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황금자 할머니 별세…생존자 55명
입력 2014.01.26 (21:19)
수정 2014.01.2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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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그토록 바라던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오늘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쉰다섯 분으로 줄었습니다.
먼저, 김지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황금자 할머니의 영정 앞에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아흔살 황 할머니는 오늘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일본의 공식 사과는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정환(강서구청 사회복지과 팀장) : "떠나시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지금 일본의 사과라든지 보상 없이 돌아가신 부분이 가장..."
함경도가 고향인 황 할머니가 위안부가 된 건 열일곱 앳된 소녀시절.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한을 안고 평생을 홀로 살았습니다.
힘든 형편에도 빈병과 폐지를 모아 팔고, 정부에서 주는 생활지원금까지 아껴 세차례나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모두 1억원에 달합니다.
<녹취> 황금자(생전 육성) : "하찮은 돈 할머니가 근근히 모은 돈입니다. (얼마 안되지만) 천만 원 맞잡이로 (천만원으로 생각하고) 쓰기 바랍니다."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서도 자신이 숨지면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포함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외롭고 고된 삶 속에서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황 할머니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237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55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그토록 바라던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오늘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쉰다섯 분으로 줄었습니다.
먼저, 김지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황금자 할머니의 영정 앞에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아흔살 황 할머니는 오늘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일본의 공식 사과는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정환(강서구청 사회복지과 팀장) : "떠나시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지금 일본의 사과라든지 보상 없이 돌아가신 부분이 가장..."
함경도가 고향인 황 할머니가 위안부가 된 건 열일곱 앳된 소녀시절.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한을 안고 평생을 홀로 살았습니다.
힘든 형편에도 빈병과 폐지를 모아 팔고, 정부에서 주는 생활지원금까지 아껴 세차례나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모두 1억원에 달합니다.
<녹취> 황금자(생전 육성) : "하찮은 돈 할머니가 근근히 모은 돈입니다. (얼마 안되지만) 천만 원 맞잡이로 (천만원으로 생각하고) 쓰기 바랍니다."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서도 자신이 숨지면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포함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외롭고 고된 삶 속에서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황 할머니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237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55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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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 황금자 할머니 별세…생존자 5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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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1-26 21:21:02
- 수정2014-01-26 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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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그토록 바라던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오늘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쉰다섯 분으로 줄었습니다.
먼저, 김지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황금자 할머니의 영정 앞에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아흔살 황 할머니는 오늘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일본의 공식 사과는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정환(강서구청 사회복지과 팀장) : "떠나시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지금 일본의 사과라든지 보상 없이 돌아가신 부분이 가장..."
함경도가 고향인 황 할머니가 위안부가 된 건 열일곱 앳된 소녀시절.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한을 안고 평생을 홀로 살았습니다.
힘든 형편에도 빈병과 폐지를 모아 팔고, 정부에서 주는 생활지원금까지 아껴 세차례나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모두 1억원에 달합니다.
<녹취> 황금자(생전 육성) : "하찮은 돈 할머니가 근근히 모은 돈입니다. (얼마 안되지만) 천만 원 맞잡이로 (천만원으로 생각하고) 쓰기 바랍니다."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서도 자신이 숨지면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포함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외롭고 고된 삶 속에서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황 할머니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237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55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그토록 바라던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오늘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쉰다섯 분으로 줄었습니다.
먼저, 김지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황금자 할머니의 영정 앞에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아흔살 황 할머니는 오늘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일본의 공식 사과는 끝내 듣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정환(강서구청 사회복지과 팀장) : "떠나시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지금 일본의 사과라든지 보상 없이 돌아가신 부분이 가장..."
함경도가 고향인 황 할머니가 위안부가 된 건 열일곱 앳된 소녀시절.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에 한을 안고 평생을 홀로 살았습니다.
힘든 형편에도 빈병과 폐지를 모아 팔고, 정부에서 주는 생활지원금까지 아껴 세차례나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모두 1억원에 달합니다.
<녹취> 황금자(생전 육성) : "하찮은 돈 할머니가 근근히 모은 돈입니다. (얼마 안되지만) 천만 원 맞잡이로 (천만원으로 생각하고) 쓰기 바랍니다."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서도 자신이 숨지면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포함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외롭고 고된 삶 속에서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황 할머니의 타계 소식에 각계에서 애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237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55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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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기자 jskim8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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