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미 정상, 핵개발 놓고 대립 심각”
입력 2014.03.28 (06:15)
수정 2014.03.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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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70년대 한국의 핵개발을 놓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들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 비밀문서가 공개됐습니다.
핵개발을 놓고 당시 미 국방장관이 박 대통령을 직접 추궁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워싱턴에서 이강덕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70년 대 한미양국의 외교갈등과 관련된 기밀 문서들입니다.
한국의 핵개발을 막는 과정에서 있은 한미양국 고위인사들의 대립과 갈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습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보고서는 1974년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인가했다는 증거는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1975년 8월에는 포드 대통령 지시를 받은 술레진저 미 국방장관이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개발은 소련의 핵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동 등에 강력 반대했던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군 카드를 밀어붙였고 한국 정부의 핵개발 카드가 철군을 막았다는 사실도 미국 윌슨센터와 박진 외대교수가 공개한 자료에는 나와 있습니다.
<인터뷰> 박진(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수) :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고 주한미군 철수가 중단되고 한미간의 관계가 복원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자료들은 한국의 핵개발에 미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DJ 납치와 문세광 사건으로 대립이 극심해진 한일관계를, 미국이 나서서 적극 중재한 문서들도 공개됐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강덕입니다.
1970년대 한국의 핵개발을 놓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들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 비밀문서가 공개됐습니다.
핵개발을 놓고 당시 미 국방장관이 박 대통령을 직접 추궁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워싱턴에서 이강덕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70년 대 한미양국의 외교갈등과 관련된 기밀 문서들입니다.
한국의 핵개발을 막는 과정에서 있은 한미양국 고위인사들의 대립과 갈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습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보고서는 1974년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인가했다는 증거는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1975년 8월에는 포드 대통령 지시를 받은 술레진저 미 국방장관이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개발은 소련의 핵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동 등에 강력 반대했던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군 카드를 밀어붙였고 한국 정부의 핵개발 카드가 철군을 막았다는 사실도 미국 윌슨센터와 박진 외대교수가 공개한 자료에는 나와 있습니다.
<인터뷰> 박진(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수) :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고 주한미군 철수가 중단되고 한미간의 관계가 복원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자료들은 한국의 핵개발에 미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DJ 납치와 문세광 사건으로 대립이 극심해진 한일관계를, 미국이 나서서 적극 중재한 문서들도 공개됐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강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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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한미 정상, 핵개발 놓고 대립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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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3-28 06:16:25
- 수정2014-03-29 08:00:05
<앵커 멘트>
1970년대 한국의 핵개발을 놓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들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 비밀문서가 공개됐습니다.
핵개발을 놓고 당시 미 국방장관이 박 대통령을 직접 추궁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워싱턴에서 이강덕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70년 대 한미양국의 외교갈등과 관련된 기밀 문서들입니다.
한국의 핵개발을 막는 과정에서 있은 한미양국 고위인사들의 대립과 갈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습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보고서는 1974년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인가했다는 증거는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1975년 8월에는 포드 대통령 지시를 받은 술레진저 미 국방장관이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개발은 소련의 핵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동 등에 강력 반대했던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군 카드를 밀어붙였고 한국 정부의 핵개발 카드가 철군을 막았다는 사실도 미국 윌슨센터와 박진 외대교수가 공개한 자료에는 나와 있습니다.
<인터뷰> 박진(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수) :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고 주한미군 철수가 중단되고 한미간의 관계가 복원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자료들은 한국의 핵개발에 미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DJ 납치와 문세광 사건으로 대립이 극심해진 한일관계를, 미국이 나서서 적극 중재한 문서들도 공개됐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강덕입니다.
1970년대 한국의 핵개발을 놓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들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는 내용의 미국 비밀문서가 공개됐습니다.
핵개발을 놓고 당시 미 국방장관이 박 대통령을 직접 추궁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워싱턴에서 이강덕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1970년 대 한미양국의 외교갈등과 관련된 기밀 문서들입니다.
한국의 핵개발을 막는 과정에서 있은 한미양국 고위인사들의 대립과 갈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됐습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보고서는 1974년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인가했다는 증거는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1975년 8월에는 포드 대통령 지시를 받은 술레진저 미 국방장관이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개발은 소련의 핵위협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동 등에 강력 반대했던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군 카드를 밀어붙였고 한국 정부의 핵개발 카드가 철군을 막았다는 사실도 미국 윌슨센터와 박진 외대교수가 공개한 자료에는 나와 있습니다.
<인터뷰> 박진(한국 외국어대학교 교수) :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고 주한미군 철수가 중단되고 한미간의 관계가 복원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자료들은 한국의 핵개발에 미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DJ 납치와 문세광 사건으로 대립이 극심해진 한일관계를, 미국이 나서서 적극 중재한 문서들도 공개됐습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강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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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기자 kd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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