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이산상봉 그 후…못다한 그들의 이야기
입력 2014.03.06 (08:18)
수정 2014.03.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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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정부가 어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을 위한 실무접촉을 오는 12일에 열자고 북측에 제안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공식 제안한 바입니다
. 네, 지난달 말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는데요.
왜 하루빨리 상봉 정례화가 필요한지 아마 다 느끼셨을 겁니다.
박예원 기자 나와 있는데요.
상봉 후 보름여가 지났는데 이산가족들 만나봤죠?
<기자 멘트>
네, 지난달에 저도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저런 상황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있
는지도 몰랐던 자식을 만나게 된 분, 상봉으로 인한 충격으로 도중에 구급차에 실려나가신 분도 있었죠.
헤어지는 버스 안에서는 사랑한다, 라는 쪽지를 써서 창문 밖으로 전달하기도 했고요.
상봉 이후 이산가족을 다시 찾아가 봤더니, 그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게 상봉 당시 사연과 마음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수십년 만의 만남에서 이들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직접 들어보시죠.
<리포트>
분단 이후 생사도 모른 채 살아온 60여 년.
이산가족에겐 지난 85년 시작된 상봉 행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3년 4개월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서도 애절한 사연들이 많았죠.
60여 년 만에 허락된 2박 3일간의 만남.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지금, 상봉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마을 회관에서 사진을 자랑하는 이분은 이번에 북에 두고 온 딸을 만난 이만복 할머니입니다.
<녹취> "(딸이) 닮긴 닮았는데 똑같이 늙었어"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기분 좋죠. 이제 죽어도 원이 없는 거죠"
6.25 피난길에 다섯 살 큰 딸을 북에 홀로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큰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많지도 않은 밥을 먹어도 밥이(막혀) 내려가질 않아서요. 지금도 가끔 (보고 왔지만) 안 내려가요. 남편도 돌아가실 때 (북에 두고 온 딸 때문에) 눈을 못 감고 돌아가셨어"
상봉장에서 만난 딸은 딸을 그리다 먼저 숨진 남편을 쏙 빼닮은 모습으로 할머니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0 : "걱정하지 말래. 잘 먹고 잘 산대 공부도 다 시켜주고 돼지 길러서 잡아 다 나눠 먹고 걱정할 거 없대요."
할머니의 막내딸이자 북의 언니에겐 막냇동생인 이수연씨.
자신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언니가 부쩍 늙어 있는 것이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수연(둘째 딸) : "이남에서 70살이면 그렇게 늙지 않았을텐데 이북에 있는 70살 언니는 (늙어서) 우리 엄마랑 거의 비슷할 정도로 느껴지는 거예요 골 깊은 주름살이 너무 많고 표정도 너무 어둡고...하지 못하는 말들, 가슴에 안고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 (슬펐죠)"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할 수 없잖아요. 지금 (딸을 만난 것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1950년 남쪽으로 시집을 온 뒤 북의 가족과 이별한 이오환 할머니 지금은 밝은 모습이지만 상봉 당시엔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 나와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처음 만나고 알아보셨어요?) 동생들이 먼저 알고 달려들어서 울고..."
자신보다 20살 안팎으로 어린 동생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가족) : "큰동생은 백내장이 걸려 눈을 잘 못 보고 작은동생은 이가 빠져 가지고 잘 음식도 못 먹고 63살밖에 안됐는데..."
상봉 행사장에서 기념품 하나를 챙기기도 했습니다.
북에서 테이블에 올렸던 배였는데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과일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며) “언니 이남에도 이런 거 있어?” 그러니 내가 그게 목에 넘어가겠냐고"
저 많은 선물을 동생들 주려고 준비했는데 전달은 잘하셨을까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선물 준비는) 많이 못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라고 하니 “ 우리 수령님이요 뭐든 선물 받은 것 많든 적든 감사하게 받으라고 했어요” 그러더라고요. 동생들 손에 다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몰라도 그래도 챙겨줬으니까 이제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요."
만나기만 하면 곧 풀어질 줄 알았던 응어리, 하지만 또 다른 한이 남았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보고 오니) 마음은 후련하고 좋은데 너무 비참하고 동생들 사는 걸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아픔이 더 커진 건 왜일까요?
7남매의 맏이로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이번 상봉에서 두 동생을 만난 주명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고 살았습니다.
북쪽의 동생들과 만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주수연(둘째 딸) "(이산가족 상봉이)연기가 됐잖아요. 그러다 확정 발표했잖아요. 아버지도 박수치고 나도 박수치고...우리 언니도 박수치고 나오고...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드디어 꿈을 이루시는구나."
상봉장에서 만난 큰동생은 92살로 북측 상봉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요
여름 한복을 입고 나와 할아버지를 울렸죠.
<녹취> 이게 큰 동생(92세, 북측 상봉 최고령자) : "여기가 막내동생(72세) (그런데 추운데) 여름옷을 입었어요."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이북에 6남매 두고 왔어요.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지내니“ 물어보니 “다 죽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말이 안 나와... 이 세상이 어떻게 된 겁니까 (가족끼리) 서로 죽은 것도 모르고 지내니...이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의 또 하나의 소원은 아마 모든 이산가족의 소원일 겁니다.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이제)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보내서 안부라도 물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왕래는 못하더라도 서신으로 연락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짧은 만남 이후 더 큰 그리움을 안고 살게 된 이산가족 상봉자들.
60여 년의 한을 채 풀지 못한 채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정부가 어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을 위한 실무접촉을 오는 12일에 열자고 북측에 제안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공식 제안한 바입니다
. 네, 지난달 말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는데요.
왜 하루빨리 상봉 정례화가 필요한지 아마 다 느끼셨을 겁니다.
박예원 기자 나와 있는데요.
상봉 후 보름여가 지났는데 이산가족들 만나봤죠?
<기자 멘트>
네, 지난달에 저도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저런 상황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있
는지도 몰랐던 자식을 만나게 된 분, 상봉으로 인한 충격으로 도중에 구급차에 실려나가신 분도 있었죠.
헤어지는 버스 안에서는 사랑한다, 라는 쪽지를 써서 창문 밖으로 전달하기도 했고요.
상봉 이후 이산가족을 다시 찾아가 봤더니, 그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게 상봉 당시 사연과 마음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수십년 만의 만남에서 이들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직접 들어보시죠.
<리포트>
분단 이후 생사도 모른 채 살아온 60여 년.
이산가족에겐 지난 85년 시작된 상봉 행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3년 4개월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서도 애절한 사연들이 많았죠.
60여 년 만에 허락된 2박 3일간의 만남.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지금, 상봉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마을 회관에서 사진을 자랑하는 이분은 이번에 북에 두고 온 딸을 만난 이만복 할머니입니다.
<녹취> "(딸이) 닮긴 닮았는데 똑같이 늙었어"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기분 좋죠. 이제 죽어도 원이 없는 거죠"
6.25 피난길에 다섯 살 큰 딸을 북에 홀로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큰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많지도 않은 밥을 먹어도 밥이(막혀) 내려가질 않아서요. 지금도 가끔 (보고 왔지만) 안 내려가요. 남편도 돌아가실 때 (북에 두고 온 딸 때문에) 눈을 못 감고 돌아가셨어"
상봉장에서 만난 딸은 딸을 그리다 먼저 숨진 남편을 쏙 빼닮은 모습으로 할머니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0 : "걱정하지 말래. 잘 먹고 잘 산대 공부도 다 시켜주고 돼지 길러서 잡아 다 나눠 먹고 걱정할 거 없대요."
할머니의 막내딸이자 북의 언니에겐 막냇동생인 이수연씨.
자신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언니가 부쩍 늙어 있는 것이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수연(둘째 딸) : "이남에서 70살이면 그렇게 늙지 않았을텐데 이북에 있는 70살 언니는 (늙어서) 우리 엄마랑 거의 비슷할 정도로 느껴지는 거예요 골 깊은 주름살이 너무 많고 표정도 너무 어둡고...하지 못하는 말들, 가슴에 안고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 (슬펐죠)"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할 수 없잖아요. 지금 (딸을 만난 것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1950년 남쪽으로 시집을 온 뒤 북의 가족과 이별한 이오환 할머니 지금은 밝은 모습이지만 상봉 당시엔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 나와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처음 만나고 알아보셨어요?) 동생들이 먼저 알고 달려들어서 울고..."
자신보다 20살 안팎으로 어린 동생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가족) : "큰동생은 백내장이 걸려 눈을 잘 못 보고 작은동생은 이가 빠져 가지고 잘 음식도 못 먹고 63살밖에 안됐는데..."
상봉 행사장에서 기념품 하나를 챙기기도 했습니다.
북에서 테이블에 올렸던 배였는데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과일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며) “언니 이남에도 이런 거 있어?” 그러니 내가 그게 목에 넘어가겠냐고"
저 많은 선물을 동생들 주려고 준비했는데 전달은 잘하셨을까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선물 준비는) 많이 못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라고 하니 “ 우리 수령님이요 뭐든 선물 받은 것 많든 적든 감사하게 받으라고 했어요” 그러더라고요. 동생들 손에 다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몰라도 그래도 챙겨줬으니까 이제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요."
만나기만 하면 곧 풀어질 줄 알았던 응어리, 하지만 또 다른 한이 남았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보고 오니) 마음은 후련하고 좋은데 너무 비참하고 동생들 사는 걸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아픔이 더 커진 건 왜일까요?
7남매의 맏이로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이번 상봉에서 두 동생을 만난 주명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고 살았습니다.
북쪽의 동생들과 만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주수연(둘째 딸) "(이산가족 상봉이)연기가 됐잖아요. 그러다 확정 발표했잖아요. 아버지도 박수치고 나도 박수치고...우리 언니도 박수치고 나오고...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드디어 꿈을 이루시는구나."
상봉장에서 만난 큰동생은 92살로 북측 상봉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요
여름 한복을 입고 나와 할아버지를 울렸죠.
<녹취> 이게 큰 동생(92세, 북측 상봉 최고령자) : "여기가 막내동생(72세) (그런데 추운데) 여름옷을 입었어요."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이북에 6남매 두고 왔어요.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지내니“ 물어보니 “다 죽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말이 안 나와... 이 세상이 어떻게 된 겁니까 (가족끼리) 서로 죽은 것도 모르고 지내니...이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의 또 하나의 소원은 아마 모든 이산가족의 소원일 겁니다.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이제)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보내서 안부라도 물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왕래는 못하더라도 서신으로 연락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짧은 만남 이후 더 큰 그리움을 안고 살게 된 이산가족 상봉자들.
60여 년의 한을 채 풀지 못한 채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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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3-06 08:34:55
- 수정2014-03-06 17:06:27
<앵커 멘트>
정부가 어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을 위한 실무접촉을 오는 12일에 열자고 북측에 제안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공식 제안한 바입니다
. 네, 지난달 말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는데요.
왜 하루빨리 상봉 정례화가 필요한지 아마 다 느끼셨을 겁니다.
박예원 기자 나와 있는데요.
상봉 후 보름여가 지났는데 이산가족들 만나봤죠?
<기자 멘트>
네, 지난달에 저도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저런 상황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있
는지도 몰랐던 자식을 만나게 된 분, 상봉으로 인한 충격으로 도중에 구급차에 실려나가신 분도 있었죠.
헤어지는 버스 안에서는 사랑한다, 라는 쪽지를 써서 창문 밖으로 전달하기도 했고요.
상봉 이후 이산가족을 다시 찾아가 봤더니, 그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게 상봉 당시 사연과 마음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수십년 만의 만남에서 이들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직접 들어보시죠.
<리포트>
분단 이후 생사도 모른 채 살아온 60여 년.
이산가족에겐 지난 85년 시작된 상봉 행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3년 4개월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서도 애절한 사연들이 많았죠.
60여 년 만에 허락된 2박 3일간의 만남.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지금, 상봉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마을 회관에서 사진을 자랑하는 이분은 이번에 북에 두고 온 딸을 만난 이만복 할머니입니다.
<녹취> "(딸이) 닮긴 닮았는데 똑같이 늙었어"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기분 좋죠. 이제 죽어도 원이 없는 거죠"
6.25 피난길에 다섯 살 큰 딸을 북에 홀로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큰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많지도 않은 밥을 먹어도 밥이(막혀) 내려가질 않아서요. 지금도 가끔 (보고 왔지만) 안 내려가요. 남편도 돌아가실 때 (북에 두고 온 딸 때문에) 눈을 못 감고 돌아가셨어"
상봉장에서 만난 딸은 딸을 그리다 먼저 숨진 남편을 쏙 빼닮은 모습으로 할머니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0 : "걱정하지 말래. 잘 먹고 잘 산대 공부도 다 시켜주고 돼지 길러서 잡아 다 나눠 먹고 걱정할 거 없대요."
할머니의 막내딸이자 북의 언니에겐 막냇동생인 이수연씨.
자신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언니가 부쩍 늙어 있는 것이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수연(둘째 딸) : "이남에서 70살이면 그렇게 늙지 않았을텐데 이북에 있는 70살 언니는 (늙어서) 우리 엄마랑 거의 비슷할 정도로 느껴지는 거예요 골 깊은 주름살이 너무 많고 표정도 너무 어둡고...하지 못하는 말들, 가슴에 안고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 (슬펐죠)"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할 수 없잖아요. 지금 (딸을 만난 것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1950년 남쪽으로 시집을 온 뒤 북의 가족과 이별한 이오환 할머니 지금은 밝은 모습이지만 상봉 당시엔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 나와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처음 만나고 알아보셨어요?) 동생들이 먼저 알고 달려들어서 울고..."
자신보다 20살 안팎으로 어린 동생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가족) : "큰동생은 백내장이 걸려 눈을 잘 못 보고 작은동생은 이가 빠져 가지고 잘 음식도 못 먹고 63살밖에 안됐는데..."
상봉 행사장에서 기념품 하나를 챙기기도 했습니다.
북에서 테이블에 올렸던 배였는데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과일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며) “언니 이남에도 이런 거 있어?” 그러니 내가 그게 목에 넘어가겠냐고"
저 많은 선물을 동생들 주려고 준비했는데 전달은 잘하셨을까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선물 준비는) 많이 못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라고 하니 “ 우리 수령님이요 뭐든 선물 받은 것 많든 적든 감사하게 받으라고 했어요” 그러더라고요. 동생들 손에 다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몰라도 그래도 챙겨줬으니까 이제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요."
만나기만 하면 곧 풀어질 줄 알았던 응어리, 하지만 또 다른 한이 남았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보고 오니) 마음은 후련하고 좋은데 너무 비참하고 동생들 사는 걸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아픔이 더 커진 건 왜일까요?
7남매의 맏이로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이번 상봉에서 두 동생을 만난 주명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고 살았습니다.
북쪽의 동생들과 만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주수연(둘째 딸) "(이산가족 상봉이)연기가 됐잖아요. 그러다 확정 발표했잖아요. 아버지도 박수치고 나도 박수치고...우리 언니도 박수치고 나오고...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드디어 꿈을 이루시는구나."
상봉장에서 만난 큰동생은 92살로 북측 상봉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요
여름 한복을 입고 나와 할아버지를 울렸죠.
<녹취> 이게 큰 동생(92세, 북측 상봉 최고령자) : "여기가 막내동생(72세) (그런데 추운데) 여름옷을 입었어요."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이북에 6남매 두고 왔어요.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지내니“ 물어보니 “다 죽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말이 안 나와... 이 세상이 어떻게 된 겁니까 (가족끼리) 서로 죽은 것도 모르고 지내니...이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의 또 하나의 소원은 아마 모든 이산가족의 소원일 겁니다.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이제)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보내서 안부라도 물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왕래는 못하더라도 서신으로 연락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짧은 만남 이후 더 큰 그리움을 안고 살게 된 이산가족 상봉자들.
60여 년의 한을 채 풀지 못한 채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정부가 어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을 위한 실무접촉을 오는 12일에 열자고 북측에 제안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이미 공식 제안한 바입니다
. 네, 지난달 말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는데요.
왜 하루빨리 상봉 정례화가 필요한지 아마 다 느끼셨을 겁니다.
박예원 기자 나와 있는데요.
상봉 후 보름여가 지났는데 이산가족들 만나봤죠?
<기자 멘트>
네, 지난달에 저도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저런 상황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있
는지도 몰랐던 자식을 만나게 된 분, 상봉으로 인한 충격으로 도중에 구급차에 실려나가신 분도 있었죠.
헤어지는 버스 안에서는 사랑한다, 라는 쪽지를 써서 창문 밖으로 전달하기도 했고요.
상봉 이후 이산가족을 다시 찾아가 봤더니, 그때보다는 조금 더 차분하게 상봉 당시 사연과 마음을 얘기해주셨습니다.
수십년 만의 만남에서 이들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직접 들어보시죠.
<리포트>
분단 이후 생사도 모른 채 살아온 60여 년.
이산가족에겐 지난 85년 시작된 상봉 행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3년 4개월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서도 애절한 사연들이 많았죠.
60여 년 만에 허락된 2박 3일간의 만남.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지금, 상봉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마을 회관에서 사진을 자랑하는 이분은 이번에 북에 두고 온 딸을 만난 이만복 할머니입니다.
<녹취> "(딸이) 닮긴 닮았는데 똑같이 늙었어"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기분 좋죠. 이제 죽어도 원이 없는 거죠"
6.25 피난길에 다섯 살 큰 딸을 북에 홀로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는 큰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많지도 않은 밥을 먹어도 밥이(막혀) 내려가질 않아서요. 지금도 가끔 (보고 왔지만) 안 내려가요. 남편도 돌아가실 때 (북에 두고 온 딸 때문에) 눈을 못 감고 돌아가셨어"
상봉장에서 만난 딸은 딸을 그리다 먼저 숨진 남편을 쏙 빼닮은 모습으로 할머니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0 : "걱정하지 말래. 잘 먹고 잘 산대 공부도 다 시켜주고 돼지 길러서 잡아 다 나눠 먹고 걱정할 거 없대요."
할머니의 막내딸이자 북의 언니에겐 막냇동생인 이수연씨.
자신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언니가 부쩍 늙어 있는 것이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수연(둘째 딸) : "이남에서 70살이면 그렇게 늙지 않았을텐데 이북에 있는 70살 언니는 (늙어서) 우리 엄마랑 거의 비슷할 정도로 느껴지는 거예요 골 깊은 주름살이 너무 많고 표정도 너무 어둡고...하지 못하는 말들, 가슴에 안고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 (슬펐죠)"
<인터뷰> 이만복(90세/이산가족) :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할 수 없잖아요. 지금 (딸을 만난 것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1950년 남쪽으로 시집을 온 뒤 북의 가족과 이별한 이오환 할머니 지금은 밝은 모습이지만 상봉 당시엔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 나와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처음 만나고 알아보셨어요?) 동생들이 먼저 알고 달려들어서 울고..."
자신보다 20살 안팎으로 어린 동생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가족) : "큰동생은 백내장이 걸려 눈을 잘 못 보고 작은동생은 이가 빠져 가지고 잘 음식도 못 먹고 63살밖에 안됐는데..."
상봉 행사장에서 기념품 하나를 챙기기도 했습니다.
북에서 테이블에 올렸던 배였는데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과일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며) “언니 이남에도 이런 거 있어?” 그러니 내가 그게 목에 넘어가겠냐고"
저 많은 선물을 동생들 주려고 준비했는데 전달은 잘하셨을까요?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선물 준비는) 많이 못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라고 하니 “ 우리 수령님이요 뭐든 선물 받은 것 많든 적든 감사하게 받으라고 했어요” 그러더라고요. 동생들 손에 다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 몰라도 그래도 챙겨줬으니까 이제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요."
만나기만 하면 곧 풀어질 줄 알았던 응어리, 하지만 또 다른 한이 남았습니다.
<인터뷰> 이오환(85세/이산 가족) : "(보고 오니) 마음은 후련하고 좋은데 너무 비참하고 동생들 사는 걸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아픔이 더 커진 건 왜일까요?
7남매의 맏이로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이번 상봉에서 두 동생을 만난 주명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장남으로서 여섯 동생들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고 살았습니다.
북쪽의 동생들과 만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가족들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주수연(둘째 딸) "(이산가족 상봉이)연기가 됐잖아요. 그러다 확정 발표했잖아요. 아버지도 박수치고 나도 박수치고...우리 언니도 박수치고 나오고...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아버지 드디어 꿈을 이루시는구나."
상봉장에서 만난 큰동생은 92살로 북측 상봉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요
여름 한복을 입고 나와 할아버지를 울렸죠.
<녹취> 이게 큰 동생(92세, 북측 상봉 최고령자) : "여기가 막내동생(72세) (그런데 추운데) 여름옷을 입었어요."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이북에 6남매 두고 왔어요.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지내니“ 물어보니 “다 죽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말이 안 나와... 이 세상이 어떻게 된 겁니까 (가족끼리) 서로 죽은 것도 모르고 지내니...이런 세상이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의 또 하나의 소원은 아마 모든 이산가족의 소원일 겁니다.
<인터뷰> 주명순(93세/이산가족) : "만났으니 (이제) 하다못해 서신이라도 보내서 안부라도 물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왕래는 못하더라도 서신으로 연락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짧은 만남 이후 더 큰 그리움을 안고 살게 된 이산가족 상봉자들.
60여 년의 한을 채 풀지 못한 채 또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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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원 기자 ai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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