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가 웁니다

입력 2012.11.18 (11:27) 수정 2012.11.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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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종일 잠을 자는 동물,... 바로 인형같은 생김새로 사랑받고 있는 코알라입니다. 호주에서는 캥거루와 함께 이 코알라가 국가 상징 동물이기도 한데요, 최근 이 코알라 개체수가 급격히 줄면서 멸종 위기로까지 내몰리자, 뒤늦게나마 보호대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위기의 코알라, 범기영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느긋한 한낮 식사를 방해받은 코알라 '진저'는 사육사를 피해 고집스럽게 나뭇가지 위로 기어오릅니다. 실랑이 끝에 내려온 진저가 할 일은 관람객들과 사진 찍기. 코알라를 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곳은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안으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코알라를 안고 행복해하는 어린이들에게 코알라 없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상해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루시 워스엔숀: (코알라가 없다면 어떻겠어요?) “끔찍한데요. 그러면 캥거루 같은 큰 동물만 있다는 거잖아요. 아뇨, 그럴 수는 없어요.”

<인터뷰>숀: “만일 (코알라가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제게 일어난 가장 나쁜 일일 거예요. 끔찍해요.”

하지만 코알라의 위기는 이미 현실입니다.

호주 골드코스트의 한 동물원에서 기르고 있는 코알라입니다. 이 동물원에는 50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요. 밖에서는 멸종 위기종입니다.

야생 코알라 개체 수는 기록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 공식 통계에서도 지난 1990년부터 20년 사이에 각 주별로 적게는 7%, 많게는 43%까지 줄었습니다. 개체수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른 두 주에서만 20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준 셈입니다. 급기야 호주 정부는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즈 코알라들을 멸종 위기 등급 가운데 하나인 '취약종'으로 지정했습니다. 지금 속도로 계속 감소한다면 앞으로 15년 안에 해당 지역에서 코알라가 절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름이 뭐죠?) “앤디에요.” (안녕, 앤디.)

호주에서만 사는 초식동물 코알라는 먹는 시간을 빼곤 거의 종일, 하루 20시간까지 잡니다. 신선한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데다 영양분도 많지 않아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차라리 자는 겁니다. 600종이 넘는 유칼립투스 중에서도 40여 종만 골라먹는 지독한 편식가이기도 합니다. 머물던 나무에서 입맛에 맞는 잎을 다 먹고 나면 가까운 나무로 옮겨가면서 일정한 서식 범위를 유지하며 삽니다.

<인터뷰>에이미(코알라 사육사): “코알라들은 점프도 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야생에서는 나무에서 기어내려온 다음에 다른 나무로 가서 짝짓기 상대나 먹이를 찾기도 합니다.”

코알라가 멸종 위기까지 몰린 건 바로 이런 습성 때문입니다. 코알라는 호주에서도 동남쪽에 있는 유칼립투스 숲에만 분포합니다. 문제는 호주 동남부가 주요 대도시가 밀집한, 인간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는 데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호주에 정착한 뒤 200년 동안 유칼립투스 숲은 통계에 따라 절반에서 많게는 80%까지 잘려나갔습니다. 인간과 코알라. 영역 다툼의 승자가 누구일지는 자명합니다.

동물원 코알라가 병원에 들렀습니다. 짝짓기 경쟁 과정에서 오른팔을 물려 다쳤고 깁스를 한동안 해야 했지만 이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야생 코알라들의 삶은 위험 투성이입니다. 행동이 느릿하고 멀리 이동하지 않는 코알라는 애완견에 물리는가 하면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이기도 합니다.산불이라도 나면 대규모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야생 코알라인가요?) “네, 야생입니다.”

병원 신세를 지는 야생 코알라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이 병원에서만 야생 코알라 300여 마리가 치료받았습니다. 수의사는 5년 전만 해도 병원에 오는 야생 코알라는 1년에 50마리를 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서식지 감소 추세가 우려된다는 겁니다.

<인터뷰>페트리샤 스위프트(수의사): (사고나 질병 중 어떤 원인이 더 많습니까?) “반반으로 보시면 됩니다. 질병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그것도 사회적 압박 때문입니다. 코알라들이 점점 더 좁은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거든요.”

학계에서도 녹지를 적정 수준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야생 동물 멸종은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인터뷰>이안 퍼거슨(멜버른대학교 산림학 교수): “도시개발 자체를 중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숲을 활용할 때와 비슷한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개발할 때 주변에 코알라의 먹이가 되는 녹지를 남겨두는 식으로 말입니다.”

'코알라에게 좋은 개발이 인간에게도 유익하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개발 방식을 바뀌게 했습니다. 한적한 택지 개발 현장, 집과 집 사이에 담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코알라가 이동하는 데 장애물을 만들지 말자는 뜻입니다. 지형을 크게 바꾸지 말라, 코알라를 해칠 수 있으니 개나 고양이를 기르지 말라. 이렇게 갓 시작되는 실험은 규제 투성이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자는 목소리는 점차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마틴(건축가): “집은 지으려면 숲에서 1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야생에 있던 나무와 같은 종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야생 동물들이 정원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코알라와 직접 연관된 일자리만 해도 만 개 안팎, 관광 수입은 매년 수십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 호주 정부도 코알라를 지켜가려는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코알라비치처럼 개발 방식 규제를 통해 서식지 면적을 늘리거나, 한발 더 나가 서식지를 연결하는 일종의 녹색 벨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제인 로프트하우스(트위드 시 공무원): “다른 지역에서는 그 곳에 서식하는 다른 동물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꼭 코알라일 필요는 없습니다. 코알라비치 방식은 다른 개발지에도 좋은 선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코알라 보호 법안을 만들도록
정치권을 압박하고 기업에 대책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25년째 코알라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른바 '코알라 우먼'..그녀에게 왜 하필 코알라냐, 왜 지켜야 하느냐 물었습니다.

<인터뷰>데보라 타바트(코알라재단 대표): “코알라는 누구도 해치지 않습니다. 곡식을 먹어치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무에 앉아만 있어도 아름답죠. 코알라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린 아무 것도 지킬 수 없을 겁니다.”

유럽인들이 신세계에 당도하기 전, 이 땅의 주인이었던 코알라. 이 사랑스러운 동물의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까요? 답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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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알라가 웁니다
    • 입력 2012-11-18 11:27:00
    • 수정2012-11-18 12:00:2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종일 잠을 자는 동물,... 바로 인형같은 생김새로 사랑받고 있는 코알라입니다. 호주에서는 캥거루와 함께 이 코알라가 국가 상징 동물이기도 한데요, 최근 이 코알라 개체수가 급격히 줄면서 멸종 위기로까지 내몰리자, 뒤늦게나마 보호대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위기의 코알라, 범기영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느긋한 한낮 식사를 방해받은 코알라 '진저'는 사육사를 피해 고집스럽게 나뭇가지 위로 기어오릅니다. 실랑이 끝에 내려온 진저가 할 일은 관람객들과 사진 찍기. 코알라를 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곳은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안으세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코알라를 안고 행복해하는 어린이들에게 코알라 없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상해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루시 워스엔숀: (코알라가 없다면 어떻겠어요?) “끔찍한데요. 그러면 캥거루 같은 큰 동물만 있다는 거잖아요. 아뇨, 그럴 수는 없어요.” <인터뷰>숀: “만일 (코알라가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제게 일어난 가장 나쁜 일일 거예요. 끔찍해요.” 하지만 코알라의 위기는 이미 현실입니다. 호주 골드코스트의 한 동물원에서 기르고 있는 코알라입니다. 이 동물원에는 50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요. 밖에서는 멸종 위기종입니다. 야생 코알라 개체 수는 기록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 공식 통계에서도 지난 1990년부터 20년 사이에 각 주별로 적게는 7%, 많게는 43%까지 줄었습니다. 개체수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른 두 주에서만 20년 사이에 절반 가까이 준 셈입니다. 급기야 호주 정부는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즈 코알라들을 멸종 위기 등급 가운데 하나인 '취약종'으로 지정했습니다. 지금 속도로 계속 감소한다면 앞으로 15년 안에 해당 지역에서 코알라가 절멸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름이 뭐죠?) “앤디에요.” (안녕, 앤디.) 호주에서만 사는 초식동물 코알라는 먹는 시간을 빼곤 거의 종일, 하루 20시간까지 잡니다. 신선한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데다 영양분도 많지 않아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차라리 자는 겁니다. 600종이 넘는 유칼립투스 중에서도 40여 종만 골라먹는 지독한 편식가이기도 합니다. 머물던 나무에서 입맛에 맞는 잎을 다 먹고 나면 가까운 나무로 옮겨가면서 일정한 서식 범위를 유지하며 삽니다. <인터뷰>에이미(코알라 사육사): “코알라들은 점프도 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야생에서는 나무에서 기어내려온 다음에 다른 나무로 가서 짝짓기 상대나 먹이를 찾기도 합니다.” 코알라가 멸종 위기까지 몰린 건 바로 이런 습성 때문입니다. 코알라는 호주에서도 동남쪽에 있는 유칼립투스 숲에만 분포합니다. 문제는 호주 동남부가 주요 대도시가 밀집한, 인간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는 데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호주에 정착한 뒤 200년 동안 유칼립투스 숲은 통계에 따라 절반에서 많게는 80%까지 잘려나갔습니다. 인간과 코알라. 영역 다툼의 승자가 누구일지는 자명합니다. 동물원 코알라가 병원에 들렀습니다. 짝짓기 경쟁 과정에서 오른팔을 물려 다쳤고 깁스를 한동안 해야 했지만 이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야생 코알라들의 삶은 위험 투성이입니다. 행동이 느릿하고 멀리 이동하지 않는 코알라는 애완견에 물리는가 하면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이기도 합니다.산불이라도 나면 대규모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야생 코알라인가요?) “네, 야생입니다.” 병원 신세를 지는 야생 코알라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이 병원에서만 야생 코알라 300여 마리가 치료받았습니다. 수의사는 5년 전만 해도 병원에 오는 야생 코알라는 1년에 50마리를 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서식지 감소 추세가 우려된다는 겁니다. <인터뷰>페트리샤 스위프트(수의사): (사고나 질병 중 어떤 원인이 더 많습니까?) “반반으로 보시면 됩니다. 질병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그것도 사회적 압박 때문입니다. 코알라들이 점점 더 좁은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거든요.” 학계에서도 녹지를 적정 수준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야생 동물 멸종은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인터뷰>이안 퍼거슨(멜버른대학교 산림학 교수): “도시개발 자체를 중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숲을 활용할 때와 비슷한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개발할 때 주변에 코알라의 먹이가 되는 녹지를 남겨두는 식으로 말입니다.” '코알라에게 좋은 개발이 인간에게도 유익하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개발 방식을 바뀌게 했습니다. 한적한 택지 개발 현장, 집과 집 사이에 담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코알라가 이동하는 데 장애물을 만들지 말자는 뜻입니다. 지형을 크게 바꾸지 말라, 코알라를 해칠 수 있으니 개나 고양이를 기르지 말라. 이렇게 갓 시작되는 실험은 규제 투성이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자는 목소리는 점차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마틴(건축가): “집은 지으려면 숲에서 10미터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야생에 있던 나무와 같은 종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야생 동물들이 정원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코알라와 직접 연관된 일자리만 해도 만 개 안팎, 관광 수입은 매년 수십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 호주 정부도 코알라를 지켜가려는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코알라비치처럼 개발 방식 규제를 통해 서식지 면적을 늘리거나, 한발 더 나가 서식지를 연결하는 일종의 녹색 벨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제인 로프트하우스(트위드 시 공무원): “다른 지역에서는 그 곳에 서식하는 다른 동물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꼭 코알라일 필요는 없습니다. 코알라비치 방식은 다른 개발지에도 좋은 선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환경 단체들이 코알라 보호 법안을 만들도록 정치권을 압박하고 기업에 대책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25년째 코알라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른바 '코알라 우먼'..그녀에게 왜 하필 코알라냐, 왜 지켜야 하느냐 물었습니다. <인터뷰>데보라 타바트(코알라재단 대표): “코알라는 누구도 해치지 않습니다. 곡식을 먹어치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무에 앉아만 있어도 아름답죠. 코알라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린 아무 것도 지킬 수 없을 겁니다.” 유럽인들이 신세계에 당도하기 전, 이 땅의 주인이었던 코알라. 이 사랑스러운 동물의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까요? 답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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