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법원 갈 때면 휠체어에 침대까지

입력 2013.12.20 (08:37) 수정 2013.12.2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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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는 각종 경제 범죄로 수사나 재판을 받은 재벌 총수들이 많았는데요.

어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효성 조석래 회장이 각각 법원과 검찰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김승연 회장은 침대에 누운 채로, 조석래 회장은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가 않습니다.

김기흥 기자 나왔습니다.

과거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선가요?

수사나 재판 과정에 들어가면 모습이 확 달라지는 것 같아요.

<기자 멘트>

정말 아픈 사람에게 꾀병을 부리고 있다면 말하면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하겠습니까?

재벌 총수들에게 제가 진짜 아픈 거 맞느냐 이런 질문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여부를 떠나서 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는 건지 그게 궁금한 건데요.

취재를 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은 궁금증을 넘어 의혹과 불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리포트>

어제 오후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61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태운 구급차가 법원으로 들어옵니다.

침대에 누운 채 법정에 출석한 김 회장은 몸 상태가 안 좋다며 30분도 안 돼 법정을 나왔는데요.

지난 4월 항소심 재판에 참석할 때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김 회장은 산소 호흡기를 꽂고 병상에 누워 재판을 받았는데요.

<녹취> 한화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일단 폐도 되게 안 좋고요. 호흡도 굉장히 안 좋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계속 병원에 계신 것이니까요."

지난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1심 선고를 받을 당시 김 회장은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녹취> 김승연(한화그룹 회장) : "선고 끝나고 봅시다."

그러나 구속될 때와는 달리 올해 들어 조울증과 호흡곤란 등을 이유로 네 차례나 구속집행정지 기한을 연장했는데요.

<녹취> 한화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건강이 되게 안 좋아서 재판부에서 연장을 한 것이죠. 주치의나 의사들이 다 병세 이런 것을 판단하신 것이죠."

어제 새벽,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78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지친 표정으로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입니다.

<녹취> 조석래(효성그룹 회장) : "추운데 여러분 고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기각의 사유에는 이례적으로 조 회장의 나이와 병력이 포함됐는데요.

<녹취> 효성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건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구속 사유가 없다, 이렇게 판결을 하셨더라고요. 사법부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잘 참작해주셔서..."

조 회장은 검찰이 효성그룹 본사와 자택을 압수수색 한 뒤인 지난 10월 말부터 서울대 병원 특실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대 병원 특실은 재계의 거물들이 자주 찾아, ‘회장님 병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이기도 한데요.

구속집행정지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이미 열 달 째 입원 중이고, 역시 구속집행정지 중인 53살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이곳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첫 재판을 받았는데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한 손엔 지팡이, 한쪽 팔은 수행원에 의지한 채 법원에 들어섰습니다.

<녹취> 이재현(CJ그룹 회장) : "(900억 원 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계신데 그 액수를 다 인정하십니까?) ... "

지난 7월에 구속된 이 회장은 한 달 뒤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고 내년 2월까지 구속집행이 정지됐는데요.

오전 재판만을 마치고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떠나는 모습, 지난 6월 당당하게 검찰청사로 걸어 들어오던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녹취> CJ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수술은 잘 끝났는데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재입원을 하신 상태고요. 그런 이유로 아마 (구속 수감되면) 좀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나타난 재벌 총수들.

<기자 멘트>

사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데요.

그래서 한국의 재벌 총수들은 체어맨이 아니라 휠체어맨이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휠체어맨의 원조는 누굴까요?

<리포트>

시간이 꽤 흘렀지만 원조는 단연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입니다.

지난 1997년 비리사건으로 구속되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법정에 등장했습니다.

징역 15년이 확정돼 수감됐지만 2002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해외로 도피해 잠적했는데요.

지난 2006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외국에 나가 있다 귀국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휠체어를 탄 모습이었고, 대우사태 이후 6년 가까이 해외를 떠돌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침대까지 동원했습니다.

비자금 조성혐의로 구속 수감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역시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타났는데요.

<인터뷰> 이동호(시민) : "가식이라고 생각해요. 아픈 척 하는 것. 휠체어 타고 다니고..."

<인터뷰> 강진구(시민) : "실정법을 위반했는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 때문에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2007년, “한국의 재벌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휠체어를 탄다”고 꼬집기도 했는데요.

‘휠체어 출두’에서 한층 진화한 ‘침대 출두’를 본격적으로 선보인 건 지난 2011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이선애 당시 태광그룹 상무였습니다.

<녹취> 이선애 (태광그룹 상무/2011년 1월) : "(비자금 조성 혐의 인정하십니까?) ..."

이렇게 아픈 모습으로 나타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요.

<인터뷰> 박주민(변호사) : "(양형을) 가볍게 달라, 이런 요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구속이 되는 경우는 구속집행정지를 노릴 수가 있고, 형이 확정됐을 경우에는 형집행정지를 노릴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꾀병까지 부린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여대생 청부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은 후 허위진단서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4년여 간 병원 특실에서 호화생활을 해온 재벌 회장 부인 윤 모 씨 사건.

이른바 ‘법정의 기적’을 보여준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은 국제중 입시비리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나올 때는 중환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결국 구속이 결정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검찰 청사를 걸어서 나왔는데요.

이 일들로 인해 시민들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진우(시민) :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그런 것을 보면 어떨 땐 분노를 느낄 때도 있고..."

그동안 회장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요구하고, 이를 사법당국이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반복돼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박주민(변호사) :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심각한 현상으로 이미 비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법부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진짜 아픈 사람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그리고 아프다는 게 부유층을 위한 또 다른 특혜로 작용된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더욱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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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법원 갈 때면 휠체어에 침대까지
    • 입력 2013-12-20 08:23:52
    • 수정2013-12-20 09: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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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는 각종 경제 범죄로 수사나 재판을 받은 재벌 총수들이 많았는데요.

어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효성 조석래 회장이 각각 법원과 검찰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김승연 회장은 침대에 누운 채로, 조석래 회장은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가 않습니다.

김기흥 기자 나왔습니다.

과거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선가요?

수사나 재판 과정에 들어가면 모습이 확 달라지는 것 같아요.

<기자 멘트>

정말 아픈 사람에게 꾀병을 부리고 있다면 말하면 얼마나 속상하고 억울하겠습니까?

재벌 총수들에게 제가 진짜 아픈 거 맞느냐 이런 질문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 여부를 떠나서 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는 건지 그게 궁금한 건데요.

취재를 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은 궁금증을 넘어 의혹과 불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자세한 내용 함께 보시죠.

<리포트>

어제 오후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61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태운 구급차가 법원으로 들어옵니다.

침대에 누운 채 법정에 출석한 김 회장은 몸 상태가 안 좋다며 30분도 안 돼 법정을 나왔는데요.

지난 4월 항소심 재판에 참석할 때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김 회장은 산소 호흡기를 꽂고 병상에 누워 재판을 받았는데요.

<녹취> 한화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일단 폐도 되게 안 좋고요. 호흡도 굉장히 안 좋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계속 병원에 계신 것이니까요."

지난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1심 선고를 받을 당시 김 회장은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녹취> 김승연(한화그룹 회장) : "선고 끝나고 봅시다."

그러나 구속될 때와는 달리 올해 들어 조울증과 호흡곤란 등을 이유로 네 차례나 구속집행정지 기한을 연장했는데요.

<녹취> 한화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건강이 되게 안 좋아서 재판부에서 연장을 한 것이죠. 주치의나 의사들이 다 병세 이런 것을 판단하신 것이죠."

어제 새벽,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78살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지친 표정으로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입니다.

<녹취> 조석래(효성그룹 회장) : "추운데 여러분 고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기각의 사유에는 이례적으로 조 회장의 나이와 병력이 포함됐는데요.

<녹취> 효성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건강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구속 사유가 없다, 이렇게 판결을 하셨더라고요. 사법부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잘 참작해주셔서..."

조 회장은 검찰이 효성그룹 본사와 자택을 압수수색 한 뒤인 지난 10월 말부터 서울대 병원 특실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대 병원 특실은 재계의 거물들이 자주 찾아, ‘회장님 병실’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이기도 한데요.

구속집행정지 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이미 열 달 째 입원 중이고, 역시 구속집행정지 중인 53살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이곳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첫 재판을 받았는데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한 손엔 지팡이, 한쪽 팔은 수행원에 의지한 채 법원에 들어섰습니다.

<녹취> 이재현(CJ그룹 회장) : "(900억 원 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계신데 그 액수를 다 인정하십니까?) ... "

지난 7월에 구속된 이 회장은 한 달 뒤 신장 이식수술을 받았고 내년 2월까지 구속집행이 정지됐는데요.

오전 재판만을 마치고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떠나는 모습, 지난 6월 당당하게 검찰청사로 걸어 들어오던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녹취> CJ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 "수술은 잘 끝났는데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재입원을 하신 상태고요. 그런 이유로 아마 (구속 수감되면) 좀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약속이나 한 듯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나타난 재벌 총수들.

<기자 멘트>

사실 이런 모습들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데요.

그래서 한국의 재벌 총수들은 체어맨이 아니라 휠체어맨이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휠체어맨의 원조는 누굴까요?

<리포트>

시간이 꽤 흘렀지만 원조는 단연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입니다.

지난 1997년 비리사건으로 구속되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법정에 등장했습니다.

징역 15년이 확정돼 수감됐지만 2002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이후 해외로 도피해 잠적했는데요.

지난 2006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외국에 나가 있다 귀국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휠체어를 탄 모습이었고, 대우사태 이후 6년 가까이 해외를 떠돌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침대까지 동원했습니다.

비자금 조성혐의로 구속 수감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역시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타났는데요.

<인터뷰> 이동호(시민) : "가식이라고 생각해요. 아픈 척 하는 것. 휠체어 타고 다니고..."

<인터뷰> 강진구(시민) : "실정법을 위반했는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 때문에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2007년, “한국의 재벌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휠체어를 탄다”고 꼬집기도 했는데요.

‘휠체어 출두’에서 한층 진화한 ‘침대 출두’를 본격적으로 선보인 건 지난 2011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이선애 당시 태광그룹 상무였습니다.

<녹취> 이선애 (태광그룹 상무/2011년 1월) : "(비자금 조성 혐의 인정하십니까?) ..."

이렇게 아픈 모습으로 나타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요.

<인터뷰> 박주민(변호사) : "(양형을) 가볍게 달라, 이런 요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구속이 되는 경우는 구속집행정지를 노릴 수가 있고, 형이 확정됐을 경우에는 형집행정지를 노릴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꾀병까지 부린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여대생 청부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은 후 허위진단서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4년여 간 병원 특실에서 호화생활을 해온 재벌 회장 부인 윤 모 씨 사건.

이른바 ‘법정의 기적’을 보여준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은 국제중 입시비리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나올 때는 중환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결국 구속이 결정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검찰 청사를 걸어서 나왔는데요.

이 일들로 인해 시민들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진우(시민) :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그런 것을 보면 어떨 땐 분노를 느낄 때도 있고..."

그동안 회장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요구하고, 이를 사법당국이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반복돼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박주민(변호사) :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심각한 현상으로 이미 비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사법부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진짜 아픈 사람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그리고 아프다는 게 부유층을 위한 또 다른 특혜로 작용된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더욱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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