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2013 북한읽기 ② 해외 취업자 급증…약인가? 독인가?

입력 2013.11.26 (15:03) 수정 2013.1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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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개발구의 북한주민 취업 공장

10월 초 두만강변 도문시 외곽에 위치한 도문개발구(개발구는 우리의 공단)를 찾았다. 북한노동자들이 제법 많이 진출한 곳이다. 북한노동자들의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처우가 어떤지, 어떻게 해서 중국으로 건너왔는지 등등 여러 가지 사정을 알고 싶어서였다. 안내인을 통해 북한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 두어 곳을 파악하였다. 하지만 ‘한번 찾아뵙겠다’ 는 안내인의 전화에 업체 사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일단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보다 며칠 앞서, 인근 훈춘시의 북한노동자 취업공장을 찾았다가 외경만 촬영하고 진입에는 실패한 적이 있었다. 공장을 몇 바퀴나 뱅뱅 돌았지만 굳게 닫힌 정문을 통과해서 내부로 들어갈 기회와 구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 등 외국으로 진출한 북한노동자들은 보위부의 통제 아래 일을 하고 있다. ‘자유 바람’ 을 차단할 목적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북한노동자들을 만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맛만 다시다가 결국 진입을 포기하였다.

한번 실패한 만큼 독기가 생겼다. 도문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장내부로 진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환영받지 못하는 방문...일이 잘 풀릴지, 욕설만 듣고 쫓겨날지, 몸싸움이 벌어져 공안에 고발이라도 당할지, 나중 일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거운 심정으로 아침 일찍 도문개발구로 항하였다. 현장에 가보면 어떤 ‘구상’ 이 떠오를 것 같았다.

도문개발구 내 조선공업원은 북한과 중국 지린성이 합작한 공장구역으로 이곳의 종업원은 대부분 북한노동자들이다. “조선공업원은 조선노동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도로 변에 걸려 있었다. 문제의 공장은 5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의 위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행히 담장이 따로 없어 접근은 수월하였다. 공장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제지하는 경비실 담당자에게 “X층 라오반(사장)을 만나러 왔다” 고 뿌리치며 위층으로 진입하였다.

공장 내부에는 1~2백 명의 북한노동자들이 각자의 재봉틀 앞에 앉아서 옷을 만들고 있었다.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공장 관계자 4~5명이 순식간에 달려와 우리의 ‘작업’을 제지하였다. 북측 일꾼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신들 누구냐, 무슨 일이냐?” 는 질문에 “사장님을 만나러 왔다” 고 답했지만 우리를 한쪽 귀퉁이로 밀어놓고서는 사장과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사장은 ‘그 친구들 딴 짓 못하게 몰아내라’ 고 지시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공장 바깥으로 밀려났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소란이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달려온 사장과 만나 협의를 하였다. 사장은 눈치가 대단히 빠른 사람이었다. 공장을 찾아온 이유를 그럴싸하게 밝혔지만 사장은 허허 웃으면서 단번에 우리의 신분을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몰래 찍으려는 모양인데 그러지 마시라.” 는 말도 하였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럴 때는 정공법 뿐이다. 솔직히 방문 목적을 밝히고 협조를 구하였다. 사장은 협조가 어렵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1층 공장도 많은데 왜 여기에 와서...” 라며 지나가듯이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주변에는 아파트형 공장건물이 여럿인데 1층들은 출입구가 양쪽으로 개방돼 있어 굳이 협조가 없어도 문밖에서 촬영이 가능하였다. 열린 창문을 통해서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인근 공장의 노동자는 거의 북한인들로 상당수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남성은 20~30% 정도였다. 공장 주변을 오가는 노동자들도 간간이 보여서 접촉과 대화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까운 함경도에서 왔는가 여겼는데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많은 것이 이채로웠다. 이곳으로 온지 길어야 1년이었고 대부분은 몇 달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인력수출에 나섰음을 알 수 있었다. 피복공장과 인형공장을 찍고 인터뷰를 마치기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노동자 집단숙소를 찾다

이틀 뒤, 단둥으로 이동해서 또다시 북한노동자 취업공장을 찾았다. 도문에서 성공한 뒤 자신감과 요령이 늘었다. 수많은 공장 가운데서 북한노동자가 취업중인 곳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그 다음은 오히려 수월하다. 이것저것 고민할 것 없이 일단 방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단둥시 서남쪽에 위치한 전자공장을 둘러보았다. 약 200명의 북한여성들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전자부품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월급은 평균 2200위안(우리돈 약 40만원), 그 가운데 ‘조국(북한)’ 에 바치는 돈과 숙식비 등을 제하고 노동자들이 실제 받는 돈은 600~700위안(우리돈 12~13만원)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국에 진출한 노동자들은 공장 내 기숙사나 공장 인근의 조용한 주택에서 집단생활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집단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공장은 북한인력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공장을 둘러보고 나니 노동자들의 숙소가 궁금했는데 단둥 외곽의 한 식품회사에서 기회를 잡았다. 100명쯤 되는 북한여성이 일하는 회사이다. 안내인과 함께 경비실을 찾아 ‘이 공장 제품에 관심이 있어 왔는데 한번 둘러보고 싶다’ 고 하니 뜻밖에도 문을 열어주었다. 마침 휴일이어서 공장이 쉬고 있던 탓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훈춘의 공장에서 경비실과 협상도 해보지 않고 진입을 포기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정문 가까운 곳에 1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북한 여성노동자들의 숙소라고 하였다. 기계 설비를 보기 전에 그곳을 먼저 찾았다. 모처럼의 휴일인 탓에 20대 초반의 처자들이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공동세면장에서 얼굴을 다듬기도 하고 방안에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숙소의 방은 약 스무개인데 4인용 방도 있고 8인용 방도 있다. 방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주변환경은 깔끔한 편이었다. 바깥에 나와 있는 노동자들에게 일은 힘들지 않은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돈은 어떻게 쓰는지 등을 물었지만 ‘고런 건 책임자 만나서 이야기 하십시오’ 라며 자세한 답변을 피하였다. 그러면서도 크게 경계하는 눈치들은 아니었으니, 따분하던 차에 출현한 남쪽 사람들이 약간 신기했던 모양이다.


▲<식품공장 북한여공 숙소 내부> 북한노동자들은 비교적 깔끔한 숙소에 살고 있었다.


▲<식품공장 북한여공 숙소 내부>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들은 기숙사형 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통제의 편의를 위해서인데 집단숙소가 없는 공장에는 북한당국이 인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의 노동자 대부분도 중국에 온지 3~4개월 밖에 안됐다고 하였다. 1주일에 통상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데 휴일에도 거의 숙소에서 머무를 뿐 시내구경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가까운 상점을 찾아 간식거리를 사는 경우는 가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나이답게 대부분이 밝고 건강한 얼굴들이었다. 이들은 사실 혜택 받은 경우이다. 해외 취업은 요즘 북한인들의 새로운 ‘로망’이다. 한 달에 600~700위안이라면 북한기준에선 적지 않은 수입이다.

북한에도 '중동 붐?'

현재 북한의 농업과 제조업 기반은 크게 무너진 셈이다. 대신 국내적으로는 광산개발, 해외에서는 인력수출이 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인력수출은 지난해(2012년)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한 무역담당 일꾼을 만나 그 상황을 들어보았다.

해외로 인력송출이 급격히 늘어난게 언제부터입니까?
작년(2012년)부터라고 봐야 되겠죠.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올라와서부터 이게 많이 풀렸다고 보면 됩니다. 해외 나오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봐야겠죠...바깥에 나가서 일을 하는 걸 이전에는 달가워 안했는데, 지금은 벌수 있으면 나가서 벌어라 그럽니다. 예전(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해외로 나가려면 김(정일) 위원장 수표(결재)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 수표라는 게 없어요...웬만한 문제는 단위책임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거죠.

작지 않은 변화이다. 북한이 그만큼 외화벌이에 적극적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단둥이나 도문 등 중국의 변경도시에는 북한인들로 넘쳐난다. 북한노동자용 집단숙소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도 인력수출이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단둥의 경우 3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합법, 비합법적으로 취업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장 외에도 건설현장이나 식당, 숙박시설 등에 북한인이 상당수 취업해 있다. 다롄과 안산, 선양 등 단둥 주변의 도시들에도 만 명 가량의 북한인이 취업중이라고 알려져 있고 앞서 말한 도문개발구에도 2천 명 이상의 북한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중국의 건설노동자들> 중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헤이궁(黑工), 즉 북한에서 넘어온 불법취업자들이다. 북한인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해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이른바 3D업종을 기피한다. 소규모 제조업체들은 인력을 구하느라 쩔쩔매고 있고 애써 구한 인력도 수시로 떠나버리기 일쑤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인력공백을 북한노동자들이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인력난과 북한의 인력수출 의지가 결합되면서 북한인의 중국 진출이 가속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만이 아니다. 러시아 극동지방에도 벌목공 등 2만명 이상이 진출해 있고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도 수만 명의 북한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나가 있다고 한다. 나는 만수대창작사라면 회화 등 미술품만 생산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상과 조각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를 짓고 도로건설도 한단다. 이 만수대창작사에서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 보낸 인력만 해도 3천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흥성한 아프리카 건물에는 조각을 많이 하는데 북한노동자들이 손재주가 좋아 인기라는 것이다. 1980년대 한국사회를 뒤덮었던 중동붐 같은 현상이 북한에도 불기 시작한 것일까? 해외로 나간 인력들의 송금외화로 북한경제의 절반을 돌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양날의 칼' 해외 인력수출

그러나 세상일이란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측면도 있게 마련이다. 해외로 나간 인력들이 외화를 벌어다 주는 것은 좋은데 ‘나쁜 물’에 쉽게 전염된다는 것은 문제이다. 외국물을 먹는 순간부터 북한의 정치경제 현실에 실망하는 ‘불순분자’ 가 돼버린다는 것이 북한 정권으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사람들은 보위부로부터 강도 높은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해외에서 보고들은 것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사상교육인데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의 입을 영영 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들이 귀국자에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물어보면 이렇게들 말한다고 하였다.

“동무들끼리 술이나 한잔하면서 ‘야 외국은 어더래?’ 그러면 ‘말하디 말라,  물어보디 말라’ 그래요... 술 한잔 들어가면 ‘세계에서 제일 못살면서 말로만 잘사는 게 우리나라다. 말로만 잘 산다’ 그럽니다.”

외화를 벌어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하려면 인력수출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정치적 부담 또한 늘어나는 현실이 북한정권으로선 딜레마인 셈이다. 어쨌든 북한의 경제현실로 볼 때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다른 활로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중국을 공식방문한 북한인만 해도 20만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3년 전(2010년)보다 배 이상 늘어난 숫자이다.

외국물을 먹은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깨인 주민’ 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사유기업의 경쟁력을 실감하면서 누구나 북한의 개혁개방을 갈구하게 된다. ‘지금 같이해서는 희망이 없다, 우리도 중국처럼 개혁개방해서 잘 살아봤으면 싶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이들, 외국물을 먹고 각성한 주민들이 장차 북한을 바꿔나갈 주역이 될 것임을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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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2013 북한읽기 ② 해외 취업자 급증…약인가? 독인가?
    • 입력 2013-11-26 15:03:45
    • 수정2013-12-03 09:00:47
    취재후·사건후
도문개발구의 북한주민 취업 공장

10월 초 두만강변 도문시 외곽에 위치한 도문개발구(개발구는 우리의 공단)를 찾았다. 북한노동자들이 제법 많이 진출한 곳이다. 북한노동자들의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처우가 어떤지, 어떻게 해서 중국으로 건너왔는지 등등 여러 가지 사정을 알고 싶어서였다. 안내인을 통해 북한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공장 두어 곳을 파악하였다. 하지만 ‘한번 찾아뵙겠다’ 는 안내인의 전화에 업체 사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일단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보다 며칠 앞서, 인근 훈춘시의 북한노동자 취업공장을 찾았다가 외경만 촬영하고 진입에는 실패한 적이 있었다. 공장을 몇 바퀴나 뱅뱅 돌았지만 굳게 닫힌 정문을 통과해서 내부로 들어갈 기회와 구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 등 외국으로 진출한 북한노동자들은 보위부의 통제 아래 일을 하고 있다. ‘자유 바람’ 을 차단할 목적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된 북한노동자들을 만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맛만 다시다가 결국 진입을 포기하였다.

한번 실패한 만큼 독기가 생겼다. 도문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장내부로 진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환영받지 못하는 방문...일이 잘 풀릴지, 욕설만 듣고 쫓겨날지, 몸싸움이 벌어져 공안에 고발이라도 당할지, 나중 일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거운 심정으로 아침 일찍 도문개발구로 항하였다. 현장에 가보면 어떤 ‘구상’ 이 떠오를 것 같았다.

도문개발구 내 조선공업원은 북한과 중국 지린성이 합작한 공장구역으로 이곳의 종업원은 대부분 북한노동자들이다. “조선공업원은 조선노동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도로 변에 걸려 있었다. 문제의 공장은 5층짜리 아파트형 공장의 위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행히 담장이 따로 없어 접근은 수월하였다. 공장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제지하는 경비실 담당자에게 “X층 라오반(사장)을 만나러 왔다” 고 뿌리치며 위층으로 진입하였다.

공장 내부에는 1~2백 명의 북한노동자들이 각자의 재봉틀 앞에 앉아서 옷을 만들고 있었다.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공장 관계자 4~5명이 순식간에 달려와 우리의 ‘작업’을 제지하였다. 북측 일꾼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신들 누구냐, 무슨 일이냐?” 는 질문에 “사장님을 만나러 왔다” 고 답했지만 우리를 한쪽 귀퉁이로 밀어놓고서는 사장과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사장은 ‘그 친구들 딴 짓 못하게 몰아내라’ 고 지시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공장 바깥으로 밀려났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소란이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달려온 사장과 만나 협의를 하였다. 사장은 눈치가 대단히 빠른 사람이었다. 공장을 찾아온 이유를 그럴싸하게 밝혔지만 사장은 허허 웃으면서 단번에 우리의 신분을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몰래 찍으려는 모양인데 그러지 마시라.” 는 말도 하였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럴 때는 정공법 뿐이다. 솔직히 방문 목적을 밝히고 협조를 구하였다. 사장은 협조가 어렵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1층 공장도 많은데 왜 여기에 와서...” 라며 지나가듯이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주변에는 아파트형 공장건물이 여럿인데 1층들은 출입구가 양쪽으로 개방돼 있어 굳이 협조가 없어도 문밖에서 촬영이 가능하였다. 열린 창문을 통해서도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인근 공장의 노동자는 거의 북한인들로 상당수가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남성은 20~30% 정도였다. 공장 주변을 오가는 노동자들도 간간이 보여서 접촉과 대화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까운 함경도에서 왔는가 여겼는데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많은 것이 이채로웠다. 이곳으로 온지 길어야 1년이었고 대부분은 몇 달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인력수출에 나섰음을 알 수 있었다. 피복공장과 인형공장을 찍고 인터뷰를 마치기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노동자 집단숙소를 찾다

이틀 뒤, 단둥으로 이동해서 또다시 북한노동자 취업공장을 찾았다. 도문에서 성공한 뒤 자신감과 요령이 늘었다. 수많은 공장 가운데서 북한노동자가 취업중인 곳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그 다음은 오히려 수월하다. 이것저것 고민할 것 없이 일단 방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단둥시 서남쪽에 위치한 전자공장을 둘러보았다. 약 200명의 북한여성들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전자부품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월급은 평균 2200위안(우리돈 약 40만원), 그 가운데 ‘조국(북한)’ 에 바치는 돈과 숙식비 등을 제하고 노동자들이 실제 받는 돈은 600~700위안(우리돈 12~13만원)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국에 진출한 노동자들은 공장 내 기숙사나 공장 인근의 조용한 주택에서 집단생활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집단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공장은 북한인력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공장을 둘러보고 나니 노동자들의 숙소가 궁금했는데 단둥 외곽의 한 식품회사에서 기회를 잡았다. 100명쯤 되는 북한여성이 일하는 회사이다. 안내인과 함께 경비실을 찾아 ‘이 공장 제품에 관심이 있어 왔는데 한번 둘러보고 싶다’ 고 하니 뜻밖에도 문을 열어주었다. 마침 휴일이어서 공장이 쉬고 있던 탓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훈춘의 공장에서 경비실과 협상도 해보지 않고 진입을 포기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정문 가까운 곳에 1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북한 여성노동자들의 숙소라고 하였다. 기계 설비를 보기 전에 그곳을 먼저 찾았다. 모처럼의 휴일인 탓에 20대 초반의 처자들이 한가로이 쉬고 있었다. 공동세면장에서 얼굴을 다듬기도 하고 방안에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숙소의 방은 약 스무개인데 4인용 방도 있고 8인용 방도 있다. 방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주변환경은 깔끔한 편이었다. 바깥에 나와 있는 노동자들에게 일은 힘들지 않은지, 음식은 입에 맞는지, 돈은 어떻게 쓰는지 등을 물었지만 ‘고런 건 책임자 만나서 이야기 하십시오’ 라며 자세한 답변을 피하였다. 그러면서도 크게 경계하는 눈치들은 아니었으니, 따분하던 차에 출현한 남쪽 사람들이 약간 신기했던 모양이다.


▲<식품공장 북한여공 숙소 내부> 북한노동자들은 비교적 깔끔한 숙소에 살고 있었다.


▲<식품공장 북한여공 숙소 내부>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들은 기숙사형 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통제의 편의를 위해서인데 집단숙소가 없는 공장에는 북한당국이 인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의 노동자 대부분도 중국에 온지 3~4개월 밖에 안됐다고 하였다. 1주일에 통상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는데 휴일에도 거의 숙소에서 머무를 뿐 시내구경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가까운 상점을 찾아 간식거리를 사는 경우는 가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나이답게 대부분이 밝고 건강한 얼굴들이었다. 이들은 사실 혜택 받은 경우이다. 해외 취업은 요즘 북한인들의 새로운 ‘로망’이다. 한 달에 600~700위안이라면 북한기준에선 적지 않은 수입이다.

북한에도 '중동 붐?'

현재 북한의 농업과 제조업 기반은 크게 무너진 셈이다. 대신 국내적으로는 광산개발, 해외에서는 인력수출이 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인력수출은 지난해(2012년)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한 무역담당 일꾼을 만나 그 상황을 들어보았다.

해외로 인력송출이 급격히 늘어난게 언제부터입니까?
작년(2012년)부터라고 봐야 되겠죠.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올라와서부터 이게 많이 풀렸다고 보면 됩니다. 해외 나오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봐야겠죠...바깥에 나가서 일을 하는 걸 이전에는 달가워 안했는데, 지금은 벌수 있으면 나가서 벌어라 그럽니다. 예전(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해외로 나가려면 김(정일) 위원장 수표(결재)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 수표라는 게 없어요...웬만한 문제는 단위책임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거죠.

작지 않은 변화이다. 북한이 그만큼 외화벌이에 적극적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단둥이나 도문 등 중국의 변경도시에는 북한인들로 넘쳐난다. 북한노동자용 집단숙소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도 인력수출이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단둥의 경우 3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합법, 비합법적으로 취업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장 외에도 건설현장이나 식당, 숙박시설 등에 북한인이 상당수 취업해 있다. 다롄과 안산, 선양 등 단둥 주변의 도시들에도 만 명 가량의 북한인이 취업중이라고 알려져 있고 앞서 말한 도문개발구에도 2천 명 이상의 북한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중국의 건설노동자들> 중국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일부는 헤이궁(黑工), 즉 북한에서 넘어온 불법취업자들이다. 북한인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해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중국인들도 이른바 3D업종을 기피한다. 소규모 제조업체들은 인력을 구하느라 쩔쩔매고 있고 애써 구한 인력도 수시로 떠나버리기 일쑤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인력공백을 북한노동자들이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인력난과 북한의 인력수출 의지가 결합되면서 북한인의 중국 진출이 가속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만이 아니다. 러시아 극동지방에도 벌목공 등 2만명 이상이 진출해 있고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도 수만 명의 북한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나가 있다고 한다. 나는 만수대창작사라면 회화 등 미술품만 생산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상과 조각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를 짓고 도로건설도 한단다. 이 만수대창작사에서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 보낸 인력만 해도 3천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흥성한 아프리카 건물에는 조각을 많이 하는데 북한노동자들이 손재주가 좋아 인기라는 것이다. 1980년대 한국사회를 뒤덮었던 중동붐 같은 현상이 북한에도 불기 시작한 것일까? 해외로 나간 인력들의 송금외화로 북한경제의 절반을 돌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양날의 칼' 해외 인력수출

그러나 세상일이란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측면도 있게 마련이다. 해외로 나간 인력들이 외화를 벌어다 주는 것은 좋은데 ‘나쁜 물’에 쉽게 전염된다는 것은 문제이다. 외국물을 먹는 순간부터 북한의 정치경제 현실에 실망하는 ‘불순분자’ 가 돼버린다는 것이 북한 정권으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사람들은 보위부로부터 강도 높은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해외에서 보고들은 것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사상교육인데 그렇다고 수많은 사람의 입을 영영 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친구들이 귀국자에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물어보면 이렇게들 말한다고 하였다.

“동무들끼리 술이나 한잔하면서 ‘야 외국은 어더래?’ 그러면 ‘말하디 말라,  물어보디 말라’ 그래요... 술 한잔 들어가면 ‘세계에서 제일 못살면서 말로만 잘사는 게 우리나라다. 말로만 잘 산다’ 그럽니다.”

외화를 벌어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하려면 인력수출을 더욱 확대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정치적 부담 또한 늘어나는 현실이 북한정권으로선 딜레마인 셈이다. 어쨌든 북한의 경제현실로 볼 때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 다른 활로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중국을 공식방문한 북한인만 해도 20만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3년 전(2010년)보다 배 이상 늘어난 숫자이다.

외국물을 먹은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깨인 주민’ 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사유기업의 경쟁력을 실감하면서 누구나 북한의 개혁개방을 갈구하게 된다. ‘지금 같이해서는 희망이 없다, 우리도 중국처럼 개혁개방해서 잘 살아봤으면 싶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이들, 외국물을 먹고 각성한 주민들이 장차 북한을 바꿔나갈 주역이 될 것임을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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