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가 담아낸 우리 사회 ‘갑-을’ 관계

입력 2012.12.16 (08:06) 수정 2012.12.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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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 갑을컴퍼니·노애', '무한상사' 등
사회 계층 드러내 공감대..개그맨 처한 현실과도 일치
"지상파 예능, 현실의 영역으로 나아가"


"인석 씨, 회사 생활 잘하고 싶어? 그럼 위에 있는 갑(甲)과 아래에 있는 을(乙)만 잘 알면 돼!"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지난달 처음 등장한 코너 '갑을(甲乙)컴퍼니'. 어느 회사를 배경으로 신입 사원, 대리, 부장, 사장 사이에 놓인 계층적 관계를 코믹하게 풀어낸다.

앞서 지난 10월 초 MBC TV '무한도전'도 '무한상사' 편을 선보였다.

직원들은 부장으로 분한 '1인자' 유재석에게 잘 보이려 갖은 아부를 하고, 이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은 '4년째 인턴' 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처럼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계층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인턴과 정규직 직원, 부장과 신입 사원, 부잣집 딸과 비서 등 그 형식을 달리하며 계층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지는 촌극을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 "모두가 공감하는 계층 사회를 표현" = '개그콘서트 - 갑을컴퍼니'에서 먹이사슬 최하층에 자리 잡은 인물은 개그맨 유인석. 어리버리한 신입 사원을 연기하는 그는 자신이 마셔버린 녹즙이 부장의 것이라는 걸 알고 어쩔 줄 몰라한다.

홍인규 대리는 이 때문에 부장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똑바로 못하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느냐"며 꾸지람을 듣고, "괜찮아요, 내가 회사 잘리면 되지"라며 웃음으로 갈등을 봉합한다.

지난 9일 코너에 새로 투입된 최효종은 이러한 '갑을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하며 시사점을 던져주는 캐릭터다.

그는 "우리나라 고객은 대충 만들어 팔아도 애국심 때문에 사니까 을이고, 외국인 고객은 값싸고 품질 좋게 만들어 납품해야 하니까 갑"이라며 뒷전으로 밀려난 내수 시장을 꼬집는다.

MBC '무한도전 - 무한상사' 편에서도 인턴 길은 신입 공채에 응시한 지드래곤과 함께 면접을 보지만,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무한상사'는 결국 마지막에 지드래곤이 회장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만년 인턴으로 설움을 겪던 길이 정직원 사원증을 받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운전기사와 비서를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부잣집 아가씨를 그린 MBC '코미디에 빠지다 - 아가씨', 주인 마님에게 혼날까 봐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노비와 "개나 주거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님을 대비시킨 '개그콘서트 - 노애' 등도 이러한 웃음 코드를 담고 있다.

계속된 경기 침체로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특히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올해 주요한 이슈로 부상한 상황에서 이러한 소재는 시청자에게 가깝게 다가간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이에 대해 "직장 코드는 늘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며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계층 사회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갑을컴퍼니'의 의도를 소개했다.

또 '노애'에 대해서도 "부잣집 마님이 먹을 것을 그냥 버리는 상황 대비를 드러내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려 했다"며 "이런 점이 없었으면 그저 '더러운 개그'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개그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현실과 관계를 맺으면서 달리 보일 수 있다"며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은유"라고 짚었다.

이어 "올해 대선의 핵심 키워드도 '경제 민주화'지 않느냐"라며 "이렇게 다들 어렵다고 이야기할 때,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등 개그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덧붙였다.

◇ 출연진의 처지와도 비슷..또다른 웃음 = '을(乙)'의 처지를 묘사하는 출연진의 실제 처지가 '을'에 가깝다는 점은 또다른 웃음 포인트다.

'무한상사'에서 인턴으로 등장했던 리쌍의 길은 프로그램의 원년 멤버가 아니다. 2009년 4월 뒤늦게 합류한 그는 마치 인턴사원의 지위가 불안정한 것처럼, 시청자로부터 "'무리수 개그'를 펼친다"는 지적을 받으며 하차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9월에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출연이 예정됐던 공연이 비싼 티켓 가격으로 물의를 빚자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가 제작진과 출연진의 설득으로 번복하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 갑을컴퍼니'에서 신입 사원을 맡은 유인석도 마찬가지. KBS 27기 공채 개그맨인 그는 실제로 올해 데뷔한 '새내기'다.

정덕현 평론가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도 '을'의 상태라는 것은 '짠'하게 한다"며 "이런 면들이 시청자에게 리얼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고 풀었다.

스타덤에 오르지 못한 개그맨들이 생활고를 겪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김태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사무국장은 지난 11일 열린 '2012 대한민국 방송연기자 포럼'에서 "코미디언의 (출연료 산정) 등급은 5-6년이 지나도 불과 1-2 등급이 오른다"며 "탤런트는 1년에 한 번 조정한다"고 주장하며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현실 풍자에 힘 실리는 코미디 트렌드 반영 = 이 같은 웃음 코드의 부상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실 풍자를 재조명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표격인 '개그콘서트'의 경우 올해 '꺾기도', '네가지', '핑크 레이디' 등 웃음 자체에 충실한 코너들에 집중해왔다.

부조리한 현실에 촌철살인을 날리며 인기를 끌었던 '용감한 녀석들'도 수위를 낮춰가는 중이다.

그나마 깨알 같은 현실 풍자로 늘 주목받았던 '무한도전'은 올해 MBC 파업의 여파로 6개월 넘게 시청자를 만나지 못했다.

올 한해 지상파 예능에서 '힐링'과 오디션 열풍이 부는 동안, 현실 풍자의 영역은 'SNL 코리아' 등 케이블 채널에 맡겨졌다.

이에 대해 정덕현 평론가는 "'개그콘서트'가 그동안 전형적인 코드를 썼다면, 최근 조금씩 현실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며 "한쪽으로만 흘러가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또 "개그의 코드는 거의 항상 정해져 있다"며 "그것을 어떻게 '현재'에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개그는 현실을 바탕으로 했을 때 계속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도 '갑을컴퍼니'와 '노애' 코너에 대해 "늘 있던 콩트 콘셉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두 코너는 손 보는데 6주 정도 걸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갑을컴퍼니'에 최효종을 새로 투입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애정남', '남성인권보장위원회' 등에서 현실을 비웃는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시켰기 때문.

서 PD는 "최효종은 코너의 폭을 한층 넓히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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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2-12-16 10:25:28
    연합뉴스
'개콘 - 갑을컴퍼니·노애', '무한상사' 등 사회 계층 드러내 공감대..개그맨 처한 현실과도 일치 "지상파 예능, 현실의 영역으로 나아가" "인석 씨, 회사 생활 잘하고 싶어? 그럼 위에 있는 갑(甲)과 아래에 있는 을(乙)만 잘 알면 돼!"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지난달 처음 등장한 코너 '갑을(甲乙)컴퍼니'. 어느 회사를 배경으로 신입 사원, 대리, 부장, 사장 사이에 놓인 계층적 관계를 코믹하게 풀어낸다. 앞서 지난 10월 초 MBC TV '무한도전'도 '무한상사' 편을 선보였다. 직원들은 부장으로 분한 '1인자' 유재석에게 잘 보이려 갖은 아부를 하고, 이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은 '4년째 인턴' 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처럼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계층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인턴과 정규직 직원, 부장과 신입 사원, 부잣집 딸과 비서 등 그 형식을 달리하며 계층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지는 촌극을 통해 웃음을 자아낸다. ◇ "모두가 공감하는 계층 사회를 표현" = '개그콘서트 - 갑을컴퍼니'에서 먹이사슬 최하층에 자리 잡은 인물은 개그맨 유인석. 어리버리한 신입 사원을 연기하는 그는 자신이 마셔버린 녹즙이 부장의 것이라는 걸 알고 어쩔 줄 몰라한다. 홍인규 대리는 이 때문에 부장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똑바로 못하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느냐"며 꾸지람을 듣고, "괜찮아요, 내가 회사 잘리면 되지"라며 웃음으로 갈등을 봉합한다. 지난 9일 코너에 새로 투입된 최효종은 이러한 '갑을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하며 시사점을 던져주는 캐릭터다. 그는 "우리나라 고객은 대충 만들어 팔아도 애국심 때문에 사니까 을이고, 외국인 고객은 값싸고 품질 좋게 만들어 납품해야 하니까 갑"이라며 뒷전으로 밀려난 내수 시장을 꼬집는다. MBC '무한도전 - 무한상사' 편에서도 인턴 길은 신입 공채에 응시한 지드래곤과 함께 면접을 보지만,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무한상사'는 결국 마지막에 지드래곤이 회장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만년 인턴으로 설움을 겪던 길이 정직원 사원증을 받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이 밖에도 운전기사와 비서를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부잣집 아가씨를 그린 MBC '코미디에 빠지다 - 아가씨', 주인 마님에게 혼날까 봐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노비와 "개나 주거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님을 대비시킨 '개그콘서트 - 노애' 등도 이러한 웃음 코드를 담고 있다. 계속된 경기 침체로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특히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올해 주요한 이슈로 부상한 상황에서 이러한 소재는 시청자에게 가깝게 다가간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이에 대해 "직장 코드는 늘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며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계층 사회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갑을컴퍼니'의 의도를 소개했다. 또 '노애'에 대해서도 "부잣집 마님이 먹을 것을 그냥 버리는 상황 대비를 드러내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려 했다"며 "이런 점이 없었으면 그저 '더러운 개그'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개그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현실과 관계를 맺으면서 달리 보일 수 있다"며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은유"라고 짚었다. 이어 "올해 대선의 핵심 키워드도 '경제 민주화'지 않느냐"라며 "이렇게 다들 어렵다고 이야기할 때,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등 개그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덧붙였다. ◇ 출연진의 처지와도 비슷..또다른 웃음 = '을(乙)'의 처지를 묘사하는 출연진의 실제 처지가 '을'에 가깝다는 점은 또다른 웃음 포인트다. '무한상사'에서 인턴으로 등장했던 리쌍의 길은 프로그램의 원년 멤버가 아니다. 2009년 4월 뒤늦게 합류한 그는 마치 인턴사원의 지위가 불안정한 것처럼, 시청자로부터 "'무리수 개그'를 펼친다"는 지적을 받으며 하차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9월에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출연이 예정됐던 공연이 비싼 티켓 가격으로 물의를 빚자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가 제작진과 출연진의 설득으로 번복하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 갑을컴퍼니'에서 신입 사원을 맡은 유인석도 마찬가지. KBS 27기 공채 개그맨인 그는 실제로 올해 데뷔한 '새내기'다. 정덕현 평론가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도 '을'의 상태라는 것은 '짠'하게 한다"며 "이런 면들이 시청자에게 리얼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고 풀었다. 스타덤에 오르지 못한 개그맨들이 생활고를 겪는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김태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사무국장은 지난 11일 열린 '2012 대한민국 방송연기자 포럼'에서 "코미디언의 (출연료 산정) 등급은 5-6년이 지나도 불과 1-2 등급이 오른다"며 "탤런트는 1년에 한 번 조정한다"고 주장하며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현실 풍자에 힘 실리는 코미디 트렌드 반영 = 이 같은 웃음 코드의 부상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실 풍자를 재조명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표격인 '개그콘서트'의 경우 올해 '꺾기도', '네가지', '핑크 레이디' 등 웃음 자체에 충실한 코너들에 집중해왔다. 부조리한 현실에 촌철살인을 날리며 인기를 끌었던 '용감한 녀석들'도 수위를 낮춰가는 중이다. 그나마 깨알 같은 현실 풍자로 늘 주목받았던 '무한도전'은 올해 MBC 파업의 여파로 6개월 넘게 시청자를 만나지 못했다. 올 한해 지상파 예능에서 '힐링'과 오디션 열풍이 부는 동안, 현실 풍자의 영역은 'SNL 코리아' 등 케이블 채널에 맡겨졌다. 이에 대해 정덕현 평론가는 "'개그콘서트'가 그동안 전형적인 코드를 썼다면, 최근 조금씩 현실적인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며 "한쪽으로만 흘러가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짚었다. 또 "개그의 코드는 거의 항상 정해져 있다"며 "그것을 어떻게 '현재'에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개그는 현실을 바탕으로 했을 때 계속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도 '갑을컴퍼니'와 '노애' 코너에 대해 "늘 있던 콩트 콘셉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두 코너는 손 보는데 6주 정도 걸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갑을컴퍼니'에 최효종을 새로 투입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애정남', '남성인권보장위원회' 등에서 현실을 비웃는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시켰기 때문. 서 PD는 "최효종은 코너의 폭을 한층 넓히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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