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만취해 아내 살해…거짓만 기억

입력 2012.11.23 (09: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술에 취하면 늘 아내를 폭행했던 남성이 결국은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사건 직후 이 남성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자신이 아내를 숨지게 했다고 진술까지 했는데요.

그런데, 이 남성, 술이 깬 뒤부터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은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는데요.

김기흥 기자, 이 남성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 걸로 나타난다면서요?

그럼, 살해했다고 진술한 건 뭔가요?

<기자 멘트>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통상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하는데요.

이 남성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통과했습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바로 '기억 왜곡 현상' 때문입니다.

기억 왜곡 현상이란 보통 성폭력 범죄나 사고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상황을 잊어버리거나 기억을 조작하는 걸 말하는데요.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이 기억 왜곡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정보 요원을 사칭해 사기를 저지른 사람 가운데는 자신을 실제로 정보 요원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는데요.

만취한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한 50대 남성의 왜곡된 기억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달 14일, 서울의 한 주택가.

자정이 넘은 시간, 55살 최모씨가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얼마 뒤, 집안에서 뭔가를 발견하고황급히 걸어 나오는 최씨.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곧 집 앞으로 구급차가 도착하는데요.

바로 최씨의 아내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장은 아내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분비물이 모두 닦여진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는 상황.

경찰은 아내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최씨를 지목했습니다.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평소 술만 마시면 아내를 폭행하고 가정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만취한 상태에서 아내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 찧고 폭행을 해서 사망을 하게한 사건입니다."

별다른 직업도 없이 아내의 수입에만 의존해 살았다는 최씨.

십여 년간 술만 마시면 아내를 괴롭혔다는 그는, 이날도 역시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는데요.

방에 있던 최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난폭한 모습을 보고 집을 나섰고, 최씨도 15분 후 취한 채 다시 집을 나왔습니다.

경찰은 이 15분 동안 최씨의 아내가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습니다. CCTV에 촬영된 모습이나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것을 본 상황으로 봐서 틀림없이 폭행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거죠."

또한 이날 촬영된 CCTV를 보면, 자정이 넘어 집으로 들어온 최씨가 시신을 발견하고 26분 동안 집안에 머물다 경찰에 신고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경찰은 이것 역시 최씨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집에 들어와서 신고한 그 시간까지 26분 동안 피의자가 죽어있던 아내를 옮기고 분비물이나 피를 흘린 부분에 대해서 전부 다 정리를 하고 닦은 것으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술만 마시면 시작되는 최씨의 폭력 때문에 웃주민들 역시 평소 잠 못 이룬 적이 많은 듯 했는데요.

사건 당일에도 최씨의 집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들은 이웃주민이 있었습니다.

<녹취> 이웃 주민(음성변조) : " ‘쿵’ 소리가 났어요. ‘아 또 무슨 일 있나보다..’ 했어요. 부부싸움을 자주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후 응급차 소리가 나고 그랬어요."

술만 취하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최씨.

이웃주민들은 그렇게 맞으면서도 참고 살았던 아내를 늘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웃 주민(음성변조) : "하루에 한 번 정도 ‘퍽퍽’ 소리가 나요. 맞는 소리가 답이 없어요. (폭행) 시작되면 날이 새더라고요. 그렇게 때리는데 여자가 맞고도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 말이 없어요. 아무리 때려도."

그런데 이상한 건, 남편 최씨의 진술이 경찰의 조사결과와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6시30분 경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옵니다. 보니까 자기 부인이 대변을 보고 누워있더라. 그래서 그 대변을 닦아주고 술을 한잔 더 하고 오겠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가 자정 정도에 다시 귀가를 해서 보니까 아내가 죽어있더라 (진술했습니다.)"

처음 경찰 조사 당시에는 자신이 부인을 죽였다고 진술한 최씨.

그런데 술이 깨자마자 범행 일체를 부인하기 시작했다는데요.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진술을 거부하거나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기억이 없다며 진술을 일관되게 하고 있어요. 즉 나쁜 기억은 아예 자기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자기가 정당할 수 있는 기억만 주장하는 거죠."

최씨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죄 심리분석까지 실시한 경찰.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녹취> 고선영(경사/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 :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의도적이나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경우는 아니었어요. ‘그거 내가 안 한 거야..’ 안 한 걸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뇌에 저장하는 기억들을 자기가 왜곡해서 저장하는 거죠."

지난 4월, 대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함께 도박을 하던 지인을 죽인 혐의로 구속된 이모씨 역시,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기억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으며 범행을 부인했다는데요.

<녹취> 경찰 관계자(음성 변조) : "당시부터 (이씨를) 용의자로 선정을 하고 수사를 해왔는데요. 일반적인 평범한 피의자하고는 조금 다르게 상식 밖의 진술을 하고 있어요. 갖은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서 결국은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게 된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시간 순서를 바꿔 기억하는 증세.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기억 왜곡’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곽대경(교수/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을 당한 피해자 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이런 기억 왜곡 현상을 보이곤 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왜곡되어 있는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그런 경향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에도 발각이 되지 않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피의자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범죄.

바로 오늘,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만취해 아내 살해…거짓만 기억
    • 입력 2012-11-23 09:05:21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술에 취하면 늘 아내를 폭행했던 남성이 결국은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사건 직후 이 남성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자신이 아내를 숨지게 했다고 진술까지 했는데요. 그런데, 이 남성, 술이 깬 뒤부터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은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는데요. 김기흥 기자, 이 남성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 걸로 나타난다면서요? 그럼, 살해했다고 진술한 건 뭔가요? <기자 멘트>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통상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하는데요. 이 남성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통과했습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건 바로 '기억 왜곡 현상' 때문입니다. 기억 왜곡 현상이란 보통 성폭력 범죄나 사고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상황을 잊어버리거나 기억을 조작하는 걸 말하는데요.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이 기억 왜곡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정보 요원을 사칭해 사기를 저지른 사람 가운데는 자신을 실제로 정보 요원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는데요. 만취한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한 50대 남성의 왜곡된 기억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달 14일, 서울의 한 주택가. 자정이 넘은 시간, 55살 최모씨가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얼마 뒤, 집안에서 뭔가를 발견하고황급히 걸어 나오는 최씨.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곧 집 앞으로 구급차가 도착하는데요. 바로 최씨의 아내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장은 아내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분비물이 모두 닦여진 상태였다고 하는데요.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는 상황. 경찰은 아내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최씨를 지목했습니다.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평소 술만 마시면 아내를 폭행하고 가정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만취한 상태에서 아내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 찧고 폭행을 해서 사망을 하게한 사건입니다." 별다른 직업도 없이 아내의 수입에만 의존해 살았다는 최씨. 십여 년간 술만 마시면 아내를 괴롭혔다는 그는, 이날도 역시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는데요. 방에 있던 최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난폭한 모습을 보고 집을 나섰고, 최씨도 15분 후 취한 채 다시 집을 나왔습니다. 경찰은 이 15분 동안 최씨의 아내가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요.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습니다. CCTV에 촬영된 모습이나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것을 본 상황으로 봐서 틀림없이 폭행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거죠." 또한 이날 촬영된 CCTV를 보면, 자정이 넘어 집으로 들어온 최씨가 시신을 발견하고 26분 동안 집안에 머물다 경찰에 신고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경찰은 이것 역시 최씨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집에 들어와서 신고한 그 시간까지 26분 동안 피의자가 죽어있던 아내를 옮기고 분비물이나 피를 흘린 부분에 대해서 전부 다 정리를 하고 닦은 것으로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술만 마시면 시작되는 최씨의 폭력 때문에 웃주민들 역시 평소 잠 못 이룬 적이 많은 듯 했는데요. 사건 당일에도 최씨의 집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들은 이웃주민이 있었습니다. <녹취> 이웃 주민(음성변조) : " ‘쿵’ 소리가 났어요. ‘아 또 무슨 일 있나보다..’ 했어요. 부부싸움을 자주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 얼마 후 응급차 소리가 나고 그랬어요." 술만 취하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최씨. 이웃주민들은 그렇게 맞으면서도 참고 살았던 아내를 늘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녹취> 이웃 주민(음성변조) : "하루에 한 번 정도 ‘퍽퍽’ 소리가 나요. 맞는 소리가 답이 없어요. (폭행) 시작되면 날이 새더라고요. 그렇게 때리는데 여자가 맞고도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 말이 없어요. 아무리 때려도." 그런데 이상한 건, 남편 최씨의 진술이 경찰의 조사결과와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6시30분 경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옵니다. 보니까 자기 부인이 대변을 보고 누워있더라. 그래서 그 대변을 닦아주고 술을 한잔 더 하고 오겠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가 자정 정도에 다시 귀가를 해서 보니까 아내가 죽어있더라 (진술했습니다.)" 처음 경찰 조사 당시에는 자신이 부인을 죽였다고 진술한 최씨. 그런데 술이 깨자마자 범행 일체를 부인하기 시작했다는데요. <인터뷰> 이규동(강력계장/광진경찰서) : "진술을 거부하거나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기억이 없다며 진술을 일관되게 하고 있어요. 즉 나쁜 기억은 아예 자기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자기가 정당할 수 있는 기억만 주장하는 거죠." 최씨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죄 심리분석까지 실시한 경찰.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녹취> 고선영(경사/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 :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의도적이나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경우는 아니었어요. ‘그거 내가 안 한 거야..’ 안 한 걸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뇌에 저장하는 기억들을 자기가 왜곡해서 저장하는 거죠." 지난 4월, 대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함께 도박을 하던 지인을 죽인 혐의로 구속된 이모씨 역시,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기억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으며 범행을 부인했다는데요. <녹취> 경찰 관계자(음성 변조) : "당시부터 (이씨를) 용의자로 선정을 하고 수사를 해왔는데요. 일반적인 평범한 피의자하고는 조금 다르게 상식 밖의 진술을 하고 있어요. 갖은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서 결국은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게 된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시간 순서를 바꿔 기억하는 증세.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기억 왜곡’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곽대경(교수/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을 당한 피해자 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이런 기억 왜곡 현상을 보이곤 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왜곡되어 있는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그런 경향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에도 발각이 되지 않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피의자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범죄. 바로 오늘,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