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철의 여인’ 이상화의 놀라운 성취

입력 2014.02.12 (11:10) 수정 2014.02.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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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 뿐이었습니다. 올 시즌에만 세계기록을 4번이나 갈아 치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자. 이상화는 올림픽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도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1차 레이스 출발 총성이 울릴 때부터 2차 레이스의 마지막 결승선에 골인할 때까지. 이상화는 위풍당당하게 ‘천하제일’의 위용을 과시하며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올림픽 2연패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동, 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을 돌아볼까요? 박태환도, 이용대도, 그리고 장미란도 성공하지 못한 일입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디펜딩 챔피언’이란 막중한 중압감을 이겨내고, 수많은 경쟁자들의 견제를 물리치고 정상에 서기란 그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상화는 보란 듯이 해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이상화 특유의 '강심장'이 올림픽의 새 역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때 이상화의 모습 기억하시나요? 시상대 위로 올라서면서 두 손을 힘차게 마주치며 팬들 앞에 손을 흔든 그 자신만만한 모습.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화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전혀 흔들림 없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올림픽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다른 일반적인 월드컵 대회라고 생각하고 제 레이스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 같은 자신감에는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상화는 지독한 연습 벌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상화가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건 2006년 토리노 올림픽부터인데, 당시에는 5위에 그쳤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르는 동안 이상화는 뼈를 깎는 고통 끝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명실상부한 빙속 여제로 우뚝 섰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에도 이상화는 끊임없는 채찍질로 경쟁자들보다 우월한 1인자로 거듭났습니다. 이상화의 별명은 다들 아시다시피 ‘꿀벅지’입니다. 보통 여자들의 허리둘레만큼 두꺼운 허벅지의 강력한 힘으로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이상화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허벅지를 밴쿠버 때보다 4cm나 더 늘렸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러면서도 몸무게는 4~5kg 감량했다는 것입니다. 하체 근육을 대폭 강화하는 대신, 상체를 날씬하게 만들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스피드를 끌어올렸습니다. 상체의 무게를 줄여 공기 저항력은 줄이고, 하체 근육량을 늘려 파워를 배가시키는 또 한 번의 ‘변신’이었습니다.

이상화는 또 훈련 방법도 남달랐습니다. 훈련 파트너를 남자 선수들로 정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훈련법’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압권이었습니다. 모태범과 이승훈 등 동료 남자 빙속 선수들과 틈만 나면 함께 훈련해 그들과 한 차원 높은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들과 훈련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된 스타트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첫 100m 구간 기록이 10초 30대였는데 지난해 36초 36의 세계기록을 작성할 때는 이 첫 구간 기록을 10초 20으로, 0.1초나 단축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표 팀 최고참 이규혁의 조언에 따라 스타트 훈련의 활주 거리를 늘리면서 리듬감을 얻은 결과라고 코칭스태프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달려들지 않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상화는 주니어 선수 시절부터 소문난 ‘독종’이었습니다. 중학교 선수 시절 부상으로 종아리를 12바늘이나 꿰맨 직후 실밥도 안 뽑고 출전한 일화는 이상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이상화는 반복된 훈련으로 인해 왼 무릎에 물이 찼고, 더욱이 오른쪽 다리에는 하지 정맥류까지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고난과 역경을 모조리 잠재우고 이상화는 또 해낸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는 ‘위대한 여성 스포츠인’들의 발자취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 1970년대 사라예보 신화를 쓴 이에리사, 정현숙(탁구)부터 90년대 세계 골프를 뒤흔든 박세리,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번쩍 들어 올린 장미란과 LPGA 3회 연속 메이저 대회 석권의 금자탑을 쌓은 박인비와 피겨 여왕 김연아까지. 이상화는 이 위대한 한국의 스포츠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또 하나의 빛나는 업적을 일궈냈습니다. 이상화의 역주를 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 기쁨입니다. 그녀의 나이 이제 25살. 올림픽 무대에서 또 한번 이상화의 금빛 질주를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무대는 4년 뒤 우리의 안방인 평창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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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철의 여인’ 이상화의 놀라운 성취
    • 입력 2014-02-12 11:10:00
    • 수정2014-02-13 13:29:15
    취재후·사건후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 뿐이었습니다. 올 시즌에만 세계기록을 4번이나 갈아 치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자. 이상화는 올림픽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도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1차 레이스 출발 총성이 울릴 때부터 2차 레이스의 마지막 결승선에 골인할 때까지. 이상화는 위풍당당하게 ‘천하제일’의 위용을 과시하며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올림픽 2연패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동, 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을 돌아볼까요? 박태환도, 이용대도, 그리고 장미란도 성공하지 못한 일입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디펜딩 챔피언’이란 막중한 중압감을 이겨내고, 수많은 경쟁자들의 견제를 물리치고 정상에 서기란 그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상화는 보란 듯이 해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이상화 특유의 '강심장'이 올림픽의 새 역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때 이상화의 모습 기억하시나요? 시상대 위로 올라서면서 두 손을 힘차게 마주치며 팬들 앞에 손을 흔든 그 자신만만한 모습.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화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전혀 흔들림 없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올림픽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다른 일반적인 월드컵 대회라고 생각하고 제 레이스에만 집중했어요”

그런데 사실 이 같은 자신감에는 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상화는 지독한 연습 벌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상화가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건 2006년 토리노 올림픽부터인데, 당시에는 5위에 그쳤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르는 동안 이상화는 뼈를 깎는 고통 끝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명실상부한 빙속 여제로 우뚝 섰습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에도 이상화는 끊임없는 채찍질로 경쟁자들보다 우월한 1인자로 거듭났습니다. 이상화의 별명은 다들 아시다시피 ‘꿀벅지’입니다. 보통 여자들의 허리둘레만큼 두꺼운 허벅지의 강력한 힘으로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이상화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허벅지를 밴쿠버 때보다 4cm나 더 늘렸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러면서도 몸무게는 4~5kg 감량했다는 것입니다. 하체 근육을 대폭 강화하는 대신, 상체를 날씬하게 만들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스피드를 끌어올렸습니다. 상체의 무게를 줄여 공기 저항력은 줄이고, 하체 근육량을 늘려 파워를 배가시키는 또 한 번의 ‘변신’이었습니다.

이상화는 또 훈련 방법도 남달랐습니다. 훈련 파트너를 남자 선수들로 정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훈련법’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압권이었습니다. 모태범과 이승훈 등 동료 남자 빙속 선수들과 틈만 나면 함께 훈련해 그들과 한 차원 높은 경쟁을 벌였습니다. 이들과 훈련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된 스타트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첫 100m 구간 기록이 10초 30대였는데 지난해 36초 36의 세계기록을 작성할 때는 이 첫 구간 기록을 10초 20으로, 0.1초나 단축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표 팀 최고참 이규혁의 조언에 따라 스타트 훈련의 활주 거리를 늘리면서 리듬감을 얻은 결과라고 코칭스태프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달려들지 않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이상화는 주니어 선수 시절부터 소문난 ‘독종’이었습니다. 중학교 선수 시절 부상으로 종아리를 12바늘이나 꿰맨 직후 실밥도 안 뽑고 출전한 일화는 이상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이상화는 반복된 훈련으로 인해 왼 무릎에 물이 찼고, 더욱이 오른쪽 다리에는 하지 정맥류까지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고난과 역경을 모조리 잠재우고 이상화는 또 해낸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는 ‘위대한 여성 스포츠인’들의 발자취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 1970년대 사라예보 신화를 쓴 이에리사, 정현숙(탁구)부터 90년대 세계 골프를 뒤흔든 박세리,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번쩍 들어 올린 장미란과 LPGA 3회 연속 메이저 대회 석권의 금자탑을 쌓은 박인비와 피겨 여왕 김연아까지. 이상화는 이 위대한 한국의 스포츠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또 하나의 빛나는 업적을 일궈냈습니다. 이상화의 역주를 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 기쁨입니다. 그녀의 나이 이제 25살. 올림픽 무대에서 또 한번 이상화의 금빛 질주를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무대는 4년 뒤 우리의 안방인 평창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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