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합법적 탈옥’ 형 집행정지…일반 재소자엔 가혹

입력 2013.10.16 (21:26) 수정 2013.10.1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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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대생 살인 청부범, 윤길자 씨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허위 진단서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호화 병실 생활을 하다 적발됐죠.

집행정지 제도는 수형자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지만, 이 사건으로 '합법적 탈옥'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하지만 돈없는 일반 수형자들에겐 집행정지를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죽기 전엔 안된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실정입니다.

먼저 유호윤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폭행 혐의 등으로 지난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임 모 씨.

교도소 수감 뒤 한 달여 만에 손가락에 진물이 나면서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임 모 씨 : "병원 갔더니 혈관종이라 해서 그게 뭐냐고. '피가 안통해서 그래. 별거 아니야' 라고 해서 촬영도 아예 안 해 버렸어요."

재판을 받으면서 통증은 더 심해졌지만, 구속집행 정지 신청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임 모 씨 : "나 같은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나이롱이지 뭘 아파' 이러고, 만약 돈 좀 있잖아요. 그럼 '회장님 어디 아프신데 없어요' 물어보고... 없는 놈은 아파도 나오기가 힘들어요."

결국 임 씨는 통증을 느낀 지 1년이 지나서야 조직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피부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암은 이미 겨드랑이까지 퍼진 상황.

형집행정지를 받고 왼손 손가락과 겨드랑이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수술 의사 : "조금 더 일찍 진단을 한다면은 만약 전이가 안 된 상태였고 손톱밑에 있는 피부암도 많이 진행이 안 된 상태 면 손가락을 살릴 수 있구요"

임 씨는 교도소에 심한 환자들이 많다며 자신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자 멘트>

천 2백여 명이 수용된 서울의 한 교도소입니다.

이곳에 수감된 재소자들은 범죄자 신분이긴 하지만 아플 경우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우선 의무과에서 치료를 받고 상태가 심하면 내부에 마련된 병동에 입원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이 더 악화됐거나 생명이 위독할 경우에는 구속이나 형집행 정지를 받아 외부로 나갑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관행이 여전하다는 겁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당뇨와 우울증을, CJ 이재현 회장은 만성 신부전증을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간암수술 후유증으로 구속집행이 정지됐습니다.

하지만 전국 교정시설에는 당뇨병 환자가 3천 6백 명, 신장투석 환자는 6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2백 9명이 암으로 투병중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통계를 보면 형 집행정지가 불허되거나 늦어져서 모두 85명이 숨진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 중에는 벌금을 못 내 일당 5만 원 짜리 노역을 하다 숨진 사람도 9명이나 됩니다.

죄목별로 봐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최근 10년 간 처음 수감돼서 형 집행 정지를 받고 교도소를 나가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따져봤더니 폭력은 470일, 절도는 330일, 사기는 329일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횡령이나 배임, 조세사범 등은 270 일 정도, 공직선거법은 130일 밖에 안 걸렸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실제로 더 아파서인지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더 빨리 나갔다는 건 확실합니다.

공정한 집행정지 제도를 운용하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요? 김귀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윤길자씨 사건 직후 검찰이 내놓은 대책은 크게 두가지.

형집행정지를 신청할 때 의사 2명 이상의 진단서를 받도록 하고,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의무화하는 방안입니다.

형평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의로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겁니다.

이와 함께 교도소나 구치소의 의료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추진돼야 합니다.

그래야 돈있고 힘있는 재소자들만 형집행 정지를 받고 호화병원에서 지낸다는 특혜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현재 정원 100명인 전국 교정시설의 의사 인력을 충분히 확충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정병원을 세워 위중한 환자들을 자체관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 신현호(변호사) : "수감됐다는 이유로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 수감자의 부담으로 외부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확대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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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합법적 탈옥’ 형 집행정지…일반 재소자엔 가혹
    • 입력 2013-10-16 21:28:44
    • 수정2013-10-16 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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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대생 살인 청부범, 윤길자 씨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허위 진단서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호화 병실 생활을 하다 적발됐죠.

집행정지 제도는 수형자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지만, 이 사건으로 '합법적 탈옥'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하지만 돈없는 일반 수형자들에겐 집행정지를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죽기 전엔 안된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실정입니다.

먼저 유호윤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폭행 혐의 등으로 지난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임 모 씨.

교도소 수감 뒤 한 달여 만에 손가락에 진물이 나면서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인터뷰> 임 모 씨 : "병원 갔더니 혈관종이라 해서 그게 뭐냐고. '피가 안통해서 그래. 별거 아니야' 라고 해서 촬영도 아예 안 해 버렸어요."

재판을 받으면서 통증은 더 심해졌지만, 구속집행 정지 신청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임 모 씨 : "나 같은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나이롱이지 뭘 아파' 이러고, 만약 돈 좀 있잖아요. 그럼 '회장님 어디 아프신데 없어요' 물어보고... 없는 놈은 아파도 나오기가 힘들어요."

결국 임 씨는 통증을 느낀 지 1년이 지나서야 조직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피부암 3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암은 이미 겨드랑이까지 퍼진 상황.

형집행정지를 받고 왼손 손가락과 겨드랑이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수술 의사 : "조금 더 일찍 진단을 한다면은 만약 전이가 안 된 상태였고 손톱밑에 있는 피부암도 많이 진행이 안 된 상태 면 손가락을 살릴 수 있구요"

임 씨는 교도소에 심한 환자들이 많다며 자신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자 멘트>

천 2백여 명이 수용된 서울의 한 교도소입니다.

이곳에 수감된 재소자들은 범죄자 신분이긴 하지만 아플 경우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우선 의무과에서 치료를 받고 상태가 심하면 내부에 마련된 병동에 입원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이 더 악화됐거나 생명이 위독할 경우에는 구속이나 형집행 정지를 받아 외부로 나갑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잘못된 관행이 여전하다는 겁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당뇨와 우울증을, CJ 이재현 회장은 만성 신부전증을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은 간암수술 후유증으로 구속집행이 정지됐습니다.

하지만 전국 교정시설에는 당뇨병 환자가 3천 6백 명, 신장투석 환자는 67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2백 9명이 암으로 투병중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통계를 보면 형 집행정지가 불허되거나 늦어져서 모두 85명이 숨진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이 중에는 벌금을 못 내 일당 5만 원 짜리 노역을 하다 숨진 사람도 9명이나 됩니다.

죄목별로 봐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최근 10년 간 처음 수감돼서 형 집행 정지를 받고 교도소를 나가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따져봤더니 폭력은 470일, 절도는 330일, 사기는 329일이 소요됐습니다.

그런데 횡령이나 배임, 조세사범 등은 270 일 정도, 공직선거법은 130일 밖에 안 걸렸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실제로 더 아파서인지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힘 있는 사람들이 더 빨리 나갔다는 건 확실합니다.

공정한 집행정지 제도를 운용하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요? 김귀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윤길자씨 사건 직후 검찰이 내놓은 대책은 크게 두가지.

형집행정지를 신청할 때 의사 2명 이상의 진단서를 받도록 하고,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의무화하는 방안입니다.

형평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의로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겁니다.

이와 함께 교도소나 구치소의 의료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추진돼야 합니다.

그래야 돈있고 힘있는 재소자들만 형집행 정지를 받고 호화병원에서 지낸다는 특혜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현재 정원 100명인 전국 교정시설의 의사 인력을 충분히 확충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정병원을 세워 위중한 환자들을 자체관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뷰> 신현호(변호사) : "수감됐다는 이유로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 수감자의 부담으로 외부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확대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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