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아들아, 미안하다” 25년 병 수발 끝에…

입력 2013.11.20 (08:36) 수정 2013.11.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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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그제 충남 당진에 있는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집안에 있던 아버지와 아들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던 것이 집 근처에 있던 차량에서 아버지의 유서가 발견된 건데요.

김기흥 기자와 함께 어떤 사연인지 알아봅니다.

유서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나요?

<기자 멘트>

25년째 아들의 병수발을 해온 아버지이지만 정작 잘해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전했는데요.

잠도 아들 옆에서 항상 잤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불이 난 그날 새벽에도 아들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상태로 숨진 채 발견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안타까운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충남 당진의 한 농가.

집안 곳곳이 새까맣게 그을렸습니다.

살림살이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는데요.

집안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 건 지난 18일 새벽 1시 30분쯤.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화재가 이미 집안 전체로 확산되고, 지붕까지 연기가 다 올라와서...”

화염은 순식간에 집을 통째로 집어 삼켰는데요.

이웃주민의 신고로 소방대원이 현장에 출동해 불은 1시간 20분 만에 꺼졌지만 집 안에 있던 쉰다섯 살 김 모씨와 서른한 살 된 둘째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라기에는 화재가 너무 확대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김 씨 부자가 발견된 곳은 평소 둘째 아들이 머물고 있던 방.

두 사람은 방 안에서 함께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있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불이 나면) 허둥지둥 대거나 연기로 인해 놀라게 되면 대부분 거실 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방에 누워있는 상태로...”

한꺼번에 가족을 둘이나 떠나보낸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유가족(음성변조) : “그냥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가세요.”

김 씨의 아내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잠시 집 근처 큰 아들의 집에 들렀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됐는데요.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화재 진압 도중에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목 놓아 우시면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하면서...”

집 근처에 세워져 있던 김 씨의 차량에서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잘 해주지 못한 아들에게 미안하고 큰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 김 씨.

집안에 다른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고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볼 때 경찰은 김 씨가 집에 불을 지르고 둘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녹취> 경찰 관계자(충남 당진경찰서/음성변조) :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심적으로 고통스러웠겠죠.”

<기자 멘트>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와 아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들에게 비극은 이미 25년 전인 1998년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리포트>

김 씨와 함께 숨진 둘째 아들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여섯 살.

집 앞에서 놀다가 대형 화물차에 치여 머리와 온몸을 크게 다쳤는데요.

사고 이후 5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충남 당진경찰서/음성변조) :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고 뇌병변 1급 장애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아들의 사고로 김 씨 부부의 삶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멀쩡하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면서 아들의 병간호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25년 동안 한결 같이 몸져누운 아들 곁에서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음성변조) : “엄마 아버지가 지극히 살펴서 욕창 하나 안 생기게. 시설에다 맡길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지금까지 25년을.”

아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도하며 힘겨운 나날을 참고 견뎌왔던 김 씨.

아들의 약값과 가족의 생활비도 고스란히 가장인 그의 몫이었습니다.

가스충전소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고 하는데요.

아들을 돌보는데 치중하다 보니 이웃과의 왕래는 차츰 뜸해졌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음성변조) : “한 동네 살아도 잘 몰라. 서로 교류가 없으니까.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김 씨 부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오죽하면 그랬겠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는데요.

지난 5월에는 80대 남편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저수지로 돌진해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다.

<인터뷰> 정기복(최초 목격자) :“물에 잠겨 있으니까 (잘 몰랐는데) 연세 많은 어른이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됐죠.”

4년 동안 아내의 병간호를 했던 남편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생을 마감했는데요.

이처럼 중증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역할은 또 하나의 직업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힘든 일입니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고 있는 김 양의 가족.

5개월 전 태어난 김 양의 동생이 무뇌증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정부 지원금은 고스란히 동생의 병원비에 보태지고 있습니다.

<녹취> 김00(중증 환자 가족/음성변조) : “한 번 입원하면 50만 원 이상 나가니까. 병원비 들어가는 것만 (한 달에) 2,3백 만 원?”

김 양은 아픈 부모님과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

정신적인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도 해봤습니다.

<녹취> 김00(중증 환자 가족/음성변조) : “너무 힘들 때는 그런 생각하잖아요. 진짜 죽고 싶다, 이런 생각.”

이처럼 희귀질환이나 암과 같은 중증 환자 가족들은 실직과 무너지는 가계로 인해 정신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데요.

암환자 가족의 경우 간병 보호자 10명 중 7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100명 중 3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중증 환자 가족들의 고통은 이제 더 이상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데요.

<인터뷰> 신동면(교수/경희대 행정학과) : “장애인 활동 보조 사업이라고 해서 활동 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그리고 장애인 연금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복지 정책이) 발전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가야될 길은 좀 멀다.”

환자 가족의 간병휴가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간병을 병원이 도맡아 하는 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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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아들아, 미안하다” 25년 병 수발 끝에…
    • 입력 2013-11-20 08:37:58
    • 수정2013-11-20 09: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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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충남 당진에 있는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집안에 있던 아버지와 아들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던 것이 집 근처에 있던 차량에서 아버지의 유서가 발견된 건데요.

김기흥 기자와 함께 어떤 사연인지 알아봅니다.

유서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나요?

<기자 멘트>

25년째 아들의 병수발을 해온 아버지이지만 정작 잘해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전했는데요.

잠도 아들 옆에서 항상 잤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불이 난 그날 새벽에도 아들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있는 상태로 숨진 채 발견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안타까운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충남 당진의 한 농가.

집안 곳곳이 새까맣게 그을렸습니다.

살림살이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는데요.

집안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 건 지난 18일 새벽 1시 30분쯤.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현장에 도착했을 때 화재가 이미 집안 전체로 확산되고, 지붕까지 연기가 다 올라와서...”

화염은 순식간에 집을 통째로 집어 삼켰는데요.

이웃주민의 신고로 소방대원이 현장에 출동해 불은 1시간 20분 만에 꺼졌지만 집 안에 있던 쉰다섯 살 김 모씨와 서른한 살 된 둘째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라기에는 화재가 너무 확대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김 씨 부자가 발견된 곳은 평소 둘째 아들이 머물고 있던 방.

두 사람은 방 안에서 함께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있었다고 하는데요.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불이 나면) 허둥지둥 대거나 연기로 인해 놀라게 되면 대부분 거실 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방에 누워있는 상태로...”

한꺼번에 가족을 둘이나 떠나보낸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인터뷰> 유가족(음성변조) : “그냥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가세요.”

김 씨의 아내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잠시 집 근처 큰 아들의 집에 들렀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게 됐는데요.

<녹취> 정의탁(소방장/당진 송악119안전센터) : “화재 진압 도중에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목 놓아 우시면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해.’하면서...”

집 근처에 세워져 있던 김 씨의 차량에서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잘 해주지 못한 아들에게 미안하고 큰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 김 씨.

집안에 다른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고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볼 때 경찰은 김 씨가 집에 불을 지르고 둘째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녹취> 경찰 관계자(충남 당진경찰서/음성변조) :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심적으로 고통스러웠겠죠.”

<기자 멘트>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와 아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들에게 비극은 이미 25년 전인 1998년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리포트>

김 씨와 함께 숨진 둘째 아들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여섯 살.

집 앞에서 놀다가 대형 화물차에 치여 머리와 온몸을 크게 다쳤는데요.

사고 이후 5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충남 당진경찰서/음성변조) :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고 뇌병변 1급 장애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아들의 사고로 김 씨 부부의 삶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멀쩡하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면서 아들의 병간호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25년 동안 한결 같이 몸져누운 아들 곁에서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음성변조) : “엄마 아버지가 지극히 살펴서 욕창 하나 안 생기게. 시설에다 맡길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지금까지 25년을.”

아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도하며 힘겨운 나날을 참고 견뎌왔던 김 씨.

아들의 약값과 가족의 생활비도 고스란히 가장인 그의 몫이었습니다.

가스충전소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고 하는데요.

아들을 돌보는데 치중하다 보니 이웃과의 왕래는 차츰 뜸해졌습니다.

<인터뷰> 이웃주민(음성변조) : “한 동네 살아도 잘 몰라. 서로 교류가 없으니까.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김 씨 부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오죽하면 그랬겠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는데요.

지난 5월에는 80대 남편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저수지로 돌진해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다.

<인터뷰> 정기복(최초 목격자) :“물에 잠겨 있으니까 (잘 몰랐는데) 연세 많은 어른이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됐죠.”

4년 동안 아내의 병간호를 했던 남편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생을 마감했는데요.

이처럼 중증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역할은 또 하나의 직업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힘든 일입니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고 있는 김 양의 가족.

5개월 전 태어난 김 양의 동생이 무뇌증 진단을 받으면서부터 정부 지원금은 고스란히 동생의 병원비에 보태지고 있습니다.

<녹취> 김00(중증 환자 가족/음성변조) : “한 번 입원하면 50만 원 이상 나가니까. 병원비 들어가는 것만 (한 달에) 2,3백 만 원?”

김 양은 아픈 부모님과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

정신적인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도 해봤습니다.

<녹취> 김00(중증 환자 가족/음성변조) : “너무 힘들 때는 그런 생각하잖아요. 진짜 죽고 싶다, 이런 생각.”

이처럼 희귀질환이나 암과 같은 중증 환자 가족들은 실직과 무너지는 가계로 인해 정신 건강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데요.

암환자 가족의 경우 간병 보호자 10명 중 7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100명 중 3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중증 환자 가족들의 고통은 이제 더 이상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데요.

<인터뷰> 신동면(교수/경희대 행정학과) : “장애인 활동 보조 사업이라고 해서 활동 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그리고 장애인 연금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복지 정책이) 발전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가야될 길은 좀 멀다.”

환자 가족의 간병휴가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간병을 병원이 도맡아 하는 시스템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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