉽게 개선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법조계와 달리 언론으로선 재벌이 광고주라는 밀접한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인데요.
법조계의 변화에 발맞춰 재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을 기록, OECD 34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지난 5월, 현대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부패와 경제성장’보고서는 한국의 부패지수가 OECD 평균수준만 돼도 연평균 성장률이 0.6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국의 부패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매체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녹취> 세계 (5.29 27면 오피니언) :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선진국 진입은 물론 지속적 성장을 이룰 수 없다. 정부는 국가 청렴도 제고를 위한 법제를 강화해야 한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야 한다. "
하지만 재벌의 부패와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경쟁력 등을 이유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언론사의 수입 대부분이 대기업 광고에서 나오는 구조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 당시, 삼성그룹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해온 매체들에 두 달 동안 광고를 싣지 않았고 해당 언론사는 힘겨운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녹취> MBC (2008.2.1/이승용 리포트) : "한겨레 신문이 삼성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자 삼성이 작년 11월부터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한겨레신문이 삼성 의혹을 적극 보도한 작년 11월부터 삼성은 한겨레신문에 일절 광고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IT 매체의 발달 등으로 신문 구독률 등이 낮아지는 최근 상황 속에, 언론사들은 광고 의존도를 낮추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최근 월간 <신문과 방송>의 조사에서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가장 크게 제한하는 요인으로 정치권력과 사주가 아닌 광고주를 1위로 꼽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광고와 보도의 분리 원칙을 확고히 해 언론사로서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동민(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편성 제작과 광고 영업의 분리, 이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이 돼야 하죠. 또 현실에서 그것이 잘 실천이 안 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못을 박아둠으로써 편성 제작 보도가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보도하고 제작하고 편성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요. 보도 편성이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전체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어 줘야 되죠."
언론은 늘상 약자의 편에 선다고 말합니다.
재벌이 7,80년대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휘둘리는 약자였던 시절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권력이 정치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적어도 언론이 무조건 편들어줘야 할 대상은 이들이 아닐 듯 합니다.
과거와 달라진 법원의 판결, 정치권에 불고 있는 경제 민주화 바람, 시대는 달라지고 있는데 언론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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