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크림반도를 가다

입력 2014.03.10 (16:31) 수정 2014.03.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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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위장전술로 신속하게 크림 장악 푸틴 대통령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현장을 취재하는 방송기자 입장에서 새로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크림 자치공화국과 우크라이나 경계선 - 사실상 국경으로 갔다. 이미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대부분 장악했고, 우크라이나군의 조직적 저항도 없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3월 1일 크림자치공화국 정부가 지원을 호소하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군대를 파병해 주요 거점을 하루 만에 장악했다.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 주변에 있는 2개의 군사 공항을 통해 군 수송기로 군대를 실어 나른 뒤, 말 그대로 '전광석화' 같은 작전을 벌인 것이다. 러시아군이 신속 작전에 성공한데는 '위장 전술'도 한 몫을 했다.


<사진1> 우크라이나-크림공화국 국경 검문소

KBS 팀은 현장 취재 중 시 외곽 지역에서 중무장한 장갑차가 속속 배치되는 등 군대의 움직임을 잇달아 포착했는데, 이상하게도 군인들의 정체가 불분명했다. 러시아 군인인지 우크라이나 군인인지 알 수 없었다. 진녹색의 군복에는 국기나 계급장은 물론 이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카메라맨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러시아 군인이면 러시아가 본격 개입을 시작한 것이고, 우크라이나 군인이면 반격을 시도하겠다는 뜻이니, 곧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상황. 마침 길거리에 서 있는 장갑차 한 대를 발견하고, 장갑차에 타고 있는 군인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군인들은 촬영을 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러시아 카메라맨에게 내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찍으라고 말한 뒤 접근했다.

"net!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말로 안 된다는 뜻)" 장갑차 지휘관처럼 보이는 무장 군인이 화를 내며 뛰쳐나온다. "한국에서 온 KBS 특파원 입니다." "한국이고 뭐고 찍지 마세요!" 분위기가 험악하다. 뒤돌아보니 러시아 카메라 맨, 안 찍는 척 하면 촬영하는 눈치다. 그래도 비무장 상태인 기자에게 어떻게 하겠냐 싶어 질문을 이어갔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작전 중입니다."  "혹시 러시아 군인인가요?"  "..."

다시 말해 러시아는 군대를 파병하면서, 식별 표를 모두 제거해 정체가 누구인지 헛갈리게 한 것이다. 주요 외신들도 모두 그들에 대해 'unidentified(정체가 불분명한)' 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당시에는 더 이상 물어봤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 뒤 현장 취재를 계속하면서 그들이 러시아 군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러시아 군대가 장갑차를 앞세워 크림 공화국 수도 심페로폴로 들어오는 장면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야간 작전을 벌이는 장갑차를 KBS가 단독 촬영하던 중 삼색 문양의 러시아 국기가 선명한 모습을 발견했다. 또 러시아 번호판을 단 차량 도 발견됐다.


<사진2> 국경 검문소에 배치된 러시아 군 장갑차

신속하게 크림작전에 성공한 러시아 군인들은 3월 2일 오전부터는 시내 주요지역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크림공화국 의회 앞에는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이 가득했다. 시민들은 이들을 반겼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친 유럽 정권이 들어서고 크림공화국의 러시아 주민들이 불이익 받을 것을 우려했는데 러시아 군인들이 왔으니, 러시아계 주민들은 해방군을 맞는 모습이었다.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러시아군은 수도와 거점지역을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 군 부대도 대부분 포위했다. 우크라이나 군 부대를 포위, 압박해 외부로 나오지 못한 채 부대에 고립시키는 작전이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크림을 거의 장악한 것이다.
러시아가 이처럼 작전을 성공시킨 또 다른 요인에는 친 러시아 주민들의 역할이 컸다. 친 러시아계 주민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형제임을 내세우면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하나 건너면 그들은 모두 사촌 간이다. “친 러시아계 주민이 크림반도에서 60%를 차지하고 있고, 러시아가 군대를 파견해 주요 거점을 장악한 상황에서 피를 흘려봤자 형제간의 싸움이며 얻을게 없으니 그냥 부대 안에 있으면 된다, 러시아 군이 공격하지 않도록 우리가 막아 주겠다.” 고 설득했고 실제로 효과를 본 것이다. 러시아 군 역시 본부 지시를 받을 듯 불필요한 자극을 삼가는 눈치였다. 크림반도에 있는 우크라이나인이나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숫자상으로나 군사적으로 열세임이 분명한데 굳이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해군 참모총장은 임명 하루 만에 러시아에 백기투항 했다.


<사진3> 크림 공화국으로 들어가는 러시아 군 트럭

이러저런 이유로 새로운 뉴스를 찾아 크림공화국과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차를 몰았다. 크림반도의 국경 도시 아르미안스크는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에서 북쪽으로 2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크림반도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 역시 예상 그대로다. 장전한 AK 소총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친러 의용군들은 돌과 타이어 등으로 도로를 막고, 모레 주머니를 쌓아 검문소를 만들었다. 3색 문양의 러시아 국기가 꽂혀있다. 러시아 군인들은 부근에서 참호를 파고 있고 장갑차들도 보인다.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온 한국의 KBS 특파원임을 밝히고 취재를 요청했다. 신분 확인에 몸수색을 하면서 친러 의용군은 총부리를 겨눈 채 이것저것을 묻는다. 하지만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일단 검문소를 떠나 시내로 되돌아 온 뒤, 어둠이 내리길 기다렸다. 밤에 몰래 촬영해보자는 ‘작전’이다. 2시간 여 지난 뒤 다시 차를 몰아 삼엄한 검문소 촬영을 시도했다. 러시아 카메라맨은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차 안에 몸을 숨긴 채 현장을 찍기는 했는데, 그만 친러 의용군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칠흑 같은 밤. 총부리를 겨눈 무장 군인들. 복면을 한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러저런 신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 몸에 한기가 왔다. 다행히 카메라맨의 재치로 촬영한 화면이 담겨 있는 카메라의 플래시 카드는 발각되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참 많은 질문을 받고 결국 풀려 날 수 있었다. 길고 힘든 하루였다.


<사진4> 취재진을 검문중인 러시아 군인

크림반도의 상황은 상당히 유동적이고 장기화될 것이다. 크림 사태를 일으킨 푸틴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에게 있어서 크림은 지렛대 일 뿐이다. 크림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서방에 대항한 최전선. 거기에 친 유럽-반 러시아 성향의 합법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호락호락 놔둘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키예프에 들어선 친 유럽 과도 정부는 오는 5월 대선을 하고, 유럽 연합은 물론 나토에도 가입하겠다고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악몽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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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크림반도를 가다
    • 입력 2014-03-10 16:31:43
    • 수정2014-03-14 15:31:17
    취재후·사건후
러, 위장전술로 신속하게 크림 장악 푸틴 대통령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현장을 취재하는 방송기자 입장에서 새로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크림 자치공화국과 우크라이나 경계선 - 사실상 국경으로 갔다. 이미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대부분 장악했고, 우크라이나군의 조직적 저항도 없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3월 1일 크림자치공화국 정부가 지원을 호소하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군대를 파병해 주요 거점을 하루 만에 장악했다.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 주변에 있는 2개의 군사 공항을 통해 군 수송기로 군대를 실어 나른 뒤, 말 그대로 '전광석화' 같은 작전을 벌인 것이다. 러시아군이 신속 작전에 성공한데는 '위장 전술'도 한 몫을 했다.


<사진1> 우크라이나-크림공화국 국경 검문소

KBS 팀은 현장 취재 중 시 외곽 지역에서 중무장한 장갑차가 속속 배치되는 등 군대의 움직임을 잇달아 포착했는데, 이상하게도 군인들의 정체가 불분명했다. 러시아 군인인지 우크라이나 군인인지 알 수 없었다. 진녹색의 군복에는 국기나 계급장은 물론 이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카메라맨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러시아 군인이면 러시아가 본격 개입을 시작한 것이고, 우크라이나 군인이면 반격을 시도하겠다는 뜻이니, 곧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상황. 마침 길거리에 서 있는 장갑차 한 대를 발견하고, 장갑차에 타고 있는 군인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군인들은 촬영을 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러시아 카메라맨에게 내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찍으라고 말한 뒤 접근했다.

"net!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말로 안 된다는 뜻)" 장갑차 지휘관처럼 보이는 무장 군인이 화를 내며 뛰쳐나온다. "한국에서 온 KBS 특파원 입니다." "한국이고 뭐고 찍지 마세요!" 분위기가 험악하다. 뒤돌아보니 러시아 카메라 맨, 안 찍는 척 하면 촬영하는 눈치다. 그래도 비무장 상태인 기자에게 어떻게 하겠냐 싶어 질문을 이어갔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작전 중입니다."  "혹시 러시아 군인인가요?"  "..."

다시 말해 러시아는 군대를 파병하면서, 식별 표를 모두 제거해 정체가 누구인지 헛갈리게 한 것이다. 주요 외신들도 모두 그들에 대해 'unidentified(정체가 불분명한)' 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당시에는 더 이상 물어봤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싶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 뒤 현장 취재를 계속하면서 그들이 러시아 군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러시아 군대가 장갑차를 앞세워 크림 공화국 수도 심페로폴로 들어오는 장면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야간 작전을 벌이는 장갑차를 KBS가 단독 촬영하던 중 삼색 문양의 러시아 국기가 선명한 모습을 발견했다. 또 러시아 번호판을 단 차량 도 발견됐다.


<사진2> 국경 검문소에 배치된 러시아 군 장갑차

신속하게 크림작전에 성공한 러시아 군인들은 3월 2일 오전부터는 시내 주요지역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크림공화국 의회 앞에는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이 가득했다. 시민들은 이들을 반겼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친 유럽 정권이 들어서고 크림공화국의 러시아 주민들이 불이익 받을 것을 우려했는데 러시아 군인들이 왔으니, 러시아계 주민들은 해방군을 맞는 모습이었다.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러시아군은 수도와 거점지역을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 군 부대도 대부분 포위했다. 우크라이나 군 부대를 포위, 압박해 외부로 나오지 못한 채 부대에 고립시키는 작전이었다. 총 한방 쏘지 않고 크림을 거의 장악한 것이다.
러시아가 이처럼 작전을 성공시킨 또 다른 요인에는 친 러시아 주민들의 역할이 컸다. 친 러시아계 주민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형제임을 내세우면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하나 건너면 그들은 모두 사촌 간이다. “친 러시아계 주민이 크림반도에서 60%를 차지하고 있고, 러시아가 군대를 파견해 주요 거점을 장악한 상황에서 피를 흘려봤자 형제간의 싸움이며 얻을게 없으니 그냥 부대 안에 있으면 된다, 러시아 군이 공격하지 않도록 우리가 막아 주겠다.” 고 설득했고 실제로 효과를 본 것이다. 러시아 군 역시 본부 지시를 받을 듯 불필요한 자극을 삼가는 눈치였다. 크림반도에 있는 우크라이나인이나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숫자상으로나 군사적으로 열세임이 분명한데 굳이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해군 참모총장은 임명 하루 만에 러시아에 백기투항 했다.


<사진3> 크림 공화국으로 들어가는 러시아 군 트럭

이러저런 이유로 새로운 뉴스를 찾아 크림공화국과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차를 몰았다. 크림반도의 국경 도시 아르미안스크는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에서 북쪽으로 2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크림반도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 역시 예상 그대로다. 장전한 AK 소총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친러 의용군들은 돌과 타이어 등으로 도로를 막고, 모레 주머니를 쌓아 검문소를 만들었다. 3색 문양의 러시아 국기가 꽂혀있다. 러시아 군인들은 부근에서 참호를 파고 있고 장갑차들도 보인다.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온 한국의 KBS 특파원임을 밝히고 취재를 요청했다. 신분 확인에 몸수색을 하면서 친러 의용군은 총부리를 겨눈 채 이것저것을 묻는다. 하지만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일단 검문소를 떠나 시내로 되돌아 온 뒤, 어둠이 내리길 기다렸다. 밤에 몰래 촬영해보자는 ‘작전’이다. 2시간 여 지난 뒤 다시 차를 몰아 삼엄한 검문소 촬영을 시도했다. 러시아 카메라맨은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차 안에 몸을 숨긴 채 현장을 찍기는 했는데, 그만 친러 의용군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칠흑 같은 밤. 총부리를 겨눈 무장 군인들. 복면을 한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러저런 신문을 받아야 하는 상황. 몸에 한기가 왔다. 다행히 카메라맨의 재치로 촬영한 화면이 담겨 있는 카메라의 플래시 카드는 발각되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참 많은 질문을 받고 결국 풀려 날 수 있었다. 길고 힘든 하루였다.


<사진4> 취재진을 검문중인 러시아 군인

크림반도의 상황은 상당히 유동적이고 장기화될 것이다. 크림 사태를 일으킨 푸틴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최종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에게 있어서 크림은 지렛대 일 뿐이다. 크림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서방에 대항한 최전선. 거기에 친 유럽-반 러시아 성향의 합법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호락호락 놔둘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키예프에 들어선 친 유럽 과도 정부는 오는 5월 대선을 하고, 유럽 연합은 물론 나토에도 가입하겠다고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악몽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입장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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