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일, 침략 역사 미화…세계문화유산 추진

입력 2014.01.29 (21:18) 수정 2014.01.2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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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정부가 내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게 있는데, 바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남부 규슈지역에 만들어진 조선소와 제철소 등입니다.

모두 23곳이나 되는데요,

일본에선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유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조선소처럼 이 가운데 10여 곳은 일제 때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의 강제노동 한이 서린 현장이어서 문제입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전에 이미 공장을 세웠다며 과거사 문제와는 상관 없다는 입장입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중인 곳 가운데 이른바 '지옥섬'으로 불렸던 하시마 섬을 도쿄 홍수진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가사키항에서 배로 40분.

하시마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마치 요새처럼 보입니다.

탄광에 징용된 한국인들에겐 죽기 전엔 못나오는 지옥섬이었습니다.

지하 1000미터의 탄광은 흔적만 남았습니다.

폐허가 된 고층 아파트와 철조물만이 탄광이 번성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녹취> 코바타 : "태평양 전쟁 때는 노동력 부족을 메우려고 14~16살 소년들, 어린 여자들도 (탄광서) 일했습니다."

일본 패전 때까지 이곳에 징용된 한국인 8백명은 열악한 환경에 살며 탄광 가장 깊은 곳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숨진 사람만 120명. 가혹행위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야마자키(향토사학자) : "폭력단 불러놓고 아프다고 하면 협박하고 엄청 때리고 이랬지요."

일본 정부는 그러나 하시마섬을 근대화 이끈 상징으로만 선전하고 강제동원 피해지라는 역사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연간 15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도 이런 사실은 모릅니다.

<인터뷰> 관광객 : "역사가 느껴지는 곳이라서 세계유산에 등록됐으면 합니다."

일본은 하시마섬을 관광지, 영화촬영지 등으로 홍보하며 가해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 수는 우리 정부의 공식 통계만 해도 연인원 782만 명이 넘습니다.

징용 군인과 군무원을 빼더라도 앞서 하시마 섬에서처럼 강제 노동에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가 일본 79만 명, 러시아 사할린 만 6천명 등 백만 명이 넘습니다.

탄광과 조선소 등 침략 전쟁 물자를 만들던 강제 징용 일터에서의 참상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전후 70년이 다 되도록 사과는 커녕 배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강제 동원에 연루된 이런 기업들, 지금도 일본 굴지의 재벌들인데요.

우리나라 법원의 배상 판결에도 끄떡 안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다 끝났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추진 유적들이 산업혁명을 이끈 유산이라는 건 반쪽짜리 역사입니다.

식민지인 우리 국민과 중국 전쟁 포로 등을 강제 동원한 참혹한 착취의 현장이라는 점도 함께 알려야 합니다.

이걸 증언할 피해자들이 생존해있고, 아직도 그 과거사 현장이 남아 있습니다.

<리포트>

일본 북 알프스 끝자락, 산길을 올라가자, 철조망으로 막아둔 동굴이 나타납니다.

일제가 2차대전 말기에 만든 지하 공장 입구입니다.

<인터뷰> 사와다 준소우(지역 주민) : "미쓰비시의 제11비행기 제작소 조립 공장을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동굴은 산 능선을 따라 모두 16개, 지하에서 몰래 당시 일제의 주력 정찰기를 조립. 생산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공사장에만 한국인 2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이웃의 야산에서도 군함과 비행기 부품을 생산하려던 지하 공장이 발견됐습니다.

지하공장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이 터널은 길이가 약 50미터 정도 됩니다. 이 터널 공사를 위해 한국인 약 3백여 명이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13살 어린 나이에 끌려왔다, 팔순이 되어 다시 현장을 찾은 김정주 할머니,

역사의 아픔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인터뷰> 김정주(84/정신근로대 피해자) :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싶어 정말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일제 강제징용의 현장들, 하지만,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은 공식 문서가 없다며,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앞둔 가운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공동기금 조성 등 현실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합니다.

토야마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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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29 21:18:48
    • 수정2014-01-29 21: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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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정부가 내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게 있는데, 바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남부 규슈지역에 만들어진 조선소와 제철소 등입니다.

모두 23곳이나 되는데요,

일본에선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유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조선소처럼 이 가운데 10여 곳은 일제 때 강제 징용된 한국인들의 강제노동 한이 서린 현장이어서 문제입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전에 이미 공장을 세웠다며 과거사 문제와는 상관 없다는 입장입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중인 곳 가운데 이른바 '지옥섬'으로 불렸던 하시마 섬을 도쿄 홍수진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가사키항에서 배로 40분.

하시마섬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마치 요새처럼 보입니다.

탄광에 징용된 한국인들에겐 죽기 전엔 못나오는 지옥섬이었습니다.

지하 1000미터의 탄광은 흔적만 남았습니다.

폐허가 된 고층 아파트와 철조물만이 탄광이 번성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녹취> 코바타 : "태평양 전쟁 때는 노동력 부족을 메우려고 14~16살 소년들, 어린 여자들도 (탄광서) 일했습니다."

일본 패전 때까지 이곳에 징용된 한국인 8백명은 열악한 환경에 살며 탄광 가장 깊은 곳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숨진 사람만 120명. 가혹행위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야마자키(향토사학자) : "폭력단 불러놓고 아프다고 하면 협박하고 엄청 때리고 이랬지요."

일본 정부는 그러나 하시마섬을 근대화 이끈 상징으로만 선전하고 강제동원 피해지라는 역사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연간 15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도 이런 사실은 모릅니다.

<인터뷰> 관광객 : "역사가 느껴지는 곳이라서 세계유산에 등록됐으면 합니다."

일본은 하시마섬을 관광지, 영화촬영지 등으로 홍보하며 가해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 수는 우리 정부의 공식 통계만 해도 연인원 782만 명이 넘습니다.

징용 군인과 군무원을 빼더라도 앞서 하시마 섬에서처럼 강제 노동에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가 일본 79만 명, 러시아 사할린 만 6천명 등 백만 명이 넘습니다.

탄광과 조선소 등 침략 전쟁 물자를 만들던 강제 징용 일터에서의 참상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전후 70년이 다 되도록 사과는 커녕 배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강제 동원에 연루된 이런 기업들, 지금도 일본 굴지의 재벌들인데요.

우리나라 법원의 배상 판결에도 끄떡 안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 문제가 다 끝났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추진 유적들이 산업혁명을 이끈 유산이라는 건 반쪽짜리 역사입니다.

식민지인 우리 국민과 중국 전쟁 포로 등을 강제 동원한 참혹한 착취의 현장이라는 점도 함께 알려야 합니다.

이걸 증언할 피해자들이 생존해있고, 아직도 그 과거사 현장이 남아 있습니다.

<리포트>

일본 북 알프스 끝자락, 산길을 올라가자, 철조망으로 막아둔 동굴이 나타납니다.

일제가 2차대전 말기에 만든 지하 공장 입구입니다.

<인터뷰> 사와다 준소우(지역 주민) : "미쓰비시의 제11비행기 제작소 조립 공장을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동굴은 산 능선을 따라 모두 16개, 지하에서 몰래 당시 일제의 주력 정찰기를 조립. 생산할 계획이었습니다.

이 공사장에만 한국인 2천 명이 강제동원됐습니다.

이웃의 야산에서도 군함과 비행기 부품을 생산하려던 지하 공장이 발견됐습니다.

지하공장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이 터널은 길이가 약 50미터 정도 됩니다. 이 터널 공사를 위해 한국인 약 3백여 명이 강제노동을 했습니다.

13살 어린 나이에 끌려왔다, 팔순이 되어 다시 현장을 찾은 김정주 할머니,

역사의 아픔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인터뷰> 김정주(84/정신근로대 피해자) :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싶어 정말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일제 강제징용의 현장들, 하지만,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은 공식 문서가 없다며,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앞둔 가운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공동기금 조성 등 현실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합니다.

토야마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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