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기부 천사 ‘호박죽 아줌마’

입력 2013.03.20 (08:41) 수정 2013.03.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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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요즘 서울 공릉동에서 작은 호박죽 노점 하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요.

싼값에 맛도 좋지만 이 죽이 더 특별한 이유가 있죠?

바로 생명을 살리는 죽이기 때문인데요.

수익금은 모두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후원하는데 쓴다고 합니다.

엄마 같은 푸근한 인심과 손맛에, 이웃사랑까지 담은 따뜻한 호박죽 이야기 들어보시죠.

양영은 기자, 호박죽 아줌마 김미자 씨를 만나고 오셨다고요?

<기자 멘트>

네, 요 며칠 새 유명인이 되어 버린 '공릉동 호박죽 아주머니'를 취재진이 만났습니다.

이분은 오전에는 서울 신내동의 서울의료원 앞에서 장사를 하시고요.

오후에는 공릉2동 주민센터 앞에서 죽을 팔고 계신데요.

죽을 팔아서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구호단체에 한 달에 얼마씩 기부를 하는 후원자 정도였는데, 꿈이 생기고 나서는 돈을 모으려고 노점까지 차렸습니다.

이 분이 왜 이렇게 나서게 됐는지도 궁금하시죠?

죽 쒀서 남 주는 호박죽 아줌마를 지금 만나봅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네팔에서, 캄보디아에서, 대한민국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배고팠던 이 아이들이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된데는 김미자 아주머니의 헌신이 있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굶는 아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김미자 씨의 '꿈꾸는 호박죽'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오전 여덟시.

김미자 씨는 아침부터 바쁩니다.

호박죽 한 솥과 팥죽 한 솥을 가지고 김 씨는 거의 매일 이 자리에 나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생명의 호박죽이죠. 사람을 살리는 호박죽. 호박죽 이익금이 전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후원금으로 가기 때문에 (팔고 있어요.)"

장사를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채 안 됐지만 벌써 단골도 꽤 많은데요.

1년 전 이맘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TV 보면 아프리카 아이들 추워서 배고파서 병들어서 죽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저 아이들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2천만 원 정도 모아서 학교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녹취> 남(손님) : "진짜 맛있다!"

매일 매일이 즐겁고 보람됩니다.

<녹취> 안혜숙(서울시 공릉동) : "이런 분이 계시니까 어려운 이웃들이 더 따뜻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씨는 원래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요.

그래도 길에서 죽을 팔겠다고 하니 처음엔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고요.

지금은 남편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새벽에 쑨 호박죽과 팥죽은 오전이면 동이 나는데요.

잠시 집에 온 김 씨는 오후 장사를 위해 또 솥 한 가득 죽을 끓입니다.

새알심 담당은 남편 몫인데요.

<녹취> 최지훈(김미자 씨 남편) : "이 사람은 일을 설렁설렁, 꼼꼼하지도 않은데 나는 섬세하게 (하죠.)"

죽 파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세계지도를 보며 굶주린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녹취> 최지훈(김미자 씨 남편) : "아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니까 더 보기 좋죠. (저는) 권해요."

김미자 씨의 아이들은 배 아파 낳은 자녀 둘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후원 아동들까지 10명이 넘는데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세상이 참 좋아져서 이렇게 편지, 사진도 (받고) 인터넷을 통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그래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주위의 아이처럼 느껴져요."

서툰 한글로 사랑한다고 써 보내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떠올리며 미자 씨는 오늘도 호박죽 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섭니다.

실은 김 씨에게도 아주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보증을 잘못 서서 빚더미에 앉았을 때 이웃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고, 그때부터 '베푸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고요.

날은 춥고 저녁시간은 훌쩍 지났습니다.

<녹취> "너무 추운데 이제 들어가시면 안 돼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두 사람 더 와야 해요."

<녹취> "기다리시는 거예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네"

미자씨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늘 이 시간이면 노점 앞을 지나는 폐지 할머니입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따뜻할 때 가져가서 잡숴요."

<녹취> 김성자(70세/서울시 공릉동) : "매일 얻어먹어서 어떡해. 감사합니다."

<녹취> "자주 주시나 봐요?"

<녹취> 김성자(70세/서울시 공릉동) : "이렇게 늦게 지나갈 때 가끔 (팥죽이나) 호박죽도 줘요. 매일 얻어먹기만 하니까 미안해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따뜻할 때 가서 드세요."

<녹취> 김성자(70세/서울시 공릉동) : "네, 잘 먹겠습니다."

김미자 씨의 호박죽 수레가 다시 한 번 화기애애해지는데요.

또 다른 단골손님이 있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가서 드세요."

<녹취> 시민 : "네 감사합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나중에 또 많이 줄게요. 잘 가요."

<녹취> "이렇게 나눠주니까 즐거우신가 봐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좋죠. 밝은 모습이 정말 예쁘잖아요. (호박죽을) 줬다고 왔다 갔다 하는 길에 항상 인사를 잘해요."

정말 즐거워보이죠?

그날 번 돈을 한시라도 빨리 후원금 통장에 넣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발걸음이 급합니다.

이렇게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지난 1월에는 탄자니아에 500만 원과 전자피아노 두 대를 보냈는데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길거리에서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은 아주 많은 돈이잖아요. "

<녹취> "기분 좋으신가 보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기분 좋죠.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싶어요.) 제가 한다고 해서 얼마나 보탬이 되겠어요. 그렇지만 이걸 하는 한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어요."

내가 버는 몇 만원이 어린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김미자 아주머니,

'꿈꾸는 호박죽' 수레는 그래서 아프리카에 학교를 선물하는 그날까지,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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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포착] 기부 천사 ‘호박죽 아줌마’
    • 입력 2013-03-20 08:42:48
    • 수정2013-03-20 08: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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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요즘 서울 공릉동에서 작은 호박죽 노점 하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요.

싼값에 맛도 좋지만 이 죽이 더 특별한 이유가 있죠?

바로 생명을 살리는 죽이기 때문인데요.

수익금은 모두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후원하는데 쓴다고 합니다.

엄마 같은 푸근한 인심과 손맛에, 이웃사랑까지 담은 따뜻한 호박죽 이야기 들어보시죠.

양영은 기자, 호박죽 아줌마 김미자 씨를 만나고 오셨다고요?

<기자 멘트>

네, 요 며칠 새 유명인이 되어 버린 '공릉동 호박죽 아주머니'를 취재진이 만났습니다.

이분은 오전에는 서울 신내동의 서울의료원 앞에서 장사를 하시고요.

오후에는 공릉2동 주민센터 앞에서 죽을 팔고 계신데요.

죽을 팔아서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구호단체에 한 달에 얼마씩 기부를 하는 후원자 정도였는데, 꿈이 생기고 나서는 돈을 모으려고 노점까지 차렸습니다.

이 분이 왜 이렇게 나서게 됐는지도 궁금하시죠?

죽 쒀서 남 주는 호박죽 아줌마를 지금 만나봅니다.

<리포트>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네팔에서, 캄보디아에서, 대한민국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

배고팠던 이 아이들이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된데는 김미자 아주머니의 헌신이 있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굶는 아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김미자 씨의 '꿈꾸는 호박죽'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오전 여덟시.

김미자 씨는 아침부터 바쁩니다.

호박죽 한 솥과 팥죽 한 솥을 가지고 김 씨는 거의 매일 이 자리에 나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생명의 호박죽이죠. 사람을 살리는 호박죽. 호박죽 이익금이 전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후원금으로 가기 때문에 (팔고 있어요.)"

장사를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채 안 됐지만 벌써 단골도 꽤 많은데요.

1년 전 이맘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TV 보면 아프리카 아이들 추워서 배고파서 병들어서 죽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저 아이들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2천만 원 정도 모아서 학교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녹취> 남(손님) : "진짜 맛있다!"

매일 매일이 즐겁고 보람됩니다.

<녹취> 안혜숙(서울시 공릉동) : "이런 분이 계시니까 어려운 이웃들이 더 따뜻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김 씨는 원래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었는데요.

그래도 길에서 죽을 팔겠다고 하니 처음엔 가족들의 반대도 심했다고요.

지금은 남편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새벽에 쑨 호박죽과 팥죽은 오전이면 동이 나는데요.

잠시 집에 온 김 씨는 오후 장사를 위해 또 솥 한 가득 죽을 끓입니다.

새알심 담당은 남편 몫인데요.

<녹취> 최지훈(김미자 씨 남편) : "이 사람은 일을 설렁설렁, 꼼꼼하지도 않은데 나는 섬세하게 (하죠.)"

죽 파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세계지도를 보며 굶주린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녹취> 최지훈(김미자 씨 남편) : "아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니까 더 보기 좋죠. (저는) 권해요."

김미자 씨의 아이들은 배 아파 낳은 자녀 둘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후원 아동들까지 10명이 넘는데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세상이 참 좋아져서 이렇게 편지, 사진도 (받고) 인터넷을 통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그래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주위의 아이처럼 느껴져요."

서툰 한글로 사랑한다고 써 보내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떠올리며 미자 씨는 오늘도 호박죽 수레를 끌고 거리로 나섭니다.

실은 김 씨에게도 아주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보증을 잘못 서서 빚더미에 앉았을 때 이웃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고, 그때부터 '베푸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게 됐다고요.

날은 춥고 저녁시간은 훌쩍 지났습니다.

<녹취> "너무 추운데 이제 들어가시면 안 돼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두 사람 더 와야 해요."

<녹취> "기다리시는 거예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네"

미자씨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늘 이 시간이면 노점 앞을 지나는 폐지 할머니입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따뜻할 때 가져가서 잡숴요."

<녹취> 김성자(70세/서울시 공릉동) : "매일 얻어먹어서 어떡해. 감사합니다."

<녹취> "자주 주시나 봐요?"

<녹취> 김성자(70세/서울시 공릉동) : "이렇게 늦게 지나갈 때 가끔 (팥죽이나) 호박죽도 줘요. 매일 얻어먹기만 하니까 미안해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따뜻할 때 가서 드세요."

<녹취> 김성자(70세/서울시 공릉동) : "네, 잘 먹겠습니다."

김미자 씨의 호박죽 수레가 다시 한 번 화기애애해지는데요.

또 다른 단골손님이 있습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가서 드세요."

<녹취> 시민 : "네 감사합니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나중에 또 많이 줄게요. 잘 가요."

<녹취> "이렇게 나눠주니까 즐거우신가 봐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좋죠. 밝은 모습이 정말 예쁘잖아요. (호박죽을) 줬다고 왔다 갔다 하는 길에 항상 인사를 잘해요."

정말 즐거워보이죠?

그날 번 돈을 한시라도 빨리 후원금 통장에 넣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발걸음이 급합니다.

이렇게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지난 1월에는 탄자니아에 500만 원과 전자피아노 두 대를 보냈는데요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길거리에서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은 아주 많은 돈이잖아요. "

<녹취> "기분 좋으신가 보다."

<녹취> 김미자(서울시 공릉동) : "기분 좋죠. 아이들을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싶어요.) 제가 한다고 해서 얼마나 보탬이 되겠어요. 그렇지만 이걸 하는 한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어요."

내가 버는 몇 만원이 어린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김미자 아주머니,

'꿈꾸는 호박죽' 수레는 그래서 아프리카에 학교를 선물하는 그날까지,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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