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만행에 강제징용 한국인 ‘희생 현장’
입력 2012.09.10 (07:22)
수정 2012.09.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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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당시 남태평양 섬에 끌려와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전란 속에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의 만행도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사이판에서 은준수 기자가 그 흔적을 추적했습니다.
<리포트>
1944년 6월, 미군은 일본군 3만 명이 주둔하던 사이판을 공습합니다.
격렬한 교전에 전투기와 함선 수백 대가 파괴됩니다.
사이판 서쪽 바닷속.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지났지만 치열했던 전투 흔적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수심 12미터, 미군 폭격기 'B-29'의 엔진과 날개가 조각난 채 널려있습니다.
근처에는 미군 어뢰에 맞아 반파된 일본군의 군수품 수송선 '쇼안 마루'호가 있습니다.
일본군에 강제 배속된 한국인들이 이 배에 탔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황양택(교민) : "징용으로 끌려왔던 한국사람들이 수송선의 노무자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함락 직전 일본군은 미군에 잡히면 사살된다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으라고 협박했습니다.
<인터뷰>박인환(위원장) : "잡히면 다 죽는다. 나를 따르라. 그렇게 끌고 갔지요. 이렇게 해서 집단 자살을 했던 겁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을 쏘기도했다고 합니다."
사이판 등 남태평양 섬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은 5천 여명.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누군가의 가족이었습니다.
<인터뷰>박동현(유족) : "할머니가 계셨는데 온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매일같이 통곡을 하셨어요. 아들 생각하면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와 일본이 일으킨 전쟁터에서 희생된 한국인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이판에서 KBS 뉴스 은준수입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남태평양 섬에 끌려와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전란 속에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의 만행도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사이판에서 은준수 기자가 그 흔적을 추적했습니다.
<리포트>
1944년 6월, 미군은 일본군 3만 명이 주둔하던 사이판을 공습합니다.
격렬한 교전에 전투기와 함선 수백 대가 파괴됩니다.
사이판 서쪽 바닷속.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지났지만 치열했던 전투 흔적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수심 12미터, 미군 폭격기 'B-29'의 엔진과 날개가 조각난 채 널려있습니다.
근처에는 미군 어뢰에 맞아 반파된 일본군의 군수품 수송선 '쇼안 마루'호가 있습니다.
일본군에 강제 배속된 한국인들이 이 배에 탔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황양택(교민) : "징용으로 끌려왔던 한국사람들이 수송선의 노무자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함락 직전 일본군은 미군에 잡히면 사살된다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으라고 협박했습니다.
<인터뷰>박인환(위원장) : "잡히면 다 죽는다. 나를 따르라. 그렇게 끌고 갔지요. 이렇게 해서 집단 자살을 했던 겁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을 쏘기도했다고 합니다."
사이판 등 남태평양 섬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은 5천 여명.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누군가의 가족이었습니다.
<인터뷰>박동현(유족) : "할머니가 계셨는데 온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매일같이 통곡을 하셨어요. 아들 생각하면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와 일본이 일으킨 전쟁터에서 희생된 한국인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이판에서 KBS 뉴스 은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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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만행에 강제징용 한국인 ‘희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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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9-10 07:22:15
- 수정2012-09-10 17:32:34
![](/data/news/2012/09/10/2532950_240.jpg)
<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당시 남태평양 섬에 끌려와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전란 속에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의 만행도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사이판에서 은준수 기자가 그 흔적을 추적했습니다.
<리포트>
1944년 6월, 미군은 일본군 3만 명이 주둔하던 사이판을 공습합니다.
격렬한 교전에 전투기와 함선 수백 대가 파괴됩니다.
사이판 서쪽 바닷속.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지났지만 치열했던 전투 흔적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수심 12미터, 미군 폭격기 'B-29'의 엔진과 날개가 조각난 채 널려있습니다.
근처에는 미군 어뢰에 맞아 반파된 일본군의 군수품 수송선 '쇼안 마루'호가 있습니다.
일본군에 강제 배속된 한국인들이 이 배에 탔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황양택(교민) : "징용으로 끌려왔던 한국사람들이 수송선의 노무자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함락 직전 일본군은 미군에 잡히면 사살된다며 절벽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으라고 협박했습니다.
<인터뷰>박인환(위원장) : "잡히면 다 죽는다. 나를 따르라. 그렇게 끌고 갔지요. 이렇게 해서 집단 자살을 했던 겁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총을 쏘기도했다고 합니다."
사이판 등 남태평양 섬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은 5천 여명.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누군가의 가족이었습니다.
<인터뷰>박동현(유족) : "할머니가 계셨는데 온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매일같이 통곡을 하셨어요. 아들 생각하면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와 일본이 일으킨 전쟁터에서 희생된 한국인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이판에서 KBS 뉴스 은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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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준수 기자 eun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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