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휴양지화, 쫓겨나는 모로코인

입력 2012.11.25 (09:28) 수정 2012.11.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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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럽인들이 휴가 때 많이 찾는 아프리카 나라가 있는데, 바로 모로코입니다. 마라케시, 들어보셨죠? 지중해와 사막을 끼고 있어서 자연이 아름답고, 그 문화 또한 독특해서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데요, 최근엔 유럽 부자들이 별장도 많이 짓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별장을 짓느라 땅을 내주고, 또 리조트를 짓느라 땅을 내주고 이러다보니, 정작 현지 모로코인들은 도심 외곽으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예,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실업율도 이만저만 높은게 아니다보니 모로코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지향 순회 특파원이 휴양지 마라케시의 그늘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산, 구비구비 황톷빛이 이어집니다. 이 메마른 땅에서 자라난 나무 한 그루도 꿋꿋이 생명을 이어갑니다. 모래 언덕을 빙 둘러 쌓아 올린 흙집들에선 사막을 터전 삼아 살아온 고대인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사하라 사막을 품은 이 곳, 아프리카 북서쪽 끝에 자리한 모로코입니다. 사막 너머 오아시스로 번창한 도시, 마라케시에는 천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2세기에 77미터 높이로 지어진 쿠투비아 사원은 지금까지도 도시의 상징입니다. 중세시대 죄인을 처형하던 자마 알 프나 광장에선 이제 매일 축제가 벌어집니다. 악사와 뱀장수 등이
쏟아져 나와 다채로운 거리 공연을 펼치고, 날이 어두워지면 수백 대의 포장마차가 들어차 장관을 이룹니다. 오렌지빛 등이 켜지고 흰 연기가 자욱이 피어 오를 때쯤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집니다.

12k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 메디나, 건물도 거리도 모두 붉은색이라 마라케시는 '붉은 도시'로 불립니다.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미로같이 만들어진 골목엔 전통 가옥 리하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조그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넓게 펼쳐지는 실내, 더위를 피하려고 집안 한가운데 천장을 뚫은 게 이색적입니다. 예전엔 권세 있는 모로코 사람들이 살았지만, 요샌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인터뷰>모하메드 아로위(리아드 개조 호텔 사장): “부자들, 유럽 사람들이 리아드를 별장으로 많이 삽니다. (전체의 80%에 달할 정도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로도 개조를 많이 하지요. 마라케시는 날씨도 좋고 독특한 멋이 있어서 유럽인들이 좋아하거든요.”

이제 리하드하면 유럽 사람들 집이나 호텔로 생각할 정도로 전통 가옥의 명성은 퇴색됐습니다. 신도심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가 펼쳐집니다.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나무, '팔미에'가 많다 해서 팔므레이 지역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높은 담에 큼직큼직한 대문들, 대저택들은 웅장한 규모만큼 내부도 호화롭습니다.

<인터뷰>이샴 자이드(별장 관리인): “이 집은 1헥타르, 축구장 크기에 달합니다. 길이가 80미터나 되는 살롱 2개와 방 다섯 개, 그리고 수영장도 있습니다.”

집값이 적게는 35만 유로, 많게는 백만 유로, 우리 돈 5억여 원에서 14억여 원에 달하는 부촌입니다.

이곳 팔므레이 지역은 유럽의 고급 주택가를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명사들이 이곳에 별장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정재계 인사는 물론 TV 스타들까지 유행처럼 휴가 때 이곳을 들릅니다.

<인터뷰>모하메드 에스사이드(관광 안내인): “마라케시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모델인 나오미 캠벨,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배우 알랭 들롱도요.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이유는 마라케시가 보안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초호화 골프장과 호텔도 곳곳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2007년과 2008년, 아프리카 베스트 골프장 1위에 올랐던 이곳은 다양한 휴양 시설을 겸비해 인기가 많습니다. 바로 옆 모로코 스타일로 지어진 초호화 빌라는 고급 시설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룻밤을 자는데 우리 돈으로 70만 원, 많게는 180만 원 정도 합니다.

<인터뷰>로사나 아멘돌라(팔므레이 리조트 지배인): “손님 중에는 모로코 부자도 많고요, 유럽에서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옵니다. 한 번 오면 (가족 단위로 찾아와) 1주일에서 2주일, 한 달에 두 번씩 와서 머물곤 합니다.”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에 늘 관광객들로 북적여 비수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메디나 바깥의 풍경은 너무도 다릅니다. 성벽에서 불과 몇 km 떨어지지 않은 곳엔 빈민가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허물어진 집들 사이로 쓰레기가 쌓여 가고, 짓다만 집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건물 대부분이 페인트칠을 못해 회색 콘크리트 그대로인데, '붉은 도시' 정책을 따르기 버거울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겁니다. 여기저기서 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상 외부 노출을 꺼리는 여자들까지 구걸에 나설 정돕니다.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외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마라케시에서 14km 떨어진 타만 슬로트, 허허벌판이었던 시골마을에 성냥갑 같은 주거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13만 5천 명이 거주할 규모로 지어진 일종의 위성도시인 셈입니다.

<인터뷰>알리 이맘(타만 슬로트 주민): “마라케시에서는 비싼 월세를 내야 합니다. 마라케시에서 집을 사려다 너무 비싸서 이 쪽으로 이사를 왔어요. 여기서는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어서 온 겁니다.”

마라케시에서 집을 살 수 없는 모로코인들은 집세가 30% 정도 싼 이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있습니다.

도심 인근 지역이 슬럼화된 데는 관광지 개발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1999년부터 유럽인들이 노른자 땅을 대거 사들이고 부터입니다.

<인터뷰>하비아 우아쿠르(부동산 업자): “유럽 사람들이 집을 마구 사들이면서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하루에 집값이 70%나 오르기도 했을 정도였어요.” (-70%요?) “네, 맞습니다.”

최근 들어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주춤해지긴 했지만, 10년 사이 집값은 7배나 뛰었습니다. 유럽인들의 땅 투기가 모로코의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벌려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디디에르(모로코 거주 프랑스인): “(10여 년 전에 비해) 모로코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된 사람들은 더욱 부유해졌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진거죠.”

당시 논밭을 팔았던 중산층은 졸부가 됐고, 서민들은 뛰는 물가를 감당 못해 더욱 가난해졌다는 겁니다.

이곳 이슬람 전통 시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늘 붐빕니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물가도 껑충 뛰었습니다.

문제는 양극화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전통 시장이 명맥을 유지하곤 있지만 이슬람 공동체 고유의 삶의 양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은 맥도날드 등 서구 상점들이 차지한 지 오래, 획일화된 관광지의 모습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모로코 정부는 국제 영화제 개최 등, 각종 이벤트를 마련해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열심입니다. 하지만 실업률은 44%까지 치솟은 상황, '아랍의 봄' 바람이 불자 잠재된 불만이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시위 초기 국왕이 개혁을 약속해 정국을 안정시켰지만, 국민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주요 도시에선 고물가와 부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곤 합니다.

<인터뷰>유네스 카라쉬(모로코 민주화 시위대):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의 국왕을 사랑하지만, 부패와 경제적·정치적 독과점에는 반대합니다.”

비싼 집값에 고물가, 특히 모로코 경제를 떠받치는 관광업 종사자의 90%가 최저임금을 받는 불평등한 구조는 사회 불만과 불안 요소로 떠올랐습니다. 척박한 사막에서도 고유의 문명을 발전시켜 온 모로코, 하지만 이제 유럽의 별장지대로 전락하면서 내적 모순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관광국가의 포장된 미소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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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휴양지화, 쫓겨나는 모로코인
    • 입력 2012-11-25 09:28:13
    • 수정2012-11-25 10:57:0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유럽인들이 휴가 때 많이 찾는 아프리카 나라가 있는데, 바로 모로코입니다. 마라케시, 들어보셨죠? 지중해와 사막을 끼고 있어서 자연이 아름답고, 그 문화 또한 독특해서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데요, 최근엔 유럽 부자들이 별장도 많이 짓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별장을 짓느라 땅을 내주고, 또 리조트를 짓느라 땅을 내주고 이러다보니, 정작 현지 모로코인들은 도심 외곽으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예,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실업율도 이만저만 높은게 아니다보니 모로코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지향 순회 특파원이 휴양지 마라케시의 그늘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산, 구비구비 황톷빛이 이어집니다. 이 메마른 땅에서 자라난 나무 한 그루도 꿋꿋이 생명을 이어갑니다. 모래 언덕을 빙 둘러 쌓아 올린 흙집들에선 사막을 터전 삼아 살아온 고대인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사하라 사막을 품은 이 곳, 아프리카 북서쪽 끝에 자리한 모로코입니다. 사막 너머 오아시스로 번창한 도시, 마라케시에는 천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2세기에 77미터 높이로 지어진 쿠투비아 사원은 지금까지도 도시의 상징입니다. 중세시대 죄인을 처형하던 자마 알 프나 광장에선 이제 매일 축제가 벌어집니다. 악사와 뱀장수 등이 쏟아져 나와 다채로운 거리 공연을 펼치고, 날이 어두워지면 수백 대의 포장마차가 들어차 장관을 이룹니다. 오렌지빛 등이 켜지고 흰 연기가 자욱이 피어 오를 때쯤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집니다. 12k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 메디나, 건물도 거리도 모두 붉은색이라 마라케시는 '붉은 도시'로 불립니다.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미로같이 만들어진 골목엔 전통 가옥 리하드가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조그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넓게 펼쳐지는 실내, 더위를 피하려고 집안 한가운데 천장을 뚫은 게 이색적입니다. 예전엔 권세 있는 모로코 사람들이 살았지만, 요샌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인터뷰>모하메드 아로위(리아드 개조 호텔 사장): “부자들, 유럽 사람들이 리아드를 별장으로 많이 삽니다. (전체의 80%에 달할 정도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호텔로도 개조를 많이 하지요. 마라케시는 날씨도 좋고 독특한 멋이 있어서 유럽인들이 좋아하거든요.” 이제 리하드하면 유럽 사람들 집이나 호텔로 생각할 정도로 전통 가옥의 명성은 퇴색됐습니다. 신도심에 들어서면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가 펼쳐집니다.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나무, '팔미에'가 많다 해서 팔므레이 지역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높은 담에 큼직큼직한 대문들, 대저택들은 웅장한 규모만큼 내부도 호화롭습니다. <인터뷰>이샴 자이드(별장 관리인): “이 집은 1헥타르, 축구장 크기에 달합니다. 길이가 80미터나 되는 살롱 2개와 방 다섯 개, 그리고 수영장도 있습니다.” 집값이 적게는 35만 유로, 많게는 백만 유로, 우리 돈 5억여 원에서 14억여 원에 달하는 부촌입니다. 이곳 팔므레이 지역은 유럽의 고급 주택가를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명사들이 이곳에 별장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정재계 인사는 물론 TV 스타들까지 유행처럼 휴가 때 이곳을 들릅니다. <인터뷰>모하메드 에스사이드(관광 안내인): “마라케시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모델인 나오미 캠벨,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배우 알랭 들롱도요.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이유는 마라케시가 보안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초호화 골프장과 호텔도 곳곳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2007년과 2008년, 아프리카 베스트 골프장 1위에 올랐던 이곳은 다양한 휴양 시설을 겸비해 인기가 많습니다. 바로 옆 모로코 스타일로 지어진 초호화 빌라는 고급 시설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룻밤을 자는데 우리 돈으로 70만 원, 많게는 180만 원 정도 합니다. <인터뷰>로사나 아멘돌라(팔므레이 리조트 지배인): “손님 중에는 모로코 부자도 많고요, 유럽에서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옵니다. 한 번 오면 (가족 단위로 찾아와) 1주일에서 2주일, 한 달에 두 번씩 와서 머물곤 합니다.”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에 늘 관광객들로 북적여 비수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메디나 바깥의 풍경은 너무도 다릅니다. 성벽에서 불과 몇 km 떨어지지 않은 곳엔 빈민가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허물어진 집들 사이로 쓰레기가 쌓여 가고, 짓다만 집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건물 대부분이 페인트칠을 못해 회색 콘크리트 그대로인데, '붉은 도시' 정책을 따르기 버거울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겁니다. 여기저기서 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상 외부 노출을 꺼리는 여자들까지 구걸에 나설 정돕니다.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외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마라케시에서 14km 떨어진 타만 슬로트, 허허벌판이었던 시골마을에 성냥갑 같은 주거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13만 5천 명이 거주할 규모로 지어진 일종의 위성도시인 셈입니다. <인터뷰>알리 이맘(타만 슬로트 주민): “마라케시에서는 비싼 월세를 내야 합니다. 마라케시에서 집을 사려다 너무 비싸서 이 쪽으로 이사를 왔어요. 여기서는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어서 온 겁니다.” 마라케시에서 집을 살 수 없는 모로코인들은 집세가 30% 정도 싼 이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있습니다. 도심 인근 지역이 슬럼화된 데는 관광지 개발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1999년부터 유럽인들이 노른자 땅을 대거 사들이고 부터입니다. <인터뷰>하비아 우아쿠르(부동산 업자): “유럽 사람들이 집을 마구 사들이면서 집값이 폭등했습니다. 하루에 집값이 70%나 오르기도 했을 정도였어요.” (-70%요?) “네, 맞습니다.” 최근 들어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주춤해지긴 했지만, 10년 사이 집값은 7배나 뛰었습니다. 유럽인들의 땅 투기가 모로코의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벌려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디디에르(모로코 거주 프랑스인): “(10여 년 전에 비해) 모로코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된 사람들은 더욱 부유해졌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진거죠.” 당시 논밭을 팔았던 중산층은 졸부가 됐고, 서민들은 뛰는 물가를 감당 못해 더욱 가난해졌다는 겁니다. 이곳 이슬람 전통 시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늘 붐빕니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물가도 껑충 뛰었습니다. 문제는 양극화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전통 시장이 명맥을 유지하곤 있지만 이슬람 공동체 고유의 삶의 양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은 맥도날드 등 서구 상점들이 차지한 지 오래, 획일화된 관광지의 모습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모로코 정부는 국제 영화제 개최 등, 각종 이벤트를 마련해 외국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열심입니다. 하지만 실업률은 44%까지 치솟은 상황, '아랍의 봄' 바람이 불자 잠재된 불만이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시위 초기 국왕이 개혁을 약속해 정국을 안정시켰지만, 국민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주요 도시에선 고물가와 부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곤 합니다. <인터뷰>유네스 카라쉬(모로코 민주화 시위대):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의 국왕을 사랑하지만, 부패와 경제적·정치적 독과점에는 반대합니다.” 비싼 집값에 고물가, 특히 모로코 경제를 떠받치는 관광업 종사자의 90%가 최저임금을 받는 불평등한 구조는 사회 불만과 불안 요소로 떠올랐습니다. 척박한 사막에서도 고유의 문명을 발전시켜 온 모로코, 하지만 이제 유럽의 별장지대로 전락하면서 내적 모순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관광국가의 포장된 미소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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