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만델라 이후…남아공은 어디로?

입력 2013.12.14 (08:23) 수정 2013.12.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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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 세계 지도자들을 모았고, 세계인의 추도를 받았습니다.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는 행렬이었습니다.

40년 넘게 계속됐던 인종 차별 정책을 폐지하며 새로운 남아공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었죠?

흑백이 함께 조화롭게 사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왔고 실천했던 세계 지도자였습니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빈부 격차가 심해지며 남아공의 사회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김성모 특파원이 만델라 이후 남아공의 과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택 앞.

타계 소식이 전해진 뒤 매일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꽃을 바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만델라의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데는 흑인과 백인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사랑해요 만델라! 편안히 쉬세요!"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를 위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싸움은 34세였던 195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백인 정권이 도입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반대 투쟁이었습니다.

유색 인종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거주 지역과 직업을 제한하는 부당한 제도에 맞섰습니다.

내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그는 물러설 줄 몰랐습니다.

결국 백인 정권은 흑인 봉기와 국제사회 압력에 무릎 꿇고 만델라를 27년 만에 석방했습니다.

이후 선거에서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갑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 (1994년 대통령 취임식) : "흑인과 백인, 모든 남아공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나라와 전 세계가 평화로운, '무지개 국가'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에 대한 처벌과 보복 보다는 반성과 용서를 통해 화합을 추구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가는 미래를 향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은 물론 모든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사는 무지개 국가를 꿈꿨습니다.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 20년째 그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남아공 프리토리아 외곽.

시원하게 뻗은 넓은 도로를 20km 정도 달리자 잘 지어진 주택 단지가 나타납니다.

단지 전체가 높은 담과 전기가 흐르는 철망으로 둘러싸였고 입구엔 24시간 경비가 서고 있습니다.

단지 안의 집들은 모두 고급 빌라 형태로 최고 10억 원이 넘습니다.

골프장까지 있는 이 단지는 프리토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으로 주로 백인들이 거주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뒤 백인들이 살던 시내에 흑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범죄가 늘어나자, 이런 단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주변엔 쇼핑 센터가 갖춰져 굳이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습니다.

흑인 가운데 일부는 평등한 사회가 되면서 소득이 높아져 부유층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흑인 여성

그러나 여전히 많은 흑인들은 열악한 빈민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곳곳에 오수가 고여있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축구를 합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어 정부에서 주는 몇 푼 안 되는 보조금에 전적으로 생활을 의존합니다.

<인터뷰> 흑인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남아공의 지니계수는 0.7. 가장 불평등한 경우인 1에 가깝습니다.

또 토지의 경우 흑인은 전체의 3%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백간의 평등이 가능해졌지만 경제적으로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연구소 박사

지난해 8월 백금 광산에선 근로자 3천 명이 파업을 벌였습니다.

70만 원 정도인 월급을 2배 이상 올려 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된 파업이었습니다.

시위를 해산하던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해 34명이 숨지고 78명이 다쳤습니다.

이후 파업은 다른 광산으로 확산돼 석 달 가까이 이어졌고, 1조 3천 억 원의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남아공의 한 다이아몬드 광산, 최대 지름 1km, 깊이 0.5km의 거대한 구멍이 파여 있습니다.

백 여 년 전에 시작된 노천 채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3천 106 캐럿, 621g의 사상 두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원석이 이곳에서 발견됐고 530 캐럿 짜리 '아프리카의 별'이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지하 갱에서 채굴이 이뤄져 땅속 800m 가까이 내려가야 하는데, 승강기로 3분이 걸립니다.

탄광 인부는 주로 흑인들로 하루 8시간 씩 일을 하고, 백 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습니다.

<인터뷰> 광산 근로자

흑인들의 박탈감을 만델라 사후에 치유하지 못하면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백인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남아공 정부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지난 2010년 월드컵 이후 잠시 특수가 있었지만 지난해는 성장률이 2% 중반대로 떨어졌고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업률은 30%가 넘고 청년 실업은 더 심각합니다.

가난한 집의 자녀들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도 힘듭니다.

<인터뷰> 만델라 재단 대표

지난 10일 열렸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도식.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여러 차례 야유를 받았습니다.

부패 의혹에 두 차례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내년에 있을 대선과 지방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대 마지막 거인이었던 만델라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 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남아공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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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리포트] 만델라 이후…남아공은 어디로?
    • 입력 2013-12-14 09:47:39
    • 수정2013-12-14 10:55:54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전 세계 지도자들을 모았고, 세계인의 추도를 받았습니다.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는 행렬이었습니다.

40년 넘게 계속됐던 인종 차별 정책을 폐지하며 새로운 남아공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었죠?

흑백이 함께 조화롭게 사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왔고 실천했던 세계 지도자였습니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빈부 격차가 심해지며 남아공의 사회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김성모 특파원이 만델라 이후 남아공의 과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택 앞.

타계 소식이 전해진 뒤 매일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꽃을 바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만델라의 안식을 기원했습니다.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데는 흑인과 백인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사랑해요 만델라! 편안히 쉬세요!"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가 어울려 사는 사회를 위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싸움은 34세였던 195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백인 정권이 도입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반대 투쟁이었습니다.

유색 인종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거주 지역과 직업을 제한하는 부당한 제도에 맞섰습니다.

내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그는 물러설 줄 몰랐습니다.

결국 백인 정권은 흑인 봉기와 국제사회 압력에 무릎 꿇고 만델라를 27년 만에 석방했습니다.

이후 선거에서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갑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 (1994년 대통령 취임식) : "흑인과 백인, 모든 남아공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나라와 전 세계가 평화로운, '무지개 국가'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에 대한 처벌과 보복 보다는 반성과 용서를 통해 화합을 추구했습니다.

모두가 함께 가는 미래를 향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은 물론 모든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사는 무지개 국가를 꿈꿨습니다.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 20년째 그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남아공 프리토리아 외곽.

시원하게 뻗은 넓은 도로를 20km 정도 달리자 잘 지어진 주택 단지가 나타납니다.

단지 전체가 높은 담과 전기가 흐르는 철망으로 둘러싸였고 입구엔 24시간 경비가 서고 있습니다.

단지 안의 집들은 모두 고급 빌라 형태로 최고 10억 원이 넘습니다.

골프장까지 있는 이 단지는 프리토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으로 주로 백인들이 거주합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뒤 백인들이 살던 시내에 흑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범죄가 늘어나자, 이런 단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주변엔 쇼핑 센터가 갖춰져 굳이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습니다.

흑인 가운데 일부는 평등한 사회가 되면서 소득이 높아져 부유층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흑인 여성

그러나 여전히 많은 흑인들은 열악한 빈민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곳곳에 오수가 고여있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축구를 합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어 정부에서 주는 몇 푼 안 되는 보조금에 전적으로 생활을 의존합니다.

<인터뷰> 흑인

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남아공의 지니계수는 0.7. 가장 불평등한 경우인 1에 가깝습니다.

또 토지의 경우 흑인은 전체의 3%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백간의 평등이 가능해졌지만 경제적으로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연구소 박사

지난해 8월 백금 광산에선 근로자 3천 명이 파업을 벌였습니다.

70만 원 정도인 월급을 2배 이상 올려 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된 파업이었습니다.

시위를 해산하던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해 34명이 숨지고 78명이 다쳤습니다.

이후 파업은 다른 광산으로 확산돼 석 달 가까이 이어졌고, 1조 3천 억 원의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남아공의 한 다이아몬드 광산, 최대 지름 1km, 깊이 0.5km의 거대한 구멍이 파여 있습니다.

백 여 년 전에 시작된 노천 채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3천 106 캐럿, 621g의 사상 두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원석이 이곳에서 발견됐고 530 캐럿 짜리 '아프리카의 별'이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지하 갱에서 채굴이 이뤄져 땅속 800m 가까이 내려가야 하는데, 승강기로 3분이 걸립니다.

탄광 인부는 주로 흑인들로 하루 8시간 씩 일을 하고, 백 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습니다.

<인터뷰> 광산 근로자

흑인들의 박탈감을 만델라 사후에 치유하지 못하면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백인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남아공 정부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지난 2010년 월드컵 이후 잠시 특수가 있었지만 지난해는 성장률이 2% 중반대로 떨어졌고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업률은 30%가 넘고 청년 실업은 더 심각합니다.

가난한 집의 자녀들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대학을 가지 못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도 힘듭니다.

<인터뷰> 만델라 재단 대표

지난 10일 열렸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추도식.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여러 차례 야유를 받았습니다.

부패 의혹에 두 차례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내년에 있을 대선과 지방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대 마지막 거인이었던 만델라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 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남아공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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