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식민사관 심기 위해 아리랑까지 왜곡
입력 2013.08.14 (21:11)
수정 2013.08.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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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일본이 우리 아리랑의 가사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왜곡해 온 사실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우리 민족의 혼이자, 저항의 상징인 아리랑을 한일 합병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한 것입니다.
최성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서양 악보로 옮긴 아리랑 타령입니다.
하지만 을사 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 동경 박문관이 발행한 '한국 사진첩'에 실린 아리랑은 가사가 달라졌습니다.
러시아 같이 큰 나라도 전쟁에서 패했으니, 조선인들은 한.일 병합에 응하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영임((사)아리랑보존회 이사장) : "우리 아리랑을 수십년 동안 불러 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가슴을 칠 노릇이죠."
이보다 앞서 1905년 4월, 일본 지식인 '오키타 긴조'가 쓴 '이면의 한국'이라는 책도 아리랑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리랑을 '망국의 축도'로 정의하고, 국가의 일에 무관심과 무저항, 은둔과 무사 안일을 '아리랑 주의'로 표현했습니다.
또, 아리랑은 한국인의 두뇌를 어지럽히고, 비굴하게 만드는 큰 위력을 가진 노래라고 적었습니다.
아리랑을 폄하함으로써 열등감과 패배 의식을 부추기고 일제에 대한 저항심을 말살하겠다는 의돕니다.
<인터뷰>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일본 군국주의의 강력함과 조선인들의 패배주의를 유포시키면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고, 그것이 곧 식민사관을 유포시키는 방법이다."
지식인들까지 동원해 광범위하게 아리랑을 왜곡한 일본,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집요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성민입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일본이 우리 아리랑의 가사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왜곡해 온 사실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우리 민족의 혼이자, 저항의 상징인 아리랑을 한일 합병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한 것입니다.
최성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서양 악보로 옮긴 아리랑 타령입니다.
하지만 을사 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 동경 박문관이 발행한 '한국 사진첩'에 실린 아리랑은 가사가 달라졌습니다.
러시아 같이 큰 나라도 전쟁에서 패했으니, 조선인들은 한.일 병합에 응하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영임((사)아리랑보존회 이사장) : "우리 아리랑을 수십년 동안 불러 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가슴을 칠 노릇이죠."
이보다 앞서 1905년 4월, 일본 지식인 '오키타 긴조'가 쓴 '이면의 한국'이라는 책도 아리랑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리랑을 '망국의 축도'로 정의하고, 국가의 일에 무관심과 무저항, 은둔과 무사 안일을 '아리랑 주의'로 표현했습니다.
또, 아리랑은 한국인의 두뇌를 어지럽히고, 비굴하게 만드는 큰 위력을 가진 노래라고 적었습니다.
아리랑을 폄하함으로써 열등감과 패배 의식을 부추기고 일제에 대한 저항심을 말살하겠다는 의돕니다.
<인터뷰>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일본 군국주의의 강력함과 조선인들의 패배주의를 유포시키면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고, 그것이 곧 식민사관을 유포시키는 방법이다."
지식인들까지 동원해 광범위하게 아리랑을 왜곡한 일본,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집요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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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식민사관 심기 위해 아리랑까지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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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8-14 21:11:37
- 수정2013-08-14 22:25:44
![](/data/news/2013/08/14/2707789_80.jpg)
<앵커 멘트>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일본이 우리 아리랑의 가사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왜곡해 온 사실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우리 민족의 혼이자, 저항의 상징인 아리랑을 한일 합병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한 것입니다.
최성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서양 악보로 옮긴 아리랑 타령입니다.
하지만 을사 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 동경 박문관이 발행한 '한국 사진첩'에 실린 아리랑은 가사가 달라졌습니다.
러시아 같이 큰 나라도 전쟁에서 패했으니, 조선인들은 한.일 병합에 응하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영임((사)아리랑보존회 이사장) : "우리 아리랑을 수십년 동안 불러 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가슴을 칠 노릇이죠."
이보다 앞서 1905년 4월, 일본 지식인 '오키타 긴조'가 쓴 '이면의 한국'이라는 책도 아리랑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리랑을 '망국의 축도'로 정의하고, 국가의 일에 무관심과 무저항, 은둔과 무사 안일을 '아리랑 주의'로 표현했습니다.
또, 아리랑은 한국인의 두뇌를 어지럽히고, 비굴하게 만드는 큰 위력을 가진 노래라고 적었습니다.
아리랑을 폄하함으로써 열등감과 패배 의식을 부추기고 일제에 대한 저항심을 말살하겠다는 의돕니다.
<인터뷰>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일본 군국주의의 강력함과 조선인들의 패배주의를 유포시키면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고, 그것이 곧 식민사관을 유포시키는 방법이다."
지식인들까지 동원해 광범위하게 아리랑을 왜곡한 일본,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집요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성민입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이전부터 일본이 우리 아리랑의 가사와 내용을 체계적으로 왜곡해 온 사실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우리 민족의 혼이자, 저항의 상징인 아리랑을 한일 합병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한 것입니다.
최성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서양 악보로 옮긴 아리랑 타령입니다.
하지만 을사 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일본 동경 박문관이 발행한 '한국 사진첩'에 실린 아리랑은 가사가 달라졌습니다.
러시아 같이 큰 나라도 전쟁에서 패했으니, 조선인들은 한.일 병합에 응하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김영임((사)아리랑보존회 이사장) : "우리 아리랑을 수십년 동안 불러 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가슴을 칠 노릇이죠."
이보다 앞서 1905년 4월, 일본 지식인 '오키타 긴조'가 쓴 '이면의 한국'이라는 책도 아리랑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리랑을 '망국의 축도'로 정의하고, 국가의 일에 무관심과 무저항, 은둔과 무사 안일을 '아리랑 주의'로 표현했습니다.
또, 아리랑은 한국인의 두뇌를 어지럽히고, 비굴하게 만드는 큰 위력을 가진 노래라고 적었습니다.
아리랑을 폄하함으로써 열등감과 패배 의식을 부추기고 일제에 대한 저항심을 말살하겠다는 의돕니다.
<인터뷰> 김연갑(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일본 군국주의의 강력함과 조선인들의 패배주의를 유포시키면 이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고, 그것이 곧 식민사관을 유포시키는 방법이다."
지식인들까지 동원해 광범위하게 아리랑을 왜곡한 일본, 우리 민족 문화를 말살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집요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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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기자 soojin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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