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에 채 담지 못한 자유분방함, 소설로 풀었죠”

입력 2013.02.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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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무국적 요리' 펴낸 루시드폴…4월 '목소리와 기타' 장기 공연

"처음부터 책 쓸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그냥 글 쓰는 게 좋았죠. 생각을 정리해 글로 남기지 않으면 뭔가 날아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한 편 두 편 쓰다 보니 어느새 책이 나왔네요."

언젠가 한 번쯤은 그가 노랫말이 아닌 '시(詩)'를 쓸 거로 생각했다. 아니, 소설이어도 좋겠다 싶었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선율로 '가요계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조윤석·38) 얘기다.

최근 소설집 '무국적요리'를 펴낸 루시드폴을 6일 신사동 안테나뮤직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고갈됐다, 한계가 왔다는 느낌이 들어 지난해엔 음악을 하지 않고 푹 쉬었다"면서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번역도 하며 지냈는데 남의 책을 읽다 보니 내 얘기도 쓰고 싶어지더라"며 웃었다.

"처음에는 시를 썼어요. 그냥 혼자서 노트에 생각나는 걸 적는 식이었죠. 소설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브라질 뮤지션 쉬쿠 부아르키(Chico Buarque)의 장편소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면서부터에요. 남의 소설을 자꾸 읽다 보니 내 소설도 써보고 싶더라고요.(웃음)"

초고는 딱 두 달 만에 완성했다. 8월 중순 쓰기 시작해 10월 중순 마무리를 지었다. 문제는 교정 작업이었다.

"수도 없이 교정했죠. 1월 중순까지 교정하고 또 교정했어요. 서간집(2009년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펴낸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때는 어땠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교정 작업이 간단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굉장했죠. 앨범 작업 덕에 '다시'란 말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루시드폴은 "교정을 할 때마다 글이 좋아진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뭔가 점점 내 글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묘했다"면서 "책이 인쇄소로 넘어간 날 출판사에서 책 다섯 부를 가져왔는데 하도 봐서 그런지 의외로 무덤덤하더라"며 웃었다.

'무국적 요리'에는 '탕' '똥' '기적의 물' '행성이다' 등 총 8편의 단편이 실렸다.

고향을 떠나 삭막한 도시로 온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묵직하게 그려낸 '탕', 우화의 틀을 빌린 풍자극 '똥', SF적인 요소가 가미된 '행성이다' 등 여덟 편의 단편은 모두 색깔이 다르다.

등장인물의 이름에선 국적을 짐작하기 어렵고 성별과 나이 역시 모호하다. 시간·장소 등 배경 역시 뚜렷하지 않다. 말 그대로 '무국적 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싶었어요. 또한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동·식물을 대등한 존재로 놓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죠. 국적이나 나이, 성별 등 뭔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순간 정치·사회적 의미가 생기기 시작하니까요."

'무국적 요리'라는 제목은 일본 여행 중 본 식당 이름에서 따왔다.

"작년 5월 교토를 여행하다 '무국적 요리'란 간판을 단 식당을 봤어요. 신선했죠. '정통' '원조'가 넘치는 판에 '무국적'이라니.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그는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요리는 '무국적' 아닌가. 모든 식재료와 조리 도구, 그리고 문화까지 원산지의 것을 쓸 수는 없으니…"라고 부연했다.

처음부터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은 아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결국 "다양성에 대한 존중, 공존"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단다.

"'다른 것에 대한 혐오 혹은 회피를 혐오하는' 소설이 된 것 같아요.(웃음) 획일적인 가치나 줄세우기에 대한 거부반응이랄까요. '다른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아니라, 실은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가사를 쓸 때와 차이점을 묻자 그는 한마디로 "자유롭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대중가요'라는 건 은근히 틀이 견고하거든요. 대중에 익숙한 형식이 정형화돼 있는 편이라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반면 소설은 형식도, 분량도 제약이 없죠. 멜로디의 제약도 없고. 근데 자유로워서 더 무서울 때도 있어요.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알아서 해야 하니까. '자유 출퇴근제'의 무서움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하."

'절친'으로 알려진 마종기 시인에게 소설을 보여줬는지 묻자 그는 "아직이다. 부끄러워 용기가 안 난다"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루시드폴은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계획이다. 시도 쓰겠지만 '시집'을 낼 용기까지는 아직 없고 만약 차기작을 낸다면 소설이 될 거라고 했다. 물론 소설도 '책'을 먼저 염두에 두기보다는 지금처럼 즐기면서 쓸 생각이라고 했다.

"음악이, 노래가 나한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고민 중이죠. 그런 답답함을 해소해준 게 글이에요. 글은 나를 표현하고, 정리하는 도구죠. 글을 쓰면 그걸 발판 삼아 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아지더라고요. 생각이 정리되니까요. 제 노래도 예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루시드폴은 오는 4월 2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화-일요일 종로2가의 복합 문화공간 반줄(Banjul)에서 공연을 펼친다. 2010년부터 매년 진행한 장기 공연 '목소리와 기타'를 올해도 하는 것. 올해 공연에는 '다른 당신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장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학전에서 계속 했는데 거기도 좋지만 좀 더 재밌는 장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번 공연장은 카페와 갤러리, 테라스까지 딸린 열린 공간이에요. 60-70개 정도 되는 의자의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죠. 각각 다른 의자에 앉아 다른 생각을 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겼으면 해서 '다른 당신들'이란 부제를 붙여봤어요."

'목소리와 기타'는 루시드폴의 목소리와 기타, 그리고 건반 연주만으로 채우는 담백한 공연. 셋리스트(연주 곡목)는 매일 바뀐다. 이 원칙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다만 좋은 계절에, 열린 공간에서 연주하는 만큼 올해는 관객도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루시드폴의 바람이다.

팬들이 고대하던 정규 6집은 가을께 나올 예정이다.

루시드폴은 "9월에 내고 공연을 길게 하는 게 목표"라면서 "새 음반은 전작과 비교하면 미니멀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의 목표를 물었다.

"음악적으로는 봄 공연 잘 끝내고, 좋은 곡 써서 9월에 음반 내고, 음반 발매 공연 잘하는 것 세 가지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글은…. 큰 욕심 없어요. 그냥 글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반은 아무래도 내고 나면 노심초사하게 되거든요.(웃음)"

그는 "올해는 음악과 글 이외에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일에 치여서 책 읽을 시간도, 글 쓸 여력도 없이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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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랫말에 채 담지 못한 자유분방함, 소설로 풀었죠”
    • 입력 2013-02-06 18:03:19
    연합뉴스
소설집 '무국적 요리' 펴낸 루시드폴…4월 '목소리와 기타' 장기 공연 "처음부터 책 쓸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그냥 글 쓰는 게 좋았죠. 생각을 정리해 글로 남기지 않으면 뭔가 날아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한 편 두 편 쓰다 보니 어느새 책이 나왔네요." 언젠가 한 번쯤은 그가 노랫말이 아닌 '시(詩)'를 쓸 거로 생각했다. 아니, 소설이어도 좋겠다 싶었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선율로 '가요계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조윤석·38) 얘기다. 최근 소설집 '무국적요리'를 펴낸 루시드폴을 6일 신사동 안테나뮤직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고갈됐다, 한계가 왔다는 느낌이 들어 지난해엔 음악을 하지 않고 푹 쉬었다"면서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번역도 하며 지냈는데 남의 책을 읽다 보니 내 얘기도 쓰고 싶어지더라"며 웃었다. "처음에는 시를 썼어요. 그냥 혼자서 노트에 생각나는 걸 적는 식이었죠. 소설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브라질 뮤지션 쉬쿠 부아르키(Chico Buarque)의 장편소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면서부터에요. 남의 소설을 자꾸 읽다 보니 내 소설도 써보고 싶더라고요.(웃음)" 초고는 딱 두 달 만에 완성했다. 8월 중순 쓰기 시작해 10월 중순 마무리를 지었다. 문제는 교정 작업이었다. "수도 없이 교정했죠. 1월 중순까지 교정하고 또 교정했어요. 서간집(2009년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펴낸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때는 어땠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교정 작업이 간단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굉장했죠. 앨범 작업 덕에 '다시'란 말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된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루시드폴은 "교정을 할 때마다 글이 좋아진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뭔가 점점 내 글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묘했다"면서 "책이 인쇄소로 넘어간 날 출판사에서 책 다섯 부를 가져왔는데 하도 봐서 그런지 의외로 무덤덤하더라"며 웃었다. '무국적 요리'에는 '탕' '똥' '기적의 물' '행성이다' 등 총 8편의 단편이 실렸다. 고향을 떠나 삭막한 도시로 온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묵직하게 그려낸 '탕', 우화의 틀을 빌린 풍자극 '똥', SF적인 요소가 가미된 '행성이다' 등 여덟 편의 단편은 모두 색깔이 다르다. 등장인물의 이름에선 국적을 짐작하기 어렵고 성별과 나이 역시 모호하다. 시간·장소 등 배경 역시 뚜렷하지 않다. 말 그대로 '무국적 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싶었어요. 또한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동·식물을 대등한 존재로 놓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죠. 국적이나 나이, 성별 등 뭔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순간 정치·사회적 의미가 생기기 시작하니까요." '무국적 요리'라는 제목은 일본 여행 중 본 식당 이름에서 따왔다. "작년 5월 교토를 여행하다 '무국적 요리'란 간판을 단 식당을 봤어요. 신선했죠. '정통' '원조'가 넘치는 판에 '무국적'이라니.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그는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요리는 '무국적' 아닌가. 모든 식재료와 조리 도구, 그리고 문화까지 원산지의 것을 쓸 수는 없으니…"라고 부연했다. 처음부터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은 아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결국 "다양성에 대한 존중, 공존"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단다. "'다른 것에 대한 혐오 혹은 회피를 혐오하는' 소설이 된 것 같아요.(웃음) 획일적인 가치나 줄세우기에 대한 거부반응이랄까요. '다른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아니라, 실은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가사를 쓸 때와 차이점을 묻자 그는 한마디로 "자유롭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대중가요'라는 건 은근히 틀이 견고하거든요. 대중에 익숙한 형식이 정형화돼 있는 편이라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반면 소설은 형식도, 분량도 제약이 없죠. 멜로디의 제약도 없고. 근데 자유로워서 더 무서울 때도 있어요.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알아서 해야 하니까. '자유 출퇴근제'의 무서움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하." '절친'으로 알려진 마종기 시인에게 소설을 보여줬는지 묻자 그는 "아직이다. 부끄러워 용기가 안 난다"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루시드폴은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계획이다. 시도 쓰겠지만 '시집'을 낼 용기까지는 아직 없고 만약 차기작을 낸다면 소설이 될 거라고 했다. 물론 소설도 '책'을 먼저 염두에 두기보다는 지금처럼 즐기면서 쓸 생각이라고 했다. "음악이, 노래가 나한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고민 중이죠. 그런 답답함을 해소해준 게 글이에요. 글은 나를 표현하고, 정리하는 도구죠. 글을 쓰면 그걸 발판 삼아 할 수 있는 일이 되게 많아지더라고요. 생각이 정리되니까요. 제 노래도 예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루시드폴은 오는 4월 2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화-일요일 종로2가의 복합 문화공간 반줄(Banjul)에서 공연을 펼친다. 2010년부터 매년 진행한 장기 공연 '목소리와 기타'를 올해도 하는 것. 올해 공연에는 '다른 당신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장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학전에서 계속 했는데 거기도 좋지만 좀 더 재밌는 장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번 공연장은 카페와 갤러리, 테라스까지 딸린 열린 공간이에요. 60-70개 정도 되는 의자의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죠. 각각 다른 의자에 앉아 다른 생각을 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겼으면 해서 '다른 당신들'이란 부제를 붙여봤어요." '목소리와 기타'는 루시드폴의 목소리와 기타, 그리고 건반 연주만으로 채우는 담백한 공연. 셋리스트(연주 곡목)는 매일 바뀐다. 이 원칙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다만 좋은 계절에, 열린 공간에서 연주하는 만큼 올해는 관객도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루시드폴의 바람이다. 팬들이 고대하던 정규 6집은 가을께 나올 예정이다. 루시드폴은 "9월에 내고 공연을 길게 하는 게 목표"라면서 "새 음반은 전작과 비교하면 미니멀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의 목표를 물었다. "음악적으로는 봄 공연 잘 끝내고, 좋은 곡 써서 9월에 음반 내고, 음반 발매 공연 잘하는 것 세 가지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글은…. 큰 욕심 없어요. 그냥 글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반은 아무래도 내고 나면 노심초사하게 되거든요.(웃음)" 그는 "올해는 음악과 글 이외에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일에 치여서 책 읽을 시간도, 글 쓸 여력도 없이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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