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막는 ‘입양법’

20대 산모가 시골 마을 폐가를 찾았습니다.

품 안엔 태어난 지 하루가 채 안된 어린 핏덩이가 있었습니다.

해질 녘 어미에게서 버려진 아기, 울음소리조차 사람에게 닿지 않는 외진 폐가에서 그 밤을 보냈습니다.

아기는 숨진 채 두 달 뒤에 발견됐습니다.

<인터뷰> 목격자 : "포대기에 이렇게 딱 싸여 있더라고.. 느낌이 이상해. 아기더라고.."

생모는 미혼모였습니다.

홀로 아기를 키울 수 없어 저지른 극단적 선택이었습니다.

<인터뷰> 경찰 관계자 : "완전히 미라처럼 새카맣게 되어가지고.. (그럼 검안 결과는?) 사인 불상."

생명의 탄생은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버려지는 아기들에게 탄생은 목숨을 위협 받는 위기의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부모를 대신해 우리 사회는 입양 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최근엔 아동 인권을 강화한 입양특례법까지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생명들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습니다.

법이 있어도 온전히 그 법의 의도가 반영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봤습니다.

지방의 한 미혼 모자 시설, 임신부부터 이제 막 출산을 한 산모까지 30여 명의 엄마와 아기들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미혼모들은 대부분 10대들입니다.

시설 안에 운영 중인 대안학교에서 수업을 듣는가 하면,

<녹취> "(이 소설 지은 사람은?) 박완서"

직업훈련소에 나가 취업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미혼모들이 육아와 생계를 홀로 감당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런 미혼모들에게 지난 8월 개정된 입양법은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줍니다.

10대 미혼모인 태은이는 남자 친구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입양을 보낼 생각으로 아기를 낳았지만 달라진 입양 절차는 그녀를 막막하게 했습니다.

입양을 보내려면 자신이 직접 출생 신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입니다.

<인터뷰>김태은(가명/10대 미혼모/음성변조) : "호적에 올려야된다는 것 때문에 ...어차피 입양 보내야 할 아기인데.."

가족관계기록부에 남게 될 출생 기록보다 더 힘든 건 사라진 아이 아빠를 찾고 또 미성년자인 그들을 대신해 부모의 입양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김태은(가명/10대 미혼모/음성변조) : "아기 아빠가 연락이 안되는데요. 그런 점이랑요. 부모님 서명을 다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출산을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길영미(가명/10대 미혼모/음성변조) : "엄마도 이러셨어요. '나중에 엄마가 일하다가 등본을 떼면 아기(손주) 이름이 드러날텐데.. '아빠가 아직 모르시는데 (호적에) 아기 있으면 너는 맞을텐데 어떻게 할 거냐고... ((성폭행이) 당신 잘못은 아니잖아요?) 잘못한 게 아닌데도 너무 무서웠어요."

개정된 입양법은 성장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와 아동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과거 친모의 입양 동의만으로 가능했던 입양 절차가 친모, 친부의 출생 신고와 입양 동의, 그리고 미성년자일 경우 양가 부모의 동의도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절차는 가정 법원의 심사 대상입니다.

성폭행이나 친부의 소재 파악이 어려운 경우 법원에 사유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모든 사유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정영선(00 미혼모자시설 원장) : "(법원에서 미혼모에게) 출두를 요청해서 '아기 아빠를 왜 못찾았는지..' 그 사유를 물어보고 '아기 아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든지 그러니까 찾아봐라..' '찾을 수 없는데 법원에서 찾으라 했다' 그런 얘기를 (미혼모에게서) 들었습니다."

강화된 입양 요건에 대한 부담이 결과적으로 미혼모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이들의 입양 의뢰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서울 난곡동의 한 복지시설, 세 살 생명이는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지금껏 11차례 수술을 받은 장애아입니다.

웃는 모습이 예쁜 은수 역시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습니다.

입소 아동 대부분은 시설 책임자인 이종락 목사의 입양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와 아이들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시설 한쪽 담장에 있는 조그만 여닫이 문, 이 문이 열리면 집안 전체에 종이 울립니다.

사람들은 문을 통해 새 식구가 들어온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이 작은 공간을 베이비박스라 부릅니다.

<인터뷰>이종락(주사랑공동체 목사) :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죽으려고 약 타 놨다는 거예요. 그것도 새벽 한 시 넘어서 전화 오면 가슴이 철렁하죠. 그러면 너도 살아야 하고 아기도 살아야 하고 아기도 오고 너도 와라.."

이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기들을 만난 것은 지난 2010년.

이 목사는 최근 버려지는 아기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정영선(주사랑공동체 봉사자) : "벨 정말 많이 울렸어요. 우리 가슴이 철렁 철렁..많게는 (한 달에) 14명 들어올 때도 있었으니까.."

입양법이 개정된 8월 이후 이곳에 맡겨진 아기는 40여 명.

아기 엄마들의 편지엔 한결같이 입양 특례법이 언급돼 있었습니다.

<녹취> "혼자 키울 수 없는 처지라 부탁드립니다. 입양특례법으로 인해서 도저히 받아주는 곳이 없네요."

<인터뷰>이종락(주사랑공동체 목사) : "아이들이 죽고 사는 생사의 현장이잖아요. 이 현장에서 보니까 그 법은 좋은 (취지의) 법일지는 몰라도 그 아이들에게는 아직까지는 좀 지켜지기 힘들다."

<인터뷰>성정현(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전폭적으로 노력을 해야된다는 거죠. 그런데 입양허가제 도입하고 숙려제 도입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충분하게 논의과정이나 공청회 절차라던지 뭐 이런 것들이 논의되지 않았다는 거에요."

공개 입양에 대한 두려움은 불법 개인 입양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미혼모와 입양 아동을 바라는 이들의 비밀 입양 시도가 늘고 있고 이들을 주선하는 브로커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남혜경(성가정입양원 원장) : "(입양을 원하는) 부모님들한테 직접적으로 들은 얘기가 브로커들로부터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고 미혼모로부터 직접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고 저희가 들었어요. 브로커가 전화 했을 때는 천만 원을 요구했고요"

출생신고 없인 입양도, 아동보호소 위탁도 어렵다는 판단에 영아 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미혼모들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 "잔인한 사람들만 지금 이런 사건에 연루되는 건 아니고요.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사람들, 아이는 결국 자신의 어떤 생존을 위해서는 장애물일 뿐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그대로 유지되면 결국엔 아이가 생명을 잃는.."

그렇다면 새 입양법 시행 이후 미혼모들의 아기가 입양 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5개월간 법원 허가를 받은 입양은 모두 9건.

법 시행 전 월 평균 200여 건이던 입양이 백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겁니다.

제작진은 입양이 급감한 이유를 더 알아보기 위해 입양 기관인 홀트를 방문했습니다.

아기를 원했던 김선명씨는 법원에서 받은 입양 확정문을 들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인터뷰>김선명(입양부모) : "집사람하고도 어제도 계속 잠을 못 잤고 내일부터는 또 다른 (육아)전쟁이 시작되겠지만 역시 아! 너무너무 행복하다.."

<현장음> "아기 이름 뭘로 하셨어요? (김아인이요!) 아인이구나! 축하해!"

2년여 준비 끝에 비로소 가족이 된 세 사람.

기다림이 길었기에 더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홀트가 지난 8월 이후 서울 지역에서 입양을 성사시킨 첫 사례입니다.

김씨 부부가 거친 입양 절차입니다.

부부는 우선 입양기관에서 상담과 가정조사를 받았습니다.

범죄 경력과 건강, 재정 상태를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했고 부모 교육도 받았습니다.

가정법원 조사에서는 입증 항목이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가사 조사관으로부터는 앞서 입양기관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받기도 했습니다.

입양 절차를 밟은 넉 달 동안 김씨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인터뷰>김선명(입양부모) : "법적인 부분에서 확인하고 가시는 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가정 방문을 하셔도 사진을 찍어 가시거든요, 절차상으로만 너무 딱딱하게 진행돼 나간다고 하면 저희가 잘못을 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근데 꼭 조사받는 느낌은 들거든요."

입양 심리가 위축된 건 입양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김정숙(홀트 국내입양팀) : "건강상황 중에서도 어디 한 부분이 어려운 분들이 계시거든요.(장애가 있는 분들이요?) 그렇죠.증거자료가 부족할 경우에는 저희가 법원에 서류를 제출했을 때 기각당할까봐 걱정할 수밖에 없는 거죠."

신생아부터 만 3세까지의 아이들이 머무는 성가정 입양원.

월 평균 예닐곱의 아기들이 양부모를 만났지만 8월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입양되지 않았습니다.

두 살 태양이는 이곳 입양원 생활만 벌써 1년째입니다.

양부모가 나타나더라도 친부모의 출생 신고와 동의서가 없어 입양을 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남혜경(성가정입양원 원장) : "세돌 두돌된 아이들 같은 경우는 서류 절차가 2년 전 이미 끝난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그 생모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요. 생모가 연결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에 와서 생모에게 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하는 게 어려운 거죠."

태양이처럼 호적이 없는 아이들은 이곳에만 17명에 이릅니다.

입양원은 갑작스런 입양법 시행에 정부에 호소도 해봤습니다.

<인터뷰>남혜경(성가정입양원 원장) : "(문제를) 예상을 하고 '새로운 입양법 발효를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을 했었고요.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 '이런 부분을 우리가 법원과 미리 상의해서 조치를 하겠다."

그러나 결국 법원의 판단은 요건을 갖추라는 것!

입양 기관은 그저 답답한 마음 뿐입니다.

<인터뷰>남혜경(성가정입양원 원장) : "최종적으로 입양이 되지 않으면 결국 보육시설로 가야겠죠. 우리가 흔히 고아원이라고 말하는..."

<인터뷰>이경은(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 과장) :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법률상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로 돼 있습니다. 친부모의 사생활 내지는 비밀과 관련해 어떤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아동의 입양제도를 다르게 만들어서 해결할 것이 아니고 가족관계등록에 관한 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 보호를 위한 법이 오히려 또 다른 인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10대 미혼모 : "진짜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키우는데요. 키울 수 없는 상황이니까 입양을 보내는 건데.."

<인터뷰>남혜경(성가정입양원 원장) : "과연 이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일까? 사회적 인식 여건 아래서 양부모도 어렵고 미혼모도 어렵고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어렵고.."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 우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