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간다] 추적! 노숙자 인신매매단

입력 2013.11.22 (23:10) 수정 2013.12.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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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동시장 부근.

제보를 받은 취재진은 노숙자였던 김 모 씨가 감금돼 있었다는 곳을 찾아나섰습니다.

좁은 골목길...

낡은 철제 계단을 오르자, 여인숙 입구가 나타납니다.

그 여인숙에서도 제일 끝방.

김 씨는 여기에 한달 간 갇혀 지냈습니다.

<인터뷰> 김00(감금 피해자) : "내가 그때 여기 방이었거든요. (이 방에 계셨었어요?) 네, 이 방이요. (제일 구석진 방이네요.) 네 여기있었어요."

<인터뷰> 김00(감금 피해자) : "(이 문앞에서 지키고 있었다고요? 어떻게 지키고 서 있었나요?) 여기서 보면 남자가 여기 문을 닫고 있었어요. 이 자리에 서 있었어요. 화장실 가면 앞에서 지키고 있었어요. 나올 때까지... "

김 씨가 갇혀 있었다는 방은 일반 가정집 방의 절반 정도 크기.

<인터뷰> 여인숙 주인 : "(이 방은 얼마에요?) 다 똑같아요. 25만 원"

이 방에 모두 3명이 갇혀 지냈습니다.

경기도 인천 강화도에서 살던 김씨는 34살이던 3년 전 남편의 구타를 피해 집을 나와 노숙인이 됐습니다.

2010년 이맘 때 서울역 부근에서, 방을 얻어주겠다는 30대 남자를 만났습니다.

<인터뷰> 김00(노숙인/감금 피해자) : "(식사는 제대로 하셨어요?) 그냥 김밥으로만...(김밥만?) 네 김밥만 계속 사다주고 그런 식이었죠. (하루에 몇끼나 드셨어요?) 한 끼요. 한 번..."

<인터뷰> 김00 : "(계실 때는 하루종일 나가지 못하고 방에 계신 건가요?) 네 방에만, 한 달 동안 계속 방에서만 자고, 그 다음에 뭐를 떼러 갈 때는 같이 나가고 그런 식이었어요."

김 씨가 감시자와 함께 나가 뗐다는 서류.

그것은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같은 증명서였습니다.

그들은 김 씨를 가둬놓고 무엇을 한 것일까?

강남의 한 상가 건물.

이 건물 지하에는 현재 성인 안마 업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곳은 고급 술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점의 사장은 다름 아닌 노숙자 김 씨였습니다.

<인터뷰> "(혹시 옛날에 고전이라고 술집이 있던 자리인가요?) 모르겠는데요? (혹시 이 가게는 얼마나 됐어요?) 두 달이요. (그럼 이 전에는 무슨 가게였는지는 모르시고요? ) 네 (여기도 000-00번지 맞죠?) 네..."

김 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술집 사장이 된 건, 감금 뒤 인감증명서 등을 떼 준 직후였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김 씨가 서류 용도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00(노숙인/감금 피해자) : "어디에 쓸 거냐고 하니까 말을 안해주더라고요"

김씨를 사장으로 올려놓고도 김씨에겐 천 원 한 장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사장으로 등재된지도 몰랐던 김씨는 한 달 뒤 감시 소홀을 틈타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곤 노숙에서 벗어나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건 독촉장이었습니다.

'고전'이라는 이름의 바로 그 주점 앞으로 나온 세금 고지서.

김 씨가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이름이 올라간 석달간의 세금만 8천 8백만 원이었습니다.

일당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뒤였습니다.

취재진은 김 씨로부터 이들 조직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듣게 됩니다.

<인터뷰> 김00 : "(처음에 어디로 데려갔나요?) 처음에는 다방으로 데려갔어요."

김 씨가 지목한 다방을 찾아가 봤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거기서 사장이라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인터뷰> "(이름이 바뀌었어요?) 예 바뀌었어요. 00으로 (옛날에 뭐였더라 이름이?) 여기 궁전이었죠. 옛날에 ( 그럼 사장님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한 달도 안됐어요> "

<인터뷰> "너무 문을 오래 닫아 놓아서 (여기를요?) 그랬대요. 한 1년 넘게 닫아놓았다는대"

하지만 취재진은 노숙인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불과 몇달 전 이 다방에 갔었다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00(노숙인) : "(다가와서) 여기 있지 말고 옆에 가면 궁전 커피숍이라고 자기가 잘 아는 데가 있대요. 자기가 커피 살테니까, 피곤한 것 같으니까 쉬다가 가라고..."

그리고... 김 씨가 만났다는 바로 그 사장이 등장합니다.

<인터뷰> 최00 :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 보고 사장이라고 불러요. 자기가 영업을 하는데요. 세금 문제 때문에 가게가 잘 되고 있는데 또 하나를 (개업) 하고 싶대요. 그렇게 명의만 도와주면 당신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자기도 좋고..."

이후 최씨도 같은 경로를 걷게 됩니다.

<인터뷰> 최00 : "일반 손님들은 하나도 못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고요. /뭐가 이상했냐면 담배 한대를 피우려고 밖에 나가서 피우려고 문을 여는데 잠겨 있었어요"

<인터뷰> "붙여줘요 사람을. 한 사람은 항상 같이 다니면서 동사무소 가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 인감도 처음에는 두통 떼고...보니까 사람들 일행이 무슨 '단' 같아요."

두 사람이 이 다방에서 만났던 사장. 그리고 일군의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경찰이 인천의 한 오피스텔을 덮칩니다.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

노숙자를 이용해 각종 명의 도용 범죄를 일삼던 일당 가운데 2명이 검거됩니다.

그리고 함께 있던 한 남자가 구출됩니다.

박모 씨.

보름여 간 잡혀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사를 통해, 박 씨가 바로 그 '궁전 다방' 조직을 통해 팔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몸값은 550만 원이었습니다.

왜 감금 노숙자들이 모두 특정 다방을 거쳤는지 추적하던 취재진의 노력이 해답을 찾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방을 중심으로 한 인신매매 조직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먼저 서울역 등에서 노숙자를 꾀어오는 모집책.

일자리나 숙소를 마련해 주겠다.

먹을 것을 주겠다고 꾀어, 다방으로 데려옵니다.

다방에 상주하는 사람은 '김 사장'으로 불리던 인신매매 조직의 총책이었습니다.

김 사장은 1인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주고 모집책으로부터 노숙자를 삽니다.

그리고 이 노숙인의 신용도를 확인한 뒤 등급에 따라 다른 조직에 팔아넘겼습니다.

인신매매된 노숙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만 모두 11명.

과거 인신매매는 배 등으로 사람을 팔아넘겨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21세기형 인신매매는 경제 범죄를 목적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들이 노숙자를 사고 팔며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주민 번호와 함께, 신용등급을 알 수 있는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보냅니다.

그래야 '사람 값'을 매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 4등급은 650만원, 5등급 550만원, 6등급은 450만 원에 팔렸습니다.

<인터뷰> 경기 양평경찰서 강력팀 : "신용등급에 따라서 정해지는 거니까. 이 사람이 등급이 좋으면 4등급 650만원이나 550, 450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는 나름대로 정해진 몸값기준이 있습니다"

팔려간 노숙자들의 명의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포폰, 대포 통장을 만들어 파는 것은 기본.

노숙인 이름으로, 차를 사서 팔아 넘기고, 신용카드를 만들어 현금 서비스를 받고, 또 각종 기관에서 수백만원 씩 대출도 받습니다.

각종 사업체에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세워 세금을 떼먹는가 하면, 심지어 부동산 거래에서도 명의만 걸고 사기를 칩니다.

범죄 조직들이 수백만 원을 주고라도 노숙자들을 사들이는 이윱니다.

<인터뷰> 유주흥(경기 양평경찰서 강력팀장) : "그 업자들이 다시 서민들을 상대로 해서 보이스 피싱이나 대출 사기 이런 경제적인 범죄에 또 사용되는 원천적인 범죄가 되지 않나"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꾀어내는 모집책, 이른바 '찍새'의 우두머리는 아직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일명 '목동 아줌마'.

취재진은 경찰과 함께 그녀가 모집책들을 만나고 사람을 넘기는 장소로 썼다는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네 차례의 동행 잠복.

하지만, 낌새를 챘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인터뷰> "(몇 시간째 계시는 건지?) 4시간째 있습니다"

얼굴 노출 위험이 있는 경찰을 대신해 취재진이 직접 들어가 봤습니다.

내부는 칸막이가 쳐지고, 특히 룸으로 만들어진 곳이 3곳 정도 있습니다.

목동 아줌마로 불리는 모집책은 다른 인신매매 조직과도 거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의 검거 여하에 따라 다른 조직의 적발, 그리고 팔려간 또 다른 노숙인들의 구출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인터뷰> 경기 양평경찰서 강력팀 : "(다른 조직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대단히 많죠. 조사를 해본 바로도 또 다른 조직이 있다고 진술을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고, 그런 걸로 봤을 때 대단히 많을 겁니다. 또 다른 조직이"

목동 아줌마의 행방을 쫓던 중 취재진과 감금 장소에 동행했던 김모 씨로부터 자신을 데리고 다니던 조직원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저기 의자에 사람 앉아 있죠? 딱 저기 앉아 있었어요."

취재진이 도착하기 직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터뷰> "(그때 청량리에서 어떻게 했던 사람이라고요?) 그 사람이 전에 통장 (개설)하러 가서 신랑이라고 얘기 하라는..."

인신매매 조직의 또다른 일원.

방금 전까지 서울역 앞에서 또다시 범죄 대상을 물색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그를 찾기 위해 서울역 부근을 밤까지 뒤졌습니다.

<인터뷰> "(어머니 보이세요?) 아니, 안보여요. (오늘 저녁에는 안보여요 지금? 이쪽 다 둘러보셨죠?) 둘러봤는데 없어요 (저쪽으로 한번 가보시죠) "

며칠을 찾았지만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명의 노숙자들로부터 과거 서울역에서 자신을 꾀어갔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조직책) 몇 번이나 보셨어요?) 어제도 나타났는데...여름에도 자주 나타났죠. 근데 겨울에는 뜸하게 나타나요 "

그리고 노숙자들을 꾀어간 양 실장이라는 인물의 존재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 사람이 양00이라고요. ( 이게 양 실장이요?) 네 ( 이건 언제 찍으신 거예요?) 6월 17일 찍은 거예요. 이 사람 (노숙자) 옆에 앉아서 그 때도 물어봤어요. 서류 뗄건지...그때도 물어보고 했던 그 장면이에요."

이런 식으로 팔려가거나 명의 도용 일당의 속임수에 넘어간 노숙인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어딘지 기억나요?) 저기요 ( 어디) 저 집이요 "

노숙생활을 하다 유인당해 3개 월간 갇혀 있었다는 김경준 씨와 함께, 감금 장소를 찾아나섰습니다.

<인터뷰> 건물 주인 : "(혹시 기억나세요? 2층에 누구 세 들어 살던 청년들?) 2개월인가 3개월인가 잠깐 있다가 갔어요. (계약서) 그런 것 쓴 것도 없었어요 "

방 2개 자리 주택 2층에서 겨울 몇달 간 기거했다는 서너 명의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김경준 씨도 끼어있었습니다.

김씨는 바깥 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폭행에 시달려,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경준(가명) : "라이터 불로 지지고 때리고 그랬어요. 물구나무 서게 시키고 그랬어요. 발을 지졌어요. (얼마나 자주) 하루에 서너번 정도 그랬어요"

이곳에 붙잡혀 있는 동안 김경준 씨 명의를 도용해 이뤄진 각종 계약 서류들입니다.

차량 5대 구입, 핸드폰만 14대가 개통됐습니다.

700만원의 대출도 받았습니다.

회사 몇 곳도 김 씨 명의로 세워졌습니다.

차 값과 미납 세금 등 김 씨 한 사람을 이용해 범죄조직이 가져간 금액이 억대를 훌쩍 넘어갑니다.

2010년 1월, 영등포 역에서 추위에 떨던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며 데려간 이들이 저지른 짓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김 씨의 명의로 돼 있어, 법적으로 모든 납부 책임은 김 씨에게 있습니다.

<인터뷰> 차혜령(변호사) : "대한민국에서 본인 이름으로 법률 행위를 한 것 자체로 책임을 묻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왜 거기까지 이르렀냐'의 그 전의 과정을 포착해서 어떤 불법이나 범죄성, 위법이 있는지를 밝혀내서 처벌하든지 (해야 하는데), 홈리스들만 벌금 백만 원, 아니면 징역형...아니면 계속 채무 독촉을 받는다든지"

노숙인들이 급식소에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합니다.

특히 겨울이면 생활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노숙인들.

이들에게 아주 약간의 돈, 하룻밤 잠자리, 그리고 식사는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인터뷰> 이수경(따스한 채움터 팀장) : "만 원 가지고 이분들이 일주일을 생활하시는 거예요. 이분들이 받아들이는 화폐가치가 많이 다릅니다. 결국은 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은 뭐냐하면 그 적은 금액을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이 분들을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2006년부터 노숙자를 상대로 법률상담을 해온 한 시민단체는 상담 건수의 80~90%가 명의도용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노숙인들은 명의 도용, 나아가 인신매매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깁니다.

더욱 문제는 노숙자들이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 할 때, 과거 얽혀든 범죄 때문에 생활보호 대상자나, 임대주택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등, 자립의 길이 더욱 어려워 진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이동현(홈리스 행동 활동가) : "일자리를 구해서 쪽방,고시원 같은 거처에 들어가 주민등록을 복원할 때, 갑자기 세금 고지서나 연체금 고지서 이런 것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는 거죠. 뭔가 희망을 꿈꿀 단계에 내 앞으로 몇 억원의 세금이 있고, 이런 것을 발견하게 됐을 때에는 탈노숙의 꿈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이죠"

여인숙에 갇혔던 이는 임대 아파트라도 들어갈 자격이 돼 지금은 고아원에 있는 아들과 함께 살기를 꿈꿉니다.

<인터뷰> "과자를 사들고 (고아원에) 갔어요. 엄마가 버린 걸 안좋게 생각한다고 보여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뒤로 돌아서려니까 발이 안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울기도 했어요."

<녹취>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석달 간 감금 당했던 이는 홈리스 자활 잡지를 팔며, 공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터뷰> "공부하고 싶어요. 수학 자연 과학에 관심이 많거든요. "

한 때 노숙인이었지만 따뜻한 삶을 꿈 꾸는 이 평범한 이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인신매매 범죄, 추위가 찾아온 겨울의 초입, 노숙인들이 더욱 힘들어지는 이때, 인신매매 조직이 이 노숙인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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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간다] 추적! 노숙자 인신매매단
    • 입력 2013-11-23 06:20:09
    • 수정2013-12-02 16:24:59
    취재파일K
서울 경동시장 부근.

제보를 받은 취재진은 노숙자였던 김 모 씨가 감금돼 있었다는 곳을 찾아나섰습니다.

좁은 골목길...

낡은 철제 계단을 오르자, 여인숙 입구가 나타납니다.

그 여인숙에서도 제일 끝방.

김 씨는 여기에 한달 간 갇혀 지냈습니다.

<인터뷰> 김00(감금 피해자) : "내가 그때 여기 방이었거든요. (이 방에 계셨었어요?) 네, 이 방이요. (제일 구석진 방이네요.) 네 여기있었어요."

<인터뷰> 김00(감금 피해자) : "(이 문앞에서 지키고 있었다고요? 어떻게 지키고 서 있었나요?) 여기서 보면 남자가 여기 문을 닫고 있었어요. 이 자리에 서 있었어요. 화장실 가면 앞에서 지키고 있었어요. 나올 때까지... "

김 씨가 갇혀 있었다는 방은 일반 가정집 방의 절반 정도 크기.

<인터뷰> 여인숙 주인 : "(이 방은 얼마에요?) 다 똑같아요. 25만 원"

이 방에 모두 3명이 갇혀 지냈습니다.

경기도 인천 강화도에서 살던 김씨는 34살이던 3년 전 남편의 구타를 피해 집을 나와 노숙인이 됐습니다.

2010년 이맘 때 서울역 부근에서, 방을 얻어주겠다는 30대 남자를 만났습니다.

<인터뷰> 김00(노숙인/감금 피해자) : "(식사는 제대로 하셨어요?) 그냥 김밥으로만...(김밥만?) 네 김밥만 계속 사다주고 그런 식이었죠. (하루에 몇끼나 드셨어요?) 한 끼요. 한 번..."

<인터뷰> 김00 : "(계실 때는 하루종일 나가지 못하고 방에 계신 건가요?) 네 방에만, 한 달 동안 계속 방에서만 자고, 그 다음에 뭐를 떼러 갈 때는 같이 나가고 그런 식이었어요."

김 씨가 감시자와 함께 나가 뗐다는 서류.

그것은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같은 증명서였습니다.

그들은 김 씨를 가둬놓고 무엇을 한 것일까?

강남의 한 상가 건물.

이 건물 지하에는 현재 성인 안마 업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러나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이곳은 고급 술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점의 사장은 다름 아닌 노숙자 김 씨였습니다.

<인터뷰> "(혹시 옛날에 고전이라고 술집이 있던 자리인가요?) 모르겠는데요? (혹시 이 가게는 얼마나 됐어요?) 두 달이요. (그럼 이 전에는 무슨 가게였는지는 모르시고요? ) 네 (여기도 000-00번지 맞죠?) 네..."

김 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술집 사장이 된 건, 감금 뒤 인감증명서 등을 떼 준 직후였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김 씨가 서류 용도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00(노숙인/감금 피해자) : "어디에 쓸 거냐고 하니까 말을 안해주더라고요"

김씨를 사장으로 올려놓고도 김씨에겐 천 원 한 장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사장으로 등재된지도 몰랐던 김씨는 한 달 뒤 감시 소홀을 틈타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곤 노숙에서 벗어나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건 독촉장이었습니다.

'고전'이라는 이름의 바로 그 주점 앞으로 나온 세금 고지서.

김 씨가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이름이 올라간 석달간의 세금만 8천 8백만 원이었습니다.

일당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뒤였습니다.

취재진은 김 씨로부터 이들 조직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듣게 됩니다.

<인터뷰> 김00 : "(처음에 어디로 데려갔나요?) 처음에는 다방으로 데려갔어요."

김 씨가 지목한 다방을 찾아가 봤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거기서 사장이라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

<인터뷰> "(이름이 바뀌었어요?) 예 바뀌었어요. 00으로 (옛날에 뭐였더라 이름이?) 여기 궁전이었죠. 옛날에 ( 그럼 사장님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한 달도 안됐어요> "

<인터뷰> "너무 문을 오래 닫아 놓아서 (여기를요?) 그랬대요. 한 1년 넘게 닫아놓았다는대"

하지만 취재진은 노숙인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불과 몇달 전 이 다방에 갔었다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최00(노숙인) : "(다가와서) 여기 있지 말고 옆에 가면 궁전 커피숍이라고 자기가 잘 아는 데가 있대요. 자기가 커피 살테니까, 피곤한 것 같으니까 쉬다가 가라고..."

그리고... 김 씨가 만났다는 바로 그 사장이 등장합니다.

<인터뷰> 최00 :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 보고 사장이라고 불러요. 자기가 영업을 하는데요. 세금 문제 때문에 가게가 잘 되고 있는데 또 하나를 (개업) 하고 싶대요. 그렇게 명의만 도와주면 당신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자기도 좋고..."

이후 최씨도 같은 경로를 걷게 됩니다.

<인터뷰> 최00 : "일반 손님들은 하나도 못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고요. /뭐가 이상했냐면 담배 한대를 피우려고 밖에 나가서 피우려고 문을 여는데 잠겨 있었어요"

<인터뷰> "붙여줘요 사람을. 한 사람은 항상 같이 다니면서 동사무소 가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 인감도 처음에는 두통 떼고...보니까 사람들 일행이 무슨 '단' 같아요."

두 사람이 이 다방에서 만났던 사장. 그리고 일군의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경찰이 인천의 한 오피스텔을 덮칩니다.

손목에 채워지는 수갑.

노숙자를 이용해 각종 명의 도용 범죄를 일삼던 일당 가운데 2명이 검거됩니다.

그리고 함께 있던 한 남자가 구출됩니다.

박모 씨.

보름여 간 잡혀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사를 통해, 박 씨가 바로 그 '궁전 다방' 조직을 통해 팔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몸값은 550만 원이었습니다.

왜 감금 노숙자들이 모두 특정 다방을 거쳤는지 추적하던 취재진의 노력이 해답을 찾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방을 중심으로 한 인신매매 조직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먼저 서울역 등에서 노숙자를 꾀어오는 모집책.

일자리나 숙소를 마련해 주겠다.

먹을 것을 주겠다고 꾀어, 다방으로 데려옵니다.

다방에 상주하는 사람은 '김 사장'으로 불리던 인신매매 조직의 총책이었습니다.

김 사장은 1인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주고 모집책으로부터 노숙자를 삽니다.

그리고 이 노숙인의 신용도를 확인한 뒤 등급에 따라 다른 조직에 팔아넘겼습니다.

인신매매된 노숙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만 모두 11명.

과거 인신매매는 배 등으로 사람을 팔아넘겨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21세기형 인신매매는 경제 범죄를 목적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들이 노숙자를 사고 팔며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주민 번호와 함께, 신용등급을 알 수 있는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보냅니다.

그래야 '사람 값'을 매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 4등급은 650만원, 5등급 550만원, 6등급은 450만 원에 팔렸습니다.

<인터뷰> 경기 양평경찰서 강력팀 : "신용등급에 따라서 정해지는 거니까. 이 사람이 등급이 좋으면 4등급 650만원이나 550, 450 약간의 변동이 있을 수 있는 나름대로 정해진 몸값기준이 있습니다"

팔려간 노숙자들의 명의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포폰, 대포 통장을 만들어 파는 것은 기본.

노숙인 이름으로, 차를 사서 팔아 넘기고, 신용카드를 만들어 현금 서비스를 받고, 또 각종 기관에서 수백만원 씩 대출도 받습니다.

각종 사업체에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세워 세금을 떼먹는가 하면, 심지어 부동산 거래에서도 명의만 걸고 사기를 칩니다.

범죄 조직들이 수백만 원을 주고라도 노숙자들을 사들이는 이윱니다.

<인터뷰> 유주흥(경기 양평경찰서 강력팀장) : "그 업자들이 다시 서민들을 상대로 해서 보이스 피싱이나 대출 사기 이런 경제적인 범죄에 또 사용되는 원천적인 범죄가 되지 않나"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꾀어내는 모집책, 이른바 '찍새'의 우두머리는 아직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일명 '목동 아줌마'.

취재진은 경찰과 함께 그녀가 모집책들을 만나고 사람을 넘기는 장소로 썼다는 커피숍으로 향했습니다.

네 차례의 동행 잠복.

하지만, 낌새를 챘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인터뷰> "(몇 시간째 계시는 건지?) 4시간째 있습니다"

얼굴 노출 위험이 있는 경찰을 대신해 취재진이 직접 들어가 봤습니다.

내부는 칸막이가 쳐지고, 특히 룸으로 만들어진 곳이 3곳 정도 있습니다.

목동 아줌마로 불리는 모집책은 다른 인신매매 조직과도 거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의 검거 여하에 따라 다른 조직의 적발, 그리고 팔려간 또 다른 노숙인들의 구출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인터뷰> 경기 양평경찰서 강력팀 : "(다른 조직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대단히 많죠. 조사를 해본 바로도 또 다른 조직이 있다고 진술을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고, 그런 걸로 봤을 때 대단히 많을 겁니다. 또 다른 조직이"

목동 아줌마의 행방을 쫓던 중 취재진과 감금 장소에 동행했던 김모 씨로부터 자신을 데리고 다니던 조직원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저기 의자에 사람 앉아 있죠? 딱 저기 앉아 있었어요."

취재진이 도착하기 직전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터뷰> "(그때 청량리에서 어떻게 했던 사람이라고요?) 그 사람이 전에 통장 (개설)하러 가서 신랑이라고 얘기 하라는..."

인신매매 조직의 또다른 일원.

방금 전까지 서울역 앞에서 또다시 범죄 대상을 물색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취재진은 그를 찾기 위해 서울역 부근을 밤까지 뒤졌습니다.

<인터뷰> "(어머니 보이세요?) 아니, 안보여요. (오늘 저녁에는 안보여요 지금? 이쪽 다 둘러보셨죠?) 둘러봤는데 없어요 (저쪽으로 한번 가보시죠) "

며칠을 찾았지만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명의 노숙자들로부터 과거 서울역에서 자신을 꾀어갔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조직책) 몇 번이나 보셨어요?) 어제도 나타났는데...여름에도 자주 나타났죠. 근데 겨울에는 뜸하게 나타나요 "

그리고 노숙자들을 꾀어간 양 실장이라는 인물의 존재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 사람이 양00이라고요. ( 이게 양 실장이요?) 네 ( 이건 언제 찍으신 거예요?) 6월 17일 찍은 거예요. 이 사람 (노숙자) 옆에 앉아서 그 때도 물어봤어요. 서류 뗄건지...그때도 물어보고 했던 그 장면이에요."

이런 식으로 팔려가거나 명의 도용 일당의 속임수에 넘어간 노숙인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어딘지 기억나요?) 저기요 ( 어디) 저 집이요 "

노숙생활을 하다 유인당해 3개 월간 갇혀 있었다는 김경준 씨와 함께, 감금 장소를 찾아나섰습니다.

<인터뷰> 건물 주인 : "(혹시 기억나세요? 2층에 누구 세 들어 살던 청년들?) 2개월인가 3개월인가 잠깐 있다가 갔어요. (계약서) 그런 것 쓴 것도 없었어요 "

방 2개 자리 주택 2층에서 겨울 몇달 간 기거했다는 서너 명의 사람들.

그 사람들 중에 김경준 씨도 끼어있었습니다.

김씨는 바깥 출입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폭행에 시달려,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경준(가명) : "라이터 불로 지지고 때리고 그랬어요. 물구나무 서게 시키고 그랬어요. 발을 지졌어요. (얼마나 자주) 하루에 서너번 정도 그랬어요"

이곳에 붙잡혀 있는 동안 김경준 씨 명의를 도용해 이뤄진 각종 계약 서류들입니다.

차량 5대 구입, 핸드폰만 14대가 개통됐습니다.

700만원의 대출도 받았습니다.

회사 몇 곳도 김 씨 명의로 세워졌습니다.

차 값과 미납 세금 등 김 씨 한 사람을 이용해 범죄조직이 가져간 금액이 억대를 훌쩍 넘어갑니다.

2010년 1월, 영등포 역에서 추위에 떨던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며 데려간 이들이 저지른 짓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김 씨의 명의로 돼 있어, 법적으로 모든 납부 책임은 김 씨에게 있습니다.

<인터뷰> 차혜령(변호사) : "대한민국에서 본인 이름으로 법률 행위를 한 것 자체로 책임을 묻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왜 거기까지 이르렀냐'의 그 전의 과정을 포착해서 어떤 불법이나 범죄성, 위법이 있는지를 밝혀내서 처벌하든지 (해야 하는데), 홈리스들만 벌금 백만 원, 아니면 징역형...아니면 계속 채무 독촉을 받는다든지"

노숙인들이 급식소에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합니다.

특히 겨울이면 생활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노숙인들.

이들에게 아주 약간의 돈, 하룻밤 잠자리, 그리고 식사는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인터뷰> 이수경(따스한 채움터 팀장) : "만 원 가지고 이분들이 일주일을 생활하시는 거예요. 이분들이 받아들이는 화폐가치가 많이 다릅니다. 결국은 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부분은 뭐냐하면 그 적은 금액을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이 분들을 범죄에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2006년부터 노숙자를 상대로 법률상담을 해온 한 시민단체는 상담 건수의 80~90%가 명의도용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노숙인들은 명의 도용, 나아가 인신매매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깁니다.

더욱 문제는 노숙자들이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 할 때, 과거 얽혀든 범죄 때문에 생활보호 대상자나, 임대주택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등, 자립의 길이 더욱 어려워 진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이동현(홈리스 행동 활동가) : "일자리를 구해서 쪽방,고시원 같은 거처에 들어가 주민등록을 복원할 때, 갑자기 세금 고지서나 연체금 고지서 이런 것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는 거죠. 뭔가 희망을 꿈꿀 단계에 내 앞으로 몇 억원의 세금이 있고, 이런 것을 발견하게 됐을 때에는 탈노숙의 꿈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이죠"

여인숙에 갇혔던 이는 임대 아파트라도 들어갈 자격이 돼 지금은 고아원에 있는 아들과 함께 살기를 꿈꿉니다.

<인터뷰> "과자를 사들고 (고아원에) 갔어요. 엄마가 버린 걸 안좋게 생각한다고 보여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뒤로 돌아서려니까 발이 안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울기도 했어요."

<녹취>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석달 간 감금 당했던 이는 홈리스 자활 잡지를 팔며, 공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인터뷰> "공부하고 싶어요. 수학 자연 과학에 관심이 많거든요. "

한 때 노숙인이었지만 따뜻한 삶을 꿈 꾸는 이 평범한 이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인신매매 범죄, 추위가 찾아온 겨울의 초입, 노숙인들이 더욱 힘들어지는 이때, 인신매매 조직이 이 노숙인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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