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배트’ 청소년 야구, 공격력 치명타

입력 2013.09.03 (15:59) 수정 2013.09.0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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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못 친다'는 푸념이 미국대표팀 전력분석팀의 귀에 들어간 것일까.

한국이 3일 타이완 타이중시 타이중구장에서 벌어진 제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물 먹은 타선 탓에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펼치지 못하고 미국에 1-2로 졌다.

미국이 한국 타선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는 천편일률적인 수비 시프트를 봐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 외야진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5명의 한국 우타자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정 위치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홈플레이트에서 보면 유격수 뒤를 넘어 좌익수 쪽은 허허벌판에 가까웠고 중견수와 우익수 쪽으로 내외야 수비진이 촘촘히 몰린 형세였다.

이날 한국의 유일한 적시타로 기록된 안중열의 중월 2루타는 정상 위치였다면 미국의 중견수가 충분히 걷어낼 수 있었다.

한국의 왼손 타자가 나올 때 미국 수비진은 반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철저히 밀어치는 한국의 팀 배팅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수비진은 한국 타자들의 습성을 방망이로 휘둘러 볼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방망이에 맞히는 '똑딱이 타법'으로 보고 확률상 과감하게 한쪽을 포기해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실제 이날 한국의 우타자가 잡아당겨서 친 타구는 김하성(야탑고·넥센 지명)의 좌익수 직선타와 김규남(덕수고·고려대 진학예정)의 3루 땅볼뿐이었다.

투수진이 아무리 기를 쓰고 막아도 점수를 못 뽑는 이상 이길 수는 없는 법.

한국은 답답한 공격 때문에 강호 쿠바, 미국에 모두 1-2, 1점차로 패하고 5년 만에 우승 도전을 접어야 할 상황에 몰렸다.

조별리그 3차전까지 보여준 한국 타자들의 맥 없는 공격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대표팀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들은 한목소리로 나무배트 사용을 공격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효근 대표팀 코치(마산고 감독)는 "선수들이 스윙할 때 나무배트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며 "무게·길이 등 자신에게 맞는 방망이를 고르는 법을 아는 선수도 드물다"고 지적했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2004년 4월 청소년급 이상 대회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금지하자 대한야구협회는 그해 8월부터 고교야구 경기에 나무배트를 도입했다.

10년간 나무배트를 사용한 결과 한국 청소년 야구는 퇴보했다.

팀 성적을 위해 인위적인 우투좌타 선수가 양산된 사이 한 방을 넘길만한 거포는 실종됐다.

시즌 홈런 1개를 친 선수가 홈런왕에 오를 정도로 한국 야구의 장타력은 눈에 띄게 사라졌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면서도 국제 대회에서 홈런을 거푸 쏘아 올리던 김동주(두산), 이승엽(삼성), 추신수(신시내티), 봉중근(LG), 이대호(오릭스 버펄로스) 같은 만능선수를 더는 고교야구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 폐해가 이번 청소년대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협회는 5위로 마감한 지난해 서울 대회에서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대표 선수를 뽑을 때 우투좌타를 최대한 배제하고 오른손 타자를 예년보다 많이 발탁했다.

그러나 한번 똑딱이로 길든 이들을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같은 똑딱이라도 정교함으로 무장한 일본 선수들과 차이도 상당했다.

저조한 타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선수들이 화끈하게 방망이를 돌리고 타격의 재미를 느끼도록 다시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현지에서 대표팀 경기를 지켜 본 프로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타격의 기본은 먼저 당겨치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똑딱이 타격으로는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에서도 살아갈 수 없다"고 개탄했다.

과거보다 반발력은 낮지만 나무배트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개발된 알루미늄 배트를 도입해 선수들의 공격력을 끌어올리고 나무방망이에 대한 적응력을 차례로 키워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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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배트’ 청소년 야구, 공격력 치명타
    • 입력 2013-09-03 15:59:37
    • 수정2013-09-04 08: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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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못 친다'는 푸념이 미국대표팀 전력분석팀의 귀에 들어간 것일까.

한국이 3일 타이완 타이중시 타이중구장에서 벌어진 제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물 먹은 타선 탓에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펼치지 못하고 미국에 1-2로 졌다.

미국이 한국 타선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는 천편일률적인 수비 시프트를 봐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 외야진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5명의 한국 우타자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정 위치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홈플레이트에서 보면 유격수 뒤를 넘어 좌익수 쪽은 허허벌판에 가까웠고 중견수와 우익수 쪽으로 내외야 수비진이 촘촘히 몰린 형세였다.

이날 한국의 유일한 적시타로 기록된 안중열의 중월 2루타는 정상 위치였다면 미국의 중견수가 충분히 걷어낼 수 있었다.

한국의 왼손 타자가 나올 때 미국 수비진은 반대로 움직였다.

미국은 철저히 밀어치는 한국의 팀 배팅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수비진은 한국 타자들의 습성을 방망이로 휘둘러 볼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방망이에 맞히는 '똑딱이 타법'으로 보고 확률상 과감하게 한쪽을 포기해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실제 이날 한국의 우타자가 잡아당겨서 친 타구는 김하성(야탑고·넥센 지명)의 좌익수 직선타와 김규남(덕수고·고려대 진학예정)의 3루 땅볼뿐이었다.

투수진이 아무리 기를 쓰고 막아도 점수를 못 뽑는 이상 이길 수는 없는 법.

한국은 답답한 공격 때문에 강호 쿠바, 미국에 모두 1-2, 1점차로 패하고 5년 만에 우승 도전을 접어야 할 상황에 몰렸다.

조별리그 3차전까지 보여준 한국 타자들의 맥 없는 공격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대표팀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단 스카우트들은 한목소리로 나무배트 사용을 공격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효근 대표팀 코치(마산고 감독)는 "선수들이 스윙할 때 나무배트를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며 "무게·길이 등 자신에게 맞는 방망이를 고르는 법을 아는 선수도 드물다"고 지적했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2004년 4월 청소년급 이상 대회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금지하자 대한야구협회는 그해 8월부터 고교야구 경기에 나무배트를 도입했다.

10년간 나무배트를 사용한 결과 한국 청소년 야구는 퇴보했다.

팀 성적을 위해 인위적인 우투좌타 선수가 양산된 사이 한 방을 넘길만한 거포는 실종됐다.

시즌 홈런 1개를 친 선수가 홈런왕에 오를 정도로 한국 야구의 장타력은 눈에 띄게 사라졌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면서도 국제 대회에서 홈런을 거푸 쏘아 올리던 김동주(두산), 이승엽(삼성), 추신수(신시내티), 봉중근(LG), 이대호(오릭스 버펄로스) 같은 만능선수를 더는 고교야구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 폐해가 이번 청소년대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협회는 5위로 마감한 지난해 서울 대회에서의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대표 선수를 뽑을 때 우투좌타를 최대한 배제하고 오른손 타자를 예년보다 많이 발탁했다.

그러나 한번 똑딱이로 길든 이들을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같은 똑딱이라도 정교함으로 무장한 일본 선수들과 차이도 상당했다.

저조한 타격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선수들이 화끈하게 방망이를 돌리고 타격의 재미를 느끼도록 다시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현지에서 대표팀 경기를 지켜 본 프로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타격의 기본은 먼저 당겨치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똑딱이 타격으로는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에서도 살아갈 수 없다"고 개탄했다.

과거보다 반발력은 낮지만 나무배트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개발된 알루미늄 배트를 도입해 선수들의 공격력을 끌어올리고 나무방망이에 대한 적응력을 차례로 키워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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