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4 이슈] ‘죽음의 노동’에 내몰린 사람들

입력 2013.05.03 (00:11) 수정 2013.05.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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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옷장에 걸려 있는 옷 가운데, 국내에서 만들어진 건 얼마나 되나요?

옷 중에 혹시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제품은 없나요?

방글라데시... 세계 최빈국이면서 의류산업 말고는 변변한 산업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 곳에서 얼마 전 의류공장 건물 붕괴 사고가 났다는 건 다들 아실텐데요,

사망자는 4백 명을 넘었고 아직도 수 백 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이윤 지상주의가 부른 참극의 이면을 국제부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재강 기자,

<질문> 사고 현장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답변>

네, 지난 24일 아침에 건물이 무너졌으니까, 일주일 남짓 됐는데요, 구조대원들이 중장비로 잔해를 치워가며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 소식은 끊어졌고, 시신만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천명 정도가 구조된 가운데, 확인된 사망자는 4백 여명, 그리고 수 백 명이 여전히 잔해 더미에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몰려나와 손에 손에 사진을 들고 구조 소식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지 못한 아이들, 딸과 자매를 기다리는 가족들, 그야말로 눈물겨운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실종자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질문> 건물 붕괴 조짐이 이미 나타났지만,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안전의식이 없다 해도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답변>

방글라데시에서는 안전의식이 전반적으로 낮고 사고도 자주 일어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또다른 요인 하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붕괴된 건물에 입주해 있던 의류공장 5곳이 모두 외국 업체와 계약을 맺고 수출용 옷을 만들던 공장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하청 업체의 입장에서는 납기일을 지키는 게 아주 중요한데요,

이 때문에 붕괴 위험에도 사업주가 직원들에게 작업을 강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생존한 노동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그럼 여기서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방글라데시는 RMG라고 불리는 봉제의류의 세계적 강국인데요,

한 해 수출 규모가 약 190억 달러입니다.

국가 전체 수출에서 77%를 점유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구요,

수출의 80%는 유럽과 미국 시장으로 나갑니다.

고용인원은 약 4백 만명으로 농업을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입니다.

<질문> 국가기간산업이라 해도 손색 없는 수준인데, 이렇게 주축 산업으로 성장한 주요인은 역시 저임금 노동력이라고 해야겠죠?

<답변>

그렇습니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 중 80%가 여자인데요,

이들이 받는 급여는 한 달에 40달러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임금 치고도 아주 낮은데요,

그럴 듯한 말로 하면 가격경쟁력이겠지만, 실제로는 착취 수준이라고 해야겠죠.

여기에 사업주들은 공장 건물을 날림으로 짓고, 좁은 공간에 많은 노동자를 집어 넣고, 환기장치나 전등처럼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시설도 최소화합니다.

이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용을 줄여 이른바 원가경쟁력을 확보해야, 자사의 제품을 구매해줄 유럽이나 미국 업체와 계약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방글라데시에는 수출에 목매는 의류공장이 약 5천5백 개입니다.

또 저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예비노동자들이 해마다 수 십만명 씩 도시로 몰려듭니다.

구매력으로 무장한 소수의 외국기업이 우월한 지위를 갖는 구조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구조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섬유.의류 수출이 강한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질문>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의 내막을 살펴보니까, 서방의 외국 업체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겠군요?

<답변>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외국 업체들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터무니없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덕을 본 건 사실이니까요.

사진을 한 장 준비했는데 보실까요.

파키스탄의 12살 소년이 하루 60센트를 받고 나이키 축구공을 만드는 장면인데요, 1996년 공개된 이 사진을 계기로 글로벌기업의 도덕성이 크게 문제가 됐었죠...

그 후 17년, 뭐가 달라졌을까요.

오히려 자본력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저개발국 노동자의 가혹하고도 값싼 노동에 의존하는 경향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의류공장의 옷은 영국과 스페인, 캐나다 업체들이 납품받아 온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일부 업체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나아가, 어둡고 좁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섬유 먼지를 마셔가며 만든 옷을, 먹고 살만한 외국 사람들이 사 입는다는 점에서, 소비자도 이들의 죽음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인터뷰>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번 사고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인류를 향한 엄중한 촉구를 들어보시죠.

<녹취>

<질문> 사업주야 이윤에 눈이 어두워 노동자의 안전이나 복지에 무관심하다 해도, 정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답변>

앞서 박 앵커가 소개한 것처럼,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의 핵심 기간산업입니다.

그래선지, 성장, 수출, 외화획득 이런 논리에 가려,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은 거론조차 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그간 의류공장에서 여러차례 사고가 났지만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서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아가, 의류업계의 주요 사업주들은 이미 정계에 진출해 커넥션을 형성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건물의 주인도 집권당 소속인데요,

뭐 믿는 게 있었는지 불법으로 건물 층수를 늘렸는가 하면, 관계 당국의 붕괴 경고도 무시했습니다.

사업주는 지난 28일 인도로 몰래 도망치려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외국 업체와 사업적으로 연결된 사업주, 철저하게 외국 기업과 사업주 편에 서는 정부, 얽히고 설킨 기득권 세력들 간의 부패커넥션, 이런 구조 속에서 배우지 못하고, 조직되지 못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처지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런 암울함은 '죽음의 노동'에 내몰린 모든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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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24 이슈] ‘죽음의 노동’에 내몰린 사람들
    • 입력 2013-05-03 07:05:38
    • 수정2013-05-03 09:24:42
    글로벌24
<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옷장에 걸려 있는 옷 가운데, 국내에서 만들어진 건 얼마나 되나요?

옷 중에 혹시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제품은 없나요?

방글라데시... 세계 최빈국이면서 의류산업 말고는 변변한 산업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 곳에서 얼마 전 의류공장 건물 붕괴 사고가 났다는 건 다들 아실텐데요,

사망자는 4백 명을 넘었고 아직도 수 백 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이윤 지상주의가 부른 참극의 이면을 국제부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재강 기자,

<질문> 사고 현장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답변>

네, 지난 24일 아침에 건물이 무너졌으니까, 일주일 남짓 됐는데요, 구조대원들이 중장비로 잔해를 치워가며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 소식은 끊어졌고, 시신만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천명 정도가 구조된 가운데, 확인된 사망자는 4백 여명, 그리고 수 백 명이 여전히 잔해 더미에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몰려나와 손에 손에 사진을 들고 구조 소식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지 못한 아이들, 딸과 자매를 기다리는 가족들, 그야말로 눈물겨운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실종자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질문> 건물 붕괴 조짐이 이미 나타났지만,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안전의식이 없다 해도 도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답변>

방글라데시에서는 안전의식이 전반적으로 낮고 사고도 자주 일어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또다른 요인 하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붕괴된 건물에 입주해 있던 의류공장 5곳이 모두 외국 업체와 계약을 맺고 수출용 옷을 만들던 공장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하청 업체의 입장에서는 납기일을 지키는 게 아주 중요한데요,

이 때문에 붕괴 위험에도 사업주가 직원들에게 작업을 강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생존한 노동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그럼 여기서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방글라데시는 RMG라고 불리는 봉제의류의 세계적 강국인데요,

한 해 수출 규모가 약 190억 달러입니다.

국가 전체 수출에서 77%를 점유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구요,

수출의 80%는 유럽과 미국 시장으로 나갑니다.

고용인원은 약 4백 만명으로 농업을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입니다.

<질문> 국가기간산업이라 해도 손색 없는 수준인데, 이렇게 주축 산업으로 성장한 주요인은 역시 저임금 노동력이라고 해야겠죠?

<답변>

그렇습니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 중 80%가 여자인데요,

이들이 받는 급여는 한 달에 40달러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임금 치고도 아주 낮은데요,

그럴 듯한 말로 하면 가격경쟁력이겠지만, 실제로는 착취 수준이라고 해야겠죠.

여기에 사업주들은 공장 건물을 날림으로 짓고, 좁은 공간에 많은 노동자를 집어 넣고, 환기장치나 전등처럼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시설도 최소화합니다.

이렇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용을 줄여 이른바 원가경쟁력을 확보해야, 자사의 제품을 구매해줄 유럽이나 미국 업체와 계약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방글라데시에는 수출에 목매는 의류공장이 약 5천5백 개입니다.

또 저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예비노동자들이 해마다 수 십만명 씩 도시로 몰려듭니다.

구매력으로 무장한 소수의 외국기업이 우월한 지위를 갖는 구조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구조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섬유.의류 수출이 강한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질문> 방글라데시 의류 산업의 내막을 살펴보니까, 서방의 외국 업체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겠군요?

<답변>

그렇게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외국 업체들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터무니없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덕을 본 건 사실이니까요.

사진을 한 장 준비했는데 보실까요.

파키스탄의 12살 소년이 하루 60센트를 받고 나이키 축구공을 만드는 장면인데요, 1996년 공개된 이 사진을 계기로 글로벌기업의 도덕성이 크게 문제가 됐었죠...

그 후 17년, 뭐가 달라졌을까요.

오히려 자본력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저개발국 노동자의 가혹하고도 값싼 노동에 의존하는 경향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의류공장의 옷은 영국과 스페인, 캐나다 업체들이 납품받아 온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일부 업체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나아가, 어둡고 좁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섬유 먼지를 마셔가며 만든 옷을, 먹고 살만한 외국 사람들이 사 입는다는 점에서, 소비자도 이들의 죽음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인터뷰>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번 사고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인류를 향한 엄중한 촉구를 들어보시죠.

<녹취>

<질문> 사업주야 이윤에 눈이 어두워 노동자의 안전이나 복지에 무관심하다 해도, 정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답변>

앞서 박 앵커가 소개한 것처럼,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의 핵심 기간산업입니다.

그래선지, 성장, 수출, 외화획득 이런 논리에 가려,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은 거론조차 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그간 의류공장에서 여러차례 사고가 났지만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해서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아가, 의류업계의 주요 사업주들은 이미 정계에 진출해 커넥션을 형성했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건물의 주인도 집권당 소속인데요,

뭐 믿는 게 있었는지 불법으로 건물 층수를 늘렸는가 하면, 관계 당국의 붕괴 경고도 무시했습니다.

사업주는 지난 28일 인도로 몰래 도망치려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외국 업체와 사업적으로 연결된 사업주, 철저하게 외국 기업과 사업주 편에 서는 정부, 얽히고 설킨 기득권 세력들 간의 부패커넥션, 이런 구조 속에서 배우지 못하고, 조직되지 못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처지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런 암울함은 '죽음의 노동'에 내몰린 모든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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