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진단] 두번 우는 피해자들…성폭력법 개정해야

입력 2012.11.1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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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달 초, 성폭행을 당한 6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사건처리 과정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이 겪는 2차 고통이 심각합니다.

먼저 곽선정 기자가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몸을 락스에 담궈 닦고 싶다', '피해자가 죄인인양 힘들었다'

지난 달 초, 투신 자살한 60살 서모 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분입니다.

석달 전, 입원해있던 병원의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서씨.

3차례나 재조사를 받았고, 현장 검증도 이뤄졌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의지가 약해 성폭행으로 보기엔 미심쩍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 씨는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않았고, 비명을 지르다 가해자가 입을 막아 의치가 부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법원이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며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녹취>유족:"(고인이) 새벽에 일어나서 막 돌아다녔어요. 서너시간. 울화가 치밀고 너무 억울하니까"

지난해 말, 대학 동기에게 성폭행을 당한 장모 씨, 매일 서울고등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 상대가 오히려 무죄를 주장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반성하고 있다는 말에 합의서를 써준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후 상대는 장 씨를 '꽃뱀'으로 몰아부치는 등 태도를 바꿨고, 충격을 받은 장 씨는 6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녹취>장OO:"수면제 없으면 밤새도록 제가 그 일을 계속해서 악몽으로 꿔요,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지. 나를 아예 죽이고 가지."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너그러운 법 적용에 적지않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앵커 멘트>

피해자들이 두번, 세번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이유,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성폭행 건수는 지난 2002년 10만여건에서 올해 21만여 건으로 배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성폭행 범죄에 대한 기소율은 지난 2002년 70%에서 올해 48%로 오히려 크게 떨어졌습니다.

전체 성폭행 사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1%를 겨우 넘는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성폭행 관련 법안에 문제가 있단 얘기겠죠,

계속해서 손은혜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8월, 서울 중곡동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

<녹취>"모자 벗겨! 얼굴 공개해라!"

경찰 조사 결과 서씨는 범행 당시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법에는 폭행 혹은 협박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에만 강간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저항해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인터뷰> 김재련(변호사):"거부의사를 표현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니라 원치않는 성적 접촉에 대해 얼마나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느냐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폭행이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를 악용해 가해자들이 피해자들로부터 합의서를 받아낸 뒤, 상황이 유리하게 바뀐 후에는 말을 바꾸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미순(천주교 성폭력 상담소장):"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누구나 신고할 수 있잖아요.부끄러워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성폭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은 친고죄 조항이 아예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야 친고죄 폐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손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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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중진단] 두번 우는 피해자들…성폭력법 개정해야
    • 입력 2012-11-10 21: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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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달 초, 성폭행을 당한 6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사건처리 과정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이 겪는 2차 고통이 심각합니다. 먼저 곽선정 기자가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몸을 락스에 담궈 닦고 싶다', '피해자가 죄인인양 힘들었다' 지난 달 초, 투신 자살한 60살 서모 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분입니다. 석달 전, 입원해있던 병원의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서씨. 3차례나 재조사를 받았고, 현장 검증도 이뤄졌습니다. 피해자의 저항 의지가 약해 성폭행으로 보기엔 미심쩍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 씨는 팔과 다리가 자유롭지 않았고, 비명을 지르다 가해자가 입을 막아 의치가 부러지기까지 했습니다. 법원이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며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녹취>유족:"(고인이) 새벽에 일어나서 막 돌아다녔어요. 서너시간. 울화가 치밀고 너무 억울하니까" 지난해 말, 대학 동기에게 성폭행을 당한 장모 씨, 매일 서울고등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 상대가 오히려 무죄를 주장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반성하고 있다는 말에 합의서를 써준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후 상대는 장 씨를 '꽃뱀'으로 몰아부치는 등 태도를 바꿨고, 충격을 받은 장 씨는 6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녹취>장OO:"수면제 없으면 밤새도록 제가 그 일을 계속해서 악몽으로 꿔요,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지. 나를 아예 죽이고 가지."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너그러운 법 적용에 적지않은 성폭행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앵커 멘트> 피해자들이 두번, 세번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이유,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성폭행 건수는 지난 2002년 10만여건에서 올해 21만여 건으로 배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성폭행 범죄에 대한 기소율은 지난 2002년 70%에서 올해 48%로 오히려 크게 떨어졌습니다. 전체 성폭행 사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것도 1%를 겨우 넘는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성폭행 관련 법안에 문제가 있단 얘기겠죠, 계속해서 손은혜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8월, 서울 중곡동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서진환. <녹취>"모자 벗겨! 얼굴 공개해라!" 경찰 조사 결과 서씨는 범행 당시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법에는 폭행 혹은 협박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에만 강간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저항해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겁니다. <인터뷰> 김재련(변호사):"거부의사를 표현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니라 원치않는 성적 접촉에 대해 얼마나 저항을 적극적으로 했느냐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폭행이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를 악용해 가해자들이 피해자들로부터 합의서를 받아낸 뒤, 상황이 유리하게 바뀐 후에는 말을 바꾸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미순(천주교 성폭력 상담소장):"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누구나 신고할 수 있잖아요.부끄러워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성폭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독일과 프랑스, 미국 등은 친고죄 조항이 아예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야 친고죄 폐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KBS뉴스 손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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