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송, 아시아나 조종사 ‘비하·조롱’ 보도 파문

입력 2013.07.13 (13:53) 수정 2013.07.1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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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기 사고가 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지역방송사가 사고기에 탑승했던 한국인 조종사 4명의 이름을 엉터리로 소개하며 인종차별적 보도를 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사고 조사를 맡은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지나치게 몰고 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현지 교포를 비롯한 한국인들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 "조종사들 이름은 캡틴 섬 팅 왕, 위 투 로"…사고상황 빗댄 듯

샌프란시스코 현지 지역방송인 KTVU는 12일(현지시간) 사고기 조종사들의 신원을 공개한 당국의 발표 내용을 전하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빗대 만들어낸 듯한 가짜 이름을 실제 이름인 것처럼 소개했다.

미 폭스 TV의 자회사인 KTVU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부유층이 주로 사는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지역방송이다.

이날 KTVU는 정오 뉴스에서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 관련 NTSB의 최신 발표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다.

문제는 조종사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행자 토리 캠벨은 "캡틴 섬팅왕(Sum Ting Wong), 위투로(Wi Tu Lo), 호리퍽(Ho Lee Fuk), 뱅딩오(Bang Ding Ow)"라고 또박또박 읽어내렸다.

곧이어 카메라는 이들 '이름'이 적힌 자료화면을 비췄고, 캠벨은 NTSB가 확인해 준 이름이라고까지 덧붙였다.

KTVU가 보도한 이름 '섬팅왕', '위투로', '호리퍽'은 각각 '기장 뭔가가 잘못됐어요'(Captain Something Wrong), '고도가 너무 낮아'(We Too Low), '이런 젠장할'(Holy Fu**), '쾅, 쿵, 오!'(Bang Ding Ow, 충돌음과 비명을 가리키는 의성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착륙사고 당시 일어났을 법한 일련의 상황을,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아시아계의 발음을 조롱할 때 왕왕 쓰이는 중국어 억양에 맞춰 표현함으로써 인종차별적 비하 방송을 했다는 지적이다.

현지 교민 손정인(44·여)씨는 "방송을 보고 너무 놀랐다"며 "어떻게 저런 보도가 나올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말했다.

◇NTSB·방송사 뒤늦게 진화 나서…책임소재는 불분명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NTSB와 KTVU는 부랴부랴 성명을 내 사과했지만,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위와 최종적인 책임 소재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NTSB는 이날 오후 9시께 사과 성명을 발표해 "NTSB는 사고기 승객·승무원들의 이름을 언론에 제공하거나 확인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정확하고 모욕적 이름을 확인해준 것은 자신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하계(summer) 인턴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인턴이 문제의 가짜 이름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아니라는 것이 NTSB의 주장이다.

NTSB의 켈리 낸틀 대변인은 "인턴이 먼저 이름을 만들어 알려준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이 이름들이 맞느냐'며 확인 요청을 해 와 답변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KTVU도 "부정확한 이름을 보도한 데 대해 사죄드린다"면서 "워싱턴의 NTSB 관리가 확인해 줬지만 이름이 정확하지 않았다"고만 해명했다.

MSNBC는 누군가가 인터넷에 장난으로 올려놓은 글귀를 사실로 착각해 이번 오보 사태가 빚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 누리꾼은 "방송사 제작진과 진행자 모두가 항공기 사고가 터진 지 일주일이 넘은 시점에 인종차별적 문구를 이름으로 착각해서 사용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KTVU는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매체로, 사고 이후 관련 소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왔다.

이 방송의 뉴스 책임자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사에서 "100% 정확하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말로 다 못할 분노" 격앙 반응…전에도 유사 논란

이번 영상은 뉴스가 끝난 직후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교민들을 비롯해 이를 접한 시민들은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사고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아시아계 언론인 연합체인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AAJA)는 성명을 내 "KTVU의 실수는 아시아나 사고의 비극을 조롱하고 많은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을 모욕했다"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고 질타했다.

강도는 이번보다 크게 약하지만, 아시아나기 사고 보도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미 중서부 지역의 유력 일간지 시카고 선타임스가 아시아나기 사고를 다룬 지면에서 머리기사 제목으로 '프라이트214'(FRIGHT 214)라는 표현을 사용해 아시아계 조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플라이트'(Flight·항공편)를 대체한 단어 '프라이트'가 '공포'라는 뜻을 갖기도 하지만 알파벳 'L'과 'R'을 명확히 구분 못 하는 아시아계 발음구조를 비꼰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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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방송, 아시아나 조종사 ‘비하·조롱’ 보도 파문
    • 입력 2013-07-13 13:53:41
    • 수정2013-07-13 19:41:33
    연합뉴스
아시아나기 사고가 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지역방송사가 사고기에 탑승했던 한국인 조종사 4명의 이름을 엉터리로 소개하며 인종차별적 보도를 해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사고 조사를 맡은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지나치게 몰고 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현지 교포를 비롯한 한국인들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 "조종사들 이름은 캡틴 섬 팅 왕, 위 투 로"…사고상황 빗댄 듯

샌프란시스코 현지 지역방송인 KTVU는 12일(현지시간) 사고기 조종사들의 신원을 공개한 당국의 발표 내용을 전하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빗대 만들어낸 듯한 가짜 이름을 실제 이름인 것처럼 소개했다.

미 폭스 TV의 자회사인 KTVU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부유층이 주로 사는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지역방송이다.

이날 KTVU는 정오 뉴스에서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 관련 NTSB의 최신 발표 내용을 비교적 자세히 전했다.

문제는 조종사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행자 토리 캠벨은 "캡틴 섬팅왕(Sum Ting Wong), 위투로(Wi Tu Lo), 호리퍽(Ho Lee Fuk), 뱅딩오(Bang Ding Ow)"라고 또박또박 읽어내렸다.

곧이어 카메라는 이들 '이름'이 적힌 자료화면을 비췄고, 캠벨은 NTSB가 확인해 준 이름이라고까지 덧붙였다.

KTVU가 보도한 이름 '섬팅왕', '위투로', '호리퍽'은 각각 '기장 뭔가가 잘못됐어요'(Captain Something Wrong), '고도가 너무 낮아'(We Too Low), '이런 젠장할'(Holy Fu**), '쾅, 쿵, 오!'(Bang Ding Ow, 충돌음과 비명을 가리키는 의성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착륙사고 당시 일어났을 법한 일련의 상황을,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아시아계의 발음을 조롱할 때 왕왕 쓰이는 중국어 억양에 맞춰 표현함으로써 인종차별적 비하 방송을 했다는 지적이다.

현지 교민 손정인(44·여)씨는 "방송을 보고 너무 놀랐다"며 "어떻게 저런 보도가 나올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말했다.

◇NTSB·방송사 뒤늦게 진화 나서…책임소재는 불분명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NTSB와 KTVU는 부랴부랴 성명을 내 사과했지만,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위와 최종적인 책임 소재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NTSB는 이날 오후 9시께 사과 성명을 발표해 "NTSB는 사고기 승객·승무원들의 이름을 언론에 제공하거나 확인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정확하고 모욕적 이름을 확인해준 것은 자신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하계(summer) 인턴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인턴이 문제의 가짜 이름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아니라는 것이 NTSB의 주장이다.

NTSB의 켈리 낸틀 대변인은 "인턴이 먼저 이름을 만들어 알려준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이 이름들이 맞느냐'며 확인 요청을 해 와 답변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KTVU도 "부정확한 이름을 보도한 데 대해 사죄드린다"면서 "워싱턴의 NTSB 관리가 확인해 줬지만 이름이 정확하지 않았다"고만 해명했다.

MSNBC는 누군가가 인터넷에 장난으로 올려놓은 글귀를 사실로 착각해 이번 오보 사태가 빚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 누리꾼은 "방송사 제작진과 진행자 모두가 항공기 사고가 터진 지 일주일이 넘은 시점에 인종차별적 문구를 이름으로 착각해서 사용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KTVU는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매체로, 사고 이후 관련 소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왔다.

이 방송의 뉴스 책임자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사에서 "100% 정확하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말로 다 못할 분노" 격앙 반응…전에도 유사 논란

이번 영상은 뉴스가 끝난 직후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교민들을 비롯해 이를 접한 시민들은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사고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아시아계 언론인 연합체인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AAJA)는 성명을 내 "KTVU의 실수는 아시아나 사고의 비극을 조롱하고 많은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을 모욕했다"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고 질타했다.

강도는 이번보다 크게 약하지만, 아시아나기 사고 보도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미 중서부 지역의 유력 일간지 시카고 선타임스가 아시아나기 사고를 다룬 지면에서 머리기사 제목으로 '프라이트214'(FRIGHT 214)라는 표현을 사용해 아시아계 조롱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플라이트'(Flight·항공편)를 대체한 단어 '프라이트'가 '공포'라는 뜻을 갖기도 하지만 알파벳 'L'과 'R'을 명확히 구분 못 하는 아시아계 발음구조를 비꼰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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