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탈을 쓴 악마

입력 2013.06.21 (22:50) 수정 2013.06.2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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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담한 집.

엄마 그리고 아빠.

가정이라는 이름의 품안에서 아이는 자랐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시련이 닥쳐도 아이는 그 울타리가 자신을 지켜주리란 믿음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평범한 기대는 한순간 무너졌습니다.

<인터뷰> "술을 안 먹으면 성폭행, 술을 먹으면 그냥 폭행 말하면 언니나 저나 엄마나 다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했고.."

아빠의 성폭행에 지쳐갔지만 추악한 범죄는 또 다른 폭력에 가려졌습니다.

<인터뷰> "죄를 진 것 같아요. 언니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리포트>

은주는 평범한 학생입니다.

차분한 성격에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모범생이라 또래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던 아이.

가족들은 지난해 가을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인터뷰> 길영숙(가명/은주 친언니) : "울면서 하는 말이 '언니 나 살인을 했어' '무슨 살인?' '아기를 죽였어'"

의붓 아버지의 성폭력을 참다 못한 아이의 고백이었습니다.

은주가 세 살 되던 해 엄마는 아빠와 재혼해 새 가정을 꾸렸습니다.

의붓 아버지 김정술의 성폭행은 7살 때부터 아이가 홀로 있을 때마다 되풀이됐습니다.

<인터뷰> 은주(가명/친족성 폭력 피해자) : "제 방에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손 발이 너무 떨렸어요. *을 자기 배에 대면서 자기가 죽겠다고. 제가 12살인가 그때 '네가 안 하면 나 여기서 죽을 거다' 이런 식으로.."

아이는 낙태까지 해야 했지만 그 후로도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은주(가명/친족 성폭력 피해자) : "엄마한테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완벽히 이중성을 띠었어요."

10년 동안 성폭력이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

모녀에게 가해진 폭력은 공포였고 일상이었습니다.

<인터뷰> 은주(가명/친족성폭력 피해자) : "주먹이랑 발. 그렇게 때리고 협박하니까 어린 나이에 저는 말하면 진짜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재판부는 의붓 아버지에게 성폭력 특례법 등을 적용해 징역 12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아이는 지금도 아빠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길영숙(가명/은주 친언니) : "(요즘도) 애가 만날 꿈에 시달려요. '검정색 양복을 입고 *을 들고 와서 너 왜 그랬어 죽여 버릴거야' (그런다고) 잘 때 막 소리를 지르면서 깨요."

취재진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 통계를 통해 친족 성폭력 피해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13세 이하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이었습니다.

어린이와 유아에 집중된 친족 성폭력 가해자는 친부가 가장 많았고 사촌, 친형제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범죄는 은폐되고 장기화됐습니다

<인터뷰> 백미순(한국성폭력상담소장) : "상식적으로 보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아주 특수한 성폭력 피해 유형이 아니다. 변치않고 발생해 온 아주 객관적 사실이라는 걸 직시해서 그런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인터뷰>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가부장인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들을 일종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이런 문화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또는 가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자녀를 자신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삼아 성폭행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8살 때부터 10년간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이 형이 과하다며 항소하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재판부에 더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인터뷰> 전수진(아동 성폭력 추방 시민모임 발자국 대표) : "일주일에 한 번 이상 500번 이상이에요.이것에 대한 형벌이 12년이라는 건 일반인의 상식이나 정의로 봤을 때 정말 합당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시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시민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 시민 : "아동 성폭력에 대해 상당히 낮게 처벌을 가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나갈 구멍이 있는 것으로 봐서."

미국의 경우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루이지애나 법원은 8살 의붓딸을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애리조나 법원은 아동 음란물 20건을 가지고 있던 전직교사에게 1건당 10년씩 200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폭력특별법이 도입된 지 19년째 법조계는 짧은 시간 성폭력 법이 높은 수준으로 개선된 만큼 양형은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 : "범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형량이 어느 정도 되냐를 그렇게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저지르지 않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것보다는 그 범죄가 반드시 처벌된다 그리고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반드시 신고가 된다는 그런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의 형사 절차에 대한 신뢰는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신미영 씨는 초등생 딸에게 성교육을 하던중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인터뷰> 신미영(가명/친족성폭력 피해자 어머니) : "아빠가 이렇게 안고 비볐대요. 뱀처럼 꽜다고."

재혼 가정이었지만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들까지 뒀던 터라 두려움과 혼란은 컸습니다.

고민 끝에 신씨는 당시 가정폭력 문제로 부부상담을 받던 상담사에게 사정을 털어놨고 아이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습니다.

재판이 진행됐지만 재판부는 아이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수사기관이 두 차례 받아낸 아동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1심 판결문 : '수십 번'이라고 했다가 곧 이어 '3번 이상'이라고 진술...양자의 차이는 지나치게 큰 것.

1회 진술 당시 점액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2회 진술 당시 보고 싶지 않아 계속 눈감고 있었다...두 진술 사이에 일관성 부족.

검사의 증인신문에서 아이가 새롭게 기억해낸 것도 사실보다는 꾸며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2심 판결문 : 수사기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진술...반복적인 유도 질문을 통한 암시의 결과 의심.

수사와 재판과정에는 진술조사 전문가와 범죄심리학자의 심리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진술기록입니다.

"볼일을 보다가 무엇인가 걸린 듯한 느낌,아랫배 뒤쪽이 아팠다. 한쪽이 들어가고 다른 쪽이 말캉말캉한 튀어나오는 느낌"

<인터뷰>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아이가 왜곡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성적으로 성인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묘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상당 부분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한거죠."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죄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인터뷰> 김정숙(여성가족부 여성아동폭력피해지원단장) : "피해아동이 겪어온 과정은 제쳐 두고 (진술)과정에서 나타난 것들만 가지고 공격을 받으니까 이런 부분이 굉장히 애로가 많죠. 수사 관행 자체가 수사의 전문가들이 검사도 전문가가 들어가야 하고 경찰도 애당초 전문가가 1단계 들어가야 하고 법원 판사도 전문 판사가 들어가야 되요."

엄마와 아이는 재판 과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법적 조력를 받을 수 있는 국선 변호인이 재판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난 뒤에야 선임됐고 선임된 변호인도 재판진행 과정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신미영(가명/성폭력 피해자 어머니) : "(변호사가 공판기록) 모니터링한 내용을 주세요 저한테. 그럼 저는 억울해서 길길이 날뛰는 거에요. '이게 왜 이럽니까?' (물었죠) 그런데 단 한 번도 저한테 이런 말씀 하신 적 없어요. 어머니 저랑 같이 (재판장) 가요. (나중에) '어떻게 우리 아이에 대해서 단 한가지도 모르세요?' 하고 따졌더니 '어휴 사실 한번 훑어보고 말지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요?)' 너무 화가 나죠."

최근 검찰이 다룬 친족 성폭력 사건은 4년 새 40%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기소율은 오히려 50%대로 낮아졌습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벌 의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피해가 명백해도 재판에서 형량이 깎이는 경우도 다반삽니다.

2008년 청주지법 7년간 조카 성폭행 일가족 4명 집행유예, '어려운 형편에도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 양육'

2010년 서울고법 4년간 친딸 성폭행한 아버지 집행유예, '피해자의 유일한 보호자'

2013년 제주지법 8년간 친딸 성폭행 아버지 징역 5년, '피해자가 고소 취하한 점'

<인터뷰> 김정숙(성가족부 여성아동폭력피해지원단장) : " 어이가 없죠. 그렇다면 결국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 같은 경우는 철저히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더 마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에요. 감형은 말도 안돼요."

어느 휴일의 오후.

취재진이 만난 은수연씨는 목사인 친아버지로부터 12살 때부터 9년간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된 그녀의 치유일기엔 왜 그토록 오랫동안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는지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대학의 상담 교수, 성직자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자막>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저) 中 "이 아이도 오랜 시간 그 일을 당해서 그걸 즐긴 건 아닐까요?" "그런데 너 이거 다른 사람에게는 더 얘기하지 마라’

우리 사회에 친족 성폭력은 금기였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습니다.

<인터뷰> 은수연(친족 성폭력 피해 수기 저자) : "길거리에서 (아빠한테) 잡혀 가면서 막 소리쳤어요. 아빠한테 강간당했다고... 그 사람은 제 머리채 잡고 끌고 가고 때리고 이러는 데도 아무도 안도와 줬어요. 아! 아무도 안도와 주는구나."

그녀를 구한 건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뒤에야 어렵사리 경찰에 신고해 아버지는 결국 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자막>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저) 中

가족들도 도와주지 않는 이 감옥에서 나 스스로 탈출할 것이다.

원망하며 애원하던 삶도 그만둘 것이다.

편견이 없었다면 그녀의 탈출은 더 빨랐을지 모릅니다.

<인터뷰> 은수연(친족성폭력 피해 수기 저자) :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그것을 정말 평생 간직해야 하는, 비밀처럼 만들어야 하는 시선!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창피해하지 않아요 .피해자들이 창피해하지 그리고 피해자들이 주눅 들어있지.."

아이들의 구원 요청이 더 빨랐다면..

곁에 손을 맞잡아 줄 사람이 있었다면..

고통의 시간은 분명 짧아졌을 겁니다.

친족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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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의 탈을 쓴 악마
    • 입력 2013-06-21 22:52:18
    • 수정2013-06-21 23:31:55
    취재파일K
작고 아담한 집.

엄마 그리고 아빠.

가정이라는 이름의 품안에서 아이는 자랐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시련이 닥쳐도 아이는 그 울타리가 자신을 지켜주리란 믿음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평범한 기대는 한순간 무너졌습니다.

<인터뷰> "술을 안 먹으면 성폭행, 술을 먹으면 그냥 폭행 말하면 언니나 저나 엄마나 다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했고.."

아빠의 성폭행에 지쳐갔지만 추악한 범죄는 또 다른 폭력에 가려졌습니다.

<인터뷰> "죄를 진 것 같아요. 언니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리포트>

은주는 평범한 학생입니다.

차분한 성격에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모범생이라 또래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던 아이.

가족들은 지난해 가을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인터뷰> 길영숙(가명/은주 친언니) : "울면서 하는 말이 '언니 나 살인을 했어' '무슨 살인?' '아기를 죽였어'"

의붓 아버지의 성폭력을 참다 못한 아이의 고백이었습니다.

은주가 세 살 되던 해 엄마는 아빠와 재혼해 새 가정을 꾸렸습니다.

의붓 아버지 김정술의 성폭행은 7살 때부터 아이가 홀로 있을 때마다 되풀이됐습니다.

<인터뷰> 은주(가명/친족성 폭력 피해자) : "제 방에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손 발이 너무 떨렸어요. *을 자기 배에 대면서 자기가 죽겠다고. 제가 12살인가 그때 '네가 안 하면 나 여기서 죽을 거다' 이런 식으로.."

아이는 낙태까지 해야 했지만 그 후로도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은주(가명/친족 성폭력 피해자) : "엄마한테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완벽히 이중성을 띠었어요."

10년 동안 성폭력이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

모녀에게 가해진 폭력은 공포였고 일상이었습니다.

<인터뷰> 은주(가명/친족성폭력 피해자) : "주먹이랑 발. 그렇게 때리고 협박하니까 어린 나이에 저는 말하면 진짜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재판부는 의붓 아버지에게 성폭력 특례법 등을 적용해 징역 12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아이는 지금도 아빠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길영숙(가명/은주 친언니) : "(요즘도) 애가 만날 꿈에 시달려요. '검정색 양복을 입고 *을 들고 와서 너 왜 그랬어 죽여 버릴거야' (그런다고) 잘 때 막 소리를 지르면서 깨요."

취재진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 통계를 통해 친족 성폭력 피해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13세 이하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이었습니다.

어린이와 유아에 집중된 친족 성폭력 가해자는 친부가 가장 많았고 사촌, 친형제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범죄는 은폐되고 장기화됐습니다

<인터뷰> 백미순(한국성폭력상담소장) : "상식적으로 보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아주 특수한 성폭력 피해 유형이 아니다. 변치않고 발생해 온 아주 객관적 사실이라는 걸 직시해서 그런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인터뷰>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가부장인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들을 일종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이런 문화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또는 가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자녀를 자신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삼아 성폭행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8살 때부터 10년간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이 형이 과하다며 항소하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재판부에 더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습니다.

<인터뷰> 전수진(아동 성폭력 추방 시민모임 발자국 대표) : "일주일에 한 번 이상 500번 이상이에요.이것에 대한 형벌이 12년이라는 건 일반인의 상식이나 정의로 봤을 때 정말 합당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시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시민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 시민 : "아동 성폭력에 대해 상당히 낮게 처벌을 가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로 나갈 구멍이 있는 것으로 봐서."

미국의 경우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루이지애나 법원은 8살 의붓딸을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애리조나 법원은 아동 음란물 20건을 가지고 있던 전직교사에게 1건당 10년씩 200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성폭력특별법이 도입된 지 19년째 법조계는 짧은 시간 성폭력 법이 높은 수준으로 개선된 만큼 양형은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 : "범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형량이 어느 정도 되냐를 그렇게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저지르지 않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것보다는 그 범죄가 반드시 처벌된다 그리고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반드시 신고가 된다는 그런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의 형사 절차에 대한 신뢰는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신미영 씨는 초등생 딸에게 성교육을 하던중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인터뷰> 신미영(가명/친족성폭력 피해자 어머니) : "아빠가 이렇게 안고 비볐대요. 뱀처럼 꽜다고."

재혼 가정이었지만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들까지 뒀던 터라 두려움과 혼란은 컸습니다.

고민 끝에 신씨는 당시 가정폭력 문제로 부부상담을 받던 상담사에게 사정을 털어놨고 아이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됐습니다.

재판이 진행됐지만 재판부는 아이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수사기관이 두 차례 받아낸 아동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1심 판결문 : '수십 번'이라고 했다가 곧 이어 '3번 이상'이라고 진술...양자의 차이는 지나치게 큰 것.

1회 진술 당시 점액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2회 진술 당시 보고 싶지 않아 계속 눈감고 있었다...두 진술 사이에 일관성 부족.

검사의 증인신문에서 아이가 새롭게 기억해낸 것도 사실보다는 꾸며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2심 판결문 : 수사기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진술...반복적인 유도 질문을 통한 암시의 결과 의심.

수사와 재판과정에는 진술조사 전문가와 범죄심리학자의 심리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진술기록입니다.

"볼일을 보다가 무엇인가 걸린 듯한 느낌,아랫배 뒤쪽이 아팠다. 한쪽이 들어가고 다른 쪽이 말캉말캉한 튀어나오는 느낌"

<인터뷰> 공정식(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아이가 왜곡을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성적으로 성인들만이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묘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상당 부분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한거죠."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죄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인터뷰> 김정숙(여성가족부 여성아동폭력피해지원단장) : "피해아동이 겪어온 과정은 제쳐 두고 (진술)과정에서 나타난 것들만 가지고 공격을 받으니까 이런 부분이 굉장히 애로가 많죠. 수사 관행 자체가 수사의 전문가들이 검사도 전문가가 들어가야 하고 경찰도 애당초 전문가가 1단계 들어가야 하고 법원 판사도 전문 판사가 들어가야 되요."

엄마와 아이는 재판 과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법적 조력를 받을 수 있는 국선 변호인이 재판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난 뒤에야 선임됐고 선임된 변호인도 재판진행 과정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신미영(가명/성폭력 피해자 어머니) : "(변호사가 공판기록) 모니터링한 내용을 주세요 저한테. 그럼 저는 억울해서 길길이 날뛰는 거에요. '이게 왜 이럽니까?' (물었죠) 그런데 단 한 번도 저한테 이런 말씀 하신 적 없어요. 어머니 저랑 같이 (재판장) 가요. (나중에) '어떻게 우리 아이에 대해서 단 한가지도 모르세요?' 하고 따졌더니 '어휴 사실 한번 훑어보고 말지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해요?)' 너무 화가 나죠."

최근 검찰이 다룬 친족 성폭력 사건은 4년 새 40%가 늘었습니다.

하지만 기소율은 오히려 50%대로 낮아졌습니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벌 의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피해가 명백해도 재판에서 형량이 깎이는 경우도 다반삽니다.

2008년 청주지법 7년간 조카 성폭행 일가족 4명 집행유예, '어려운 형편에도 부모를 대신해 피해자 양육'

2010년 서울고법 4년간 친딸 성폭행한 아버지 집행유예, '피해자의 유일한 보호자'

2013년 제주지법 8년간 친딸 성폭행 아버지 징역 5년, '피해자가 고소 취하한 점'

<인터뷰> 김정숙(성가족부 여성아동폭력피해지원단장) : " 어이가 없죠. 그렇다면 결국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 같은 경우는 철저히 보호할 수 있는 체계가 더 마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에요. 감형은 말도 안돼요."

어느 휴일의 오후.

취재진이 만난 은수연씨는 목사인 친아버지로부터 12살 때부터 9년간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된 그녀의 치유일기엔 왜 그토록 오랫동안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는지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대학의 상담 교수, 성직자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자막>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저) 中 "이 아이도 오랜 시간 그 일을 당해서 그걸 즐긴 건 아닐까요?" "그런데 너 이거 다른 사람에게는 더 얘기하지 마라’

우리 사회에 친족 성폭력은 금기였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습니다.

<인터뷰> 은수연(친족 성폭력 피해 수기 저자) : "길거리에서 (아빠한테) 잡혀 가면서 막 소리쳤어요. 아빠한테 강간당했다고... 그 사람은 제 머리채 잡고 끌고 가고 때리고 이러는 데도 아무도 안도와 줬어요. 아! 아무도 안도와 주는구나."

그녀를 구한 건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뒤에야 어렵사리 경찰에 신고해 아버지는 결국 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자막>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저) 中

가족들도 도와주지 않는 이 감옥에서 나 스스로 탈출할 것이다.

원망하며 애원하던 삶도 그만둘 것이다.

편견이 없었다면 그녀의 탈출은 더 빨랐을지 모릅니다.

<인터뷰> 은수연(친족성폭력 피해 수기 저자) :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그것을 정말 평생 간직해야 하는, 비밀처럼 만들어야 하는 시선!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창피해하지 않아요 .피해자들이 창피해하지 그리고 피해자들이 주눅 들어있지.."

아이들의 구원 요청이 더 빨랐다면..

곁에 손을 맞잡아 줄 사람이 있었다면..

고통의 시간은 분명 짧아졌을 겁니다.

친족 성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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