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대학살 75주년

입력 2012.12.14 (11:05) 수정 2012.12.1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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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에게 무려 30만 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난징 대학살 75주년 기념식이 중국에서 열렸습니다.

박정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

무려 30만 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됐습니다.

이른바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은 무장 해제된 중국군 포로는 물론 임산부와 간난 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강간과 살인 등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생존자와 관계자들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당시를 회상하며 눈문을 흘렸습니다.

<인터뷰> 진마오즈(난징대학살 생존자) : “당시 고모부와 친척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전후 연합국의 전범 재판에서도 14만 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일부 우익 인사들은 지금까지도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고 있어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난징 대학살은 중국인들에게 뼈아픈 기억이자 인류의 비극으로 남아있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박정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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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징 대학살 75주년
    • 입력 2012-12-14 11:32:33
    • 수정2012-12-14 1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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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에게 무려 30만 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난징 대학살 75주년 기념식이 중국에서 열렸습니다.

박정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

무려 30만 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됐습니다.

이른바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은 무장 해제된 중국군 포로는 물론 임산부와 간난 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강간과 살인 등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생존자와 관계자들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당시를 회상하며 눈문을 흘렸습니다.

<인터뷰> 진마오즈(난징대학살 생존자) : “당시 고모부와 친척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전후 연합국의 전범 재판에서도 14만 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일부 우익 인사들은 지금까지도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고 있어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난징 대학살은 중국인들에게 뼈아픈 기억이자 인류의 비극으로 남아있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박정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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