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나의 살던 아파트’ 책으로…독립출판 봇물

입력 2013.11.26 (11:47) 수정 2013.11.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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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가 있습니다. 재건축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 아마도 수년 내로 철거될 운명이죠. 1만 세대나 되는 대규모 아파트다 보니 아파트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많습니다. 31살의 직장인 이인규 씨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이 씨는 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 이곳에 살았습니다. 이 아파트를 ‘고향과 같은 곳’ 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사라질 아파트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주공아파트’ 는 고향에서 사랑스러운 사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씨의 애정의 표현법은 달랐습니다. 이 아파트 단지에 대한 오래된 사진과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지요.

대학에서 책 편집을 배운 적이 있었던 이 씨에게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일을 마친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작업했습니다. iOS환경의 프로그램을 비롯해 시중에는 다양한 책 편집 도구가 있고 특히 디자인이나 미술에 관심있는 분들은 많이 익힌 상태입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책들을 유통할 수 있는 서점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자가 직접 편집해서 인쇄소에 인쇄만 맡긴 뒤 책을 찾아서 판매하는 걸 독립출판이라고 부르는데요. 몇 년 전에는 주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홍대 앞 등의 카페에서 이런 책을 팔았습니다. 자작 문화상품을 파는 장터 좌판 같은 곳에서도 예쁜 책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독립 출판 서적을 취급하는 전문 서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홍대를 비롯해 종로, 부산, 대구, 전주 등 전국 곳곳에 10곳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새로 출간되는 독립출판 서적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잡지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독립출판을 이용할까요? 최근 신간으로 나오는 책들을 보면 디자인에 대한 책도 많지만 이인규 씨처럼 아파트의 추억에 대한 책, 그리고 여행기나 만화에서부터 정치 경제나 사회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담는 경우까지 분야가 다양합니다.

저희 기자 한 명이 북유럽 여행을 앞두고 여행안내서를 찾아봤지만, 수요가 적은 탓인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유럽에 다녀와서 가서 찍은 사진과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예쁜 독립출판 책들은 많습니다. 독립출판은 젊은 층의 다양한 표현을 위한‘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앞날은 무엇일까요? 사실 독립출판이라는 이름이 없었지만 만화동호인들은 동인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그림과 글을 쓰고 편집을 해서 펴낸 뒤 직접 판매하는 활동 등을 해왔습니다. 이인규 씨는 ‘물성’ 이 있어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언제라도 고향 같은 둔촌주공아파트가 그리울 때 편안하게 펼쳐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미래를 어둡다고 말하지만 책의 오래된 편안함은 좀처럼 대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출판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시장성이 분명치 않은 책들에 투자하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독립출판의 독자적인 영역은 당분간은 지켜질 것이라고 봅니다.
독립출판 유행은 20세기의 문학청년들의 동인지 활동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창비'의 창간사는 이 잡지가 ‘조그만 대세’ 를 만들고 싶다고 쓰고 있습니다. 최근 청년층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창비’ 가 나오던 시기 젊은이들이 잡지로 자신들의 생각을 세상에 알렸듯, 지금 독립출판도 새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예전보다 요즘 젊은 층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들이 공유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리고 유명 언론의 주요 필진에는 아직까지 그 앞 세대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도미노는 벌써 5호째를 준비하고 있는 독립출판 잡지입니다. 번역가 노정태 씨와 디자이너인 김형재, 함영준 씨 등 다양한 동인들이 한 해 2권 가량 만드는 잡지인데요. 현재의 사회상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재미있는 글과 이미지로 전하고 있습니다. 1,000부씩을 꾸준하게 팔면서 꽤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조금만 늦으면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될 정도입니다.

저는 조그만 방에서 열린 도미노의 편집회의를 참관할 수 있었는데요. 신변잡기나 자기가 읽고 있는 책,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다가 다음 호의 기사를 찾아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미래 하나가 곳곳의 조그만 방들에서 이렇게 싹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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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나의 살던 아파트’ 책으로…독립출판 봇물
    • 입력 2013-11-26 11:47:52
    • 수정2013-11-28 16:17:29
    취재후·사건후
여기, 지어진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가 있습니다. 재건축을 위한 절차에 들어가, 아마도 수년 내로 철거될 운명이죠. 1만 세대나 되는 대규모 아파트다 보니 아파트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많습니다. 31살의 직장인 이인규 씨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이 씨는 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까지 이곳에 살았습니다. 이 아파트를 ‘고향과 같은 곳’ 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사라질 아파트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주공아파트’ 는 고향에서 사랑스러운 사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씨의 애정의 표현법은 달랐습니다. 이 아파트 단지에 대한 오래된 사진과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지요.

대학에서 책 편집을 배운 적이 있었던 이 씨에게 크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일을 마친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작업했습니다. iOS환경의 프로그램을 비롯해 시중에는 다양한 책 편집 도구가 있고 특히 디자인이나 미술에 관심있는 분들은 많이 익힌 상태입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책들을 유통할 수 있는 서점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자가 직접 편집해서 인쇄소에 인쇄만 맡긴 뒤 책을 찾아서 판매하는 걸 독립출판이라고 부르는데요. 몇 년 전에는 주로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홍대 앞 등의 카페에서 이런 책을 팔았습니다. 자작 문화상품을 파는 장터 좌판 같은 곳에서도 예쁜 책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독립 출판 서적을 취급하는 전문 서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홍대를 비롯해 종로, 부산, 대구, 전주 등 전국 곳곳에 10곳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새로 출간되는 독립출판 서적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잡지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독립출판을 이용할까요? 최근 신간으로 나오는 책들을 보면 디자인에 대한 책도 많지만 이인규 씨처럼 아파트의 추억에 대한 책, 그리고 여행기나 만화에서부터 정치 경제나 사회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담는 경우까지 분야가 다양합니다.

저희 기자 한 명이 북유럽 여행을 앞두고 여행안내서를 찾아봤지만, 수요가 적은 탓인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유럽에 다녀와서 가서 찍은 사진과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예쁜 독립출판 책들은 많습니다. 독립출판은 젊은 층의 다양한 표현을 위한‘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독립출판의 앞날은 무엇일까요? 사실 독립출판이라는 이름이 없었지만 만화동호인들은 동인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그림과 글을 쓰고 편집을 해서 펴낸 뒤 직접 판매하는 활동 등을 해왔습니다. 이인규 씨는 ‘물성’ 이 있어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언제라도 고향 같은 둔촌주공아파트가 그리울 때 편안하게 펼쳐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미래를 어둡다고 말하지만 책의 오래된 편안함은 좀처럼 대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출판업을 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시장성이 분명치 않은 책들에 투자하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독립출판의 독자적인 영역은 당분간은 지켜질 것이라고 봅니다.
독립출판 유행은 20세기의 문학청년들의 동인지 활동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창비'의 창간사는 이 잡지가 ‘조그만 대세’ 를 만들고 싶다고 쓰고 있습니다. 최근 청년층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창비’ 가 나오던 시기 젊은이들이 잡지로 자신들의 생각을 세상에 알렸듯, 지금 독립출판도 새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예전보다 요즘 젊은 층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들이 공유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리고 유명 언론의 주요 필진에는 아직까지 그 앞 세대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도미노는 벌써 5호째를 준비하고 있는 독립출판 잡지입니다. 번역가 노정태 씨와 디자이너인 김형재, 함영준 씨 등 다양한 동인들이 한 해 2권 가량 만드는 잡지인데요. 현재의 사회상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재미있는 글과 이미지로 전하고 있습니다. 1,000부씩을 꾸준하게 팔면서 꽤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조금만 늦으면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될 정도입니다.

저는 조그만 방에서 열린 도미노의 편집회의를 참관할 수 있었는데요. 신변잡기나 자기가 읽고 있는 책,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다가 다음 호의 기사를 찾아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미래 하나가 곳곳의 조그만 방들에서 이렇게 싹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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