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생전에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입력 2013.02.26 (08:42) 수정 2013.02.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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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상살이가 각박해질수록 따뜻한 사람관계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가슴 속에 남아있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참 행복한 인생일 겁니다.

그리운 친구나 스승들,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오르시죠.

오래도록 연락이 끊긴 분들은 한 번 찾아볼까 마음도 드실 겁니다.

오늘 주인공도 소중한 인연을 찾기 위해서 60년 만에 나섰습니다.

양영은 기자, 이 인연이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요?

<기자 멘트>

네,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 미군과 그가 도왔던 어느 한국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연말 국가보훈처로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편지 한 통이 왔는데요...

"어느 겨울 밤, 추위를 뚫고 한 모녀가 막사를 찾아왔습니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딸을 도와달라고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는데요. 의연하게 견딘 소녀와 어머니의 절절한 모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미군의 간청과 노력 덕분에 소녀는 막사에서만 치료를 받다 헬기로 당시 부산의 미군 병원에 이송돼 화상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리포트>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낳는 전쟁, 60여 년 전 우리는 그 아픔을 겪어야 했는데요.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힘겨웠던 시절에도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녹취> 리처드 캐드월러더(82/한국전쟁 미 참전군/미국 애리조나) : “저는 리처드 캐드월러더입니다. 한국전쟁당시 미 공군에 복무했습니다. 제 이야기의 진정한 영웅은 바로 그 소녀입니다. 그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게는 영광일 것입니다. 분명 멋진 여인으로 성장했을 그 소녀를 찾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몸 여기저기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도 단 한 번도 아프단 소리 없이 치료를 마친 한 소녀.

그 소녀는 한 미 참전군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60년 뒤!

그 미군은 바로 그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섰는데요.

과연, 리처드 씨가 평생토록 그리워 한 한국 소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화제의 주인공을 찾아가 봤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

<녹취> “들어오세요”

<녹취> “리처드 씨를 알고 계신가요?”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알죠. 제가 미국 아버지라고 했는데”

지금은 70대가 된 그 소녀 역시 리처드 씨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이 기사를) 밤이나 낮이나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

자신을 애타게 찾는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이 사진은 옛날에 어렸을 때 (불에) 뎄을 때, 이건 리처드 씨, 골원리(매향리)에 계셨을 때”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이분이 저를 찾을 줄은 몰랐어요. 은인이 (거꾸로) 나를 찾다니, 나는 그럼 뭐가 돼요.”

리처드 씨가 한국을 찾은 건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김연순씨와의 인연은 그해 겨울 시작됐습니다.

불을 피우다 휘발유통이 폭발해 얼굴과 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8킬로미터 밤길을 걸어 미군 부대를 찾아왔습니다.

감염 우려로,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했던 소녀.

그녀를 위해 리처드 씨가 나섰고, 소녀는 부산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우연히.......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리처드 씨가) 트럭 타고 가시다가 저를 보고 내리시더라고요. 만나서 얘기했죠. 나 이렇게 고쳐서 나았다고. 그러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것이 (리처드 씨와의) 마지막이에요.”

<녹취>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녹취> 박용준(김연순 씨의 아들) : “마음이 짠했었죠. 저희 어머니 은인이시기 때문에 한번 뵙고 싶습니다. ”

만약 그 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연순 씨는 지금처럼 다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화상 치료 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 온 그녀.

리처드 씨와의 인연은 그녀에게도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60년 세월을 넘어 다시 이어지게 된 이 둘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이 된 것인지 궁금하시죠?

지난 12월, 국가 보훈처에 한 통의 편지가 왔는데요.

<녹취> 최정식(국가보훈처) : “(리처드 캐드월러더 씨가 김연순 씨를 찾아달라고)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요청을 해 왔습니다. 수원 인근 매향리라는 지역과 당시 본인이 부산까지 헬기로 수송했다는 특이한 사례, 그리고 화상을 심하게 입었다는 사실, 세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만들어 국민에게 알려 드렸고요. (김연순 씨를 찾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습니다.“

이후 김연순 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캠페인까지 벌인 국가 보훈처.

그러면서 한 신문에 리처드 씨의 사연이 소개되며 결정적인 제보가 왔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드디어 찾게 된 김연순 씨.

김 씨는 오늘 특별한 곳을 찾았습니다.

60년 전 어머니의 등에 업혀 치료를 받으러 왔던 미군 부대가 있던 바로 그곳인데요,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또 있습니다.

<녹취> “이곳이 군부대 지역이었나요?”

<녹취> 백완기(74/당시 통역을 했던 주민) : “그렇죠. 헬기가 저쪽에 착륙했었어요. 그쪽에서 태워서 호송을 보냈다고요.”

60년 전 소녀는 어느새 고운 할머니가 되어 다시 옛 길을 걷습니다.

<녹취> “이곳이 기억나세요?”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기억)하지요. 그런데 부대는 없어졌네요. 부대만 없어졌지 이곳입니다. 이곳을 우리 어머니가 저를 업고 왔어요. 그래서 막사 문을 두드리니까 미국 아버지가 문을 열었죠.”

미국 아버지, 리처드 씨도 그녀가 그립긴 마찬가집니다.

<녹취> 리처드 캐드월러더(82/한국전쟁 미 참전군/미국 애리조나) : “그 소녀가 지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가 김연순 씨와 백완기 씨에 대해 준 모든 정보를 토대로 검증 작업을 세심하게 한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연순. 보고 싶었습니다, 곧 만나요.”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보고 싶어요. 저를 고쳐준 저의 은인이니까요. 날이 더 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잠도 안 오고 그래요. 마음이 들뜬 사람처럼.”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만남 중에 평생을 두고 ‘보고 싶다. 고맙다’ 고 말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인연, 우리는 얼마나 만들어 가고 있을까요?

얼마 뒤 있을 두 사람의 특별한 만남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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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포착] “생전에 꼭 다시 만나고 싶어요”
    • 입력 2013-02-26 08:39:12
    • 수정2013-02-26 10: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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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상살이가 각박해질수록 따뜻한 사람관계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가슴 속에 남아있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참 행복한 인생일 겁니다. 그리운 친구나 스승들,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오르시죠. 오래도록 연락이 끊긴 분들은 한 번 찾아볼까 마음도 드실 겁니다. 오늘 주인공도 소중한 인연을 찾기 위해서 60년 만에 나섰습니다. 양영은 기자, 이 인연이 6.25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서요? <기자 멘트> 네,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 미군과 그가 도왔던 어느 한국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연말 국가보훈처로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편지 한 통이 왔는데요... "어느 겨울 밤, 추위를 뚫고 한 모녀가 막사를 찾아왔습니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딸을 도와달라고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는데요. 의연하게 견딘 소녀와 어머니의 절절한 모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미군의 간청과 노력 덕분에 소녀는 막사에서만 치료를 받다 헬기로 당시 부산의 미군 병원에 이송돼 화상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리포트>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낳는 전쟁, 60여 년 전 우리는 그 아픔을 겪어야 했는데요.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힘겨웠던 시절에도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녹취> 리처드 캐드월러더(82/한국전쟁 미 참전군/미국 애리조나) : “저는 리처드 캐드월러더입니다. 한국전쟁당시 미 공군에 복무했습니다. 제 이야기의 진정한 영웅은 바로 그 소녀입니다. 그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제게는 영광일 것입니다. 분명 멋진 여인으로 성장했을 그 소녀를 찾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몸 여기저기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도 단 한 번도 아프단 소리 없이 치료를 마친 한 소녀. 그 소녀는 한 미 참전군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60년 뒤! 그 미군은 바로 그 소녀를 찾기 위해 나섰는데요. 과연, 리처드 씨가 평생토록 그리워 한 한국 소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화제의 주인공을 찾아가 봤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 <녹취> “들어오세요” <녹취> “리처드 씨를 알고 계신가요?”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알죠. 제가 미국 아버지라고 했는데” 지금은 70대가 된 그 소녀 역시 리처드 씨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이 기사를) 밤이나 낮이나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 자신을 애타게 찾는다는 소식도 들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이 사진은 옛날에 어렸을 때 (불에) 뎄을 때, 이건 리처드 씨, 골원리(매향리)에 계셨을 때”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이분이 저를 찾을 줄은 몰랐어요. 은인이 (거꾸로) 나를 찾다니, 나는 그럼 뭐가 돼요.” 리처드 씨가 한국을 찾은 건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김연순씨와의 인연은 그해 겨울 시작됐습니다. 불을 피우다 휘발유통이 폭발해 얼굴과 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8킬로미터 밤길을 걸어 미군 부대를 찾아왔습니다. 감염 우려로,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했던 소녀. 그녀를 위해 리처드 씨가 나섰고, 소녀는 부산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우연히.......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리처드 씨가) 트럭 타고 가시다가 저를 보고 내리시더라고요. 만나서 얘기했죠. 나 이렇게 고쳐서 나았다고. 그러니까 좋아하시더라고요. 그것이 (리처드 씨와의) 마지막이에요.” <녹취>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녹취> 박용준(김연순 씨의 아들) : “마음이 짠했었죠. 저희 어머니 은인이시기 때문에 한번 뵙고 싶습니다. ” 만약 그 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연순 씨는 지금처럼 다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화상 치료 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 온 그녀. 리처드 씨와의 인연은 그녀에게도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60년 세월을 넘어 다시 이어지게 된 이 둘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이 된 것인지 궁금하시죠? 지난 12월, 국가 보훈처에 한 통의 편지가 왔는데요. <녹취> 최정식(국가보훈처) : “(리처드 캐드월러더 씨가 김연순 씨를 찾아달라고)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요청을 해 왔습니다. 수원 인근 매향리라는 지역과 당시 본인이 부산까지 헬기로 수송했다는 특이한 사례, 그리고 화상을 심하게 입었다는 사실, 세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쉽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만들어 국민에게 알려 드렸고요. (김연순 씨를 찾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습니다.“ 이후 김연순 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캠페인까지 벌인 국가 보훈처. 그러면서 한 신문에 리처드 씨의 사연이 소개되며 결정적인 제보가 왔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드디어 찾게 된 김연순 씨. 김 씨는 오늘 특별한 곳을 찾았습니다. 60년 전 어머니의 등에 업혀 치료를 받으러 왔던 미군 부대가 있던 바로 그곳인데요,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또 있습니다. <녹취> “이곳이 군부대 지역이었나요?” <녹취> 백완기(74/당시 통역을 했던 주민) : “그렇죠. 헬기가 저쪽에 착륙했었어요. 그쪽에서 태워서 호송을 보냈다고요.” 60년 전 소녀는 어느새 고운 할머니가 되어 다시 옛 길을 걷습니다. <녹취> “이곳이 기억나세요?”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기억)하지요. 그런데 부대는 없어졌네요. 부대만 없어졌지 이곳입니다. 이곳을 우리 어머니가 저를 업고 왔어요. 그래서 막사 문을 두드리니까 미국 아버지가 문을 열었죠.” 미국 아버지, 리처드 씨도 그녀가 그립긴 마찬가집니다. <녹취> 리처드 캐드월러더(82/한국전쟁 미 참전군/미국 애리조나) : “그 소녀가 지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가 김연순 씨와 백완기 씨에 대해 준 모든 정보를 토대로 검증 작업을 세심하게 한 것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연순. 보고 싶었습니다, 곧 만나요.” <녹취> 김연순(72/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 “보고 싶어요. 저를 고쳐준 저의 은인이니까요. 날이 더 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요. 잠도 안 오고 그래요. 마음이 들뜬 사람처럼.”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만남 중에 평생을 두고 ‘보고 싶다. 고맙다’ 고 말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인연, 우리는 얼마나 만들어 가고 있을까요? 얼마 뒤 있을 두 사람의 특별한 만남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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