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결산] ② ‘2002 4강 신화’ 주역들, 감독 날개 활짝
입력 2012.12.02 (16:29)
수정 2012.12.0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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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프로축구 K리그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끈 주역들이 젊은 사령탑으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FC서울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팀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독수리' 최용수(39) 감독이 가장 대표적이다.
최 감독은 지난해 4월 황보관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감독 대행으로 서울을 맡아 정규리그 3위로 이끌었다.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으로 첫 시즌을 치른 올해는 당당히 우승을 달성해 지도력을 입증했다.
최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의 한 축을 담당한 스타 출신으로 K리그에서는 1994년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에서 데뷔해 2000년 우승 당시 MVP를 차지하는 등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런 최 감독이 처음 서울 지휘봉을 잡을 때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2006년 플레잉코치를 시작으로 코치, 수석코치 등 계단을 착실히 밟아오긴 했지만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라는 무거운 직함에서 연상되는 권위보다는 팀 선배이자 맏형같이 선수들을 다독이는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정식 감독이 된 올해는 한층 성숙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시즌 초 골잡이 데얀(몬테네그로)를 둘러싸고 벌어진 '태업 논란'이 단적인 예다.
최 감독은 데얀이 중국 리그 이적 불발로 개막전에서 성의없는 플레이를 한다고 판단하자 망설임 없이 벤치로 불러들여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다잡는 등 결단력과 위기관리능력을 과시했다.
이 덕에 서울은 개막 이후 한차례도 연패를 당하지 않고 8월 말 1위로 치고 나선 이후 줄곧 선두를 유지하는 등 순항 끝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황선홍(42) 포항 스틸러스 감독 역시 FA컵 우승으로 지도자 생활 5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황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왔다.
2008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아 화끈한 공격축구를 표방하며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첫해인 그해 K리그 14개 팀 중 12위에 머무르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2009년 리그컵과 2010년 FA컵에서 결승에 올라 정상을 노렸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했고 정규리그에서도 2009년 12위, 2010년 8위 등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지난해 친정팀인 포항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부터 황선홍 감독은 초보 감독 티를 벗기 시작했다.
포항 부임 첫해인 2011년 1위 전북과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에 덜미를 잡혀 목표인 우승은 놓쳤지만 지도자로서 역량을 재평가받았다.
올해는 더 어려운 출발을 했다. 김재성과 김형일의 상주 상무 입대로 핵심 전력이 빠진 상태에서 시즌 초반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의 조급함 대신 유망주들과 그동안 부진했던 베테랑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믿음을 심어줬고 6월 이후 반전에 성공하며 FA컵에서도 승승장구, 지도자로서 '3전4기' 끝에 정상에 섰다.
유상철(41) 대전 시티즌 전 감독도 1부리그 잔류라는 소기의 성과를 냈다.
그는 지난해 승부조작 여파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전임 왕선재 감독의 자리를 이어받아 팀 재건의 임무를 수행했다.
올 시즌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고도 대전과 재계약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시·도민 구단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피말리는 강등권 생존싸움을 치러내며 지도자로서 역량을 갈고 닦았다.
FC서울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팀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독수리' 최용수(39) 감독이 가장 대표적이다.
최 감독은 지난해 4월 황보관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감독 대행으로 서울을 맡아 정규리그 3위로 이끌었다.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으로 첫 시즌을 치른 올해는 당당히 우승을 달성해 지도력을 입증했다.
최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의 한 축을 담당한 스타 출신으로 K리그에서는 1994년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에서 데뷔해 2000년 우승 당시 MVP를 차지하는 등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런 최 감독이 처음 서울 지휘봉을 잡을 때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2006년 플레잉코치를 시작으로 코치, 수석코치 등 계단을 착실히 밟아오긴 했지만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라는 무거운 직함에서 연상되는 권위보다는 팀 선배이자 맏형같이 선수들을 다독이는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정식 감독이 된 올해는 한층 성숙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시즌 초 골잡이 데얀(몬테네그로)를 둘러싸고 벌어진 '태업 논란'이 단적인 예다.
최 감독은 데얀이 중국 리그 이적 불발로 개막전에서 성의없는 플레이를 한다고 판단하자 망설임 없이 벤치로 불러들여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다잡는 등 결단력과 위기관리능력을 과시했다.
이 덕에 서울은 개막 이후 한차례도 연패를 당하지 않고 8월 말 1위로 치고 나선 이후 줄곧 선두를 유지하는 등 순항 끝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황선홍(42) 포항 스틸러스 감독 역시 FA컵 우승으로 지도자 생활 5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황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왔다.
2008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아 화끈한 공격축구를 표방하며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첫해인 그해 K리그 14개 팀 중 12위에 머무르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2009년 리그컵과 2010년 FA컵에서 결승에 올라 정상을 노렸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했고 정규리그에서도 2009년 12위, 2010년 8위 등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지난해 친정팀인 포항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부터 황선홍 감독은 초보 감독 티를 벗기 시작했다.
포항 부임 첫해인 2011년 1위 전북과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에 덜미를 잡혀 목표인 우승은 놓쳤지만 지도자로서 역량을 재평가받았다.
올해는 더 어려운 출발을 했다. 김재성과 김형일의 상주 상무 입대로 핵심 전력이 빠진 상태에서 시즌 초반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의 조급함 대신 유망주들과 그동안 부진했던 베테랑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믿음을 심어줬고 6월 이후 반전에 성공하며 FA컵에서도 승승장구, 지도자로서 '3전4기' 끝에 정상에 섰다.
유상철(41) 대전 시티즌 전 감독도 1부리그 잔류라는 소기의 성과를 냈다.
그는 지난해 승부조작 여파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전임 왕선재 감독의 자리를 이어받아 팀 재건의 임무를 수행했다.
올 시즌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고도 대전과 재계약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시·도민 구단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피말리는 강등권 생존싸움을 치러내며 지도자로서 역량을 갈고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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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12-02 16:29:53
- 수정2012-12-02 16:55:37

2012 프로축구 K리그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끈 주역들이 젊은 사령탑으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FC서울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팀을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은 '독수리' 최용수(39) 감독이 가장 대표적이다.
최 감독은 지난해 4월 황보관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감독 대행으로 서울을 맡아 정규리그 3위로 이끌었다.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으로 첫 시즌을 치른 올해는 당당히 우승을 달성해 지도력을 입증했다.
최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 스트라이커 계보의 한 축을 담당한 스타 출신으로 K리그에서는 1994년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에서 데뷔해 2000년 우승 당시 MVP를 차지하는 등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
이런 최 감독이 처음 서울 지휘봉을 잡을 때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2006년 플레잉코치를 시작으로 코치, 수석코치 등 계단을 착실히 밟아오긴 했지만 감독으로서의 지도력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라는 무거운 직함에서 연상되는 권위보다는 팀 선배이자 맏형같이 선수들을 다독이는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정식 감독이 된 올해는 한층 성숙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시즌 초 골잡이 데얀(몬테네그로)를 둘러싸고 벌어진 '태업 논란'이 단적인 예다.
최 감독은 데얀이 중국 리그 이적 불발로 개막전에서 성의없는 플레이를 한다고 판단하자 망설임 없이 벤치로 불러들여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다잡는 등 결단력과 위기관리능력을 과시했다.
이 덕에 서울은 개막 이후 한차례도 연패를 당하지 않고 8월 말 1위로 치고 나선 이후 줄곧 선두를 유지하는 등 순항 끝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황선홍(42) 포항 스틸러스 감독 역시 FA컵 우승으로 지도자 생활 5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황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비포장 도로'를 걸어왔다.
2008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아 화끈한 공격축구를 표방하며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첫해인 그해 K리그 14개 팀 중 12위에 머무르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2009년 리그컵과 2010년 FA컵에서 결승에 올라 정상을 노렸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했고 정규리그에서도 2009년 12위, 2010년 8위 등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지난해 친정팀인 포항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부터 황선홍 감독은 초보 감독 티를 벗기 시작했다.
포항 부임 첫해인 2011년 1위 전북과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았다.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에 덜미를 잡혀 목표인 우승은 놓쳤지만 지도자로서 역량을 재평가받았다.
올해는 더 어려운 출발을 했다. 김재성과 김형일의 상주 상무 입대로 핵심 전력이 빠진 상태에서 시즌 초반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의 조급함 대신 유망주들과 그동안 부진했던 베테랑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며 믿음을 심어줬고 6월 이후 반전에 성공하며 FA컵에서도 승승장구, 지도자로서 '3전4기' 끝에 정상에 섰다.
유상철(41) 대전 시티즌 전 감독도 1부리그 잔류라는 소기의 성과를 냈다.
그는 지난해 승부조작 여파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전임 왕선재 감독의 자리를 이어받아 팀 재건의 임무를 수행했다.
올 시즌 팀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고도 대전과 재계약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시·도민 구단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피말리는 강등권 생존싸움을 치러내며 지도자로서 역량을 갈고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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